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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38/120)

38화

“샤를로즈 아가씨는 늘 화나 계시는데 티아 아가씨의 쪽지로 더 화가 날까요?”

“그건 맞지.”

“그러니 걱정 마시고 이 섬에 쉬고 계세요. 아가씨도 이 섬으로 오길 원하셨잖아요. 이 섬의 모든 병자를 고치고 싶다고 하셨으면서. 설마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집으로 돌아가면 언니가 내 뺨을 내리치겠지. 여느 때처럼.”

“그러겠죠. 샤를로즈 아가씨가 단단히 화가 나셨을 테니까요.”

“뺨을 맞은 나는 또 도망가고 싶겠지. 어머니와 언니의 집에서.”

“티아 아가씨는 너무 물러 터졌어요! 정말 샤를로즈 아가씨에게 반항이라도 좀 해 보세요!”

“돌아가게 된다면 그래 볼까? 그런데 언니가 이미 날 봐주지 않는 상황이면 어쩌지?”

“그러면 싹 무시하면서 살면 되죠.”

“엘. 그러기에는 언니에게 쌓인 연모가 두려워.”

“그러니깐 왜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 몹쓸 아가씨를요!”

엘은 속이 터지겠는지 제 가슴팍을 주먹으로 퍽퍽 치며 소리쳤다. 티아는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방긋 웃었다.

“샤를로즈 언니가 어느 순간부터 눈에 밟히고 신경 쓰이는 걸 어떡해. 다른 남자들을 봐도 샤를로즈 언니만 눈에 보여 미칠 것 같아. 그래서 언니에게서 도망 온 거잖아. 그 도망을 네게 부탁한 거고.”

“그러니깐 왜 그 언니를 좋아한 거예요. 그 악역을!”

“언니는 어머니 바보였어. 어머니밖에 모르던 언니가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어 준 날이 떠올라. 그날도 지금처럼 날씨가 밝고 아름다웠는데 말이야.”

“……이제는 샤를로즈 아가씨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아주 대놓고 말씀하시네요.”

“여기서 나를 아는 건 엘뿐이잖아. 내가 누구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상관없는 일이잖아. 아무도 나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니까. 그저 사람들을 고쳐주는 신관인 줄 알지.”

“티아 아가씨. 그래도 이제는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 이 섬을 찾는 병자들이 너무 많아졌거든요. 바깥에서 온 사람들은 되도록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사람들도 살고자 해서 이 지옥과도 같은 섬을 찾은 건데 내가 무시하면 쓰나.”

“그러다가 추적이 붙기라도 한다면 아가씨는 다시 그 집에 잡혀 들어갈 거라고요. 제 목숨도 아마 날아가겠죠. 아가씨는 제가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우리 엘. 고생이 많네.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내가 발각되더라도 네 목숨은 살려 주겠다고. 이미 계약서까지 쓴 사이인데 너무 날 못 믿는 거 아니야?”

“아가씨는 정말 바보예요. 바보!”

“그래. 차라리 바보가 되었으면 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가 된다면 언니도 자연스럽게 잊게 되겠지.”

“아가씨…….”

해변을 보는 티아의 눈빛이 아련했다.

‘언니. 나 여깄어. 언니는 나를 찾을까?’

티아는 내심 샤를로즈가 자신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

요한이 해리슨을 끌고 유진의 집무실을 벌컥 열었다.

그곳에는 제레미도 함께 있었다.

제레미는 꽤 쾡한 얼굴로 요한과 해리슨을 향해 얼른 몸을 숙여 예의를 갖추었다.

유진은 갑자기 들이닥친 해리슨과 요한에 잠시 당황했다.

“두 분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그러자 해리슨이 큼, 헛기침을 한 뒤 유진을 찾은 목적에 대해 말했다.

“티아의 행방을 어렴풋이 찾게 되었어.”

“그것이 진짜입니까? 폐하.”

“소문일 뿐이지만 찾아가서 나쁠 거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데 하나 부탁해도 될까.”

“뭐든 말씀하세요. 폐하.”

“티아를 찾기 위해서 샤를로즈가 필요한데 그 애 좀 이 집에서 나가게 해 줘. 그 정도쯤은 허락해 줄 거라 믿어.”

“혹 샤를로즈가 폐하께 부탁하신 일입니까?”

“뭐,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

“그럼 기각입니다. 죄송합니다. 폐하.”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어머니의 유언 때문입니다. 샤를로즈가 저택을 비우게 된다면 레베크 공작저의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그대의 어미가 무슨 유언이 대단하다는 건 알겠는데 샤를로즈가 그렇게 귀한 존재였는가?”

“귀하기보다는 귀찮은 존재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샤를로즈의 악행들을요.”

“그야 용서받지 못할 짓만 한 건 잘 알지. 아니, 아주 열받은 일만 골라 하고 있으니 나도 미쳐 버리겠어.”

“그러니 폐하께서도 샤를로즈와 연을 맺으려고 하지 말고 끊으세요. 그게 해답일 겁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샤를로즈와 약혼을 하려고 해. 네게 물어보지 못해서 미안하군. 레베크 공작.”

“……티아를 버리고 샤를로즈와 약혼을 한다고요? 폐하, 미치셨습니까?”

“샤를로즈와 합의를 봤거든.”

이 대화에 요한이 끼어들었다.

요한의 말에 유진은 미간을 좁히며 그게 무슨 소리냐며 눈을 크게 떴다.

“샤를로즈가 티아를 찾기 위해 우리랑 합의를 좀 봤어. 서로에게 이득이 있는 합의는 아니지만. 티아를 위해서라면 이정도쯤은 봐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요한님. 설마 샤를로즈의 꾐에 넘어가셨습니까?”

“꾐보다는 샤를로즈가 우리를 홀린 거겠지. 다 말해 줄 수는 없는 내용이라 이정도까지만 말하지. 샤를로즈가 티아의 행방을 찾아왔어. 그래서 그런데 샤를로즈 좀 빌려 가지. 안 되나?”

“하아. 샤를로즈가 또 사고를 쳤군요.”

“레베크 공작은 사랑스러운 막내 여동생이 보고 싶지 않아? 나는 보고 싶어서 돌아 버릴 지경인데.”

요한 얼른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이를 아드득 갈았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대화는 그만두고 티아를 찾기 위해 얼른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유진의 고집도 장난 아니었다.

“샤를로즈를 빌려 주는 건에 대해서는 불허합니다. 죄송합니다.”

해리슨은 유진이 있는 곳까지 성큼 다가가 강압적인 명령을 내렸다.

“내 명이야. 샤를로즈를 잠시 동안 너희가 좀 놓아줘. 어차피 골칫덩어리 우리가 데리고 있는다고 죽지 않아. 알잖아?”

“왜 다들 샤를로즈를 데려가려고 하시는 겁니까. 샤를로즈는 정신이 아주 나쁜 애입니다. 아시잖습니까. 이것도 다 함정일 수 있습니다.”

인내를 참지 못한 요한은 처음으로 화를 내었다.

“그럼 너희는 티아에 대한 행방을 알아? 샤를로즈가 알려 줬다고. 본인이 아는 거니까 샤를로즈를 앞장서 데려가려는데 왜 그렇게 말이 많아. 티아가 위험해질 수 있는 곳이라고, 그곳이!”

“……샤를로즈가 티아가 있는 곳이 어디라고 말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남부의 섬에 위치한 병자들의 섬에 있다더군. 물론 확신은 아니지만. 소문을 들었다고 해.”

“병자들의 섬이라면, 역병 환자들만 감금해 둔 곳이 아닌가요, 폐하?”

“내가 알기로는 맞다. 만약에 티아가 거기에 있더라면 지금까지 찾지 못했던 이유가 될 수 있겠지. 병자들의 섬엔 추적이 붙기 힘드니까. 다들 그 섬은 지옥이라며 들어가기 싫어했고, 우리 역시 그 섬을 빼고 조사했으니까. 샤를로즈의 말이 무조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이지.”

해리슨은 한숨을 내쉬듯 말했고, 유진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샤를로즈를 데리고 나가는 것을 허락했다.

아무래도 샤를로즈보다는 병자들의 섬에 티아가 있으면 위험해지니까.

아아, 샤를로즈.

제발 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거냐.

유진은 속으로 샤를로즈를 욕하며 허락을 내렸다.

제레미가 옆에서 큰 눈을 뜨고 유진을 눈짓으로 말려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무래도 사교계에 샤를로즈와 티아에 대해 말이 많아 레베크 공작가의 명예가 떨어지고 있었다.

하루빨리 티아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사교계의 천사와 다름없었던 티아를 찾아 가문의 명예도 다시 올리고, 샤를로즈를 벌하면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이게 유진의 지금 목표였다.

안 그래도 샤를로즈 때문에 사업에서도 계속 펑크가 나고 있어 짜증 날 참이었다.

어머니의 유언 때문에 계속 집안 식구로 남아 있는 것도 좀 그랬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샤를로즈가 이 집안에서 사라지면 집안의 힘을 잃게 된다. 모두 다.

무너지고 만다.

어차피 유진은 샤를로즈를 평생 데리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까지 이 집무실에 박혀 있으면서 유언에 대한 능력을 어떻게 없앨 수 있는가 고민을 많이 해 왔다.

사실상 도박에 가까웠는데, 어머니의 유언장을 샤를로즈가 들고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았다.

어머니의 유언장은 샤를로즈에 한해서 움직였다. 그래서 그 애가 그 유언장을 몸에 가지고 다니면 부작용이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선대 공작이 여태 남겼던 일기장 중에 유언에 관련된 것을 찾았다. 그건 유언장에 특정한 인물이 쓰여 있으면 그 특정한 인물에게 유언장을 건네줘 힘을 보존하는 방법이었다.

잠깐은 힘을 잃을 거라는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힘은 복구하고 방어가 완벽했던 저택의 힘도 무너졌다가 다시 되살아난다고 했다.

물론, 현실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단 한 번도 도전해 보지 않았던 터라 매우 고민하고 있었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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