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120)

37화

정말 어느 한 로맨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전개가 이미 남자 주인공3에 적용되고 있었다.

샤를로즈는 이 전개를 이미 알고 있었다.

공략집에 적혀 있는 남자 주인공들의 전개나 엔딩을 미리 읽었기 때문이다.

읽어서 나쁠 것 없지라고 시작한 행동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아마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요한의 저런 날카로운 반응에 일일이 상대했다가는 골치가 아팠음에 틀림없었다.

왜 역정을 내고 난리냐며.

대체 여자 주인공은 뭐 하고 돌아다니길래 남자 주인공이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라며 속으로 그 애를 욕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샤를로즈는 남자 주인공들의 불운한 과정들을 요약집으로 봤다.

그러니깐 요한이나 해리슨이 티아에 대해 자신에게 예민하게 반응해도 그러려니 하는 것이었다.

저자들도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뻔한 서사를 위해 탄생한 캐릭터들.

샤를로즈는 가끔 멍하니 있을 때 남자 주인공들도 불쌍하다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었다.

여자 주인공의 어장을 위해 생긴 남자 주인공들의 불운은 그 애를 위해 탄생했다.

모든 불운은 여자 주인공이 없애 주려고 생겨난 것이다.

가엾다.

샤를로즈는 원작 남자 주인공들에 대한 생각을 그리 정정했다.

가엾다고 말이다.

“왜 말이 없어. 샤를로즈. 네 입을 찢어야지, 티아에 대해 말을 할 건가?”

“왜 이렇게 급하세요, 요한. 어차피 티아는 지금 찾을 수 없어요. 저는 티아가 어디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할 거예요.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요.”

“그래서 어디 있는데.”

“사냥꾼의 말을 들어 보니 남부 섬 어딘가 사람들을 치유해 주는 여자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 뭐야. 그 여자가 티아가 아닐 수도 있잖아.”

“요한. 생각해 보세요. 이 세상에 사람들을 치유해 주는 여자 인간은 티아밖에 없어요. 남자 인간은 루야가 있지만요.”

“……아.”

“성녀의 신성력을 이어받은 건 오로지 티아밖에 없잖아요. 그럼 그 남부의 섬 어딘가 사람들을 치유해 주고 있는 여자가 티아일 가능성이 높죠. 아니 티아일 수밖에 없죠.”

“그래서 그 남부 섬에 대해 조사를 했나?”

“아까 막 루아에게 명령을 내려놓은 상황이에요. 아직까지는 별 이득은 못 봤지만요.”

“얼른 티아를 찾아야 해. 내 몸이 다시 썩기 시작했어.”

“몸이 썩는다는 건 저주가 시작되었다는 건가요?”

“역시 저주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네. 샤를로즈.”

“티아가 말해 준 적이 있어요. 저주를 풀기 위해 요한의 집에 자주 간 날이 기억나거든요. 그런데 완전히 고쳐진 거 아니었나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티아가 사라진 순간부터 천천히 내 몸이 저주받기 시작했어.”

“간단한 원리네요. 매일 티아의 옆에서 그 애의 신성력을 받고 요한의 몸에 있던 저주가 점점 사라졌다가 그 신성력을 받지 못하니 저주가 다시 올라오고 있는 것뿐인걸요.”

“네가 저주에 대해서 어떻게 그리 잘 알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생각해 보세요. 지금까지 계속 티아의 옆에 있다가 티아가 집을 나간 순간부터 저주가 생겨난 거잖아요. 그럼 답은 하나죠. 제가 말한 아주 간단한 원리.”

“……그럼 어서 티아를 찾아야 해. 폐하, 얼른 남부의 섬에 병사들을 모아.”

“하아, 그렇게 쉬웠으면 벌써 했겠지.”

“혹시 남부의 섬에 뭐가 있어?”

“남부의 섬에 역병이 든 자들을 모아 두었어. 함부로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는 곳이지.”

“그런 곳에 지금 티아가 있다는 소리야?”

“샤를로즈의 정보에 따르면 그곳에 있는 것 같군. 병자들의 섬에 말이지. 그곳은 완전한 감옥과도 같아. 하물며 추적도 안 돼. 다들 병에 무서워 다가가지도 못하고 있거든. 그나마 자진해서 온 신관들이 역병에 돈 자들을 치유하긴 하는데 그 신관들도 역으로 병에 걸려서 그 섬은 지옥이라고 불리지.”

샤를로즈는 처음 듣는 남부 섬에 관한 내용에 골똘히 생각하다가 말을 꺼냈다.

“그 섬, 제가 갈 수는 없을까요? 저는 죽어야만 하는 인간이라서요. 앞서 말했듯이 사냥꾼이 제가 반 악마화가 되었다고 했잖아요. 그곳에 가면 저는 역병에 걸리지 않겠죠? 저는 인간이 아니니까요.”

“샤를로즈. 그 섬은 위험해.”

“폐하가 언제부터 제 안전을 신경 썼나요? 저는 오로지 티아가 얼른 나타나길 바라고 있는 몸이에요. 티아가 지금 어디 있는지 대충 아는 이상은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샤를로즈, 넌 이번 주에 나와 약혼식을 해야 해. 어딜 간다는 거야.”

“어차피 겉만 좋은 약혼식,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대충 약혼서에 도장만 찍으면 폐하와 저는 약혼한 사이가 되는 거 아니에요?”

“……맞, 맞는 말이지만.”

해리슨을 말을 더듬거리다 얼른 정신을 차렸다.

이러다가 샤를로즈의 페이스대로 말려 버릴 것이 분명했다.

해리슨은 은회색 눈동자를 굴려 요한을 슬쩍 바라보았다. 요한은 해리슨의 달갑지 않은 시선에 눈꺼풀을 팔랑이며 눈을 감아 무시했다.

요한, 이 망할 놈이 감히 무시를 해?

해리슨은 하는 수 없다는 듯 샤를로즈에게 말려들기로 했다.

어째 이곳은 샤를로즈의 편이 많은 것 같지.

착각인가.

“알았다. 대신 나도 같이 가지.”

“폐하를 도와야 하는 게 내 일이니 나도 같이 가지.”

“그럼 일단 제 오라버니들에게 허락 좀 맡고 와 주실래요? 제 말은 어차피 듣지도 않아서요. 권위 있는 당신들이면 제 오라버니들이 꼬리를 내리고 허락해 주겠죠. 저와는 다르시니까요.”

“그들에게 허락을 받지 못한다면 넌 여기에 남아 있어. 샤를로즈.”

해리슨은 오만하게 샤를로즈를 내려보며 드디어 명령이란 것을 내렸다.

“폐하가 어떻게든 저를 여기서 빼내 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이게 진짜.

해리슨은 샤를로즈를 향해 무어라 잔소리를 더하기 전에 요한에게 끌려가 버렸다.

굼떠 있다가 티아에게 무슨 일이 생겨 버리면 어쩌냐는 이유로.

“다녀오세요, 폐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해리슨은 샤를로즈의 방 밖으로 끌려 나오면서 밝게도 말하는 샤를로즈의 목소리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고집 하나는 여전히 센 녀석.

해리슨은 몰래 샤를로즈를 찾아왔다가 그녀의 오라비들과 얼굴을 맞대야 했다.

아, 물론 원래 먼저 약속을 잡고 찾아오는 게 맞았지만 티아 때문에 모든 것이 반대로가 되어 버렸다.

티아의 남자들이 자꾸 몰래 찾아오니 그녀의 첫째 오라비인 유진이 마음대로 저택에 드나들라며 허락을 내린 것이었다.

그 후로부터 티아의 남자들은 마음대로 이 레베크 공작저에 오게 되었다.

레베크 공작저의 주인도 모르게.

***

백금발의 머리카락이 허공에 휘날렸다. 하늘을 닮은 맑고 푸르던 눈동자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한 여자가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한 노파를 묵묵히 내려다보았다.

“아가씨, 제발 제 딸 좀 살려 주십시오. 아가씨가 아픈 사람들을 고친다고 들었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아무런 표정을 하지 않았던 그 여자는 노파의 말에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돌려보내려고 했다.

“먼저 온 분들부터 치료받아야 해서요. 순서가 있거든요. 죄송해요.”

“늦게라도 좋으니 제발 제 딸 좀 봐주십시오…….”

“그럼 시간이 될 때, 봐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노파는 여자의 발목에서 두 손을 떼고서 허리를 붙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자기가 갔던 길로 되돌아갔다.

여자는 노파의 씁쓸한 뒷모습을 잠시 보더니 저를 찾는 목소리에 고개를 싸늘히 돌렸다.

“티아 아가씨!”

그 여자의 이름은 모두가 찾던 티아 레베크였다.

어깨를 웃돌았던 백금발이 어느새 조금 길어 가슴께로 내려왔다. 조금 어렸던 얼굴이 이제는 성숙해졌다.

이 섬에 우연히 갇혀 산지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티아의 모습이 변했다.

물론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샤를로즈에 비해서는 아니지만.

“여기서는 내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아, 죄송합니다. 로즈.”

티아 아가씨라고 부르던 여자는 티아를 도망가게 한 레베크 공작저의 메이드였다.

샤를로즈에게서 도망가고 싶어 하는 티아를 위해 아무도 모르게 돌파구를 만들어 준 영리한 메이드였다.

레베크 공작저는 많은 메이드를 거느리고 있어 이런 자가 있는지 잘 모르지만.

귀족 집안의 메이드는 보통 많이들 그만두고 다시 취업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이 메이드 역시 레베크 공작저에서 퇴사를 하며, 자신의 천사인 티아를 데리고 이 남부의 섬. 병자들의 섬에 도망 온 것이었다.

병자들의 섬은 쉽게 들어갈 수도, 쉽게 나갈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 위대하신 분들도 찾기 힘들 테지.

“엘, 정말 나는 여기 있어도 될까?”

“있어도 됩니다. 아가씨는 제 천사니까요.”

“……다들 걱정하고 있을까?”

“괜찮을 겁니다. 쪽지까지 적어 놨으니까요.”

“그 쪽지로 언니가 화나지 않았을까?”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