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대답할 수 있는 정도의 정보는 나올 것 같았다.
샤를로즈의 굳게 닫힌 두 입술이 부드러이 떨어졌다.
“티아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여동생이었어요. 저와는 반대로 상냥하고 누군가를 구해 주려는 성격이 강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인맥이 좋아졌고.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이정도 밖에 떠오르는 게 딱히 없네.
이안은 더 없냐며 샤를로즈를 추궁해 봤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더 이상 티아에 대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여동생에게 딱히 관심이 없어서요. 딱 이 정도만 아네요.”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니에요? 보통 인간의 자매라면 그렇게 서로를 아껴 주던데 샤를로즈는 너무 냉정하네요.”
이안의 허를 찌르는 발언에 샤를로즈는 어깨를 으쓱였다.
“저희 자매는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라서요. 아무래도 저 때문에 티아가 집을 나간 것 같거든요. 확실하지는 않지만요.”
“여동생분이 집을 나갈 정도로 괴롭히신 거예요? 음, 샤를로즈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저는 그렇게 좋은 인간이 아니라서요.”
“하기야 어느 인간이 최고의 악마들을 곁에 두겠어요. 아마 샤를로즈밖에 없을 거예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이런 흑막 엑스트라들은 처음 보거든요.
샤를로즈는 뒷말을 삼키고선 여유롭게 이안에게 대응했다.
“그런데 대체 친구분들은 언제쯤-”
샤를로즈의 방바닥에 이동 마법진이 생기면서 해리슨과 요한이 나타났다.
해리슨은 샤를로즈를 바라보다가 처음 보는 사내에 미간을 좁혔다.
“샤를로즈. 네 왼편에 앉은 자는 또 누구지?”
“아. 소개해 드릴까요?”
“……소개?”
“아니면 그냥 서로 알아서 알아 가실래요?”
해리슨은 샤를로즈의 물음에 당황스러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옆에 있던 요한이 이안의 허리춤에 찬 성검을 알아챈 것인지 은밀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호라, 악마 사냥꾼을 데려왔구나. 샤를로즈가 데려온 것 같지는 않은데? 설마. 유진과 제레미 짓인가?’
음흉하게 웃는 요한의 모습을 우연히 본 샤를로즈는 이미 요한은 이안의 정체를 알아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요한은 특이하게도 해리슨보다 정보를 빨리 입수할 때는 음흉하게 웃었으니까.
샤를로즈는 게임 속 요한을 떠올리다가 금방 그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넌, 누구냐.”
해리슨은 샤를로즈의 왼편에 앉아 루아와 닮은 외형인 사내를 삿대질하며 누구인지를 물어 왔다.
이안은 대충 대답했다.
“샤를로즈의 감시 역인데요.”
“감시? 누구한테 명령받은 거지?”
“레베크 공자께서 명령했습니다. 샤를로즈가 봉인을 푼 악마를 죽여 달라는 의뢰를 받았거든요. 아, 저는 악마 사냥꾼 이안이라고 합니다.”
“악마 사냥꾼? 설마 샤를로즈에게 붙은 저 악마를 죽일 수 있는 거냐?”
“지금 당장 죽이지는 못해도 아마 시간이 걸려 죽일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더 급한 일이 생겼거든요. 샤를로즈가 반 악마가 되어서 죽여야 합니다.”
이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잘도 거짓말을 지껄였다.
샤를로즈가 악마가 된 건 이안이 만들어 낸 설정이었다.
연극을 하기 위해서는 캐릭터마다 설정이 있어야 하니까.
그것에 맞춘 것이다.
샤를로즈도 죽고 싶어 하니까.
대충대충 설정을 만들어 샤를로즈와 제 아비인 루아를 제외한 나머지를 이 촌극에 초대할 생각이었다.
이미 이 연극에 초대된 제레미는 홀라당 넘어왔지만 말이다.
“샤를로즈가 죽어야 한다고? 어째서?”
“인간이 악마로 변하는 특이한 케이스가 존재하거든요. 완전한 악마가 되지 않은 샤를로즈를 구하려면 그녀를 죽여야 해요. 그러면 악마의 피를 내뱉어 다시 인간이 될 수 있어요. 참 쉬운 일이죠?”
이안의 허무맹랑한 발언에 해리슨은 이게 사실이냐며 샤를로즈에게 화를 내었다.
샤를로즈는 그렇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악마 사냥꾼이 제게 악마가 되어 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침에 한 번 죽었다가 깨어났어요.”
활짝 웃으며 말하는 샤를로즈에게서 왠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을 받은 해리슨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미친 것. 정말 죽었다는 거냐.’
우호적인 관계를 맺자고 한 것이 분명 어제인데. 죽을 생각을 해?
감히?
해리슨은 샤를로즈의 뻔뻔한 태도에 혈압이 오를 지경이었지만 이 정도는 거뜬하게 참아 낼 수 있는 인내력이 생겼다.
전부 다 샤를로즈 덕분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샤를로즈에게 감사하고 있다.
늘 성질이 급한 성격을 고쳐 주어서 말이다.
해리슨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요한에게 명령을 내리듯 말했다.
“요한. 루야 좀 소환해 봐.”
“루야는 왜?”
“샤를로즈가 죽으면 누가 살려 내.”
“유진과 제레미가 있잖아. 굳이 우리 쪽에서 샤를로즈를 구할 필요가 있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그런 호위 필요 없어요, 폐하.”
샤를로즈는 해리슨의 나름 대로의 호위를 딱 잘라 거절했다.
죽다 살아나지 못하면 그것도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한 지 이미 꽤 오래되었다.
“그냥 오라버니들을 불러 주세요. 아, 제레미 오라버니면 딱 좋겠네요. 굳이 유진 오라버니까지 부르지 않아도 돼요. 아침에 보니 제레미 오라버니 혼자서도 절 살리던데요?”
“……제레미가 널 죽게 내버려 뒀다는 소리인가?”
해리슨의 눈빛이 갑자기 흉흉하게 변했다.
샤를로즈가 아무리 밉다지만 죽일 생각을 할 줄이야. 제레미, 너도 미쳤군.
해리슨은 솔직하게 말해 샤를로즈가 경멸스럽지만 죽이고 싶을 정도는 아니었다.
뭐, 티아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투닥거리며 생활하면서 미운 정이 생겨 버렸기에 더욱이 샤를로즈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이러다가 또 자살 시도를 하면 어쩌려고.
이제야 얌전해진 것 같은데 또 그런 짓을 벌이면.
제정신이 나갈 것 같은 예감이 물씬 들었다.
아마도 샤를로즈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 같다.
제 자신이.
해리슨은 혼동하고 있는 제 마음을 붙잡고 샤를로즈에게 다가가 충고했다.
“샤를로즈. 네 몸 좀 아껴.”
“폐하는 제 몸을 신경 쓸 분이 아니잖아요. 신경 끄세요.”
“와, 황제와도 친구가 되었군요. 대단해요, 샤를로즈.”
옆에 이안이 해리슨과 샤를로즈의 대화에 끼면서 신기하게 그 둘을 번갈아 보았다.
“저놈, 얼마나 눈치가 없는 거냐.”
해리슨이 샤를로즈가 들릴 정도로 작게 물자, 그녀가 화답했다.
“글쎄요. 폐하보다는 많지 않을까 싶은데요.”
“너 지금 내 앞에서 저놈 편을 드는 거야?”
“왜 들면 안 되나요, 폐하?”
“넌 이제 내 약혼녀가 될 거다. 이제는 나만 보란 말이다.”
“어차피 껍데기만 좋은 약혼녀잖아요. 굳이 폐하만을 볼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요. 안 그래요, 루아?”
오른편에 얌전한 강아지처럼 있던 루아가 샤를로즈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습니다. 애초에 샤를로즈는 누구의 것도 아니죠. 인간 황제. 착각하지 마세요. 샤를로즈는 당신과 약혼은 하지만 마음은 주지 않을 예정이니까요.”
“이 악마 새끼가.”
해리슨은 화가 치밀어 올라 루아를 한 대 때리려고 주먹을 쥔 오른손을 위로 들었지만, 천천히 올린 어깨를 내렸다.
아니야. 이렇게 하나하나 반응하다가는 샤를로즈가 원하는 모습만 보여 주게 돼.
샤를로즈에게 약점이 될 만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샤를로즈는 보통내기가 아니니까. 분명 이런 걸로 나를 꼭두각시처럼 이용할지도 몰라.’
바보 같은 해리슨은 샤를로즈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샤를로즈는 그럴 정도로 주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티아의 남자들과 상종도 하기 싫어했던 사람이 샤를로즈였다.
그러나 샤를로즈는 티아를 찾겠다는 명분을 두고 티아의 남자들과 합의점을 본 것이다.
“폐하, 그나저나 티아에 대한 행방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샤를로즈는 이안이 알려 준 내용을 공유하려고 했다.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는 티아를 위해 뭉쳐진 인물들이었으니까.
“뭐지? 얼른 말해 봐. 샤를로즈.”
샤를로즈는 요한의 뜬금없는 반응에 시선을 그에게로 빠르게 옮겼다.
“악마 사냥꾼에게 혹시 티아와 비슷한 자를 본 적이나 들은 적이 있나 물어보니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티아는 어디에 있는 거지?”
“…….”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 그 입을 찢어 버리기 전에.”
평소 헤실헤실 웃는 요한은 티아에 대해서만 유독 날카롭게 반응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모든 원작 남자 주인공들은 티아, 즉 원작 여자 주인공에게 구원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요한은 세상 유일한 대마법사지만, 그 높은 위치까지 가기 위해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그건 바로 저주를 받아 바깥세상에 나올 수 없는 것이었는데.
저주는 마력이 강한 자들에게 나타나 심하면 죽음으로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주받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외형이 흉측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요한의 저주받은 모습을 보고 기절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 저주를 신성력이 있는 티아가 풀어 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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