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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35/120)

35화

혹시라도 이안이 본 인간일지도 모르니까.

“어깨까지 오는 백금발에 푸른 눈을 지닌 꽤 아름다운 여자애예요. 이름은 티아라고. 혹시 본 적 있나요? 이안.”

“백금발에 푸른 눈의 여성은 본 적이 없네요. 스쳐 지나간 적이 있었나? 아니.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요? 이안도 보지 못했군요.”

샤를로즈는 대체 이 대륙에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인지.

원작 여자 주인공이 대단해 보일뿐이다.

능력 좋은 원작 남자 주인공들이 온 대륙을 다 쑤셔 보아도 나오지 않았다니.

게다가 악마들의 눈까지 피하면서까지 숨어 있다니.

정말 대단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아, 그런 소문은 들은 적이 있어요. 어느 한 여자애가 사람을 치유해 준다고 스치듯 들었던 것 같은데.”

치유? 여자애?

성녀는 이 역하렘 게임 속 원작 여자 주인공밖에 없을 텐데.

치유사가 있긴 하지만 그건 루야고. 덩치 큰 사내인데.

샤를로즈는 이안에게 그 이야기 좀 더 해 보라며 말을 부추겼지만, 그는 그 정도의 정보밖에 알지 못했다.

아, 운이 좋아서 어디 지방인지는 알아챘다.

“남부의 섬이라고 들었는데, 이 소문이 진짜인지는 제가 보지를 않아서요. 샤를로즈. 누군가가 한 거짓 소문일 수도 있어요.”

“남부의 섬 어딘지는 알고 있나요?”

“아뇨. 그것도 너무 포괄적이라 알 수 없었어요. 게다가 저는 그 당시 겨울잠을 자고 있어서요. 우연히 들은 거라 기억도 잘 나지 않아요.”

“악마가 겨울잠도 자요?”

샤를로즈의 궁금증은 루아가 풀어 주었다.

“샤를로즈, 악마라고 잠을 안 자는 게 아니에요. 악마도 피로함을 느끼면 겨울잠을 자긴 해요.”

“아.”

지금은 날씨 좋은 봄이라 루아가 잠을 자지 않고 있는 거구나.

샤를로즈는 악마에 대한 지식을 하나 더 얻게 되었다.

아니지, 지금은 악마가 아니라 티아에 대해 알아야 해.

“그럼, 티아를 찾기 위해서는 남부 섬을 다 뒤지는 수밖에 없겠네요.”

이안은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완전히 믿지 말라고는 했지만 샤를로즈는 급했다.

이 갑갑한 세계 속 홀로 악역으로 살아가기가 말이다.

“샤를로즈, 일단은 악마들을 시켜 남부 섬을 뒤지게 해 볼게요.”

루아는 오로지 샤를로즈가 먼저였기 때문에 헛소문일 수 있으니 하위 악마들을 시켜 남부 섬에 사람을 치유해 주는 여자애가 있는지 확인부터 하자며 말을 덧붙였다.

샤를로즈는 급한 마음을 다시 접어 두고서 루아에게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나저나 샤를로즈는 매일 이렇게 방에만 갇혀서 뭐 해요?”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방에만 있는 샤를로즈가 뭐 하고 지내는지 궁금한 이안이 그녀의 방 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샤를로즈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냥 방에서 사람들을 만나요. 이제 곧 저를 찾아올 사람들이 몰려올 거예요.”

“몰려와요? 사람들이?”

샤를로즈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이안을 위해 대충 설명을 덧붙였다.

“티아를 위한 남자들이 있거든요. 그분들과 친구의 연을 좀 맺었어요. 그리고 행방불명된 티아를 같이 찾아 주기로 했거든요. 아마 거의 매일 제 방을 제집 들리듯 오시니 이제 곧 등장할 거예요.”

“그렇군요. 샤를로즈는 인기가 참 많네요.”

“인기가 많다기보다는…… 원수가 너무 많아서요.”

샤를로즈가 어색하게 웃어넘겼다.

인기가 많다는 소리는 난생처음 들어 낯간지럽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 친구라면서요. 그러면 인기가 많은 거죠.”

“딱히 절 좋아하는 분들은 없으셔서요.”

“인간들은 샤를로즈를 싫어하나 봐요?”

“제가 좋은 역할은 아니어서요.”

샤를로즈의 물밀듯 들어오는 대답에 이안은 그녀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되었다.

인기는 많지만 인간들의 원한을 많이 산 인간이구나, 라는 결론을 추론했다.

뭐, 솔직하게 말해 샤를로즈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어 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 주는 인간이니 조금의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안은 인간들을 좋아해도 자신에게 있어 득이 되는 혹은 재미있는 인간들을 제 편으로 만들었다.

이안의 눈 밖에 난 인간들은 그에게 썩 좋은 대접은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샤를로즈는 흥미로운 인간이긴 했다.

제 아버지의 계약자이고 인간 주제에 악마를 홀려 거래를 하게 한 최초의 인간이니깐.

“아버지는 인간을 경멸한다면서 샤를로즈 옆에 잘만 붙어 있네요.”

“계약자니까.”

“아버지도 거짓말을 할 줄 몰랐어요. 인간이 싫어 미치겠다는 분이 계약자라는 인간 옆에 얌전히 애완동물처럼 굴 수도 있나 보네요?”

“이안. 지금 상황은 시비 걸 상황이 아니다.”

“맞아요. 부자의 싸움은 저 없을 때 하세요. 더 이상 귀찮은 일은 사절이거든요.”

샤를로즈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잘하면 3년 후가 아닌 그 안에 티아를 찾을 수 있다.

티아를 일찍이 찾고 샤를로즈는 이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그 일상을 벗어나려면 죽음밖에 없다.

죽어야지만 현실로 돌아가니까.

하지만 그 죽음도 길게 죽어야지 현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가지 그게 아니라면 현실에 다가가지도 못한 채 개죽음만 일어날 게 뻔했다.

그러나 혹시 몰랐다.

사람의 앞날은 정말 모르기 때문이다.

악역 엑스트라가 원작 남자 주인공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전개가 펼쳐진 것도 사람의 앞날을 모르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샤를로즈는 비뚜름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꽃무늬 벽지로 뒤덮인 천장이 보였다.

“있잖아요, 이안. 부탁이 있는데. 제 친구들이 오면 저를 또 죽여 줄래요?”

“또요?”

“이 감옥 같은 삶을 잠시 떠나게 해 줄 수 있는 게 죽음이라서요.”

“샤를로즈! 안 돼요!”

루아가 이번에는 결사반대했지만, 샤를로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저는 상관없어요. 샤를로즈가 좋다면야.”

“부자의 의견이 너무나도 다르네요. 루아, 이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저를 대해 주세요. 원래 그래야 하잖아요?”

“하지만!”

“루아는 그냥 제 말만 듣고 악마로서 잘 자라 주세요. 이안은 제 피를 먹고 인간으로 잘 자라 주길 바라요.”

“샤를로즈는 지금까지 봐 온 인간 중 제일 미친 것 같아요.”

이안은 엄청난 악의 기운이 샤를로즈의 몸 안에서 뿜어져 나와 휘파람을 불며 놀라워했다.

샤를로즈는 이안의 칭찬과도 같은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는 미쳐야지 살아남을 수 있어요. 제정신으로는 못 있어요.”

“듣자 하니 샤를로즈는 레베크 공작저의 골칫덩어리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나요?”

“어디서 들은 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짚으셨네요. 맞아요. 저는 레베크 공작저에서 없어져야 할 인간이죠.”

“음. 샤를로즈는 뭔가 특별해 보여요.”

“제 어디가요? 죽음에 무덤덤한 인간이라서 이안의 눈에는 특별하게 보이나 봐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버지는 용케도 이런 신기한 인간과 계약을 맺었네요.”

“샤를로즈는 나를 구원해 줬으니까.”

“제가 루아를 구원해 줬나요? 저는 루아를 이용할 생각밖에 없었는데.”

“……봉인을 풀어 준 게 저를 구원해 준 증거랍니다. 샤를로즈.”

“아. 그렇군요.”

샤를로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구원이야 솔직하게 말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루아가 그렇게 말하니 그런 것이다.

샤를로즈도 루아를 꽤 존중은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말이다.

“그런데 샤를로즈의 친구분들은 언제 와요?”

이안은 지루한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샤를로즈의 빈 왼쪽 자리에 앉으며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물어보았다.

“언제 오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거의 이 시간쯤에 오니까 곧 올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안 올 수도 있고요. 그분들은 몸이 귀하신 분들이거든요.”

“와, 샤를로즈는 그런 위대한 인간들과 친구가 된 거예요?”

이안은 의미 없는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샤를로즈는 이안의 반응에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에요. 이게 다 제 여동생 티아 때문에 친구가 된 것뿐이에요.”

“티아라는 분은 어떤 분인데요?”

이안은 샤를로즈가 그렇게 말하던 티아가 궁금해졌다.

이번 대 성녀인 것만 알고 있지, 어떠한 인물인지 전혀 몰랐다.

정보조차 입수하지도 못했다.

큰 벽들이 티아를 보호하는 것처럼.

티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냥 레베크 공작저의 차녀라는 정도밖에.

아름답다고 했나.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안은 티아를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샤를로즈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악마는 정보를 얻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자신이 모르는 정보 말이다.

샤를로즈는 이안의 물음에 잠시 고민해야 했다.

사실 티아를 이 게임 속에 빙의하면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스마트폰 안 게임 속 일러스트로밖에 보지 못했다.

아, 설정집.

게임을 빨리 클리어하기 위해서 커뮤니티에 공략법을 보면서 설정집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잠깐 본 적이 있었다.

그것도 여자 주인공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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