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숨을 쉬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제레미는 샤를로즈에게 기도했다.
‘살려 주세요. 샤를로즈를.’
제레미의 기도가 끝나기 무섭게 샤를로즈의 몸이 움찔 떨렸다.
죽은 샤를로즈가 살아 돌아온 것이었다.
샤를로즈는 눈살을 찌푸리며 목에 막힌 핏덩이를 토해 냈다.
그리고 제 앞에 눈물을 글썽이는 제레미를 볼 수 있었다.
“……제레미 오라버니는 저를 아예 살아 있는 인형이라고 생각하시나 보죠? 죽으면 언제든지 살릴 수 있는 인형.”
“그런 거 아니야. 다 저놈을 네게서 떼어 내려고.”
“제가 티아를 데려오지 못할까 봐 그런 게 아니고요?”
샤를로즈는 좀 전에 죽은 사람답지 않게 평범하게 행동했다. 입가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으며 제레미를 노려보았다.
“정말 그런 의도가 아니야. 너를 구원하기 위한 일이야.”
“저를 왜 구원해요? 오라버니는 티아나 찾는 일에 집중하세요.”
샤를로즈는 오랜만에 본 제레미가 제게 집착하는 모습이 영 불편한지 고개를 홱 돌리며 차갑게 대꾸했다.
제레미는 샤를로즈의 냉대를 많이 받아본지라 익숙하게 대응했다.
“너도 내 여동생이야. 어머니가 남긴 여동생이라고.”
“제레미 오라버니. 저를 위한 척 그만 연기하세요. 역겨우니까요.”
샤를로즈는 다른 남자 주인공들과는 친구가 되었으면서 제 가족인 두 명의 남자 주인공, 제레미와 유진과는 척을 질 생각인가 보다.
아무래도 샤를로즈의 몸이 본능적으로 제레미와 유진을 보면 싫다고 반응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얌전히 샤를로즈가 살아 돌아오는 걸 본 루아가 그녀에게 엉금엉금 다가가 그녀의 품에 얼굴을 비볐다.
“샤를로즈. 정말 돌아왔군요.”
“루아,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이게 다 저 때문인걸요. 제가 샤를로즈와 계약을 하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제레미는 루아의 말에 옳거니 소리쳤다.
“맞아. 네 새끼 때문에 샤를로즈가 죽었다 살아났잖아. 너 때문에.”
루아는 신경질 쓰이게도 소리치는 제레미가 짜증이 나는 것인지 흉흉한 눈빛으로 제레미를 쏘아붙였다.
“샤를로즈가 원해서 옆에 있는 겁니다. 누구와는 다르게.”
“루아의 말대로 저는 루아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깐 제레미 오라버니 이만 돌아가 주실래요? 아, 사냥꾼분은 계속 제 방에 있어도 돼요. 루아를 퇴치하러 와 주셨다면서요.”
“그래, 이안. 샤를로즈의 곁에 있으면서 저 악마 새끼를 죽여 줘. 그게 더 빠르겠어.”
눈이 완전히 돌아 버린 제레미는 씩씩거리며 화를 냈고, 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안은 성검을 다시 고쳐 들어 이번에는 성검을 샤를로즈의 옆에 놓았다.
“이렇게 곁에 성검만 두어도 여동생분의 속에서 살고 있는 악마가 무너질 겁니다. 공자.”
“하아, 그래? 그러면 일단은 샤를로즈를 감시해 줘. 이안.”
“네. 그러죠.”
“절대로 샤를로즈에게 빠지면 안 돼. 저 애는 악이야.”
“물론이죠. 공자의 여동생분을 고치는 데 힘을 다하겠습니다. 이 악마 두 마리를 제 손으로 말살시키죠.”
“하! 그 배짱 한 번은 좋네. 일단 나는 형을 봐서 이번 일에 대해서 논의를 좀 해야겠어. 샤를로즈가 반 악마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아주 특이한 케이스예요. 레베크 공작님에게 잘 말씀해 주세요. 저는 공자께서 명령하신 대로 ‘감시’할 테니까요.”
“그래. 무슨 일이 생기면 말해. 뭐든 들어줄 테니.”
“네.”
그렇게 제레미는 샤를로즈의 방에서 취객처럼 몸을 흔들며 떠났고, 이안은 방문을 닫았다.
쾅!
방문이 닫히자 샤를로즈는 휴, 한숨을 거듭 내쉬었다.
“연기를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네요. 이안.”
“인간들 틈에서 섞이려면 이 정도의 연기는 기본이에요. 샤를로즈.”
“그나저나 이안, 진짜 샤를로즈를 죽인 거야?”
“네. 죽였는데요. 아버지.”
“하아, 환영으로 죽일 수도 있는 거잖아.”
“하지만 샤를로즈가 원하잖아요. ‘진짜’ 죽기를. 그래서 샤를로즈, 원하던 곳을 오늘은 가셨나요?”
“전혀요. 오늘은 개죽음이었네요.”
죽음에 대해 무덤덤한 샤를로즈가 신기한 두 악마는 그녀를 관찰하듯 보았다.
루아는 왜 죽음에 무덤덤한 걸까 싶어서 샤를로즈를 보았고, 이안은 죽었는데도 무서워하지 않는 인간을 처음 봐 신기해서 보았다.
“아. 이안. 피를 줄게요.”
“고마워요. 샤를로즈.”
샤를로즈는 이안을 향해 제 오른쪽 손목을 내어 주었다. 이안의 두 송곳니가 그녀의 연한 살결을 파고들었다.
샤를로즈는 아프지도 않은지 인상 한 번 구기지 않고 이안을 받아들였다.
쪼옥, 쪽.
이안이 샤를로즈의 피를 빠는 소리가 외설스럽게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루아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자신 또한 샤를로즈의 명이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그녀의 목덜미에 제 두 송곳니를 박아 버렸다.
양쪽에서 저를 달라하며 애쓰는 게 우스운 샤를로즈는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 둘을 받아들였다.
한쪽은 손목에.
한쪽은 목덜미에.
힘이 조금씩 빠지긴 했지만, 버틸 만했다.
이렇게 그냥 쓰러질 샤를로즈가 아니었다.
그렇게 샤를로즈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아침이 지나갔다.
이제 점심 이벤트가 시작되는 참이었다.
***
제레미는 얼른 유진이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황급한 노크 소리에 유진은 어서 들어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제레미가 집무실에 들어와 숨을 헐떡이며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형, 큰일이야. 샤를로즈가 반 악마화가 되었대. 악마한테 잡아 먹히고 있대.”
“……그게 무슨 소리야, 제레미?”
“아침 일찍 사냥꾼 이안을 데리고 샤를로즈의 방을 찾았어. 이안이 말하길, 샤를로즈가 악마에게 잡아먹히는 중이래. 악마화가 되어 가고 있대.”
“그러니깐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극히 드문 케이스래. 샤를로즈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샤를로즈를 죽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그래서 죽였어?”
“누, 누구를.”
“샤를로즈를.”
유진은 초조해하는 제레미를 응시하며 취조하듯 물었다.
제레미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한숨을 거하게 내쉬며 제레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제레미. 우리의 목표는 악마야. 악마를 죽인 게 뭐가 대수겠어. 떨지 마. 괜찮아.”
“샤를로즈는 아직 악마가 아니야. 형. 반만 악마지.”
“우리에게 있어 악마와 다름없어. 악마와 손을 잡았으니까.”
“형은 샤를로즈가 그렇게 싫어?”
제레미의 떨리는 물음에 유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어두운 진실을 내뱉었다.
“그래. 싫어.”
“어째서? 어머니가 남긴-”
“유품이잖아. 걔는.”
“형.”
“제레미, 너도 샤를로즈한테 홀리지 마. 그 계집애는 악마보다 더하니까. 티아를 내쫓는 것도 모자라 집안을 아예 말아먹으려고 해? 죽을 짓을 백번하는 거지.”
“그런데 정말 티아가 집을 나간 게 샤를로즈가 쫓아내서 그런 걸까?”
“제레미. 너, 샤를로즈에게 마음이라도 준 건 아니지?”
“그건,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 왜 티아가 집을 나갔는지.”
“샤를로즈가 내쫓은 것밖에 더 돼?”
“……그런가? 진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거와는 다를 수가 있잖아.”
유진은 제 하나뿐인 남동생 제레미의 말을 도저히 들을 수가 없었다.
분명 저와 같이 샤를로즈를 보면 혀를 내둘렀던 남동생이 이렇게 샤를로즈를 감싸려고 하다니.
무언가 이상하다.
샤를로즈가 무슨 짓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유진의 머릿속을 채웠다.
‘그래. 샤를로즈. 네가 나타난 순간부터 우리 집안이 모조리 망가지는구나.’
유진은 티를 내지는 않지만 샤를로즈에 대한 원한이 점점 쌓여 갔다.
제레미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래서 그 사냥꾼은 어디 갔어?”
“샤를로즈와 그 악마를 감시하라고 붙여 놨어. 더 빨리 악마를 죽일지도 몰라서.”
“잘했어. 제레미. 우리는 그저 이 거지 같은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어. 알잖아?”
“……샤를로즈를 죽여야 된다고 할 때는 죽이라고 해?”
“어. 죽이라고 해. 어차피 우리는 어머니의 유언 때문에 샤를로즈를 살릴 수 있어.”
“알았어.”
제레미는 유진의 눈치를 보는 와중에 대답을 잘도 하였다.
멍청이같이.
***
악의 기운과 피를 꽤 많이 빨린 샤를로즈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점심이 오기를 기다렸다.
점심에는 무슨 이벤트가 자신을 기다릴지 괜히 설레었다.
어떤 놈들이 또 눈앞에서 헛짓거리를 할까.
그런 설렘.
“루아, 티아에 대한 행방은 찾았나요?”
루아는 다른 악마들에게서 통신이 오지 않아 고개를 살살 저었다.
“티아라는 인간을 찾았다는 통신이 오지 않고 있어요. 아마 제 생각으로는 아직 못 찾은 듯싶어요.”
“대체 그 애는 어디로 숨은 걸까요.”
“그 대화에 저도 낄 수 있을까요. 샤를로즈?”
잠잠히 티아에 대한 대화를 듣던 이안이 샤를로즈의 왼편에 앉아 물었다. 샤를로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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