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3화 (33/120)

33화

“그래서 말인데요. 티아를 찾는 걸 도와주세요. 이안.”

“굳이 왜요?”

“티아를 찾아야지, 제게 자유가 생기거든요. 저는 지금 감옥에 갇힌 수감자와 다름없는 신세거든요. 어디론가 조용히 떠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에요.”

“이해할 수가 없네요. 오라버니들이 그렇게 샤를로즈를 아끼나요?”

이안의 터무니없이 웃긴 말에 샤를로즈는 얼굴을 굳히며 대답했다.

“오라버니들은 저를 아끼지 않아요. 제 여동생 티아를 아끼죠. 아주 많이.”

“……그럴 리가요. 당신의 오라버니들이 당신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여 달라고 아주 유명한 길드에 의뢰까지 한 상태인걸요.”

무슨 개소리를.

샤를로즈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문득 최근에 자신을 보러 오지 않았던 제 오라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설마 그동안 루아를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거야?

‘내게서 루아를 빼앗아가면 내가 얌전해질 줄 알고? 하!’

아니고서야 악마 사냥꾼이 레베크 공작저에 올 리 없었다.

“오라버니들을 잘 속여 주세요. 이안. 당신과 한 거래가 잘 이뤄질 수 있게.”

“물론이죠. 샤를로즈. 당신이야말로 제가 인간이 되는 길을 막지 말아 주세요.”

샤를로즈와 이안은 이로써 서로 거래자가 되었다.

실제로 이안에게 의뢰한 유진과 제레미만 바보가 되는 꼴이었다.

이안은 샤를로즈의 손등에 짧게 입을 맞추고 사라졌다.

그리고 루아가 처음으로 샤를로즈에게 매달렸다.

“샤를로즈. 정말 죽을 생각이에요?”

“죽어도 전 살아나요. 오라버니들이 있는 한.”

“샤를로즈가 진짜 죽으면 남은 저는 어떻게 지내야 하나요?”

“예전으로 돌아가세요. 악마가 되어 인간의 악한 힘을 빼앗아 다니세요. 그게 루아의 일상이었잖아요.”

“……하지만.”

샤를로즈는 제 품에 안겨 오는 걱정이 가득한 루아의 등을 토닥여 주며 속삭였다.

“저는 이 세계에 쓸모없는 엑스트라예요. 그러니 마음 쓰지 마세요. 루아.”

샤를로즈의 쓰디쓴 목소리에 루아의 벌어진 입이 저절로 다물어졌다.

“저는 괜찮아요. 다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루아는 천 년 이상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마음이 쓰리다는 감정을 느껴 보았다.

***

제레미는 아침부터 이안을 찾아갔다.

똑똑똑.

이안이 있는 손님방의 문을 노크했다.

“이안. 자나?”

문이 벌컥 열리며 어제 모습 그대로인 이안이 서 있었다.

“안 잡니다. 애초에 사냥꾼은 잠이 별로 없어서요.”

“아아. 그렇군. 의뢰에 적힌 대로 내 여동생인 샤를로즈를 구원해 줬으면 하는데.”

“네, 물론이죠.”

이안은 태평한 얼굴로 잘도 대답했다.

샤를로즈와 거래한 걸 비밀로 하며.

“샤를로즈는 계속 방 안에만 있어. 잘 나와 보지도 않아. 다 그 악마 새끼 때문이야. 그 악마만 없었더라면 샤를로즈는 그렇게 변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악마 새끼라. 공자께서는 악마가 싫으신가 봅니다.”

“내 어머니를 죽인 악마를 좋아할 일 없잖아.”

“그렇군요.”

사실 자신도 악마 새끼의 핏줄인 이안은 뻔뻔하게도 제레미를 속였고, 제 악의 힘을 숨겼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안이 허리춤에 차고 있는 진짜 성검이 제 악의 힘을 어느 정도 없애 줬기 때문이다.

“얼른 샤를로즈의 방에 들어가서 악마를 죽여 줘.”

“대악마를 손쉽게 죽였다면 다른 하급 사냥꾼들이 나섰겠죠.”

“그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데.”

“일단 오늘은 그분의 방에 가보죠. 제 성검이 악마의 힘을 억누를 순 있을 겁니다. 힘을 잃은 악마는 스스로 죽게 되죠.”

“그럼 그 악마 새끼가 스스로 죽을 동안 손이나 빨고 기다려야 해?”

“아무래도 대악마는 쉽게 죽을 놈이 아니라서요. 그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네요. 힘을 잃을 때, 제 성검으로 피해를 줘 더 빨리 죽게 해야죠.”

“하아, 일단 샤를로즈에게 가자.”

“네.”

이미 샤를로즈를 만난 이안은 어느 악마와 다름없이 인간에게 거짓말을 하며 제레미의 뒤를 쫓았다.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말이다.

진실을 알게 된다면 제레미는 아마 기절초풍할 것이다.

이것도 다 샤를로즈의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말이다.

제레미는 빠른 걸음으로 샤를로즈의 방으로 향했고,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샤를로즈는 당황하지도 않고 제레미를 반겼다.

“어머, 제레미 오라버니. 오랜만이에요.”

샤를로즈는 침대 위에 앉아 있었고, 그녀의 무릎 위에 루아가 누워 있었다.

이 부드러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제레미는 루아를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리는 두 손을 주먹으로 쥐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 원망함을 표출해 내는 것밖에 없었다.

어떻게 한낱 인간 따위가 악마를 잡겠느냐만.

“샤를로즈, 내가 누구를 데리고 왔는지 알아?”

“누군데요? 제가 환영해야 할 분인가요? 아니면 티아라도 데리고 오셨나요?”

“네가 품고 있는 악마 새끼를 죽일 수 있는 사냥꾼을 데리고 왔다.”

“사냥꾼이요?”

“그래. 널 절대로 어머니 꼴 나게 하지 않기 위해서야.”

“제레미 오라버니는 절 무척이나 싫어하시고 성가셔하셨으면서 무슨 어머니 꼴이 나지 않게 감싸 주시는 건가요? 무척 역겨운 거 아시죠?”

“너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샤를로즈. 자, 이안. 어서 성검을 꺼내 저 악마 새끼의 힘을 없애줘.”

“네.”

순간 샤를로즈와 이안의 눈이 잠깐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연극이 시작된 것이다.

샤를로즈가 짠 연극이.

이안이 제레미를 앞질러 샤를로즈의 앞에 섰다. 그리고 제레미를 향해 소리쳤다.

“이거 위험하겠는데요. 악마에게 홀린 인간이 지금 악마가 되려고 하고 있어요.”

샤를로즈는 대본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해내는 이안이 기특한지 어서 더해 보라며 조용히 턱짓했다.

그 사인을 받아 든 이안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이거 여동생분을 죽여야 할 것 같은데요. 대악마가 여동생분을 악마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 그게 무슨 소리야.”

“공자. 간단하게 말하자면 악마가 인간을 먹었다는 소리입니다.”

“샤를로즈가 저 악마 새끼한테 먹혔다고?”

“사냥꾼들은 아주 극히 드물게 악마에게 먹힌 인간들을 봅니다. 그 경우가 바로 공자의 여동생분이고요.”

“그럼 샤를로즈가 지금 악마라는 거야?”

“완전히는 아니지만 반은 잡아 먹혔네요. 이럴 경우,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뭐지?”

“온전한 악마가 되기 전에 여동생분을, 악마로서의 면모를 죽여야 합니다.”

“죽여? 샤를로즈를?”

“네.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죽인다는 게 숨통을 끊어 놓는다는 말인가?”

“네.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빌어먹을!”

제레미는 화를 내며 제 머리를 뜯을 정도로 두 손에 힘을 주었다.

되는 일이 없다.

하나도.

샤를로즈, 너는 왜 이렇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거지?

제레미는 샤를로즈를 악마에게서 구원하고 싶었다.

아니, 샤를로즈에게 붙은 악마를 떼어 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샤를로즈를 죽여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차피 어머니의 유언으로 살릴 수 있었다.

샤를로즈, 조금만 아파.

그러면 돼.

괜찮아. 이 오라비가 도와줄게.

샤를로즈로 인해 조금씩 광기에 절어 간 제레미가 기어코 이안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샤를로즈를 죽여.”

“그러죠.”

스르륵.

이안이 성검을 천천히 꺼내었다.

그 성검의 끝은 자연스럽게 샤를로즈를 향하고 있었다.

루아는 이 상황을 말릴 수 없었다. 보고만 있을 뿐이다.

제레미는 저 악마가 가만히 있다는 게 이상했지만, 악마 사냥꾼의 힘 때문에 압도 되었다라는 오해를 하게 되었다.

“죽이려면 한 번에 죽이세요.”

“샤를로즈, 잠깐만 아프면 돼. 내가 살려 줄게. 꼭.”

제레미는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샤를로즈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녀는 제 오라비의 말은 하나도 들리지 않는지 이안을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이안은 샤를로즈의 다음 사인에 따라 샤를로즈의 심장에 성검을 꽂은 다음에 바로 성검을 뽑아 버렸다.

푸욱!

샤를로즈가 쿨럭, 피를 토해 내며 옆으로 쓰러졌다.

루아는 샤를로즈의 엄청난 피를 뒤집어쓴 채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날뛰면 안 돼. 샤를로즈를 위해 참아야 해.’

루아는 힘줄이 도드라진 두 손을 몸 뒤로 가리며 참았다.

샤를로즈를 위해서.

“쿨럭, 제레미 오라버니는 참 바보, 콜록, 같습니다.”

샤를로즈는 사선에서 보이는 제레미의 얼빠진 얼굴을 잠시 비웃었다.

“제발 부탁이니 저 좀 놓아 주세요.”

샤를로즈의 죽기 전 마지막 말은 참담했다.

놓아 달라니.

누구 마음대로.

이안은 저를 유혹하는 샤를로즈의 피가 튀긴 입가를 손등으로 닦아 혀로 살짝 핥아먹었다.

악의 기운이 한껏 담긴 피라서 그런지 맛있었다.

“샤를로즈, 샤를로즈? 죽었어?”

제레미는 채 두 눈도 감지 못한 샤를로즈에게로 뛰어와 그녀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그녀의 코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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