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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32/120)

32화

아무것도 모르는 샤를로즈는 의아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사냥꾼이 뭐냐며 루아에게 물어보았다.

루아는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악마 사냥꾼이라고 인간이 악마를 죽이기 위해 생긴 위험한 조직이라고 들은 적이 있었거든요. 진짜 성검을 든 악마 사냥꾼만이 악마를 죽일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자신의 부와 명예를 위해 성검을 가짜로 만드는 인간들도 본 적 있어요. 이 지하실에 말이죠. 지금 상황을 말하자면 제 아이, 이안이 진짜 성검을 가진 악마 사냥꾼이 되어 저를 죽이려 온 거죠.”

“아, 그러니깐 루아의 아이가 진짜 성검을 가진 악마 사냥꾼이 되어 루아를 죽이러 왔다 이 소리군요.”

샤를로즈는 이 상황이 조금 재미있는지 피식 웃더니 천천히 발걸음을 이안을 향해 옮겼다.

터벅, 터벅.

맨발로 바닥을 밟는 샤를로즈의 발소리가 가벼우면서도 무겁게 들려왔다.

이안은 악마가 무섭지도 않은지 악마가 좋아할 만한 악의 기운을 풀풀 풍기며 제 앞에 선 샤를로즈가 조금 흥미로울 뿐이다.

“이름이 이안이라고요?”

“네. 제 이름은 이안입니다. 아버지가 붙여 준 애칭이거든요.”

“이안. 왜 루아를 죽이려고 드는 건가요? 아버지라면서요. 가족이잖아요.”

샤를로즈의 마음 하나 없이 전하는 질문에 이안은 정성껏 대답했다.

“악마가 저는 싫습니다.”

“어째서요? 이안도 루아와 마찬가지로 같은 악마인데. 같은 종족을 싫어하면 안 돼요. 그것도 가족을.”

“인간이 되기 위해서 저는 아버지를 죽이려는 겁니다.”

“아버지를 죽이면 누가 이안을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고 했나요?”

“네.”

“누가요?”

“당신의 죽은 어머니가요.”

샤를로즈는 이안의 허무맹랑한 소리에 얼이 잠시 나갔다.

‘선대 공작 부인이 여기서 왜 나오는 거지? 설마 선대 공작 부인을 홀린 게…….’

“당신의 죽은 어머니는 참 악마를 좋아했어요. 성녀인데도 말이죠. 성녀는 악마를 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주술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그 주술을 이용해 저는 악마에서 인간으로 변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일이 틀어졌어요. 다른 악마에게 홀린 당신의 어머니는 저를 버리고 죽어 버렸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리고 다음 성녀는 나오지 않고 있죠.”

샤를로즈는 순간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두 다리에 힘을 들여 서 있을 수 있었다.

원작 게임 속 스토리와는 전혀 다른 스토리가 샤를로즈에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 게임은 피폐하지만 로맨스가 가미된 집착 역하렘 게임 속이었다.

이런 엑스트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래서 당신은 인간이 되고 싶어 여기로 찾아온 건가요?”

“당신의 어머니가 제 아버지를 죽여 아버지의 피를 가지고 오면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 약속은 죽어서까지 유효하고요.”

“하지만 어머니는 죽었습니다. 이안, 루아를 죽인다고 하여도 당신은 인간이 될 수 없어요.”

“우습게도 이 세대를 이끌 다음 성녀가 누군지를 알아 버렸습니다.”

이안은 기분 나쁜 미소로 샤를로즈를 비웃으며 샤를로즈가 기겁할 이름을 입에서 내뱉었다.

“티아. 당신의 여동생분이 이다음 성녀입니다. 저는 사라진 이분에게로 가 아버지를 죽인 다음 아버지의 피로 인간이 되게 해 달라고 애원할 겁니다.”

……원작 남자 주인공이 또 하나 있었던 거야?

아닌데.

이안이라는 이름은 아예 처음 듣는다고.

누구야, 너는.

샤를로즈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이안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루아와 쏙 빼닮은 외형에 비뚜름한 웃음을 토해 냈다.

“루아를 꼭 죽여야만 인간이 되는 건가요?”

“저는 모든 악마를 인간으로 바꾸게 할 생각입니다. 아버지인 대악마의 핏줄을 지니고 태어난 저는 아버지를 죽여 아버지의 피를 인간의 피로 만든 다음 악마의 세대를 끝내려고 하는 겁니다. 간단한 원리예요. 가장 위에 위치한 대가리를 부셔야지, 밑의 부하들이 바뀌는 거와 같은 원리죠.”

“이안. 저랑 거래 하나 하지 않을래요?”

샤를로즈는 이안의 손을 붙들고 거래를 원했다.

“무슨 거래죠?”

인간을 좋아하는 친화성 악마인 이안은 샤를로즈의 손길이 나쁘지는 않은지 얌전히 굴었다.

“저는 이미 루아와 계약을 했어요. 루아가 죽으면 안 돼요.”

“아버지와 계약을 하셨군요. 죽은 어미와 같은 행동을 하셨네요. 어리석게도.”

“어차피 당신이 원하는 티아는 어디론가 꼭꼭 숨어 버렸어요. 얼굴을 보이는 건 3년 후일 거예요. 그동안은 우리가 찾아야 해요. 그리고 당신 역시 악마잖아요. 악의 기운이 필요할 텐데. 굶주리고 있지 않으세요?”

샤를로즈의 도발과도 같은 발언에 이안의 두 속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저는 인간의 악의 기운을 먹지 않습니다.”

“거짓말. 루아가 그러던데. 악마는 악의 기운이 필요하다고요. 당신도 필요하잖아요, 악의 기운. 내가 그 악의 기운을 채워 줄게요. 물론 당신의 계약자가 되어 준다는 소리는 아니에요. 대가가 있어요.”

“……들어나 보죠.”

“오라버니들을 바보로 만들어 버려주세요. 그리고 제가 악마가 되었다고 하고 저를 죽여 주세요.”

“샤를로즈!”

샤를로즈의 말에 루아는 그녀에게로 성큼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저를 죽여 주세요. 루아의 피보다는 인간의 피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요.”

“차라리 나를 죽여. 이안.”

루아는 샤를로즈가 여타 다른 인간들처럼 허무하게 죽지 않았으면 했다.

샤를로즈가 죽는다면 자신은 분명히 정신이 나가 버릴 거라는 걸 예상했기에.

루아는 이안을 보며 자신을 죽이라고 했지만, 이미 샤를로즈에게 흥미를 가진 이안에게 있어 제 아비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죽여 달라?

아버지의 계약자가 죽여 달라고 하네.

솔직하게 말해 아버지의 피를 가지는 건 선대 성녀가 원하던 일이었고, 누구의 피든 상관없지.

이안은 제 아비인 루아를 죽이고 싶지만, 가족의 정을 생각하면 죽이고 싶지 않았다.

원래 악마들이란 간사한 종족이었다.

마음이 갈대처럼 자주 바뀌었다.

지금도 그랬다.

“좋습니다. 당신을 죽여 주죠. 언제 죽일까요?”

“제가 죽이라고 할 때, 죽여 주세요.”

“샤를로즈, 되살아난다는 거짓말하지 말고 그냥 얌전히 있어 주세요. 네?”

이안은 제 아버지인 루아가 저렇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나보다 소중한 상대인가?’

이안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샤를로즈가 말이다.

악마를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죽여 달라고 독촉하는 인간은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봤다.

“당신의 이름이 뭔가요? 아, 제 이름은 이안이라고 해요. 아버지가 계속 불러서 아시겠지만요.”

“저는 샤를로즈 레베크라고 해요. 가볍게 부르세요. 샤를로즈라고.”

“그럼 샤를로즈, 당신은 왜 죽고 싶은 겁니까?”

샤를로즈는 이안의 따분한 질문에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선 답을 내렸다.

“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으니까요.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그곳은 제가 죽어야지만 갈 수 있어요.”

“그곳이 뭔가요?”

“거기까지는 비밀이에요. 알려 하지 마세요. 그저 당신은, 제가 죽고 싶을 때 죽여 줬으면 해요. 아, 그것도 아세요? 악의 기운이 많은 인간의 피를 먹으면 인간이 될 수 있다던가.”

샤를로즈는 지금 도박판에 서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루아를 죽이려는 미친 악마 이안의 흥미를 제게로 끌어 루아를 지키려고 했다.

‘루아는 바보 같네. 그냥 날 이용해 버리지. 마음 준 계약자도 아니면서.’

그걸 알 턱이 없는 루아는 그저 샤를로즈가 지금 미울 뿐이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거짓말이 능통해진 샤를로즈는 미끼를 잘 먹은 이안을 보며 활짝 웃었다.

‘악마들은 바보 같아. 다 이렇게 손쉽게 걸려.’

“네. 제가 어머니에게 듣기로는 그런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니깐 악의 기운이 많은 저의 피를 먹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죽고 싶었던 저와 인간이 되고 싶은 이안의 소원이 단번에 이뤄지지 않겠어요?”

“……아버지 저 말이 정말입니까?”

이안은 아직 샤를로즈는 믿지 못하는 모양인지 루아에게 확인 절차를 밟았다.

루아 역시 그 사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분야이기에 애매한 대답을 내놓았다.

“몰라. 하지만 샤를로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제 아비의 말에 악의 힘이 넘치는 걸 보아하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악마는 거짓말을 하게 되면 악의 힘이 사라진다.

말에 힘이 사라진다고 하면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루아의 대답에는 악의 힘이 넘치고 흘렀다.

계약자에 대한 신뢰도가 엄청나 보였다.

이안은 하는 수 없이 샤를로즈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게 샤를로즈의 말에 이끌리게 되었다.

“그래요, 거래해요. 샤를로즈. 당신의 피를 먹고 제가 인간이 되는 걸 봐주세요. 아, 물론 당신의 방법이 실패한다면 성녀가 있으니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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