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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31/120)

31화

‘아이? 유부남이었나?’

샤를로즈는 신기한 시선으로 루아를 빤히 보고선 굳게 닫힌 입술을 열었다.

“루아, 결혼했어요? 언제?”

“결혼이라뇨, 저 결혼 한 적 없는데요. 샤를로즈?”

루아는 무슨 소리하는 거냐며 미간을 살짝 좁혔다.

샤를로즈는 분명 루아에게 아이가 있다고 하지 않았냐며 반론하자 그가 그제야 아, 침음을 흘리며 변명을 하였다.

“오해예요. 샤를로즈. 저는 결혼하지 않았어요. 아이는 말이죠.”

“변명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신기해서 물어본 것뿐이니까요. 악마도 결혼을 할 수 있구나, 하고.”

“하아, 그게 아니라. 원래 악마는 힘에서 자신의 아이를 태어나게 할 수 있어요. 그게 무슨 성별이든 간에요.”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악마는 인간과는 전혀 다른 종족이에요. 원래 악마에게 아이란, 자신의 힘을 이어 줄 생각으로 만듭니다. 저 역시 그 생각으로 만들었고요.”

“그럼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나요?”

“부모 격인 저를 버리고 인간들이 좋다며 사라졌어요. 제가 레베트 공작에게 붙잡힌 것도 그 애 때문이죠. 그 애가 함정을 팠어요. 저를 죽이고 싶다며 말이죠.”

“둘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루아는 샤를로즈의 물음에 곰곰이 제 아이와의 추억들을 되새겼다.

[아버지는 왜 나를 만들었어요?]

[내 후계자가 필요해서.]

[아버지는 내가 좋아요?]

[좋지도 싫지도 않아.]

[아버지는 인간을 좋아해요?]

[……별로. 이안. 넌 인간들 틈에 섞이지 마. 괜히 이용당하다가 버려져.]

그 날부터였나.

자신의 유일한 아이, 이안이 인간들 틈에 껴 놀게 된 것이.

이안이 그저 행복하니 내버려 뒀었는데.

[아버지를 제 손으로 죽일 거예요.]

[이안. 장난은 그만하고 이만 내 곁으로 돌아와. 인간들이랑 놀 만큼 놀았잖아?]

[아버지는 인간들처럼 정이 없어요. 재미없어요.]

[악마란 원래 그래.]

[저는 그러지 않는걸요. 저는 인간의 편에 서고 싶어요.]

[이안. 놀이는 이제 끝이야. 그만 돌아와.]

[미안해요. 아버지. 인간들이랑 노는 게 너무 재밌어요. 그래서 시시한 악마들의 세계에 다시는 발을 들일 일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루아는 제 하나뿐인 자식이라고 생각했던 이안에게 배신당했고, 레베크 공작저 지하에 살면서 인간들을 혐오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혐오는 샤를로즈로 인해 금방 풀렸다.

샤를로즈의 악의 기운이 너무나도 따스하면서도 지친 자신을 위로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루아가 샤를로즈를 좋아하게 된 건 이런 가벼운 이유였다.

너무나도 가벼워 샤를로즈에게 들키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든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루아는 잠시 제 자식인 이안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이안은 이런 마음으로 인간들을 사랑했구나 싶었다.

“루아?”

샤를로즈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멍하니 넋을 놓는 루아의 양어깨를 흔들었다. 그러자 그의 회색 눈이 그녀에게 닿았다.

“그 애와 무슨 일은 딱히 없었어요. 그냥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틀어진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애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가네요. 아주 조금이지만.”

“그럼 루아의 그 아이는 지금까지 만나 본 적 없는 건가요?”

“네. 아무래도 저는 봉인되어 있는 상태로 이 레베크 공작저 감금실에 갇혀 있어서 바깥에 나간 적도 꽤 오래되었어요. 샤를로즈를 만나서 이렇게 자유를 얻었지만요.”

“그 아이가 한 번도 찾아온 적도 없었어요?”

“없었어요.”

“그렇군요.”

루아의 양어깨에 손을 올린 샤를로즈의 두 손이 천천히 올라가 그의 창백한 뺨에 닿았다.

“샤를로즈, 키스해도 돼요?”

“안 돼요.”

루아는 샤를로즈의 첫 거절에 시무룩했다. 자신을 거절하는 날이 오다니. 이러다가 그 애처럼 자신을 버리는 날도 오는 거 아닐까.

왠지 모르게 불안해했다.

루아는.

하지만 그 불안은 샤를로즈의 행동에 금방 사라졌다.

“제가 먼저 할 거니까요. 그 키스.”

샤를로즈의 붉은 두 입술이 루아의 입술에 닿았다.

루아는 따스한 체온이 입술에서 강렬하게 느껴지자 몸이 움찔 떨렸다.

“읍.”

루아는 샤를로즈의 거친 키스에 숨을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키스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반쯤 감긴 샤를로즈의 찬란한 금색 눈동자가 저를 응시하며 자신의 반응을 보고 있었다.

서로의 혀가 엉켜 더 깊게 파고드는 와중에도, 샤를로즈의 눈은 흔들리지 않았다.

반면, 루아의 칙칙한 회색 눈은 마구 흔들렸다.

자신을 시험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데 이 기분 나쁜 시선이 자신에게는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아서.

자신만을 바라봐 주는 저 시선이, 샤를로즈의 무심한 시선이 좋아서.

루아는 가슴이 잠시 설레었다.

인간의 감정을 점점 터득하며 샤를로즈에게 집착하는 루아는 악마의 탈을 벗고 있었다.

인간이 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계약자 샤를로즈는 인간의 탈을 벗은 악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악하다.

원망스럽다.

우울하다.

죽고 싶다.

샤를로즈의 많은 감정이 루아에게로 들어왔다.

진한 스킨십을 할수록, 샤를로즈의 악의 기운을 먹을수록 그녀의 감정이 자신의 마음에 쌓였다.

한층 한층 쌓인 샤를로즈의 감정은 어느새 탑이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이것도 다 루아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샤를로즈는 전혀 모르는 현상이었다.

샤를로즈는 그저 루아가 자신의 것으로 세계를 잘 어지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샤를로즈는 루아를 보고 있으면 만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악마에게 홀려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루아를 만지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루아와 이런 키스를 나누고, 루아와 진한 포응을 하며, 루아와 손을 잡고 함께 잠을 자면.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이 제집처럼 편안해졌다.

웃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샤를로즈는 자신의 마음이 조금 불편하면 루아에게 손을 대는 것이 조금 습관이 되어 버렸다.

안 좋은 습관이었다.

루아가 제 옆에 없다면 이 불안감이 자신을 먹고 괴물로 자랄 생각을 하니 우울해 미치겠다.

진한 키스를 계속 이어가는 와중에 샤를로즈는 주변의 소리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제 방문이 끼이익,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그건 루아를 참 많이 닮은 사내였다.

샤를로즈의 금색 눈이 그 사내로 향했다. 그리고 루아의 아랫입술을 깨물며 루아의 입 안에 제 혀를 넣어 헤집었다.

자신의 것이라며.

저 사내에게도 보여 주고 싶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루아는 샤를로즈의 것이라고.

“아버지도 인간이랑 잘 놀고 계시네요.”

이안의 기척을 느끼지 못한 루아는 이안의 저음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황급히 떴다. 그리고 샤를로즈의 어깨를 슬쩍 밀어 맞닿은 서로의 입술을 떼어 내게 했다.

샤를로즈는 천천히 루아의 손길에 뒤로 밀려 나갔다.

“……이안?”

“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네가 왜 여기에 있지? 넌 분명히-”

루아는 고개를 홱 돌려 자신의 아이인 이안을 바라보다가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을 닮은 이안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이 컸을 줄이야. 몰랐어.

적막이 감도는 이 분위기 속 샤를로즈는 제 입술을 손등으로 조심스럽게 닦으며 상황을 살폈다.

‘아버지? 이안? 설마 저 사내가 루아의 아이라고?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성인 남성이네. 악마와 인간의 시간은 달라서 그런가.’

샤를로즈는 이안을 살폈다. 그러다가 그의 하늘색 눈과 마주해 버렸다. 그녀는 매혹적이게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누구의 초대로 이 저택에 있는 거죠? 난 당신이 누군지 몰라요. 또 오라버니들이 한 짓인가요?”

“아, 그들을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당신이 그들의 여동생이군요.”

이안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유진 오라버니랑 제레미 오라버니가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거죠? 최근 들어 저를 찾아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무슨 짓을 벌이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고요.”

“제 아버지를 죽이라는, 아. 대악마를 죽이라는 의뢰를 제게 맡겼습니다.”

이안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으며 샤를로즈의 궁금증을 여유롭게 풀어 주었다. 그녀는 대악마를 죽이라는 의뢰를 맡긴 제 오라비들이 짜증 날 뿐이었다.

“망할 놈들.”

샤를로즈는 이를 으득 갈며 제 인생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또 다른 원작 남자 주인공 두 명-제 오라버니들-을 향해 욕했다.

“이안. 너는 인간의 틈에 섞여 사냥꾼이 된 건가?”

루아는 이안의 허리춤에 찬 검을 보더니 물었다.

저건 악마를 벨 수 있다던 인간이 만든 무시무시한 검이었다.

미쳐 버려 날뛰는 악마를 벨 수 있다던 ‘성검’이라고 불리는 무기였다.

인간들이 자신들을 홀리는 악마들을 없애려고 만든 무기였다.

그 무기를 대악마의 핏줄인 이안이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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