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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30/120)

30화

“샤를로즈가 죽어요……?”

“이제는 죽지 않지만, 아마 우울감이 치솟을 때 또 죽지 않을까 싶네요. 괜찮아요, 저는 죽지 않거든요. 제 오라버니들이 저를 살리겠죠. 분명히.”

샤를로즈는 치가 떨린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루아는 아직 샤를로즈의 말에 대해 이해를 잘못한 것인지 머릿속에 물음표투성이었다.

샤를로즈는 루아의 두 뺨에 손을 얹고 제 이마를 그의 이마에 가져다 대며 중얼거렸다.

“제가 눈앞에서 죽는다 해도 루아는 가만히 있어 주세요.”

“……무슨 소리를.”

“루아와 저는 파트너잖아요. 감정 없는 파트너.”

“샤를로즈, 저는요.”

“루아. 제가 죽어도 이성을 잃지 마세요. 알았죠?”

샤를로즈는 루아의 말을 다 자르며 제 말을 반복하기 바빴다.

루아만은 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물론 대악마라 인간처럼 미치지는 않겠지만.

샤를로즈는 미소를 잃지 않으며 루아에게 악의 기운이나 더 먹으라며 제 목덜미를 내보였다.

루아는 달콤한 향기를 내뿜는 샤를로즈의 악의 기운의 향이 제 후각을 자극하는 바람에 그녀의 목덜미를 또다시 물어 버렸다.

“저는 아프지 않아요. 그러니 마음껏 드세요. 루아.”

거짓말.

루아는 샤를로즈의 악의 기운을 목 뒤로 넘기면서 생각했다.

툭하면 쓰러질 것 같은 샤를로즈가 아프지 않을 리 없었다.

조금 더 힘을 키워야 해.

샤를로즈의 여동생을 찾는다고 힘을 죄다 써 버려 또 힘이 금방 사라졌다.

이 힘은 인간의 악의 기운을 많이 섭취한다면 금방 또 생긴다.

악의 기운 덩어리로 보이는 샤를로즈를 먹는다면 원래의 힘을 되찾는 일은 어렵지도 않았다.

샤를로즈와 루아의 밤은 아늑하고도 서로의 이성을 잃기 좋은 시원한 어둠이었다.

***

2주 정도가 흘렀다.

유진과 제레미는 그동안 샤를로즈를 보지 않았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동이 트기 전, 레베크 공작저의 새벽은 스산했다.

유진의 집무실에 인기척을 지우고 말없이 들어온 제레미가 뒤에 누군가를 데리고 왔다.

“형, 전설의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사내가 우리 의뢰를 받겠다고 찾아왔어.”

유진은 전설의 사냥꾼이라는 말에 조금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반응했다.

‘전설의 사냥꾼은 죽었다고 들었는데. 살아 있을 리 없어. 사칭인 건가?’

의심을 품은 유진이 제레미를 따라 들어온 사내에게 시선을 꽂았다.

“그대는 어째서 우리의 의뢰를 받은 거지?”

전신을 새까만 후드로 뒤집어쓴 사내가 후드를 뒤로 젖히며 대답했다.

“처리하고 싶다던 대악마를 죽일 기회가 찾아왔으니까요.”

눈부신 은백색 머리카락이 허리 끝에 나풀거렸고, 새벽의 호수를 담은 진한 하늘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인간이라고 보기에는 정말 아름다운 사내였다.

유진은 사내의 왠지 모를 익숙한 외형에 인상을 찌푸렸다.

잠깐만, 저 사냥꾼. 샤를로즈가 데리고 있는 그 악마와 비슷하게 생겼잖아.

“우리가 봉인한 대악마에 대해서는 혹시 잘 알고 있나?”

유진의 물음에 전설의 사냥꾼은 이렇게 답했다.

“잘 알고 말고요. 사냥꾼들 사이에서 대악마는 유명 인사랍니다. 공작님.”

“……우리 가문이 그 대악마를 봉인한 것도 알고?”

“그럼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냥꾼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인가 보지? 우리 가문의 기밀을 아는 걸 보니.”

“암암리 소문이 퍼졌으니까요.”

“레베크 공작저의 밑에는 대악마가 산다. 뭐, 이렇게 소문이 났나?”

유진은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지 않고 그 전설의 사냥꾼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계속해서 질문을 하였다.

전설의 사냥꾼은 유진의 흉흉한 눈빛을 덤덤하게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악마 사냥꾼이라면 알고 있을 유명한 이야기죠. 초보 사냥꾼도 레베크 공작가의 대악마 이야기는 다 안답니다. 공작님.”

“그대는 누구한테서 우리 소문을 들었지?”

“제 스승에게 들었습니다.”

“스승이 대악마에 대해서 뭐라 하던가?”

“아주 고약한 놈이라고 했습니다.”

눈치가 조금 느린 제레미는 지금 이 상황이 꼭 범죄자를 취조하는 것 같은 상황이 된 것을 느끼고 형인 유진을 말렸다.

“형, 이분이 샤를로즈에게 달라붙은 악마를 없애 준다고 했어.”

제레미는 얼른 샤를로즈를 되찾고 싶었다.

악마에게 홀린 샤를로즈를 구원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제레미는 급했다.

모든 상황에 있어서 말이다.

자신은 지금 아이비크니 황제를 섬기는 몸이었지만, 지금껏 모아 놨던 휴가를 쓴 상황이라서 황궁에 얼굴을 비치지 않아도 되었다.

샤를로즈에 좀 더 신경을 써도 되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는 그 악마를 없애고 싶습니다. 레베크 공작님.”

“이름이 뭐지?”

“이안이라고 합니다.”

“이안이라. 본명인가? 종종 가명으로 활동하는 사냥꾼들이 많아서 말이야.”

“따지고 보면 애칭입니다. 공작님.”

“……애칭?”

애칭을 사냥꾼 이름으로 사용하는 미친놈이 있단 말이야?

유진은 황당함에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레미는 무거운 이 상황이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 망할 대악마를 죽일 사냥꾼을, 그것도 전설의 사냥꾼을 데리고 왔는데 형의 반응이 이상했다.

마치 저 사냥꾼을 사냥꾼이 아닌 듯이 대하고 있으니 말이다.

“형, 왜 그래. 진짜. 악마 사냥꾼은 찾기 힘들다며 이대로 저분이 우리 의뢰를 받지 않으면 어떡해?”

제레미의 귀여운 반응에 이안은 킥킥거리더니 제레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대담한 짓을 벌였다.

“저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이안은 하늘색 눈동자에 원한을 가득 담으며 눈을 허공에 부라렸다. 그리고 계속 말을 이었다.

“그놈을 죽이고 저도 죽을 겁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이번에는 기필코?’

유진은 이안의 수상한 행동과 언행에 몹시 언짢았지만, 악마 사냥꾼은 다시 손쉽게 찾을 수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전설의 사냥꾼이라는 호칭을 가진 사냥꾼이니 일단은 믿어 보기로 했다.

“악마 사냥꾼의 증서는 가지고 있나?”

“여기 있습니다.”

이안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곱게 반으로 접힌 종이 한 장을 유진에게 건네주었다.

유진은 악마 사냥꾼 협회의 괴이한 해골 모양이 찍혀 있는 악마 사냥꾼의 증서를 펼치며 꼼꼼히 살펴보았다.

‘이름은 이안. 증서에도 같은 이름이 쓰여 있군. 악마 사냥꾼 협회의 도장도 찍혀 있고. 전설의 사냥꾼이라는 증표는 따로 적혀 있지는 않나 보군. 진짜 악마 사냥꾼의 증서가 맞는데. 왜 이렇게 등골이 싸하지.’

유진은 이안에게 악마 사냥꾼의 증서를 다시 넘겨주며 큼, 헛기침을 시작으로 말을 꺼냈다.

“그럼 이안, 정말 그대는 전설의 사냥꾼의 호칭을 얻은 자인가?”

이안은 해맑게 웃으며 반응했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말이다.

“네. 그 칭호를 받은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공작님.”

“……일단 악마 사냥꾼의 증서가 있으니 믿겠네.”

“저를 믿어야지만 그 빌어먹을 악마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이안은 자신만만하게 나왔고, 그에 대한 반응에 제레미는 얄팍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샤를로즈의 옆에 기생하고 있는 악마 새끼도 곧 나락으로 떨어트릴 거라는 무시무시한 생각을 한 채.

제레미는 샤를로즈가 죽어서부터, 아니 이 가문에 입양되고 나서부터 제 신경을 건드리던 동생이었다.

진짜 여동생은 사라졌고, 가짜 여동생은 미쳐 버렸고.

솔직하게 말해 제레미의 어두운 내면은 샤를로즈에게 향하고 있었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악마만큼 추악한 인간이라는 것을.

겉은 진짜 여동생 티아를 걱정하지만 속으로는 샤를로즈를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는 것을.

제레미는 샤를로즈에 대한 마음의 봉인을 풀어 버렸다.

자꾸만 죽어 어디론가 떠나려는 샤를로즈에게 매달리려고 작정한 것이었다.

“그럼 이안. 앞으로 우리 저택에 계속 있어 줬으면 하네.”

유진은 일단 이안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제레미가 이안에게 손님방을 내어 주었다.

그렇게 레베크 공작저에 아름다운 햇살이 떠올랐다.

***

샤를로즈는 아침 일찍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샤를로즈의 몸에 들어온 순간부터 생긴 이상한 습관이었다.

누구를 기다리는 것인지 계속 창밖을 내다보는 일이 생겼다. 그것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마도 죽은 공작 부인이 살아 돌아오는 걸 바라는 것 같았다.

자신이 아닌 샤를로즈의 몸이.

샤를로즈는 새빨간 벨벳 커튼 사이에 서 텅 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샤를로즈의 옆에 서 있는 루아는 이 상황이 익숙한지 멀뚱이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루아는 보고 싶은 상대가 있나요?”

샤를로즈의 처음 듣는 질문에 루아는 당황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샤를로즈가 왜인지 쓸쓸해 보였기 때문이다.

루아는 잠시 고민하는 듯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더니 해답을 찾았다.

“음. 보고 싶은데 썩 보고 싶지 않은 상대가 있어요.”

“그게 뭐예요.”

“제게 아이가 하나 있었거든요.”

루아의 충격적인 발언에 샤를로즈의 고개가 천천히 움직여 그를 쳐다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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