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아름다운 남자를 안 좋아하는 인간 여자는 없을걸요.”
“그럼 제 얼굴이 좋다는 소리인가요?”
“네. 좋은데요? 매일 눈 호강하는 기분이 들어서요.”
“이 얼굴로 태어나길 잘했네요. 샤를로즈에게 귀한 칭찬도 받고요.”
루아는 악마답지 않게 화사하게 웃었다. 좌우로 벌어진 입 안에 두 송곳니가 빼꼼 튀어나와 샤를로즈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샤를로즈는 루아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검지로 툭 건드렸다.
그러자 루아가 당황해 좌우로 벌어진 입을 꾹 다물었다.
“제 송곳니가 무섭지 않으세요?”
“안 무서워요. 그냥 뾰족하게 튀어나와서 한 번 눌러 보고 싶다는 생각에 건들여 봤는데… 마음대로 만져서 기분이 나빴다면 사과할게요.”
“아뇨. 무섭지 않다면 제 모든 몸을 만지게 해 드릴게요.”
“그럼 안겨도 돼요?”
“상관없어요. 제 품이 좋다면 언제든지 안기세요. 샤를로즈.”
샤를로즈는 침대에서 상체만 일으켜 세운 다음 루아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향긋한 냄새. 평온함.’
샤를로즈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아래로 내려가려는데 누군가 자신의 방문에 크게 노크했다.
누군지를 물어보려는데 문을 노크한 사람이 먼저 말을 걸었다.
“샤를로즈, 나다.”
이 목소리는 원작 남자 주인공인 해리슨이었다.
또 무슨 시비를 걸려고 찾아온 것인지 샤를로즈에게 잠시 찾아온 평온함이 금방 무너져 버렸다.
“들어오세요.”
“샤를로즈, 저자를 방으로 들여도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오히려 받아 주지 않는다면 또 유진 오라버니가 꾸중을 놓으시겠죠. 한 나라의 황제를 이리 푸대접을 한다며 말이죠.”
샤를로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리고 맨손으로 샤를로즈의 방 안으로 들어오는 해리슨을 볼 수 있었다.
샤를로즈는 루아에게서 겹쳤던 상체를 떼었다.
“또 무슨 볼일이 있으셔서 찾아오셨습니까, 폐하?”
“내 약혼 편지는 읽어 봤나?”
“네. 읽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거지 같아서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퇴짜를 맞으실 걸 알면서도 굳이 왜 저를 찾아오신 거죠?”
“다시 네게 약혼 신청을 하기 위해서다.”
“폐하는 너무 뻔뻔하십니다. 어떻게 제 여동생을 사랑하는 사람이, 제게 약혼을 하자고 말할 수가 있는 거죠?”
“티아가 다시 돌아오면 우리의 약혼도 파기할 거다. 널 미끼로 쓸 거야.”
“이제는 대놓고 저를 이용하시네요. 저를 이용할 수 있는 자는 루아밖에 없습니다. 폐하, 번지수를 잘못 찾아오셨어요. 차라리 제 오라비들을 이용하세요.”
샤를로즈는 제 새까만 머리카락을 검지로 배배 꼬며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해리슨은 저를 무시하는 샤를로즈의 태도에 이제는 화는커녕 어이없기만 했다. 자신을 이렇게 기만하는 사람은 아마 샤를로즈 하나뿐일 것이다.
자신의 약혼녀 자리를 저렇게 과감하게 차 버리다니.
그 용기가 가상할 정도였다.
그렇다고 레베크 공작저를 황명을 어긴 죄로 묶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티아가 레베크 공작저의 막내로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리슨은 한 발짝씩 샤를로즈가 있는 침대로 다가오며 말했다.
“샤를로즈는 운이 참 좋아. 잘 둔 여동생 덕에 황명을 어긴 죄도 눈감아 줘 감옥에 갇힐 일은 없을 테니 말이야.”
“네. 저는 여동생 하나를 참 잘 뒀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티아는 언제 찾을 생각이지? 아니지, 일단 우리 관계부터 회복하지.”
샤를로즈는 제 귀가 이상한가 싶어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가 떼었다.
‘잘 들리는데. 무슨 헛소리를 들은 거지? 잘 못 들었나?’
샤를로즈는 다시 두 귀를 손으로 막으려고 했지만, 해리슨의 어색한 어조에 행동을 잠시 멈추었다.
“너와 악연으로 묶이는 건 이제 싫다. 이제부터 우리는 친구다. 샤를로즈.”
“폐하, 혹시 미치셨습니까?”
샤를로즈는 흡사 괴물을 보는 눈빛으로 해리슨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는 그녀의 당연한 반응에 말을 계속 이어 갔다.
“너와 친밀한 관계가 되고 싶다. 샤를로즈.”
“싫은데요. 폐하.”
“앞으로 너를 괴롭히는 일은 없을 거다. 샤를로즈.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괴롭히세요. 차라리 그게 더 폐하같으니까요.”
“네게 막대한 재산과 선물을 주지, 어때?”
“괜찮습니다. 저는 이미 모아 둔 재산이 있어서요.”
“……나와 친구가 된다면 네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
“달라지겠죠. 더 귀찮은 쪽으로.”
“나와 사랑하자는 것도 아니고 친구가 되자는 건데 그것도 못 해 주나, 샤를로즈?”
“역겨운 소리 하지 좀 마십시오. 구역질이 나려고 합니다.”
“그래, 쉽게 넘어올 샤를로즈가 아니지.”
“아셨다면 이만 꺼져 줬으면 좋겠습니다, 폐하.”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우리 샤를로즈.”
“……?”
해리슨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한낱 공작가의 영애에 불과했던 샤를로즈에게 기어코 거만한 황제 해리슨이 무릎을 꿇어 버렸다.
“이렇게 빌게. 제발 나를 네 곁에 남게 해 줘. 티아를 찾아 준다면 내 곁에서 떠나도 좋아. 자유를 주지. 이 가문에서 널 빼내 줄게. 이 조건은 어때?”
그 조건은 조금 구미가 당기는데요?
라고 샤를로즈가 말할 뻔했다.
샤를로즈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맨발이 방바닥에 닿았다.
“여기까지 기어서 오면 생각은 해 볼게요. 폐하.”
해리슨은 이를 으득 갈며 벌레처럼 샤를로즈의 맨발이 있는 곳까지 기어 왔다.
샤를로즈의 두 눈썹이 쓱 올라갔다.
해리슨이 이렇게 제 말을 잘 들을 줄은 몰랐다는 눈치였다.
샤를로즈는 그 자리에 웅크려 앉은 다음 해리슨의 뺨에 제 손을 가져다 대었다.
“저는 황제씩이나 되는 분의 얼굴에 멋대로 손을 대었어요. 평소처럼 저를 혼내지 않을 건가요?”
“…혼내지 않을 거다.”
“폐하의 뺨을 때려도요?”
“…화내지 않을 거다.”
“그럼 제 충성스러운 개새끼가 될 수 있으세요? 티아의 남자들에게서 벗어나 제 것이 될 수 있으세요? 아, 물론 티아가 돌아오는 날은 폐하의 목줄을 풀어 드리죠.”
“좋다. 얼마든지 네 충성스러운 개새끼가 되어 주마.”
“폐하는 정말 미치셨습니다. 고작 한 여자 때문에 황제의 위상을 이렇게 버려도 되는 겁니까?”
“티아는 내 소중한 사람이다. 티아를 위해서라면 내가 못 할 게 무엇이 있겠는가?”
“좋아요, 폐하. 오늘부터 매일 제 방에 들러서 마사지 좀 해 주세요. 요즘 들어 몸이 많이 찌뿌둥하거든요.”
“……마사지? 내가 네 몸에 손을 대라는 소리인가?”
“개새끼는 당연히 주인이 오라 하면 오고 하라면 하는 거 아니겠어요?”
“……좋다.”
해리슨은 울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았다.
샤를로즈에게 아예 붙는다면 티아를 더 빨리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름으로는 부르지 않을게요, 폐하. 딱 이 정도 배덕감이 좋은 것 같아요. 제 발밑에 무릎 꿇는 한 나라의 군주라니. 우습지도 않네요.”
“티아를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고 했다. 샤를로즈.”
“안 그래도 루아에게 티아를 찾으라는 명령을 내린 참이었거든요. 온 대륙에 있는 악마들이 티아를 찾을 거예요.”
“시체로 데려오면 안 된다.”
“산 채로 데려오라고 했으니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이 대화를 듣고만 있던 루아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대화에 끼었다.
“아, 참. 샤를로즈. 제 말을 잘 듣지 않는 최상위 악마들이 있긴 하는데. 그들이 과연 샤를로즈의 여동생 티아를 산 채로 데려올지 잘 모르겠네요. 이 말을 꺼내려고 했었는데 저자가 우리 사이에 들어오는 바람에 말할 수가 없었어요. 샤를로즈도 기분 좋아 보이고 해서요.”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요, 루아?”
샤를로즈의 낯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루아는 자신과 말할 때 이렇게 어두운 낯빛을 하니 가슴이 아려 왔다.
하는 수 없다는 듯 최선의 방법을 말해 주었다.
“악마들을 찾아다녀 제대로 명령대로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오랜만에 인간계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녀 그 미친 애들이 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거든요. 아마 제가 봉인에 풀려났으니 더 날뛸 겁니다. 그 애들.”
“저는 이 가문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루아.”
“벗어날 방법이 있잖아요, 샤를로즈.”
루아는 그리 말하면서 아직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해리슨을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인간 황제가 샤를로즈에게 말하지 않았나요. 자유를 주겠다고.”
해리슨은 기분 나쁜 듯 얼굴을 구기며 대답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티아를 찾았을 때 이야기다. 지금 당장은-”
“자유를 주세요. 폐하. 안 그러면 티아가 죽을지도 몰라요? 저야 티아가 죽든 말든 상관은 없지만 폐하는 아니잖아요. 티아가 살아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이 크잖아요.”
“그건 그렇지.”
해리슨은 샤를로즈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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