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120)

23화

“……죽지 않는 인간은 없어요. 샤를로즈, 여동생은 천천히 찾는 건-”

“안 돼요. 이 망할 집구석에서 탈출할 유일한 키는 여동생 티아를 찾는 일밖에 없어요.”

“이거 참 곤란하군요.”

“빨리 찾아야 해요. 그 애를 찾아야지만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키스해도 되나요?”

루아는 샤를로즈 앞에 서서 몸을 굽혀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다정하게 물었다.

“제 모든 악을 다 가져가고 싶다면 키스해도 돼요.”

“정말 죽으면 안 돼요. 샤를로즈.”

“저는 죽지 않아요. 루아.”

한산하고 다 죽어 가는 꽃들이 널린 후원 속 로맨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루아의 고개가 비스듬히 꺾이며 샤를로즈의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그리고 진득한 키스가 시작되었다.

이걸 실시간으로 보고만 사내 두 명이 있었는데.

바로 전쟁터에서 돌아와 샤를로즈에게 약혼을 청하려고 레베크 공작저에 온 해리슨과 그걸 구경하는 요한이었다.

“폐하, 약혼 신청을 하기 전에 벌써 차인 기분이 들지 않아?”

“……제기랄.”

해리슨은 지금 당장 저들이 하는 행동을 제지하고 싶었지만, 무슨 일인지 발바닥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자를 묶은 것처럼 말이다.

“요한. 나만 못 움직여?”

“나도 못 움직이는데, 폐하.”

누군가 이 광경을 구경이라도 하라는 듯 해리슨과 요한의 발을 묶어 두었다.

그 주인은 바로 루아였다.

루아는 후원에 들어선 순간부터 인간 두 명의 인기척을 느꼈다.

그 인간 두 명의 냄새 또한 익숙했다.

바로 샤를로즈가 그렇게 욕하던 티아의 남자들이었다.

기억력이 좋은 루아는 샤를로즈와 대화한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이렇게 샤를로즈에게 해가 될 인간들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리고 그녀에게 다가오지 말라고 힘을 써 버렸다.

분명 샤를로즈에게 반가운 손님들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샤를로즈가 누구의 것인지를 저 사내들에게 새겨 둘 때가 되었다.

심지어 한 놈은 화려한 꽃다발을 들고 온 것을 보아하니 저번에 약혼 편지를 보낸 인간으로 보였다. 옆에 한 놈은 그냥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루아는 제힘을 써 가면서 샤를로즈의 악의 기운을 먹고 있었다.

사실 루아는 샤를로즈에게 새하얀 거짓말을 해 버렸다.

온 대륙에 숨어 있는 악마들에게 명령할 만한 힘이 생긴 지는 조금 되었다. 이 사실을 샤를로즈에게 바로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저 한낱 소유욕이라는 감정 때문이었다.

곁에 있으면서 자신에게 길들여졌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루아에게 있어 샤를로즈는 구원자와 다름없었다.

인간이지만 평범한 인간 같지 않고 대악마를 무서워하지 않는 이상한 인간.

그게 샤를로즈였고, 그녀에 대한 애착이 점점 커 갔다.

지금이 그 소유욕과 애착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샤를로즈에게 거짓말이라도 해 그녀와 키스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루아는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악마는 악마였다.

자신이 마음에 드는 인간을 어떻게든 제 손에 얻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진 악마.

그 악마의 왕 정도 되는 루아는 지금까지 샤를로즈와 스킨십을 하면서 그녀의 악의 기운을 많이 먹었다.

그만큼 계약자인 샤를로즈에 대한 집착이 점점 도가 지나칠 정도로 커져 갔다.

정작 당사자인 샤를로즈는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루아는 샤를로즈가 자유에 대한 집착 때문에 주변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것에 감사했다.

긴 키스가 이어지다가 샤를로즈와 루아의 맞닿은 입술이 드디어 떨어졌다.

샤를로즈는 열띤 숨을 내뱉으며 루아를 쳐다보며 물었다.

“루아, 이 정도면 평소보다 많이 악의 기운을 먹지 않았어요?”

“많이 먹었어요. 샤를로즈. 감사해요. 제힘을 되찾게 해 줘서요.”

“아뇨. 우리는 서로를 이용하는 사이에요. 감사해하지 말아요. 저도 루아를 이용하고 있는 것뿐이니까요.”

“서로에 대한 감정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참 잘 지키네요, 샤를로즈.”

“이런 파트너와 같은 사이에 감정이 생기면 하고자 하는 일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래서 악마들에게 명령을 내릴 정도의 악의 기운을 먹었나요?”

샤를로즈는 아무래도 평소보다 몇 배의 이상의 악의 기운을 빼앗겨 버려 기운이 쭉 빠졌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

그게 아무리 루아라 할지라도.

“네. 지금이라면 당장이라도 샤를로즈의 여동생을 찾으라고 명령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루아의 긍정적인 대답에 샤를로즈의 낯빛이 금세 밝아졌다.

“부탁해요. 제발 티아를 찾아 주세요. 루아…….”

샤를로즈는 이를 악물고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몸이 한계를 느껴 버렸는지 그녀는 루아의 품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루아는 샤를로즈가 기절할 걸 알고서 그녀를 제 품에 안았다.

그리고 저 뒤에 숨어 있는 인간 두 명-해리슨과 요한-의 그림자 속박을 풀어 주었다.

그림자 속박은 악마들이 유용하게 쓰는 능력 중 하나였다.

루아는 자신의 능력을 샤를로즈에게 자세하게 말한 적이 없었다.

지금 샤를로즈가 기절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진정한 악마의 모습을 보고 자신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어쩌나 싶었다.

루아는 기절한 샤를로즈를 품에 안고 몸을 돌려 제게로 성큼 다가오는 해리슨과 요한을 바라보았다.

루아의 얄팍한 행동이 해리슨의 성질을 건드리고 말았다.

“내 예비 약혼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루아는 코웃음을 치며 능글스럽게 대답했다.

“예비 약혼녀라뇨, 샤를로즈는 그런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요. 그나저나 연락도 없이 찾아오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요?”

“악마 새끼가 인간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러지? 그리고 이미 레베크 공작에게서 아무 때나 공작저를 찾아와도 된다는 약조를 받아 냈다.”

“그렇군요. 샤를로즈의 첫째 오라버니가 쓸데없는 짓을 벌였네요. 그나저나 저번에 약혼 편지를 보내셨던데, 그 편지 샤를로즈가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거든요. 그럼 당신과 약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 아닌가요?”

“샤를로즈가 내 약혼 편지를 찢어서 버렸다?”

“제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루아는 샤를로즈의 등을 토닥이며 해리슨을 은근슬쩍 무시했다.

해리슨은 저 악마 새끼가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는 걸 잘 느꼈다.

“샤를로즈에게 길들여진 건가? 아니면 모든 악마는 샤를로즈 같은 인간을 좋아하는 건가. 왜 내 눈에는 네가 샤를로즈를 굉장히 아끼는 걸로 보이지?”

해리슨의 거만한 물음에 루아는 여전히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샤를로즈와 저는 계약으로 묶인 사이예요. 서로 아끼는 게 당연하죠. 그리고 왜 당신에게 우리에 대한 관계를 알려 줘야 하는 거죠? 이해가 안 되네요. 당신은 샤를로즈가 싫은 거 아니었나요?”

대놓고 저격하는 루아의 발언에 해리슨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루아의 말이 다 맞기 때문이었다.

할 말을 잃은 해리슨을 대신해 이 광경이 재밌는 요한이 운을 떼었다.

“나는 샤를로즈에게 큰 원한은 없어. 단지 악마인 그대가 조금 흥미로울 뿐이야.”

루아는 요한을 슬쩍 바라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저는 샤를로즈 빼고는 다른 인간에게 흥미가 없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 주실래요? 샤를로즈를 방으로 데려가야 하거든요.”

루아는 이제 해리슨과 요한과의 대화가 지루한 것인지 샤를로즈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 올리며 이 후원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해리슨이 루아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 돌려 루아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몸을 반쯤 돌린 루아는 해리슨을 응시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냐며 묻는 것처럼.

해리슨은 오른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루아를 향해 내밀었다. 루아는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지 미간을 좁히며 불쾌감을 표현했다.

“그 꽃다발을 제게 줘서 뭐 하게요?”

“너한테 주는 것이 아니라 샤를로즈에게 주는 거다. 그리고 네 힘을 이용해 티아를 찾는다는 대화를 어쩌다가 들었어. 정말 샤를로즈와 함께 티아를 찾아 주는 건가?”

루아는 하찮은 꽃다발을 무덤덤하게 내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렸다.

“어떻게든 샤를로즈의 여동생분을 찾을 겁니다.”

“그럼 우리 관계를 이제부터라도 회복하는 것이 어떠한가?”

루아는 그게 무슨 헛소리냐며 얼굴을 험악하게 구겼다.

샤를로즈에게는 보이지 않는 제 모습을 그녀가 기절한 틈을 타 본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샤를로즈가 분명 우리에게 티아를 찾아 준다고 말했다. 그럼 티아를 찾을 때까지 우리는 동업자가 아닌가. 너도 마찬가지로 티아를 찾아 준다고 했으니 같은 동료가 된 것이 아닌가?”

“당신은 정말 간사하군요.”

“그런 말 참 많이 듣지.”

“참으로 뻔뻔합니다.”

“나는 우리 샤를로즈에 대한 지금까지 이미지를 이제부터 벗어 던지려고 해.”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웹에서 실시간으로 편리하게 감상하세요

http://novelagit.xyz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