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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18/120)

18화

“좋아요. 샤를로즈와 함께하는 아침은 편안할 것 같네요.”

사실 악마는 아침을 싫어했다.

어둡고 축축한 곳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감옥이나 지하를 선호했다.

그런데 루아는 샤를로즈의 일상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괴물이라고 불리는 최고 악마인 루아가 말이다.

눈이 부신 햇살이 싫다.

그런데도 루아는 샤를로즈를 위해 뜨겁게 타오르는 햇빛 아래에 선선하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그녀와 아침 산책을 선택했다.

두 손을 꼭 맞잡고.

햇볕은 싫어하지만 샤를로즈는 왠지 모르게 좋았다.

루아는 방긋방긋 웃으며 샤를로즈의 옆을 차지하며 저택 주변을 걸었다.

샤를로즈는 저택 뒤쪽에 발을 옮기려다가 익숙한 얼굴들이 보여 얼른 몸을 숨겼다.

“샤, 샤를로즈?”

루아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샤를로즈를 보며 당황했다. 그녀는 그를 올려다보며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그는 조용히 하라는 손짓에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로즈는 저 익숙한 놈들이 한 번에 몰려 있는 건 오랜만에 봤다.

제 초대장은 다 무시했으면서 왜 이 저택 뒤쪽에서 뭔가 회의 같은 걸 하고 있는 거지?

귀가 꽤 밝은 샤를로즈는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남자 주인공들이 무슨 꿍꿍이가 있어 여주인공 집 저택 뒤편에 모였나.

참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왜 여기로 모이자고 한 겁니까?”

주드엔이 나머지 세 명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해리슨은 이에 이렇게 대답했다.

“가끔은 한 번에 들이닥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주드엔은 해리슨의 계획 없는 어리석음에 한숨을 토해 냈다.

그런다고 샤를로즈가 우리를 맞이할 애는 아니잖아요. 라고 내뱉으려고 했지만, 자신을 제외한 세 명은 옳소를 외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 애는 절대로 우리를 만나 주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또 이상한 초대장만 보내고 말입니다.”

주드엔은 손까지 저어 가며 티아를 찾는 일을 일 순위에 두자고 그들을 설득해 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놈들에게는 다른 이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샤를로즈의 방에 무턱대고 쳐들어가는 거지.”

루야가 턱을 쓸어내리며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뒷말까지 붙였다.

“그러다가 또 자살하려고 하면 어쩌려고.”

해리슨은 이제 샤를로즈의 죽음이 지긋지긋해지려고 한다. 자꾸 우리를 넘보려고 하는 그 눈빛도 싫었다.

“티아의 오라비들을 한 번 건드려 볼까?”

“그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요. 티아가 자신의 가족은 건들지 말라고 약속했잖아요. 하아.”

티아는 자신에게 접근하는 대신 제 가족을 건들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샤를로즈의 만행도 티아가 있는 한에 다 참아 줬다.

“그냥 티아에 관한 이야기를 하러 왔다고 평범하게 들어가면 안 돼?”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요한이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그러자 다들 아, 바보 같은 침음을 흘렸다.

“하긴 그게 제일 정상적인 방법이지. 왜 그걸 몰랐지?”

해리슨은 샤를로즈를 어떻게든 곤란하게 할 생각만 하다 보니 티아를 찾는 일은 조금씩 뒤로 넘겨지고 있었다.

다들 그랬다.

물론 주드엔은 제외하고. 그는 늘 티아를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했다.

이 대화를 엿듣고 있는 샤를로즈는 소리 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가자.”

샤를로즈는 루아의 손을 잡고 저택의 뒤편에서 얼른 나와 다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그녀의 오라비들을 만났다.

“…샤를로즈. 저 악마를 정말로 데리고 살 생각인 거야?”

유진이 인상을 찌푸린 채 미간을 검지로 톡톡 건드리며 말문을 꺼냈다.

한 달 만의 샤를로즈와의 대화였다.

어떻게든 저 대악마를 다시 봉인해야 한다. 아니면 세상의 질서가 무너지고 망할 것이다.

“유진 형.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저 악마가 샤를로즈만 따르잖아. 무슨 일이야 있겠어? 안 그래, 샤를로즈? 설마 나쁜 짓을 할 건 아니지?”

제레미의 비꼼에 샤를로즈는 자신을 떠보는 짓에 코웃음만 나왔다.

“그건 제 마음이고요. 얼른 티아나 찾으세요. 그 애가 오면 저는 사라질 테니까. 뭐, 제 걱정은 아무도 하지 않겠죠. 저는 몹시 나쁜 언니니까.”

“샤를로즈! 넌 어머니가 안타깝지 않니? 너를 그렇게 아꼈어. 티아보다도 아꼈다고!”

제레미가 버럭 화를 내며 샤를로즈의 양어깨를 잡으려고 할 찰나에 루아가 제레미의 두 손을 한 손으로 억압했다.

“샤를로즈를 만지지 마세요. 불쾌하네요.”

“이 빌어먹을 악마가!”

루아의 칙칙한 회색 두 눈동자가 싸늘하게 바뀌었다. 그 덕에 분위기 역시 착 가라앉았다.

“제레미 오라버니는 여전히 말이 통하지 않네요. 루아, 오라버니를 잡은 손을 떼세요. 지지예요.”

“알겠어요.”

샤를로즈의 말 한마디로 대악마가 움직였다.

유진은 그 모습을 보며 초조해졌다.

그 악마만 없다면 다툼을 했을 것인데 저 악마가 있으니 애가 차분해졌다.

무섭도록,

“그럼 전 방으로 들어갈게요. 아침 산책을 했더니 피곤해서.”

샤를로즈는 친하지도 않은 제 오라버니들에게 상냥하게 손까지 흔들며 층계를 밟았다. 루아와 손을 꽉 맞잡은 채.

“유진 형. 샤를로즈는 진짜로 미쳤나 봐. 저 대악마를 어떻게 봉인해? 아니, 죽일 수는 있어?”

제레미는 서서히 사라지는 샤를로즈와 루아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아니. 못 죽여. 봉인도 못 해. 가주의 힘이, 우리 가문의 힘이 한순간에 박살이 났거든.”

“뭐…? 어째서?”

“샤를로즈를 지하에 가뒀을 때, 저 악마와 옥살이를 시켰거든. 그게 잘못이었어. 샤를로즈가 저렇게 돌아버릴 줄을 누가 알았겠어.”

“…아까 전 샤를로즈의 눈빛 봤어? 텅 빈 것이 불안해. 차라리 내 뺨이라도 때리지. 평소와 답지 않은 행동을 하니 머리가 지끈 아파지네.”

제레미는 한숨을 토해 내듯 말했다. 그 이후에 두 형제의 대화가 끊겼다.

마치 무언가 두려움에 휩싸여 더는 말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다.

아마 샤를로즈가 멘탈이 나간 저 두 오라비를 봤다면 앙칼지게 웃었을 것이다.

***

샤를로즈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루아에게 부탁했다.

“루아. 내 여동생을 찾는 걸 도와줘요. 그 애를 다시 이 저택으로 오게 만들어야 제가 자유로울 수 있어요.”

“그럼 여동생분의 외형이나 특별한 건 없나요?”

“외형은 금발이 약간 섞인 백색의 단발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성인식을 아직 치르지 못한 여자애예요. 저보다 키가 커요. 조금 많이. 얼굴도 아름답고 아마 금방 찾을 수 있을 건데…….”

“있을 건데?”

“내 여동생, 아니 티아를 사랑하는 놈들이 아직도 찾지 못한 거라면 어디로 꼭꼭 숨었거나 죽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3년 후면 돌아오긴 하지만, 일찍이 찾으면 샤를로즈는 얼른 도망갈 생각이었다. 차라리 그게 낫다고 했다. 어차피 악역은 퇴장하는 게 가장 좋은 엔딩이니까.

샤를로즈의 머릿속은 이미 이 망할 저택에서 벗어나 호적까지 파이며 다른 삶을 그리고 있었다.

자유, 억압된 시선들, 죽음.

조금은 지친 샤를로즈는 쓰게 웃었다.

‘꼭 그렇게 살다가 죽자.’

게임이든, 현실이든.

지금은 돌파해야 할 장애물들이 너무 많았다.

사실 현실의 일들이 조금씩 잊히면서 샤를로즈가 되어 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죽기는 싫네.’

죽어야만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 정말 끔찍한 방법이었다.

한 번도 현실에서 해 보지 못한 일들을 이 피폐 역하렘 게임 속에서 하고 있었다.

평범한 대학생이 자살에 미친 짓을 벌이기는 힘들지.

샤를로즈는 루아를 끌어안으며 낮게 속삭였다.

“돌아가고 싶어요.”

“어디로요?”

“제가 살던 곳으로요.”

“저를 버리실 건가요, 샤를로즈?”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리자 샤를로즈는 픽하고 웃었다.

“글쎄요. 우리의 미래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버리지 않아요. 루아.”

“그렇군요. 혹시 악마에 대해 아는 정보는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샤를로즈.”

“없어요. 그냥 충동적으로 루아와 계약을 한 거예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샤를로즈는 가고 싶은 곳으로 못 갈 수도 있어요. 악마와의, 아니 대악마와의 계약은 평생 가거든요. 아마 샤를로즈는 불로불사가 될 수도 있어요. 저를 잘만 길들이면 말이죠.”

샤를로즈는 루아의 어깨에 제 얼굴을 비볐다.

“망했네요.”

“그러게요.”

악마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 샤를로즈는 현실에 돌아가는 걸 반 포기했다.

‘그런데 만약 현실로 돌아가면 그 험한 생활을 겪고 미친 내가 잘 지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네.’

제대로 돌아 버린 샤를로즈는 현실로 돌아갔을 때 자신을 걱정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샤를로즈는 과연 일반인처럼 지낼 수 있을지.

샤를로즈는 눈꺼풀을 팔랑이며 내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샤를로즈는 루아의 목덜미를 세게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루아가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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