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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15/120)

15화

샤를로즈가 악마를 괴롭히는 건 아니겠지.

감옥 앞에 우뚝 선 유진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자 헛웃음이 나왔다.

샤를로즈가 악마의 어깨에 기대 쉬고 있었다. 피곤한지 눈꺼풀을 내렸다가 올리기를 반복했다.

…악마와 다정하게 있는 인간은 처음 봤다.

보통 ‘악마의 감금실’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악마와 함께 있으면 패닉에 빠지거나 기절하기 일쑤였다. 그야 악마의 특유한 억압감에 눌려 기운이 빠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뭐.

샤를로즈가 악마를 강아지처럼 길들인 것처럼 보였다.

“샤를로즈.”

유진의 부름에 샤를로즈가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선 반갑다는 듯 말했다.

“유진 오라버니. 이 누추한 지하에는 어쩐 일로 오셨어요?”

샤를로즈는 여전히 루아의 어깨에 기댄 채 말하다가 유진이 들고 온 꽤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을 보며 감탄했다.

“설마 저를 위해 하녀를 시키지 않고 직접 가져다 주시는 건가요? 감동적이에요.”

감동일 리가. 어서 음식만 놔두고 꺼져 줬으면 하는데. 샤를로즈는 겉으로는 웃으며 속으로는 유진을 욕했다.

“네가 또 감옥에서 사고 칠까 두려워 와 봤다. 음식은 덤으로.”

“아아. 제가 유진 오라버니는 제가 사고 치기를 바라시는 말투네요. 왜, 악마와 사랑이라도 빠질까요?”

“샤를로즈! 너는 정말!”

유진은 황당한 샤를로즈의 시비에 격하게 반응했다. 평소보다 유독 예민해 보였다.

“유진 오라버니. 감옥도 꽤 살기 좋네요.”

유진은 괜히 샤를로즈를 감금했나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저 아이는 어디를 가든 똑같을 것이다. 그는 감옥 문을 가주의 능력으로 열고 난 후, 샤를로즈 앞에 쟁반을 놓았다. 그리고 떠나려는데. 그녀가 유진의 소매를 붙잡았다.

“오라버니. 전 어머니처럼 되고 싶어요.”

“……무슨 소리야.”

“루아에게 들었어요. 어머니도 악마와 계약한 타락 성녀라면서요. 그래서 저도 타락하려고요.”

그 순간이었다.

루아가 샤를로즈의 손을 잡고 그녀의 악한 기운으로 봉인을 풀어 버렸다. 아주 간단했다. 유진이 오거나 하녀가 오든 이렇게 할 작정이었다.

유진은 갑작스러운 어둠의 힘에 전 공작이 준 펜던트가 바사삭 부서져 버렸다.

그 의미는 곧 최고의, 최악의 악마 루아가 본 모습을 되찾았다는 뜻이었다.

“샤를로즈! 너, 설마-”

“네. 악마와 계약을 했어요. 봐 봐요. 오라버니들과는 다르게 어여쁘고 얌전하고 제 말을 잘 들어주거든요. 그래서 홧김에 해 봤어요. 어차피 제가 착한 일을 해도 다들 저를 꾸짖을 거잖아요.”

샤를로즈 레베크의 대한 평판은 최악 그 자체였다. 그녀가 유진에게 또박또박 말대꾸했다. 그는 그녀의 말에 틀린 게 없어 할 말을 잃었다.

“너, 뒷감당을 어쩌려고 그래? 네가 봉인을 풀어 준 악마는 최악의 악마야. 저놈을 붙잡을 인간은 이 세상에 없어.”

유진은 역시 사고 칠 줄 알았다며 한숨을 내쉬듯 물었다.

샤를로즈는 루아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쥐더니 집착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있어요. 제가 이 악마의 주인님이 되면 되죠. 안 그래요, 루아?”

가만히 있던 루아는 제 머리카락을 잡고 있던 샤를로즈의 손을 잡아 제 입술 위로 끌었다.

“맞아요. 저는 샤를로즈의 말만을 따를 거예요.”

유진은 제발 이 상황이 꿈이었으면 했다.

초대 레베크 공작이 어떻게 봉인해 놓은 건데, 그걸 샤를로즈가 가볍게 풀어 버렸다.

아, 젠장.

유진은 눈앞이 아찔했다.

스트레스를 요새 너무 많이 받고 있는 모양이네.

“샤를로즈. 난 네가 반성할 줄 알았어. 그런데 악마와 계약을 하면 어떡해? 미쳤어? 돌아 버린 거야?”

유진은 샤를로즈에게 계속 호통쳤다. 그럼에도 샤를로즈는 그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가치 없는 잔소리였다.

샤를로즈는 언제까지 이런 압박에 못 이겨 살아야 하는 걸까.

김단은 문득 샤를로즈의 우울했던 과거가 머릿속에 느리게 스쳐 지나갔다.

언제나 혼자 있던 시절들.

혼자 울며 외로움을 버티던 어린 시절들.

제 여동생만을 아끼는 주변인들.

샤를로즈는 점점 악의 길로 빠지게 되었다.

환경이 그랬으니까.

쾌적한 환경에서 크지 못했으니까. 이렇게라도 악한 행동을 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두었다. 그럴 때면 진짜 샤를로즈는 희열감을 느꼈다.

이렇게 해야 봐 주는구나.

‘불쌍한 샤를로즈. 내가 너를 위해 자유라도 찾아 줄까?’

김단은 샤를로즈의 일생이 불쌍하게 여겼다.

“저는 이미 미쳤어요.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세 번이나 자살했겠어요? 그리고 오라버니들은 저를 싫어하면서 왜 자꾸 살리세요? 죽은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살리시는 건가 봐요? 근데 사람이 어떻게 물건이 돼요. 네?”

“샤를로즈! 적당히 좀 해. 네가 지금까지 호의호식한 걸 생각해. 우리도 많이 봐주고 참아 준 거야.”

“그러면 지금도 계속 많이 봐주고 참아 주세요. 누가 봐달라고 했어요?”

샤를로즈는 기가 차듯 코웃음을 쳤다. 유진은 그녀의 뻔뻔한 행동에 말을 잃었다.

“유진 오라버니. 누가 여동생을 감옥에 가두고, 감시하고 그래요? 티아에게도 그랬어요? 티아한테는 늘 좋은 오라버니였으면서.”

“샤를로즈. 그만해.”

유진은 제 소매를 잡은 샤를로즈의 손을 냉정하게 쳐 냈다. 그러면서 화가 잔뜩 난 음성으로 명령했다.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군. 샤를로즈. 다시 반성하렴. 그리고 악마의 봉인을 깼다고 해도 감옥에서는 나오지 못할 거야. 감옥을 부수려고 하면 성력이 발동할 테니.”

얌전히 유진의 말을 듣던 루아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미안한데요. 레베크 가문의 가주. 샤를로즈의 악한 기운이 너무나도 강력해 성력을 부숴 버렸어요.”

“……뭐? 언제?”

“당신과 샤를로즈가 싸울 때요. 그냥 툭 치니 성력이 사라지던 걸요?”

유진의 얼굴에 절망이 그득하게 올라왔다.

그럴 리 없어.

유진은 얼른 감옥에서의 성력을 찾아보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다 사라졌다. 그냥 평범한 지하 감옥이 되어 버렸다.

“역시 악마는 치밀하네요. 루아.”

“네. 저도 이제 답답했거든요. 샤를로즈. 날뛰어도 되나요?”

샤를로즈는 얼어붙은 유진을 흘겨보다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아직,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을 소개하고 싶어요.”

“그럼 샤를로즈의 말대로 할게요. 얌전히 있으면 되나요?”

루아의 유혹적인 어조는 뭇 여성을 홀릴 만큼 마음을 간지럽게 하였다. 하지만 샤를로즈는 달랐다.

그저 귀여운 강아지 하나 생긴 기분이 들었다.

샤를로즈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루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둘의 키 차이와 덩치 차이가 꽤 났다.

“우와, 루아 키 크네요.”

“악마들은 보통 다 키가 커요.”

“아아. 그렇구나.”

이렇게 가벼운 이야기를 하다가 아직도 굳어 있는 유진에게 샤를로즈가 다가갔다.

“오라버니. 감옥 생활은 이쯤이면 되겠지요? 아, 저는 배가 고프지 않으니 이 식사는 유진 오라버니가 드세요. 그럼, 제방에 가 있을게요.”

샤를로즈는 까치발을 들어 유진의 어깨를 손을 툭툭 건드리며 루아와 함께 감옥에서 빠져나왔다.

홀로 남겨진 유진은 마른세수를 하였다.

“미치겠네. 샤를로즈.”

이번에 샤를로즈가 유진에게 제대로 한 방 먹이는 순간이었다.

***

샤를로즈는 이제 여자 주인공인 티아를 찾을 생각이었다. 얼른 티아를 찾고 빨리 자신은 사라져 버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는데.

자살해도 현실 세계에 잠깐 돌아가는 거지, 저 망할 오라비들 때문에 다시 살아나 버려 일이 점점 꼬이게 되었다.

이럴 바에는 온 대륙을 뒤지면서 티아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왜 하필 샤를로즈 빙의 시점에 티아의 방에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왜 샤를로즈가 티아의 편지지를 들고 있었는지도 의문이었다.

분명 진짜 샤를로즈의 기억은 수면제를 먹고 죽으려고 했다. 그런데 티아의 방에는 어떻게 간 것인가. 기억이 조작된 건가?

알 수 없는 것들투성이었다.

샤를로즈가 말이 없자 옆에 멀뚱멀뚱 서 있던 루아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샤를로즈?”

“응?”

“이제부터 뭐 하면 돼요? 저는 지금 최상의 컨디션으로 모든 것을 다 부술 수 있어요.”

“모든 걸 다요?”

“네. 최고 악마의 힘을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그런데 제 어머니 역시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는데 그 이야기는 어떻게 된 일이에요?”

“아아, 죽은 전 레베크 공작 부인 말하는 거죠? 그녀는 참으로 안타까웠어요. 걸려도 지독한 악마와 계약을 하니 목숨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죠. 그녀는 죽었죠?”

“네. 전 레베크 공작과 자살로 죽었어요.”

“악마와 계약하면 타락해 그리 죽을 수 있어요. 악마와 계약한 자들의 끝은 좋지 않거든요. 샤를로즈는 죽음이 두렵지 않나요?”

샤를로즈는 ‘죽음’에 관해 잠시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전혀 무섭지 않은데요.”

샤를로즈다운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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