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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13/120)

13화

샤를로즈의 오랜만에 듣는 욕지거리에 주변에 있던 이들은 얼굴을 굳혔다. 그러나 샤를로즈에게서 많이 들은 욕이라 그런지 그들은 큰 타격이 없었다.

***

“오늘도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죄송합니다.”

유진은 애써 샤를로즈를 찾은 해리슨과 요한에게 머리 숙여 사과했다. 그들의 위치는 당연히 유진보다 높았기에. 유진 옆에 있던 샤를로즈는 이미 레베크의 전속 신관 레일론에 성력으로 깔끔해진 상태였다. 그저 그녀는 오늘도 죽지 못했다는 사실에 한탄할 뿐이다.

“아니. 사과할 필요는 없어. 오랜만에 샤를로즈의 욕을 들으니 조금 상쾌한 기분도 들고. 아, 샤를로즈는 사람 마음을 쥐었다 폈다 하는데 재능이 있는 거 같아. 정말 가슴이 철렁했어. 이번에 진짜 죽으면 어쩌나 싶어서.”

해리슨은 샤를로즈를 향해 비아냥거렸다. 그녀는 흘끔 그를 올려다보며 그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언제든지 제 욕을 듣고 싶다면 찾아오세요. 폐하의 취향을 존중해 드리죠.”

이에 질 수 없다는 듯 말하는 샤를로즈의 모습에 해리슨을 쯧, 혀를 찼다. 자신에게 이렇게 막 대하는 귀족 영애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다른 나라의 왕도 제 앞에선 무릎을 꿇는 처지인데.

기가 찼다.

샤를로즈의 행동 하나하나가 말이다.

“그나저나 꽃다발이 다 망가져 버려서 어째, 샤를로즈?”

요한은 거만한 눈빛으로 샤를로즈를 내려다보며 엄한 어조로 물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재수 없는 샤를로즈.

요한은 가끔가다 샤를로즈가 제 발밑에서 울며 매달리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만큼 그녀는 상대방의 마음을 비뚤게 만들었다.

“꽃다발은 고마워요. 그런데 이제 좀 저를 꼬시려는 그런 방법은 식상하지 않아요? 저를 꼬셔 봤자 얻는 건 욕밖에 없을 텐데. 계속 아침마다 오실 건가요?”

샤를로즈는 방긋 웃으며 그 둘에게 제발 좀 찾아오지 말라는 암묵의 압박을 넣었다. 하지만 그 둘은 그녀에게 질 상대가 아니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그 둘의 대답은 똑같았다.

꼭 짜 맞춘 퍼즐처럼.

***

벌써 세 번이나 자살 시도를 한 샤를로즈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뭐가 문제라고 계속 죽으려고 하는 건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괴롭힘당하는 건 샤를로즈가 아닌 자신들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샤를로즈. 난 널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아. 넌 그저 어머니의 인형일 뿐이야.]

[알아요. 오라버니. 저도 오라버니를 딱히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건방진 계집애.

출신도 모를 고아가 명문 가문인 레베크 공작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건 물론, 패악질에다가 제 마음에 안 들면 손부터 올라가는 무례한 행동을 일삼기만 했다.

유진은 하는 수 없이 샤를로즈를 지하 감옥에 가둘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멋대로 날뛰니 감당하기 어려웠다.

유진은 제 앞에 멍하니 허공을 보고 누워 있는 샤를로즈에게 말을 꺼냈다.

“샤를로즈. 한 번만 더 자살하면 감옥에 넣는다는 말 기억해?”

“네.”

망설임 없는 샤를로즈의 대답. 그 대답에 유진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보통 같았으면 소리를 빽빽 지르며 방 안에 있던 모든 물건을 던져야 할 터인데. 이상하게 얌전했다.

“레베크 공작가의 지하 감옥에 뭐가 있는지 알아?”

“몰라요.”

레베크 공작가에 잘 알 리 없는 샤를로즈는 레베크 공작 가문의 이야기를 전혀 몰랐다. 애초에 게임 설정상 레베크 공작가는 그저 명문 가문에 뛰어난 능력자들을 배출해 낸다는 것 밖에 나오지 않았다.

샤를로즈는 곧 지루한 유진의 낮고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도 고개는 여전히 창밖을 향하고 있었다.

“지하 감옥에 너와 동고동락할 놈이 하나 있지.”

“…지하 감옥에 누가 또 있어요?”

“그래. 초대 레베크 공작이 봉인한 최고의 악마가 하나 있지. 그 악마는 세상을 멸망하려고 설치다가 초대 레베크 공작에게 붙잡혀 아직도 지하에 살고 있어. 그 힘의 봉인은 절대 풀리지 않아. 초대 레베크 공작은 인간을 초월한 힘을 지녔으니까. 그러니 난 널 그 무서운 악마 옆에 두려고 해.”

이것이 유진이 내린 조치였다.

무서운 악마가 옆에 있으면 샤를로즈가 겁을 먹고 반성하지 않을까 하면서.

유진은 아쉽게도 그 방법도 샤를로즈에게 통하지 않을 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다.

그저 지금 죽으려고 하는 샤를로즈를 지하 감옥에 가둬 악마와 함께 있게 해 살기 위한 발버둥을 쳤으면 했다.

“감옥에서의 밥은 묽은 죽이면 되나?”

“아뇨. 화려하게 차려 먹고 싶어요.”

“일단, 네 말을 듣지.”

유진은 침상에서 나오는 샤를로즈의 손목을 잡고 지하로 끌고 갔다.

지하실은 캄캄하고 눅눅하고 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유진의 이끌림에 따라 샤를로즈는 뒤에 졸졸 쫓아왔다. 그러다가 그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녀 역시 움직이던 두 발을 멈추었다.

“반성해. 샤를로즈.”

“여기에 들어가면 되나요?”

샤를로즈는 무미건조한 얼굴로 지하 감옥을 응시하며 물었다.

“그래. 들어가서 네가 조금이라도 수그러지면 꺼내 줄 거야. 샤를로즈. 그 안에서는 나가지도 못해. 아버지가 넘겨주신 팬던트가 반응하거든. 그러니 쥐 죽은 듯이 저 악마와 같이 살아 봐. 물론 저 악마는 이제는 힘이 없어. 그러니 같이 나갈 생각은 하지 마렴. 샤를로즈.”

유진은 샤를로즈의 손목을 놓아 주었다. 그리고 오로지 가주의 능력으로 여닫기를 할 수 있는 특수 제작된 지하 감옥에 그녀를 집어넣었다.

샤를로즈는 의외로 순순히 칙칙하고 어두운 감옥 안에 들어갔다.

쾅!

“밥은 제시간마다 하녀가 들고 올 거야. 나도 너를 옥살이 시키고 싶진 않지만, 네가 계속 위험한 사건을 터트리니, 원.”

유진은 티아가 사라진 일, 화목한 가정이 파탄 난 일 등 모든 걸 샤를로즈 탓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악한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티아도 사라지지 않고 조금은 가족으로서 대했을 텐데.

아쉽군.

유진은 지하실에서 나오면서 샤를로즈의 우울한 모습을 잊었다.

잊어야 한다. 그녀를 잊어야 왠지 모를 죄책감이 사라진다.

유진은 샤를로즈를 보며 늘 냉정하게 대했다. 물론 제레미도 마찬가지였다. 티아가 샤를로즈의 물건을 만졌을 때는 무어라 하지 않고 샤를로즈가 티아의 물건을 만지면 유진과 제레미는 샤를로즈를 도둑 취급했다.

넌 우리 가족이 아니라는 듯 선을 완벽하게 그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샤를로즈는 마음에 내키는 것이 없는지 미친 행동을 시작했고, 전 공작 부인이 돌아가셨을 때는 샤를로즈의 상태가 조금 더 심각해졌다.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신분과 상관없이 손이 날아갔다.

물론 폭군이라 유명한 아이비크니 황제인 해리슨 역시 샤를로즈에게 뺨 한 대 내어주었다. 그 계집애를 죽이겠다고 발악하다가 티아의 치료에 금세 조용해졌다.

샤를로즈가 해 온 악행들을 모두 티아가 처리하는 셈이었다.

유진은 이렇기에 샤를로즈의 뒤처리가 지치고 힘들어 도망갔다고 생각했다. 물론 추측이긴 하지만 제일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티아를 찾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 봤지만, 눈에 띄는 푸른 눈을 지닌 어여쁜 여자애를 찾는 게 이리 어려울 줄이야.

그러다가 샤를로즈의 무감정한 표정이 허공에서 아른거렸다.

망할 것.

유진을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거지 같군.”

유진은 얼른 집무실로 돌아갔다.

***

유진이 나가자마자 샤를로즈는 꽤 좁은 감옥 안을 둘러보다가 구석에 앉아 있는 한-남자로 보이는-사람을 발견했다.

“당신이 최고의 악마라면서요. 유진 오라버니한테 들었어요.”

“…….”

“제 이름은 샤를로즈예요. 당신은요?”

“……루아.”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낮고도 유혹적인 음성이 샤를로즈의 귓가에 흘러들어 왔다.

체구는 물론 샤를로즈보다 컸지만, 꽤 말랐다. 덥수룩한-허리까지 오는- 하늘색 머리카락에 새빨간 피와 찌든 때가 엉켜 있었다. 무릎을 위로 세워 얼굴을 묻은 탓에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샤를로즈는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루아. 저는 레베크 가문의 장녀예요. 그것도 레베크 가문의 이례 없는 입양아죠. 제 편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혼자 살아가기 힘드네요.”

샤를로즈는 악마가 무섭지는 않은지 자신의 한탄을 계속 늘어트렸다.

“저는 벌써 세 번쯤 자살했어요. 죽었다고요. 그런데 레베크 가문 일원들이 절 살리고 있죠. 거지 같은 이런 인생에 저는 그놈들에게 엿을 먹여 주고 싶었어요. 그뿐인데, 이렇게 당신과 함께 감옥에 갇혀 버렸네요.”

샤를로즈는 이 끈적한 어둠이 나쁘지는 않은지 악마의 웅크린 어깨에 제 얼굴을 기대었다.

첫 만남이라고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악마 루아는 샤를로즈가 제 영역에 들어오려고 하자 몸을 움찔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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