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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11/120)

11화

“만약에 제가 죽는다면 울어 주세요. 제가 죽어 기쁨의 눈물을 흘려 주세요. 라고 했지. 샤를로즈가.”

조금 전 샤를로즈가 말했던 문장을 그대로 재현했다. 그러면서 요한 역시 해리슨처럼 한쪽 무릎을 꿇은 다음 샤를로즈의 창백한 뺨을 툭툭 건드렸다.

“미안하지만 네가 죽어도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단다. 샤를로즈.”

요한은 샤를로즈의 입가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닦아 주며 상냥하게도 말했다.

“주드엔, 넌 곧 죽을 샤를로즈에게 할 말이 있어?”

“없습니다.”

주드엔 역시 좋지 않은 답이 떨어졌다. 제레미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아무리 미워도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었다.

“형, 유진 형. 샤를로즈가 진짜로 죽게 생겼어.”

“나도 알아. 조용히 해. 제레미.”

왜 형은 그렇게 차분할 수 있어?

그래도 샤를로즈에게 정은 없어도 신경은 계속 쓰였잖아.

제레미는 유진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한 달 동안 죽지 못하게 붙어 있던 거겠지. 제레미는 유진을 흘겨보며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눈빛을 보냈다.

“루야 님. 부탁합니다.”

유진도 어쩔 수 없이 루야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루야 님. 샤를로즈는 그래도 레베크 공작 가문의 일원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그 애원이 무색하게도 샤를로즈는 갑자기 검붉은 핏덩이를 내뱉으며 다시 눈을 떴다.

“콜록, 콜록!”

아직 가슴에 박혀 있는 칼을 아무도 빼 주지 않은 탓에 그녀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왜 살아난 거야? 현실 세계에 발걸음도 하지 못했는데.’

현실 세계에 가지도 못하고 금방 살아난 샤를로즈의 몸을 보며 그녀가 눈을 찡그렸다.

조금 전 봤던 아찔하게 빛나던 햇살이 그대로 시야에 담겼다.

이번에는 왜 살아난 거지?

저번에는 신관을 불렀다고 했어. 그래서 살아난 거고. 이번에는 제대로 심장을 찔렀는데 왜 살아난 거야.

“이야, 대단한걸. 루야가 치유 능력을 쓰지도 않았는데 죽었다가 살아나는 애는 처음 봐.”

해리슨은 샤를로즈의 가슴팍에 꽂힌 칼을 거칠게 빼내며 신기해했다.

“빌어, 먹을. 쿨럭!”

샤를로즈는 해리슨의 약오르는 표정을 마지막으로 까무룩 기절해 버렸다.

샤를로즈는 분명히 죽었다.

그리고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눈을 떠보니 다시 게임 속이었다.

빌어먹게도 게임 속에서 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가 보다.

거지 같다.

***

샤를로즈는 레베크 공작 가문의 신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레이론 신관에게 또다시 치료를 받았다. 루야는 도저히 샤를로즈를 치료할 생각이 없다고 의견을 밝혔다.

샤를로즈의 두 번째 자살 기도 사건은 소문이 퍼지지 않았다.

웬일이지 티아의 남자들이 입막음했다.

샤를로즈는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제 몸에 칼을 찔러 넣었다. 위험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 도달하기는커녕 다시 게임 속 샤를로즈가 되어 있었다.

돌아 버릴 것 같았다.

“샤를로즈. 넌 절대 죽을 수 없어.”

오늘도 유진의 집무실에 제레미와 함께 있던 샤를로즈는 유진의 말을 개무시했다.

어차피 또 똑같은 말이겠지, 하고 넘어갔다.

유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덧붙였다.

“어머니께서 우리와 너를 이어 주고 가셨더라고. 네가 다과회에서 자살했는데 살았던 이유를 찾았어. 어머니의 일기장에서 우연히 봤어.”

“…어머니의 일기장?”

샤를로즈는 어머니란 단어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녀는 꼭 진짜 샤를로즈가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공작 부인이 떠오르며 우울해지는 걸 보아하니.

유진은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는 너를 계속 살릴 수 있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유진 오라버니?”

“우리가 너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면 너는 살아나. 아마도 어머니의 성력이 유언장에 담겨 있기 때문인 것 같아.”

“어머니의 성력이라뇨?”

샤를로즈는 전 공작 부인의 비밀을 난생처음 들었다. 유진은 그녀의 궁금함을 풀어 주었다.

“아, 그래. 샤를로즈 너는 모르겠구나. 어머니는 악마와 거래한 도망간 성녀라는 걸.”

“……네?”

이건 무슨 개 같은 설정이야. 공작 부인이 성녀라니.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설정이 있었으면 원작 게임 속 샤를로즈는 죽지 않을 터.

아니지, 지금 샤를로즈와 게임 속 샤를로즈는 다르지. 참.

‘그니깐 저 망할 오빠들이 날 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죽어 버린 내가 살아난다?’

제레미는 샤를로즈의 볼을 쭉 늘리며 투정 부리듯 말했다.

“너, 죽을 생각하지 마.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살아.”

그렇게 말해도 여자 주인공 티아가 돌아오면 남자 주인공들에게 죽는 역할이라니까?

아무도 샤를로즈가 3년 뒤에 죽는다는 걸 믿지 않았다.

하기야 누가 믿겠는가.

예언자도 아니고.

샤를로즈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이번에는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싫은 샤를로즈는 계속해서 죽을 시도를 할 것이다.

그것도 저를 싫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

다과회가 끝나고 난 뒤, 티아의 남자들이 몰래 모였다. 그들에게는 아지트가 있었다. 물론 서로 좋은 관계는 아니지만, 티아를 위해 모인 모임이었다.

나이, 권력 등 따지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모임.

그 모임을 ‘티아스’라고 그들은 불렀다.

티아스는 아무도 오지 않은 황폐해진 어느 도시의 지하실이었고, 그들은 가끔 모여 술이나 티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샤를로즈가 아예 미쳤더군. 제대로.”

보드카를 병째로 들이마시는 해리슨이 정적을 깨고 말을 꺼냈다.

“우리 앞에서 자살 시도라니, 신선하긴 했지.”

요한이 해리슨의 말에 동의했다.

“그나저나 티아의 행방은 찾았습니까?”

주드엔은 샤를로즈의 이야기에 낄 생각이 아예 없는 건지 오로지 티아의 이야기를 하기 바랐다.

주드엔의 물음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온 대륙을 뒤져도 티아의 뒷모습조차 보지 못한 그들은 조금은 초조해졌다.

혹여 죽은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니고서야 찾지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들 권력과 명예가 있는 이름 날린 사내들이었다. 한 제국의 공녀 하나 못 찾는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해리슨은 갑자기 씨익 웃더니 그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샤를로즈를 파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지독하게 괴롭힌 여동생에게 빼앗은 무언가들이 있으면 그게 참고가 될 수 있잖아.”

해리슨의 제안에 다들 동요하는 듯싶었다.

“샤를로즈 성격으로 티아에게 빼앗은 물건들을 보여 주겠어?”

요한은 고래를 절레 저으며 이건 아니라는 것처럼 대답했다.

다들 요한의 말에 동의하는지 루야와 주드엔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슨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들을 꼬셨다.

“이번 다과회에서 봤던 샤를로즈는 전보다 더 순해진 느낌이었어. 나만 그렇게 느꼈나?”

“해리슨, 그대는 유독 티아보다 샤를로즈에게 관심을 쏟아붓는군요.”

주드엔이 허를 찌르는 발언을 하였다. 해리슨은 그러든 말든 샤를로즈의 이야기를 했다.

“주드엔. 생각해 봐. 샤를로즈가 도망간 티아를 잡을 단서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잖아. 쉽게 포기하지 마.”

“해리슨은 샤를로즈와 미운 정이라도 붙은 모양이네.”

요한이 어이없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미운 정보다는 그 못된 계집애를 괴롭힐 생각이지.”

“그래서 샤를로즈에게 계속 접근해 보자, 이 말인가?”

루야가 고개를 기울이며 해리슨에게 물었다. 해리슨은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보드카를 한 병을 다 마신 해리슨은 테이블 위에 빈 병을 놓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샤를로즈를 공격해. 그러면 티아에 관한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겠지. 아, 연기는 필수야. 샤를로즈에게 다정하게 대해 줘. 그리고 피눈물이 나게 만들어. 내 사랑스러운 티아를 괴롭힌 악역의 끝은 그게 최고가 아니겠어?”

해리슨의 어둡고 침침한 목소리가 아지트 안에 울려 퍼졌다.

그의 말을 들은 다른 사내놈들은 해리슨이 폭군이라고 불릴 만한 놈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둘 아지트에서 자리를 떴다.

***

샤를로즈는 요즘 들어 꽤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바로 티아의 남자들 때문이었는데, 저를 죽일 남주인공들이 질척거리며 제 주변을 맴돌기 때문이었는데. 거진 한 달 동안 매일 찾아와 샤를로즈에게 선물을 주고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리며 사라졌다.

그래서 샤를로즈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엄청나게 무시무시했다.

꽃다발을 사 들고 온다든지, 희귀한 보석을 선물한다든지 여러 가지로 샤를로즈를 괴롭혔다.

“유진 오라버니. 이 선물들 다 버려요. 아니지. 그분들 또 언제 온대요?”

안 그래도 어떻게 죽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방해꾼들이 많아 샤를로즈의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이 비싼 걸 다 버리려고?”

제레미는 아깝다는 듯 보석들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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