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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7/120)

7화

‘뭐지, 이 불안감은?’

“샤를로즈, 샤를로즈!!!”

유진은 샤를로즈의 양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그래도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바닥에 뒹구는 수면제가 든 약통을 발견했다.

유진은 설마 하는 마음에 샤를로즈를 다시 눕힌 후, 약통을 들었다.

“하, 하! 샤를로즈, 너 죽으려고 했던 거야? 이런 수면제로는 제대로 죽지도 못하는 걸 모르는구나. 쯧.”

유진의 시린 보라색 눈동자가 창백한 낯빛을 하는 샤를로즈에게로 향했다. 그는 이대로 샤를로즈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티아를 위해서라도 넌 죽으면 안 돼.

빨리 발견한 것도 있지만, 일반 신관 정도의 성력이면 약으로 자살 시도한 너를 살릴 수 있어. 안타깝군, 샤를로즈.

(다만 상해가 입거나 죽을병에 걸린 건 신관의 성력으로 살릴 수 없다. 성녀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유진은 집사를 불러 얼른 신관을 데려오라고 명령을 내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베크 가문의 신관 레이론이 레베트 공작저를 찾았다.

“찾았습니까? 공작님.”

“얼른 되돌려 놔.”

“그러죠.”

레이론의 성력으로 샤를로즈는 다시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샤를로즈가 자살 기도를 했다는 소문이 저택 내에 확 퍼졌다. 그 소문은 제레미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형! 샤를로즈는?”

제레미 역시 샤를로즈의 방을 덮치며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다.

레이론은 샤를로즈의 상태를 살펴보며 계속해서 성력을 사용해 샤를로즈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고작 수면제 따위로 죽을 생각을 하다니. 샤를로즈 아가씨. 얕은 생각을 하셨네.’

레이론은 레베크 공작저에 목숨을 바친 신관이었다. 보통 신관은 신전에 있어야 하지만 레이론은 저를 구원해 준 전 공작 부인 때문에 신전에서 나와 레베크 공작저에 몸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샤를로즈 때문에 피해 보는 사람들을 치료해 주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샤를로즈를 치료해 주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모양인가 보다.

레이론의 성력으로 죽어가는 샤를로즈의 몸을 회복시켰다.

“으윽…….”

샤를로즈는 앓는 소리를 내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깨어나셨습니까? 샤를로즈 아가씨.”

샤를로즈의 금색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말도 안 돼.”

샤를로즈는 상체를 일으키며 유진과 제레미를 보았다. 그리고 하하, 황당하다는 웃음을 내었다.

분명히 현실로 돌아갔는데 다시 게임 속 샤를로즈로 빙의했다.

이런, 망할!

샤를로즈의 마지막 기억은 수면제를 먹고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했던 행동을 따라 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자신은 현실 세계로 돌아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분명히 돌아갔다.

샤를로즈는 허탈함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죽어야 돌아갈 수 있는 건가? 아니면 그 현실 세계도 꿈인 건가?’

샤를로즈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샤를로즈. 누가 마음대로 죽을 생각을 하라 했지?”

유진은 금방 일어난 샤를로즈를 꾸짖었고,

“샤를로즈. 미쳤어?”

제레미는 샤를로즈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샤를로즈는 저를 압박하는 레베크 공작저의 일원들 때문에 숨이 다시 턱턱 막혔다.

“유진 오라버니. 제레미 오라버니. 제가 나가는 걸 도와주지 않으면 전 계속 죽을 거예요.”

샤를로즈는 이를 갈았다.

이 거지 같은 게임 속에서 기필코 퇴장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

샤를로즈의 자살 시도 사건은 꽤 떠들썩했다. 입막음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소문은 계속해서 퍼져 나가 화젯거리가 되었다.

“또 그딴 짓을 한다면 널 지하 감옥에 가둘 줄 알아.”

유진은 샤를로즈 때문에 또다시 입방아에 올라 이제는 레베크 공작 가문의 위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샤를로즈는 모를 것이다. 유진의 답답한 이 마음을 말이다.

“제 잠도 멋대로 못 자요? 유진 오라버니는 너무 제 사생활을 침범하시는 거 아닌가요?”

오히려 샤를로즈는 적반하장으로 화를 냈고, 유진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어떻게 잠을 자려는 사람의 모습이지? 숨도 거의 쉬지 않고 죽을상을 하고 있었는데.”

“유진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제가 살기를 바라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연하지.”

“그럼 저를 가문에서 내쫓아 주세요.”

“안 돼.”

샤를로즈는 차라리 주인공들에게서 도망가 평온한 삶을 살고 싶었다. 현실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어차피 3년 후에 여자 주인공 티아가 돌아오면 샤를로즈는 죽을 텐데.

그럼 3년 동안 샤를로즈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어차피 죽는 인생 계속 죽어 버리면 괜찮지 않을까.

그럼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샤를로즈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졌다.

한 번이 무섭지 두 번, 세 번이 두려울까.

샤를로즈는 이 거지 같은 공작저에 몸을 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게임 속에서 행복해지려면 지금껏 공작 부인이 주었던 용돈들을 가지고 혼자 호화롭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 김단의 생활도 썩 좋은 편이 아니니.

“또 죽으려고 발악하지 마. 샤를로즈. 넌 이제부터 내가 자기 전까지 감시할 거니까.”

유진의 충격적인 발언에 샤를로즈는 잔꾀를 굴리고 있던 것을 멈추었다.

“유진 오라버니. 미치셨어요?”

“아니. 미친 건 너겠지. 샤를로즈. 난 어머니의 뜻대로 널 아껴 주고 있는 거야. 알아들었어?”

“티아를 더 아끼시면서 왜 자꾸 저를 챙기려고 해요?”

“널 보면 짜증 나면서도 신경이 거슬려.”

뭐 하자는 거지?

샤를로즈는 유진의 모호한 답변에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요?”

“나도 몰라.”

더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갔다가는 그녀의 뒷목이 잡힐 것 같아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야 얌전해진 샤를로즈를 보며 유진이 명령조로 그녀를 억지로 끌고 가려고 했다.

“넌 내가 보이는 곳에 계속 있어야 해. 따라와, 샤를로즈.”

“…….”

샤를로즈는 일단 후퇴를 생각하며 유진의 뒤를 따랐다.

여기서 더 열을 올려 봤자 피해 보는 건 자신이란 걸 알기에. 유진이 집무실 안에 들어가자 샤를로즈도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처음 보는 집무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저 소파에 앉아 있어. 나갈 생각 하지 마.”

유진은 의자에 앉고선 서류가 쌓여 있는 책상 위에 두 손을 맞잡은 상태로 말했다.

“자도 돼요?”

“그건 네 마음대로 해.”

“떠들어도 돼요?”

“마음대로 해.”

“있잖아요, 오라버니.”

“왜.”

유진은 이제 서류를 하나씩 들어 보며 대답했다.

“제가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면 슬퍼하실 건가요?”

샤를로즈는 소파에 등을 기대며 편한 자세로 물었다.

유진은 잠시 서류를 내려놓고서는 샤를로즈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몰라.”

“유진 오라버니, 제가 죽어도 계속해서 살아나는 괴물이면 절 내쫓을 건가요?”

“그런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샤를로즈, 헛소리할 거면 입 다물어.”

“만약에 제가 죽어도 계속 살아나면 절 놓으실 건가요?”

샤를로즈는 무심한 어조로 유진의 마음을 건드렸다.

“널 놓을 일 없어. 샤를로즈.”

그 말에 샤를로즈는 고개를 돌렸다. 허공에 맞닿은 유진의 보라색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넌 절대로 이 가문에서 나가지 못한다는 무시무시한 눈빛을 그녀에게 보냈다.

할 말이 없어진 샤를로즈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긴 소파에 누웠다.

“오라버니, 티아가 돌아오면 저는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어요.”

“네가 죽을 일 없다고 말했을 텐데?”

“그냥 그런 기분이 든다고요.”

샤를로즈는 유진에게 3년 뒤 제 죽음에 대해 예언해 주었지만, 그는 그녀가 또 미친 소리를 하는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다시 서류 정리를 하였다.

***

“폐하, 샤를로즈 영애가 자살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 샤를로즈가?”

업무를 보고 있던 해리슨이 보좌관의 말에 눈을 섬뜩하게 떴다.

“네, 지금은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살기 싫은가 보군.”

“보러 가실 겁니까?”

“아니, 보지 않을 거다. 샤를로즈가 아예 죽었을 때는 웃겨서 갈 거지만.”

후원의 굴욕적인 일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해리슨은 샤를로즈를 떠올리기만 하면 그녀의 가느다랗고 흰 목을 두 손으로 조르고 싶을 정도였다.

감히 티아를 괴롭힌 거로 모자라 제 목숨을 끊을 생각마저 하다니.

해리슨은 샤를로즈를 고깝게 여겼다.

못된 샤를로즈.

넌 절대 평범하게 죽어서는 안 돼.

티아가 돌아올 때까지 잘 살고 있어야 한단다, 샤를로즈.

해리슨은 어서 티아가 돌아오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어서 돌아와 줘, 티아.

너 없이 버티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구나.

***

샤를로즈는 결국 밤까지 유진과 함께 있었다.

“유진 오라버니, 이제 저 좀 방으로 보내 주세요. 오라버니 얼굴을 온종일 보니 지루해 죽을 것 같아요.”

“그래, 돌아가. 대신 이른 새벽에 널 깨우러 갈 거야. 그것만 알아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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