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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6/120)

6화

특히 저 무감정한 얼굴.

샤를로즈가 제대로 웃어 본 적이 언제였더라.

제레미는 갑자기 샤를로즈의 순수한 미소를 지었던 날을 기억 속에서 찾아봤다.

[샤를로즈. 우리 공주님. 예쁘네.]

[헤헤. 감사합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제 어머니인 레베크 공작 부인과 샤를로즈와의 대화를 엿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샤를로즈는 말썽을 피우지도 않고 얌전했으며 순수함이 묻은 미소를 지었다. 근데 어머니가 병을 앓고 나서부터 샤를로즈가 점점 미쳐 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티아를 괴롭혔다. 티아의 물건을 빼앗는다든지, 뺨은 때리는 건 기본. 계단에서 밀쳐 목숨을 앗아 가려고 했다. 티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악행을 해 왔다.

제레미는 솔직히 제 어머니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왜 저런 것에 홀려 입양했는지. 쯧.

“샤를로즈. 넌 정말 행운아야. 우리 가문에 들어와 호의호식하고 있으니. 출신 모를 고아가 횡재하고 있는 거지. 그러니 조금은 네 멋대로 행동하지 말고, 상대방의 마음도 좀 생각해.”

제레미는 한쪽 입가를 올려 샤를로즈를 비꼬았다.

하지만 샤를로즈에겐 익숙한 잔소리로 들렸다. 얼마나 이런 잔소리를 들었으면 불안하지도 않고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거야? 그녀는 정말 샤를로즈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생각해서 나가겠다고요. 제레미 오라버니.”

“넌 못 나간다고. 샤를로즈. 고집 피우지 마.”

“유언이 그렇게 중요해요?”

“중요해. 너는 우리 가문의 역사를 모르니 가문 내 유언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를 테지.”

“모르니까 알려 주세요. 왜 저는 가문을 나갈 수 없고, 왜 어머니의 유언이 중요한지.”

큼큼, 헛기침하던 제레미가 짜증이 잔뜩 난 눈빛을 샤를로즈에게 보내며 대답했다.

“레베크 가문은 죽은 자의 소원을 들어주며 힘을 얻을 수 있어. 그러니깐 어머니의 유언을 잘 지키기만 하면 우리의 능력은 점점 강해진다는 소리야. 이런 것도 모르고 어떻게 레베크 가문의 일원이 될 생각을 했냐.”

“애초에 저는 입양 당한 거라 레베크 가문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제게 가정교사가 붙은 적도 없었고요.”

그렇다. 샤를로즈는 그저 레베크 공작 부인의 인형으로서 컸다. 지식이 없는 건 당연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가문의 정보든 역사든 교양이든 알려 주는 이가 없었다.

그 공작 부인 역시 샤를로즈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한눈에 반한 예쁜 인형.

샤를로즈를 칭하자면 그 정도였다.

‘그러니 샤를로즈가 반항하지. 그녀를 입양했으면 가족으로 생각해 줘야 하는데 사람 취급하지 않으니 얘가 나쁜 쪽으로 빠지지. 유일한 그녀의 편이었던 공작 부인도 사라지니 샤를로즈는 불안했던 거야.’

갑자기 샤를로즈에 대한 동정이 들었다.

그리고 아까 전 후원에서 잠시 꾼 꿈속의 샤를로즈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걸 알아보면 그녀는 꽤 극심한 우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쌍욕한 샤를로즈에 빙의되어 보니 딱하긴 하네.’

제레미는 갑자기 말이 없어진 샤를로즈를 힐끔 보다가 이상함을 느꼈다.

보통 손부터 날아오는 게 샤를로즈의 정석인 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선을 내린 채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샤를로즈가 제레미에게 있어 낯설게 느껴졌다.

“너, 내 뺨 안 때려?”

제레미의 황당한 물음에 샤를로즈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이제부터 때리지 않게 노력하려고요.”

샤를로즈, 너 정말 보는 사람마다 두들겨 패면서 다녔구나.

아니고서야 왜 자꾸 뺨을 때리지 않냐고 묻는 거지.

“네가? 사람을 안 때려?”

제레미는 제 귀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샤를로즈는 제 마음에 들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 뺨부터 때리고 봤다. 그런데 이제는 안 때린다니. 사람이 저렇게 바뀔 수도 있는 건가?

왠지 모를 이질감에 제레미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와서 착한 척하는 거야? 차라리 그냥 때려. 그게 너다워.”

샤를로즈는 왜 자꾸 자신만 보면 때려 달라는 사람들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유려하게 입가를 올리며 다정한 어투로 대답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신경 좀 꺼 주세요. 제레미 오라버니. 제 퇴장도 도와주지 못할 거면서 말이 많네요.”

샤를로즈는 제레미를 스쳐 지나갔다.

마치 생판 모르는 남과 같이.

제레미는 샤를로즈를 잡으려고 등을 돌려 허공에 팔을 뻗어 봤지만, 그녀의 새까만 머리카락조차도 닿지 못했다.

‘망할 것이 자꾸 내 눈에 띄네.’

제레미는 허공에 뻗은 팔을 얼른 내리고 샤를로즈를 보내 주었다.

저 계집애는 사람 짜증 나게 하는 일에 도가 텄어.

제레미는 샤를로즈를 곱씹으며 유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저택에 들어온 샤를로즈는 얼른 제 방으로 향했다. 사용인들이 보기 전에 얼른 방으로 가 숨으려고 했다.

다행히도 계단을 올라가면서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제레미와 우연히 마주친 게 다였다.

분명히 유진에게 쪼르르 달려가 저가 저택에 있다고 이를 게 뻔했다. 제레미는 제 진짜 혈육에게 유난히 집착하는 편이었으니까.

실제로 게임 속에서 제레미는 여자 주인공 티아를 보물처럼 아껴주었지만, 혈육이 아닌 샤를로즈에게는 늘 따가운 시선과 막말을 서슴없이 해 왔다.

그러니 샤를로즈가 열등감을 느껴 티아를 괴롭히고 악역이 되는 길로 향했지.

누구도 공작 부인의 인형인 샤를로즈를 제대로 대한 적이 없었기에 더욱더 그녀는 악역을 자처한 걸지도 모른다.

계단을 오르다 보니 익숙한 샤를로즈의 방이 보였다.

텁텁한 방으로 시원한 공기가 섞여 들자 샤를로즈는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지 숨을 차분히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까?”

3년 후에야 여자 주인공 티아가 돌아온다. 그날은 샤를로즈가 죽는 날이기도 했다. 복수심에 가득한 티아가 샤를로즈를 죽여 달라고 남자 주인공들에게 부탁하게 된다.

그리고 샤를로즈는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아, 데드 플래그는 피할 수 없나?

다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건가?

허무하게 이 게임에서 누군가에게 죽기 싫었다.

그렇다고 이 게임 속에서 잘 살아갈 방법은 도망밖에 없는 듯한 데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도망가 봐, 어차피 넌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어.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샤를로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지금 자신은 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

판단이 다시 흐려졌다.

‘차라리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게임이 끝나지 않을까? 실제로 샤를로즈가 죽고 난 후 게임은 수월하게 풀렸어. 죽기는 두렵지만 어쩔 수 없어. 이 몸은 내 몸이 아니잖아. 할 수 있어.’

샤를로즈는 얼른 서랍을 뒤져 꿈에서 봤던 수면제를 찾았다. 통 안에 담겨 있는 수많은 수면제를 입에 쑤셔 넣었다. 커헉, 소리가 났지만, 상관없이 목 안으로 넘겼다.

그리고 그 어두운 기억처럼 샤를로즈는 침대에 반듯하게 누웠다.

‘이러면 돌아가지 않을까? 퇴장도 여러 방면의 퇴장이 있다. 도망가는 것과 죽어 다시 내 세계로 가는 것.’

샤를로즈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선 헤어나오지 못할 꿈속에 빠졌다.

***

“허억.”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걸 느끼자 그녀는 어서 침대에서 벗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그 중세풍 방이 아닌 현대식 방이란 걸 깨닫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왔어.”

그래, 죽음이었구나.

죽으면 돌아오는 거였어.

김단은 제 스마트폰을 잠금 해체해 그 망할 피폐 역하렘 게임 <나를 놓아줘, 부탁이야> 의 앱을 켰다.

그리고서는 샤를로즈의 일러스트를 보았다.

어둡고 긴 흑백의 머리카락에 창백한 피부 그리고 금괴를 바른 듯 어둠이 살짝 낀 금색 눈동자. 작고 마른 체구.

자신이 조금 전 빙의했던 샤를로즈 레베크였다.

이렇게 다시 보니 기분이 뒤숭숭해졌다.

어째서 자신이 샤를로즈에 빙의를 했는지.

참 아이러니했다.

김단은 악몽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시 졸음이 몰려와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일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졸려?’

눈꺼풀이 서서히 닫혔다. 너무나도 무거워 아래로 향하는 눈꺼풀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어둠이 그녀를 덮쳤다.

***

유진은 생일 파티가 끝나자마자-제레미가 저택에 들어갔다고 보고했다-샤를로즈의 방 안을 주인의 허락 없이 멋대로 들어갔다. 화가 잔뜩 난 상태로 말이다.

‘샤를로즈, 너는 정말 어디까지 추락할 셈이지?’

침대에 바르게 누워 있는 샤를로즈를 본 유진이 이를 으득 갈았다.

태평하게 잠을 자?

티아의 생일 파티를 이렇게 망쳐 놓고서는?

유진은 샤를로즈에게 성큼 다가가 그녀를 깨우려고 했다.

“샤를로즈!! 일어나지 못해?”

고함을 치며 샤를로즈의 멱살을 쥐어 올렸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목이 힘없이 옆으로 떨어졌다. 유진의 보라색 눈이 살짝 떨렸다. 그녀의 코에 검지를 가져다 대니 거의 끊어질 것 같이 숨을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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