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유진은 샤를로즈를 향한 증오보다는 애증이 더 컸다. 싫지만, 그래도 봐야 하는 여동생. 저 말을 남기고 떠난 어머니를 향한 마지막 애도였다.
“공작님, 낯빛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괜찮으신가요?”
유진은 저도 모르게 좁혔던 미간을 다시 폈다. 그리고 살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리벨리아 영애. 오늘 파티를 즐겨 주신다면 제 마음이 참 기쁠 것 같습니다.”
유진의 상냥하고도 유혹적인 대답에 리벨리아 영애는 마른침을 삼켰다. 쿵쿵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거절해도 좋아. 멀리서 볼 수만 있다면.’
리벨리아 영애는 유진을 졸졸 쫓아다니던 영애 중 그를 짝사랑하는 기간이 제일 긴 영애였다. 오래될수록 그 미련은 가위로 확 잘라 버릴 수 없었다. 미련은 꼬리를 잡고 다시 사랑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수려한 외모에 어딘지 불만이 가득 차 보이는 유진은 수줍어하는 리벨리아 영애를 잠시 내려보며 웃다가 몸을 돌렸다.
이제 가식적인 대화는 끝이라는 듯.
유진은 리벨리아 영애와 다르게 미련 없이 등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다른 손님들을 맞이했다.
“파티를 즐겨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똑같은 말과 행동을 이 파티에 온 손님들 모두에게 보여 주며 어떻게든 망할 생일 파티를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티아, 탓하지 않을 테니 제발 돌아오렴.’
유진은 파티가 끝나는 내내 저를 향해 웃는 티아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떠나도, 왜 네가 떠나.
유진은 어금니에 힘을 주었다.
‘떠나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네가 떠난 거니, 티아.’
티아에 대한 생각을 하는데 문득 저를 향한 뜨거운 시선들이 주변에서 느껴졌다.
흉흉한 네 쌍의 눈빛이 오로지 유진을 향해 쏘아졌다.
그들은 ‘티아를 사랑하는 남자들’이었다. 그녀의 오라비가 된 입장에서 그들을 봤을 때는 아니꼬웠지만, 그들은 대륙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가문에 먹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나름대로 잘해 주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어서 이 사태를 설명해 보라는 듯 거만함과 화남이 섞여 있었다.
유진은 깊게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의 딱 벌어진 어깨가 크게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아마 샤를로즈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말해 봅니다.”
유진은 제 막내 여동생이 떠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오로지 티아를 무작정 괴롭혔던 샤를로즈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니, 샤를로즈의 탓을 할 수밖에.
그들은 유진의 탄식이 섞인 발언에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을 했다.
다들 샤를로즈가 티아를 내쫓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티아, 나 이거 갖고 싶어.]
[…안 돼. 나는 이거 하나뿐이야. 언니는 가진 게 많잖아…….]
[응? 내가 가진 게 뭐가 많아?]
샤를로즈의 싸한 금색 눈동자가 벌벌 떨고 있는 티아를 담고 있었다. 티아는 죽은 제 어미가 어릴 적 생일 선물로 준 루비가 박힌 목걸이를 어떻게든 숨기려고 노력했다.
[말해 봐. 내가 가진 게 뭐가 있어?]
샤를로즈의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는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든 것처럼 까칠했다.
[그, 그게….]
공작 부인의 눈동자를 쏙 빼닮은 티아의 푸른색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뭐라 대답하지? 도톰하고 붉게 오른 두 입술이 한기를 느낀 듯 벌벌 떨렸다.
[나는 가진 게 하나도 없어. 티아, 너는 가진 게 너무 많잖아. 이 언니에게 나눠 줄 수 없는 거니?]
샤를로즈는 티아의 멱살을 잡아 자신이 있는 방향으로 끌었다. 티아는 제 눈앞에 마주한 텅 빈 금색 눈동자는 이질적이고 무서웠다.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무서운 눈.
촘촘하고 길게 뻗은 까만색 눈꺼풀이 팔랑였다. 샤를로즈가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응? 나눠 줄 수 없어?]
티아는 울고 싶었다.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고작 작은 루비가 박힌 촌스러운 목걸이지만, 공작 부인의 온기가 남은 유일한 물건이었다. 그녀는 울지 않으려고 두 입술을 꽉 다물었다.
[티아. 너도 언니를 버릴 셈이니?]
공작 부인이 죽은 후로 샤를로즈는 모든 이에게 반항하듯 공작 부인이 남긴 물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마지막 유품이었다.
티아, 제 여동생이 손에 붙잡고 있는 저 촌스럽고 곧 끊어질 루비 목걸이가.
[…아, 아니. 아냐. 나는 언니를 버리지 않아.]
[그럼 그 목걸이를 내게 줘.]
[안 돼!]
[그렇게 그 목걸이가 좋으면 됐어.]
티아는 이 목걸이 많은 넘겨줄 수 없다는 듯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그러자 샤를로즈가 시시하다는 듯 제 여동생의 멱살을 잡은 손을 허무하게 놓았다.
[그 목걸이가 나보다 더 좋구나?]
입술을 비죽이며, 샤를로즈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언니, 그만해.]
[재미없구나. 티아.]
샤를로즈는 티아의 작은 반박을 무시한 채 몸을 돌렸다. 이제 용건은 끝났다는 듯.
[샤를로즈 언니!]
[…….]
티아는 제게서 몸을 돌린 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는 샤를로즈를 불렀다.
[샤를로즈 언니!]
대답이 없자 한 번 더 불러 보았다.
그리고 곧,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
저벅, 저벅.
샤를로즈는 어벙하게 있는 티아에게 일침을 날리며 발을 움직였다.
‘짜증 나네.’
샤를로즈는 발을 사뿐히 움직일 때마다 뒤에서-흐느끼는-역겹고도 메스꺼운 소리에 사나운 이를 내보였다.
어차피 그 형편 없는 루비 목걸이가 없어도 자신은 ‘진짜’가 될 수 없었다.
샤를로즈는 영혼이 지상에 떠난 듯, 허무한 마음을 붙잡고 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의사에게 몰래 처방받은 수면제를 한 움큼 손에 집어 입 안에 쑤셔 넣었다.
꿀꺽.
목구멍에 억지로 넣은 많은 수면제는 가볍게 샤를로즈의 몸속에 흡수됐다.
그래, 차라리 눈을 뜨지 말자.
샤를로즈는 기운 없는 제 몸을 침대에 눕히고 힘없이 눈을 감았다.
샤를로즈는 공작 부인이 없이 남은 생을 살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려 선택한 일이었다.
[아가, 나는 너만을 사랑한단다.]
샤를로즈는 어두운 꿈속에 잔잔히 들려오는 공작 부인의 애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에 입가를 끌어 올렸다.
‘저도 사랑해요. 어머니.’
샤를로즈는 단지 어머니의 사랑만을 원했을 뿐이었다.
***
“샤를로즈…….”
화원 구석에 몸을 숨긴 채 잠에 빠진 샤를로즈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깨진 유리 조각 같은 거지 같은 기억이, 게임 속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샤를로즈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
샤를로즈의 금안에 물기가 가득 올라 찼다.
투툭, 투툭.
한 번 눈을 깜빡이자 투명한 액체가 후드득 떨어졌다.
“…아.”
자신은 분명 진짜 샤를로즈가 아님에도 마음에 구멍이 뚫린 듯 서러움이 몰렸다. 왜, 왜?
소리라도 시원하게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샤를로즈는 그저 애정이 고팠던 순수하고도 예쁜 아이였다.
보육원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들을 기다렸을 샤를로즈의 어린 모습이 떠오르자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샤를로즈, 너는 참 안타깝구나.”
고작 게임 속에는 유일한 악역이라고, 플레이어들이 많은 욕을 했지.
게임 진행이 안 된다는 둥, 짜증이 난다는 둥,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던 플레이어들의 말이 머릿속에 뇌리에 박히듯 그냥 지나쳤던 리뷰들이 술술 들어왔다.
“너, 왜 울어?”
짜증과 우울함에 젖어 있던 샤를로즈는 머리 위에 들려오는 낮고도 경계가 자욱하게 깔린 목소리에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어두워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얼굴이 보여 샤를로즈는 숨을 삼켰다.
“내 뺨을 한 번 더 내어주면 너는 울지 않으려나?”
그의 은회색 눈동자가 번뜩였다.
샤를로즈는 손바닥을 바닥에 짚어 뒷걸음질 쳤다.
‘왜 네가 여기 있어?’
“왜 도망가? 저번처럼 크게 뺨 한 대 치면서 욕설이나 내뱉지. 너답지 않아. 샤를로즈.”
그는 한 발짝 다가가며 샤를로즈의 검은색 머리카락을 잡아 살짝 당겼다. 그러자 그녀의 상체가 앞으로 움직였다.
“응? 왜 울었어, 우리 샤를로즈. 티아는 어디다가 버리고 너 혼자 여기서 울고 있어. 대답해 봐.”
“…….”
“착하지, 샤를로즈. 아, 내 뺨이 그리웠구나. 자, 힘껏 때려. 그럼 네 입술이 열리겠지.”
악마 같은 미소를 드러내며 샤를로즈를 자극했다.
하지만 지금 샤를로즈는 ‘진짜’가 아니었다.
가짜.
게임 바깥의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 불같은 성격이 나올 리 없었다.
그저 그를 올려다보며 넋을 놓은 채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짜증이 섞인 탄식을 흘릴 뿐이었다.
그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려 샤를로즈를 향해 제 뺨을 들이밀었다.
“하나도 안 아프니 때려 봐. 그러면 티아가 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있지 않을까 싶네.”
나긋나긋하지만 어딘지 가시가 박힌 말투.
그의 눈빛은 얼핏 보면 다정해 보였지만, 그 속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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