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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2/120)

2화

“…….”

아무런 대답이 없자 하녀는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샤를로즈 아가씨는 제 마음에 들지 않은 식사를 가지고 오면 무조건 음식을 바닥에 내던졌지. 이번에도 그럴까 걱정되어 하녀의 고동색 눈동자가 초점을 잃어 갔다.

‘무서워, 무서워!’

긴 침묵이 오가자 샤를로즈가 손짓을 하며 대충 대답했다.

“가 봐.”

하녀는 얼른 고개를 들어 식사를 잘하라는 말과 함께 방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샤를로즈는 등받이에 등을 대고서는 팔짱을 껴 묽은 죽을 내려다보다가 한 숟갈 떠먹었다.

“……아무 맛도 나지 않네.”

샤를로즈는 이대로 굶어 죽고 싶지 않아 따뜻한 죽을 한 입 떠먹었다. 그러자 입 안에서 물로 부푼 쌀이 가득 찼다.

그렇게 조용한 식사 시간이 되는 줄 알았더니만,

쾅쾅!!

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는 누군가가 또 샤를로즈를 찾아왔다.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레베크 공작가의 둘째, 제레미 레베크였다. 그의 시린 벽안이 샤를로즈의 모습을 보자 이를 으득 갈고 있었다.

“네가 티아를 내쫓았다고 들었어. 맞아?”

샤를로즈는 그 물음에 없던 입맛이 뚝 떨어져 숟가락을 접시 안에 놓았다.

“내쫓은 적 없는데.”

샤를로즈의 뻔뻔한 대답에 제레미는 운 것인지 눈두덩이가 불그스름한 채로 그녀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탁.

샤를로즈의 테이블 위에 제레미의 커다란 오른손이 올라갔다.

제레미의 눈이 샤를로즈의 얼굴을 담고 있었다.

‘늘 똑같은 얼굴. 감정이란 게 존재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차가운 인상. 우리를 싫어하는 골칫덩어리.’

제레미는 책상 위에 올린 제 손을 둥글게 말아 쾅! 책상을 세게 쳐 내렸다.

꽤 큰 소음인데도 샤를로즈는 어깨 한 번 움찔하지 않고 가만히 원래의 자세를 유지했다.

‘뭐 하자는 거지? 협박이라도 할 셈인가?’

자세는 유지했지만, 샤를로즈의 흑색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티아를 그리 괴롭혔으니 티아가 도망간 건 당연한 거야. 그러니 네가 내쫓은 거지, 내 말이 틀려?”

“제레미 오라버니.”

제레미는 씩씩거리며 샤를로즈에게 말을 퍼부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조용히 그를 다그쳤다.

“이 사태는 그저 제가 사라지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러면 제게 겁먹은 티아도 다시 돌아올 테고, 가문에 따뜻한 평화가 찾아오겠죠.”

“무, 무슨 소리야. 네가 없어진다니?”

샤를로즈는 제레미의 주먹을 쥔 손에 제 손을 포개며 조곤조곤 대답했다.

“제레미 오라버니는 저를 싫어하잖아요.”

“……좋아하지는 않아.”

“저 역시 오라버니를 좋아하지 않아요.”

“…….”

“그럼 오라버니는 제가 이 가문에서 나가는 걸 도와줄 수 있나요?”

샤를로즈는 흥분한 제레미를 잘 조련하고 있었다. 사람은 흥분하면 이성의 끈을 놓으니 상대방에게 질질 끌려간다. 지금 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제 어여쁜 여동생이 도망가니 눈이 돌아가 버린 거다. 샤를로즈는 이 틈을 노렸다.

혼자 퇴장을 못 하니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나.

설령 그게 저를 싫어하는 둘째 오라비라도.

“…가문을 나간다고?”

“네.”

“너는 지금 티아가 도망간 시점에 그런 말이 나와?”

“어차피 티아를 사랑하는 남자들이 찾으러 가겠지요. 제가 굳이 찾을 필요는 없지 않나요?”

“나는 그놈들이 티아를 찾는 시늉을 하면 죽여 버릴지도 모르는 판에-”

“그러니깐 오라버니.”

“……왜.”

샤를로즈는 조금 짜증이 났는지 제레미의 말을 끊고 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제가 꺼져 줄 테니 잘살아 보라고요. 그러니 제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시면 알아서 잘 나가겠어요. 아까 유진 오라버니한테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을 땐 썩 좋은 대답을 듣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제레미 오라버니는 성품이 좋으시니 저를 도와주시겠죠?”

단순한 제레미는 샤를로즈의 갑작스러운 제 칭찬에 입술을 달싹였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막상 떠오르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내, 내가 왜? 그리고 너는 절대 이 가문에서 나갈 생각 하면 안 되지. 티아가 돌아올 때까지 넌 절대로 이 가문을 나갈 생각 하지 마.”

“어째서요?”

“어째서라니, 내일 티아의 생일 파티가 열릴 예정인데 티아가 사라졌어. 그러면 너라도 티아의 자리를 채워 줘야지.”

샤를로즈는 ‘생일 파티’에 대한 에피소드가 갑자기 떠올라 입술을 동글게 모아 침음을 흘렸다.

‘생일 파티는 그야말로 촌극에 가까웠지.’

샤를로즈는 여자 주인공이 사라져 대신 그 자리를 지켰다가 악역인 그녀를 향한 남주인공들의 정신적인 공격을 당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외면하는 샤를로즈의 유일한 가족인 두 명의 오라버니들.

샤를로즈는 쯧, 혀를 끌끌 차며 대답했다.

“내일 몸이 아플 예정이라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그럼 제레미 오라버니는 제가 티아의 대용품이 되라는 소리인가요? 어째서요? 저는 단지 죽은 어머니의 인형일 뿐이었어요.”

샤를로즈는 제레미의 손을 포갰던 제 손을 금방 떼고서는 의자에서 일어나 턱을 치켜세웠다. 그녀의 금색 눈동자에 생기란 보이지 않았다.

제레미는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 저를 보며 신경질을 내는 모습에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인형이 어떻게 사람이 돼요?”

“……샤를로즈.”

“유진 오라버니한테도 그리 전해 주세요. 저는 내일 티아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꼭 그렇게 전해 주세요. 제가 뺨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 생일 파티에는 가고 싶지 않아서요.”

샤를로즈의 눈에 잠시 독기가 서렸다가 사라졌다.

‘뺨을 후려치며 여자 주인공을 괴롭히는 꼴을 다 보여 줬는데, 내가 미쳤다고 여자 주인공을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들과 만날까? 그건 미친 행동이지. 그냥 내일 데려간다고 하더라도 어디 숨어 있어야겠어.’

샤를로즈는 제 정신 건강을 위해 내일 파티는 참석하지 않을 거라고 마음에 새겨 두며 제레미를 제 방에서 내쫓았다.

“할 말 없으면 좀 나가세요. 할 일 없어요?”

제레미는 멜로아 제국의 제1 기사 단장이었다. 할 일은 산더미지만 티아가 사라져 일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제레미는 제 등을 떠미는 샤를로즈의 두 손에 힘없이 그녀의 방에서 쫓겨나 버렸다.

샤를로즈의 질문에 딱히 할 만한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집 센 그녀를 꺾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을 알기에.

문이 닫히기 전, 제레미는 샤를로즈의 감정 없는 얼굴을 잠시 응시하다가 문이 닫히자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빌어먹을, 왜 어머니는 저런 이상한 것을 입양해서.’

제레미는 유진보다 더 밝은 은발을 제 손으로 마구잡이로 헝클리며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저택에 나섰다.

샤를로즈는 저택에서 나가는 제레미의 뒷모습을 창문을 통해 보다가 제 적이 사라졌다는 긴장감에 자리에 주저앉았다.

‘왜 하필이면 샤를로즈에 빙의했냐고.’

샤를로즈는 울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물샘이 막히기라도 한 듯 닭똥 같은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그 희대의 악역 샤를로즈에 빙의한 것도 모자라 다음 날엔 도망간 여주인공의 생일 파티가 있다니.

아, 이런.

샤를로즈는 욕지거리가 튀어 나올법한 걸 꾹 참았다.

‘이 저택에 아무도 모를 방이라든지, 숨을 곳은 없나? 분명 이른 아침부터 하녀들이 들이닥치겠지. 야반도주하기에는 보초병을 뚫고 지나갈 자신이 없고, 개구멍이라도 파서 나가고 싶다.’

잠시만, 샤를로즈가 여자 주인공이 도망가기 전에 죽게 된다면?

금색 눈동자가 번뜩 떠졌다.

자신이 사실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가끔가다 현실과도 같은 꿈을 꾼 적이 있지 않은가.

샤를로즈는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침대의 기둥을 잡았다.

“내가 죽으면…? 나는 다시 돌아가려나?”

죽는 건 두렵지만, 여자 주인공이 다시 돌아와도 죽음은 예정되어 있다.

어떤 루트를 가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게 악역의 엔딩이었기에.

***

레베크 공작저는 티아의 행방불명에 한바탕 난리가 났지만, 세상이 어두워지자 잠잠해졌다.

아까와는 달리 침착해 보이는 샤를로즈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내일 있을 티아의 생일 파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생일 파티에 가면 나만 손해고, 욕만 얻어먹고 오겠지. 혹시 때리려나?’

샤를로즈의 건조한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아직도 제가 그 ‘샤를로즈 레베크’가 된 것에 대해 인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자신은 고작 잠이 들었던 것뿐이었다. 무엇보다 이 게임 속 악역에 빙의하는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거늘.

쯧.

샤를로즈는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는 별빛들을 바라보며 암울한 샤를로즈의 인생을 홀로 다독였다.

고작 공작 부인의 인형이었던 샤를로즈가 대체 이 게임 속에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여자 주인공은 도망가 버린 상황에 모든 이가 싫어하는 악역, 샤를로즈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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