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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물의 하녀로 살아가기-151화 (151/156)

외전 4화.

“저번에는 잘 구웠는데….”

알렉산더는 다 타버린 마시멜로… 였던 잿더미를 바라보며 허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자신만만하더니, 마시멜로 굽는 것에 아직 익숙지 않은 듯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옆에서 레오나가 알렉산더의 편을 들어주었다. 블루 드래곤이라는 체면도 있는 만큼, 그의 자존심을 챙겨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는 제가 해보겠습니다.”

레오나는 마시멜로를 용감히 불에 가져다 댔다.

거리감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모양새에 결국 마시멜로는 다시 장작이 되어 불에 화륵 타올랐다.

레오나는 심각한 얼굴로 다 타버린 마시멜로의 형태를 응시했다. 그리고 레오나를 보는 알렉산더의 얼굴은 환해졌다.

“봐! 나만 그런 거 아니다? 그치? 그치?”

그는 자신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뻐했다. 레오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런 듯합니다.”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알버트는 나뭇가지를 들고 불과 마시멜로 사이에 적당한 거리감을 주었다.

새하얀 마시멜로의 겉면이 조금씩 그을리기 시작했다.

알버트는 침착하게 거리를 유지하면서 계속 마시멜로를 구웠다.

그리고 그는 모든 면이 적당히 구워진 완벽한 마시멜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말도 안 돼.”

“먹어보거라.”

얼빠진 알렉산더를 뒤로하고 알버트는 내게 마시멜로를 건넸다.

나는 환히 웃으며 그가 구운 마시멜로를 입에 앙 물었다.

굽기 전 말랑한 식감과 다른 쫀득함과 달달함이 입 안에 가득 퍼졌다.

으음, 너무 맛있어! 밖에서 먹는 거라 그런지 식욕이 엄청 돌았다.

“저도 구워줄게요.”

알버트에게 다짐하듯 말한 나는 나뭇가지를 들고 용감히 모닥불 앞에 섰다.

알렉산더와 레오나의 참사를 기억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나는 한쪽이 다소 타긴 했지만 나름 그럴듯하게 마시멜로 굽기에 성공했다.

“나도!”

알버트가 한 것을 보고 눈을 반짝이던 슈버트가 용감히 앞으로 나섰다.

그는 암살자다운 섬세한 손길로 마시멜로 굽기에 완벽히 성공했다.

“황제 폐하, 제 음식을 받아….”

“나는 정인의 것이면 충분할 듯하구나. 네가 먹거라, 슈버트.”

알버트는 단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양했다.

슈버트가 시무룩해지는 것을 보며 메르시는 그의 손에 있던 나뭇가지를 휙 채어갔다.

“어? 네가 왜 가져가?”

“넌 안 먹을 것 같고. 미리 구워놓은 거 내가 먹어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틀린 말은 아닌데… 말투가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원래 이런 말투거든?”

슈버트와 메르시가 아웅다웅하기 시작했다. 하양이는 불과 완벽한 거리를 유지하며 마시멜로를 굽고 있었다.

다만 그 거리가 너무 멀어서 마시멜로 색이 변하는 속도가 답답할 정도로 느렸다.

내가 대신 구워줄까 싶기도 했지만, 하양이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꽤 오래 걸렸지만, 하양이는 마시멜로를 완벽히 굽는 데 성공했다.

자랑스러운 얼굴로 자신이 구운 마시멜로를 자랑하는 하양이를 원망스레 바라보던 알렉산더는 자신의 나뭇가지에 다시 마시멜로를 꼽았다.

“나 다시 구울 거야!”

그렇게 우리는 두어 번 정도 더 마시멜로를 구웠고, 알렉산더는 두 번의 연습 후에야 마시멜로를 제대로 굽는 데 성공했다.

의기양양한 얼굴이 재롱잔치 나온 유치원생 같았다.

“잘했지!”

“멋져요, 알렉산더!”

와아아! 나는 알렉산더가 원하는 대로 크게 호응하며 반응했다.

다른 이들은 알렉산더를 보며, 이게 진정 그 대단한 블루 드래곤인가… 같은 애잔한 눈빛을 하다 함께 손뼉을 쳐주었다.

그와 동시에, 꼬르륵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

“…….”

마시멜로를 먹긴 했지만 이것이 완벽한 식사는 될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녁은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알버트가 내 손을 잡았다.

“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 가만히 있거라.”

“하지만 전 먹고 싶은 음식이 따로 있는데요.”

이곳의 음식이 맛없다는 건 아니지만 내 요리 철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고기도 좋지만 이렇게 밖에 나오면 수제비가 또 얼마나 당기는지 모른다.

리암의 성에서 해 먹은 해물 수제비 생각도 났다.

밀가루는 없지만 그건 텔레포트해서 따로 마련해 오면 될 일이고….

머릿속에 따듯한 국물의 이미지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역시 한국인은 국물 없이는 살 수 없다.

따듯한 국물을 마실 때 시원하다고 외치는 건 덤이다.

“알버트, 제가 저번처럼 맛있는 수제비를….”

남이 해주면 더 맛있겠지만 우선 이곳에 내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할 사람은 없어 보이니 자급자족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제 좀 있으면 도착할 텐데….”

알버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터 옆쪽 나뭇가지를 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늘 속에서 낯익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계셨군요.”

오랜만에 보는 흑발의 주인공은 알버트의 최측근 리암이었다.

예전보다 한층 밝아진 얼굴은, 차가운 북부 대공이라는 이미지보다 따사로운 남부 제독이란 이미지가) 더 어울렸다.

알버트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는 모습에서 예전 같은 무뚝뚝함은 보기 어려웠다.

햇빛과 녹음이 어우러진 숲을 떠올리게 하는 화사한 모습이었다.

“…예전과는 정말 다르네요.”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말에 알버트가 피식 웃었다.

“다시 살게 되는 보람이 있더구나. 내가 아끼는 이들의 삶이 바뀌고, 그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니까 ‘행복해지고 오라’는 네 말이 무언지 알 것 같기도 했고.”

더 이상 리암, 슈버트와 메르시는 알버트를 향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들을 이어주는 건 알버트가 가진 주군으로서의 자질이었다.

우리가 함께 만든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말해줘 다행이다.

지금 삶의 당신도 예전보다는 편안해 보이는 것 같아서 좋다.

나는 알버트의 손을 꼭 만지작거렸다. 알버트 앞에 다가선 리암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황후 전하. 저는 리암 메이슨 공작입니다.”

“반가워요.”

나를 향한 정중한 인사에는 아무런 반감도 섞여 있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모습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했다.

리암의 뒤를 따라온 마차에서 짐이 차례차례 내려왔다. 이와 함께 마차의 문이 열렸다.

“말씀하신 대로 데리고 왔습니다.”

리암은 여기까지 혼자 온 것이 아니었다. 마차 문이 열리며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야영에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바로 서이나였다.

***

리암이 타고 온 마차는 거의 식재료만 가득 차 있었다.

처음에 왜 안 챙기나 싶었더니, 이게 모두 후발 주자인 리암의 몫이었는가 보다.

지금 막 도축한 듯한 싱싱한 고기를 비롯해 한국의 전통 식재료와 해산물, 그리고 밀가루와 물, 간이 테이블을 만들 수 있는 도구까지 그득했다.

마치 서이나의 요리 교실을 보러 온 듯한 기분이랄까.

“그럼 준비를 시작하겠습니다.”

“내가 돕지.”

서이나와 리암은 익숙한 일인 듯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요리 준비를 시작했다.

…뭐지, 이 생각지도 못했던 조합은? 이 광경이 더 신기한 건, 두 사람의 관계가 이성적인 느낌이 아니라 요리사와 보조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었다.

“둘이서 오늘 처음 만난 거 아니에요?”

“네가 없는 시간 동안 리암이 그녀를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었단다.”

“왜 황궁 요리사로 들이지 않으시고요.”

“나는 네 음식이 더 좋으니까.”

알버트의 말에 나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이게 5성급 요리사의 요리를 먹고 나서 아내한테 당신 요리가 더 맛있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은 거 아냐?

그런 요리에 비교해 주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내 편을 들어주기까지.

내 자존감 올라가는 데 알버트가 한몫 크게 했다.

내가 요리를 자주 하지는 못해도, 알버트가 원할 때는 해줘야지.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 자체가 뿌듯했다.

어느새 서이나는 요리를 시작하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내밀고 재료를 살피자 그녀가 칼을 들고서 미소 지었다.

“야외에서는 역시 고기하고 국물이죠.”

고기는 빠질 수 없고, 국물은 밖에 있을 때 더 맛있으니까요. 이야기하는 서이나의 눈이 열정으로 불탔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들으니 그녀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다시 만나게 될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알버트가 먼저 데리고 왔을 줄은 몰랐다.

이윽고 서이나는 우리 앞에서 마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보다 요리 잘하는 사람은 다 신기하니까 마술이다.

어느새 조용해진 슈버트와 메르시, 알렉산더와 하양이까지 모두 그녀의 요리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우선 국물과 반죽을 마쳐놓고 고기를 굽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좋아아….”

하양이의 말에 우리는 모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우선 국물을 내고….”

숭덩숭덩 채소를 썰어 넣자 냄비 안은 뽀얀 국물로 가득 찼다.

“칼국수가 좋으세요, 수제비가 좋으세요?”

그녀가 날 보며 묻자 나는 비장하게 답했다.

“칼제비죠.”

답은 양쪽 다지! 내 말에 서이나는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냄비에 육수용 채소를 더 열심히 넣었다.

채소를 다 넣은 서이나가 나를 보며 덧붙였다.

“국물은 칼칼한 것이 어떠신가요?”

“배우신 분….”

“그럼 김치와 고춧가루도 팍팍 넣을게요.”

내 감탄사에 서이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밀가루로 반죽을 시작했다.

내가 다른 차원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퍼진 상태였고, 이로 인해 서이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는 듯 보였다.

“저도 도울게요.”

“예? 괜찮습니다. 황후 전하신데….”

“저도 차원이동을 한 사람이라서 이런 신분제는 좀 약하거든요. 서이나 씨도 그렇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이곳 사람들이었다면 신분제에 맞는 기품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을 터지만 서이나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게다가 이번 삶에서는 그녀와 좀 더 제대로 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고.

나는 서이나 옆에 팔을 걷고 나섰다.

알버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나는 꿋꿋이 밀가루 반죽을 도우며 윙크했다.

“당신한테 나중에 해주려면 배워야죠.”

“…할 말이 없구나. 이렇게 만드는 것도 재주야.”

“한두 번 당해주시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고기 굽는 것을 돕도록 하지.”

우리의 대화를 뒤에서 묵묵히 듣던 리암이 덧붙였다.

서이나와 몇 번 만났다더니 그녀의 요리를 돕는 일에 익숙해진 듯 보였다.

그는 미리 준비된 쇠꼬챙이에 고기와 채소를 차례대로 꽂았다.

“역시 공작님은 먹는 일에 진심이라니까. 나도 같이 할게.”

“모두 하신다니 저도 돕겠습니다.”

슈버트의 말에 레오나까지 나서서 함께 음식 준비를 시작했다.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알렉산더도 헛기침을 했다.

“이건 좀 쉬워 보이네….”

“내가 이건 너보다 더 잘할 것 같다아….”

“너 지금 내기하자는 거냐!”

하양이의 말에 알렉산더가 다시 길길이 날뛰었다.

“그럼 모닥불을 몇 개 더 만들어볼까요?”

메르시는 요리에 참여하는 인원이 점점 많아지자 지팡이를 이용해 모닥불을 두 군데 더 만들었다.

장작 타들어가는 소리가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에 더불어 하모니를 이루었다.

무수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 우리는 최고의 저녁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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