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감금물의 하녀로 살아가기-150화 (150/156)

외전 3화.

결론적으로 나는 레오나와 메르시 둘 모두와 마차에 타지 못했다.

레오나는 호위가 어떻게 황후와 같은 마차 안에 들어갈 수 있느냐 단호히 말하며 마부 옆에 앉았기 때문이다.

높디높은 귀족이자, 이글 기사단의 단장인 레오나가 옆에 앉자 마부는 울상을 지었다.

알버트가 넌지시 던지는 말에도 레오나의 뜻은 확고했고, 결국 마차에는 나와 메르시만 탔다.

하양이도 같이 타겠다 칭얼거렸지만 알버트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어차피 바닷가 가면 같이 놀 것 아니냐며 하양이의 옷깃을 잡아끈 알버트는 알렉산더, 슈버트와 함께 마차에 올라섰다.

덩치 큰 남자들을 네 명이나 태운 마차의 뒷모습이 복작복작해 보였다.

보통 마차 세 대를 가져다 놓은 것처럼 길고 큰 마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신기했던 건, 혼자 탈 것 같았던 알버트가 하양이나 알렉산더, 슈버트까지 모두 데리고 탔다는 거였다.

따로 마차를 준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는 혼자 가는 것을 심심해하는 하양이와 은근히 사람들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알렉산더, 그리고 여전히 알버트를 열심히 따르는 슈버트를 배려한 것일 터였다.

그도 나 아닌 누군가를 챙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게 새삼스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과거가 바뀌면서 슈버트도 바뀌지 않을까 싶었는데.’

알버트를 향한 그의 충성심은 여전해 보였다 아니, 오히려 알버트를 더 우러러보는 것 같기도 했다.

슈버트를 구해줬으니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문득 리암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레오나도 예전과 비슷하고, 슈버트도 여전한데 과연 그는 어떨까.

알버트가 이전보다 빠르게 왕위에 오르면서, 메이슨 공작은 백기를 들었고 리암과의 교류가 예전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 들었다.

“황후 전하, 혹 염려하시는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메르시의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니에요, 메르시. 다른 생각 해서 미안해요.”

“예? 아니요, 제게 미안하실 필요는….”

내 말에 말을 잇던 메르시의 시선이 묘해졌다. 가늘어지는 눈매 사이로 보이는 얼굴이 사뭇 낯설었다.

내 앞에서 저렇게 생각에 잠겨 있었던 적은 없어서.

이윽고 나를 마주한 메르시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내 말에 메르시가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들릴세라 조그맣게 속삭였다.

“대체 폐하를 어떻게 공략하신 거예요?”

“…….”

“아니, 공략은 단어 선택이 좀 그런 것 같고…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하신 거예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메르시를 응시하던 내 입에서 푸흡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런 걸 묻는 모습이 무례하기보다는 그녀답게 느껴졌다. 처음 보았을 때 모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가 마음에 든다 했었지. 나를 보는 눈빛에서 왠지 모를 선망이 느껴졌다.

내가 드래곤의 계약자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게 궁금한 이유라도 있어요, 메르시? 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든가.”

“네? 그럴 리가요!”

메르시가 펄쩍 뛰었다. 내 말이 정곡을 찌른 모양이었다. 가만 보자, 그녀 주변에 좋아할 만한 사람이….

메르시 주변에 있는 사람 중 그녀가 제대로 교류하던 사람은 특정될 만큼 적었다.

리암은 메르시와 전혀 안 어울리고 그럼 남는 사람은-

“슈버트군요.”

“티 나나요.”

내 말에 메르시가 수긍하며 시무룩한 얼굴로 물었다.

이런 모습을 보니, 메르시가 정말 그 나이대 소녀라는 게 느껴져서 오히려 귀여웠다.

예전의 삶에서는 알버트와 겪었던 연회 트라우마와 비롯해, 바쁜 알버트 뒤를 따라다니느라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볼 시간도 없었을 것 같아서 짠하기도 했다.

“아뇨, 그냥. 제가 촉이 좋아서 물어본 거예요. 그런데 언제부터요?”

“그게, 사실은….”

내 말에 술술 불려던 메르시가 갑자기 입을 합 다물었다.

그녀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살짝 흐릿해진 눈동자는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보였다.

“이상하지요. 분명 황후 전하를 뵙는 건 오늘이 처음인데….”

메르시가 작게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익숙한지 모르겠어요.”

“…….”

“무슨 이야기를 하든 들어주실 것 같고.”

메르시의 무의식은 나를 조금이나마 기억하는 것 같아 울컥했다.

그녀와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언니, 라고 불러주는 호칭이 좋았었다.

“그럼 제게 무슨 이야기든 해주겠어요, 메르시? 나는 아직 메르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네요.”

알버트에게서 메르시가 일찌감치 마탑주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들었지만, 그 밖의 상식은 전혀 없었다.

알버트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말을 아끼기도 했었고, 메르시의 사생활에 대해 너무 묻는 건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은 메르시의 이야기를 듣기에 안성맞춤인 시간이었다.

나를 보던 메르시가 머쓱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좀 위로받았어서.”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만행이 밝혀지고 난 후, 메르시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알버트의 명에 따라 이루어지는 마탑주 선발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해낼 수 없었다.

그만큼 메르시에게는 자격이 있었다. 마탑주에 오를 만큼의 재능과 실력이.

하지만 메르시는 벨페트의 본성을 깨달은 이후 충격에 빠져 방 안에 처박혔다.

그녀는 존경하던 아버지가 실은 주변의 아이들을 귀족들에게 팔고 있었다는 데 실망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같은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더 절망했다.

처음 메르시가 이를 쉬이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알버트는 그녀를 혼자 두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몰아치는 반대 세력들과 더불어 새로운 마탑주를 뽑아야 한다는 항소가 계속되자 결국 메르시에게 지원군을 보냈다.

“진짜… 폐하만 보는 놈인 거 아는데 좋은 걸 어떡해요.”

그게 바로 슈버트였다.

슈버트는 메르시가 마탑주의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게 도우라는 알버트의 명을 제대로 받들기 위하여 노력했고, 방 안에 처박힌 메르시와 마주하는 데 성공했다.

“야, 부모 없어도 잘 살 수 있어. 나도 그런데, 뭐.”

부모에게 배신당한 경험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메르시에게, 이런 일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슈버트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가 살아온 삶을 들으면서 더욱.

그녀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지만, 아직도 삶이 살 가치가 있다는 사람을 보는 건 생경했다.

“살다 보면, 계속 살고 싶은 이유가 생기더라고.”

슈버트는 많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고 그만큼 서툴렀다. 하지만 그의 진심은 메르시에게 전달되었다.

헛소리를 지껄이며 마탑의 재산을 축내는 마법사들을 정리해 준 것은 덤이었다. 그의 본업은 암살이었다.

“슈버트 덕에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는걸요.”

결국 슈버트와 함께 메르시는 감옥에 갇힌 벨페트를 찾아가고 모든 감정을 정리한 후, 그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

메르시가 가장 힘들 때,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내가 보기에도 메르시가 슈버트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나는 예전 삶에서 둘이 티격태격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사귀냐고 물어봤을 때는 아니라면서 펄쩍 뛰었었는데. 둘의 관계가 이제야 변하게 된 걸까?

…확실히 메르시는 이전과 비슷한 듯해도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나를 대하는 태도나, 빨개지는 얼굴이 그랬다. 호탕한 듯 보이는 모습은 여전하지만, 감정에 좀 더 솔직했다.

알버트의 행동이, 메르시가 겪어야 했던 트라우마를 없애주면서 그녀의 삶이 평탄해질 수 있게 도와준 게 아닌가 싶다.

슈버트도 메르시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너무 오랜 시간 알버트만 바라보고 동경하기 바쁘다 보니 감정을 자각하지 못했을 뿐.

슈버트가 그만큼 가까이 지내는 사람도 없어 보였고.

그리고 애초에 슈버트가 메르시를 사랑하고 있다 해도 그게 사랑이라는 걸 자각할지가 문제다.

사랑에는 여러 면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고민하던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충고는 하나였다.

“저는 그냥 제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줬어요.”

메르시가 굳이 달라질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달라지는 건 사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성과 다른 모습을 연기한다 해도 그것은 오래 계속되지 못하는 법이니까.

사랑에 빠질 거라면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사랑해 주는 사람과 빠지는 게 좋지 않나.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알버트의 모든 모습을 보고서도 그를 사랑했듯이, 메르시도 그녀의 모든 면을 사랑해 줄 사람과 사랑에 빠졌으면 좋겠다고.

“뭐, 메르시가 평소 모습을 보여줬는데 잡지 않으면 그 사람이 손해 보는 거예요. 알죠?”

세상에 좋은 사람은 많으니까.

내 말에 메르시가 결연한 얼굴을 했다.

“그렇죠? 날 좋아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그놈도 눈이 있다면….”

“…….”

“황후 전하,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뭔가 대답이 이상하긴 한데, 희망에 찬 것 같아 다행이었다.

***

첫날 저녁, 우리는 야영을 하게 되었다. 멈춘 곳은 특별히 준비해 둔 숲의 공터였다.

텐트를 치고 가운데 모닥불 피울 곳을 준비했다.

주위에 친 막사는 전쟁에 쓸 법한 크기였는데, 그게 또 공터에 비해 작아서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역시 알버트의 준비력이란….

처음 직접 나뭇가지를 비벼 불을 내려던 나는 장렬히 실패한 후 마법을 썼다.

잠시 후, 모닥불이 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밤하늘에 내려앉은 어둠에 유일하게 빛나는 불이 예뻤다.

우리는 모두 모닥불 주위에 앉았다.

알렉산더만이 하양이 뒤에 홀로 서 있었는데, 그 주위에서 뭔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내가 이번에 야영도 한다고 해서 특별히 이걸 챙겨왔지.”

알렉산더가 잔뜩 으스대더니 자신의 품 안에서 짠! 하며 봉지를 꺼내 들었다. 뭐지, 싶었는데….

“마시멜로라는거다, 이게!”

새하얗고 보송보송한 마시멜로가 가득 든 봉투였다.

“내가 이걸 얼마나 잘 굽는데.”

그는 미리 가져온 나뭇가지에 마시멜로를 하나씩 꽂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마시멜로 굽기 대회의 시작이었다.

“…그렇구나아.”

마시멜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양이를 필두로, 이걸로 알버트에게 더 잘 보여야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슈버트, 그 옆에서 한숨을 내쉬는 메르시까지 마시멜로가 전달되었다.

알렉산더가 제일 먼저 뽐내며 불 안에 마시멜로를 집어넣었다.

“자, 봐!”

그리고 마시멜로는 불과 함께 화르륵 타들어갔다.

“…….”

그와 함께 알렉산더의 얼굴도 불이 붙듯 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우리를 보며 눈을 깜빡이다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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