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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물의 하녀로 살아가기-128화 (128/156)

128화.

“진짜 맛있다….”

김치찜 국물에 푹 고아진 부들부들한 고기를 먹으며 정인이 행복한 얼굴을 했다.

쉴 새 없이 포크를 놀리는 모습이 음식이 정말 마음에 든 모양새였다.

‘미리 데리고 온 보람이 있군.’

서이나를 데리고 온 지는 꽤 되었다.

정인이 해주던 음식과 비슷한 종류의 음식을 하는 요리사에 대해서는 이미 리암을 통해 소식을 전해 들은 바 있었다.

정인을 찾을 거라는 확신, 혹은 광기는 그의 마음속에 언제나 자리 잡고 있었다.

해서 알버트는 정인이 돌아왔을 때를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함께할 황궁의 크기를 키웠고 그녀가 원하던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명석한 이들은 모두 정인의 영지로 보내 수익을 극대화했다. 모든 수익은 그녀의 소유로 들어갔다.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살 수 있도록.

‘…여행은 안 될 말이지만.’

하양이와의 여행을 용납할 수 없는 건 아직 마찬가지였다.

눈을 가늘게 뜬 알버트는 제 옆에서 조잘거리는 정인 앞에 고기를 더 놓아주었다.

“많이 먹거라. 넌 몸이 너무 약해.”

체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그렇게 먼저 잠들어 버리면 자신은 어쩌라는 건지. 남은 욕망을 푸는 건 항상 남은 숙제였다.

입을 일자로 다문 채 그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정인은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속뜻을 바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눈치가 빠른 점은 그가 사랑하는 정인의 장점 중 하나였다. 따로 말하지 않아도 제 속내를 알아채니까.

“같이 먹어야죠.”

정인이 그의 접시 위에도 고기를 내려놓았다.

네가 주는 것이면 독이라도 먹을 터인데. 속으로 실없는 생각을 한 알버트는 포크를 들었다.

매콤한 양념이 밴 고기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예전에 정인이 했던 음식보다 덜 매워서 먹기는 더 편했다.

‘이런 식사는 오랜만이군.’

정인이 없는 동안 먹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 같은 식사는 그에게도 오랜만이었다. 매콤한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서이나를 궁에 들여놓고 잘 대해주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녀를 만난 적이나 그녀의 음식을 먹은 적은 없었으니까.

식사는 나름 화목하게 이어졌다.

정인은 자신이 정말 드래곤의 계약자가 된 건지 궁금해하는 메르시의 말에 답해주고 있었다.

“그럼 언니는 제가 그릴 수 없는 마법진도 알고 있겠네요….”

메르시는 정인의 마력에 순수히 감탄했다. 그녀가 겪었을 시련을 알기에 시기는 없었다.

메르시는 정인 앞이라 풀어졌는지 그동안 알버트를 돕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며 우는 시늉을 했다.

오랜만에 만난 메르시와 말이 길어졌다.

음식은 맛이 있었지만, 없었다. 정인이 한 것도 아니었을뿐더러 다른 이에게 신경 쓰는 정인을 보니 입맛이 떨어졌다.

배가 적당히 찬 것을 깨달은 알버트는 포크를 내려놓고 턱을 괴었다.

‘아, 싫은데.’

그가 아닌 다른 사람과 너무 오래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지금 당장 모든 이들을 물리고 싶다는 욕망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머릿속은 주위의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정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유로 댈 만한 게 뭐가 있지.

밖에 일어나는 일을 찬찬히 정리하던 알버트는 정인이 제 어깨를 쿡쿡 찌르는 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무어냐.”

제 연인은 작은 움직임 하나도 사랑스러웠다.

“알버트, 리암이나 슈버트와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떨까요?”

“이야기라면 매일 서류로도 나누고 있고, 안 본 지 1년 가까이 된 것도 아닌데. 왜, 뭔가 필요해 보이니?”

정인이 왜 저 이야기를 꺼냈는지 잘 안다. 식사를 하면서 그는 주위 신하들과 말을 섞기는커녕 정인만을 바라보았다.

줄곧 고정된 눈은 움직일 줄 몰랐다. 정인 자신도 눈빛을 느꼈을 건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알버트는 부러 눈치를 없애는 쪽을 택했다.

난처한 얼굴을 하던 정인이 작게 소곤거렸다.

“모두 알버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당신이 저만 쳐다보니까 절 보고 있거든요. 시선이 좀 따가워요.”

이야기를 나누느라 고개를 살짝 이쪽으로 돌렸더니 정인의 머리카락이 이마 앞으로 흘러내렸다.

알버트는 정인의 이마 앞으로 내려온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중얼거렸다.

“그건 좀 곤란하구나.”

“그렇죠? 그러니 시선을-”

알버트는 눈을 곱게 휘며 말했다.

“너는 나만 볼 수 있어야 하는데.”

화들짝 놀란 정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에 이렇게 반응해 주면, 더 건드리고 싶어진다는 건 알까.

알버트는 다른 이들의 경악한 얼굴을 보며 눈을 되려 더 크게 떴다.

“왜 내가 못 할 말이라도 한 것 같은 표정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잠시 뜸을 들인 알버트는 그들이 납득하고도 남을 만한 이유를 댔다.

“예전보다야 낫지 않은가 싶은데.”

악몽이라도 꾼 것처럼 메르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가 잽싸게 입을 열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폐하.”

“마찬가지입니다!”

슈버트도 재빠르게 대답한 후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리암도 잠시 놀란 얼굴로 바라보기만 할 뿐, 알버트의 행동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오히려 그의 말을 수긍했다. 아까 전 탑에서 나왔을 때 정인의 존재를 인정했던 것처럼.

그들 모두 주위 나라를 정복하기 바쁘던 미친놈보다야 사랑에 빠진 황제가 낫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탑에 있었지만 알버트가 일을 완전히 놓아버린 것은 아니었다.

재빠르게 메르시에게 자신의 행방을 이야기한 알버트는 정인을 하루 종일 괴롭힌 후 그녀가 잠든 시간에 일을 했다.

그녀가 살 나라를 망하게 할 수는 없지 않나.

계약서를 쓸 때 적었던 조건들을 생각해 보면 정인도 물욕이 있는 편이다. 권력과 지위가 있으면 채워줄 수 있는 것 아닌가.

“다 먹었으면 슬슬 일어나자꾸나.”

알버트는 정인의 그릇이 빈 것을 보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직 네게 황궁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지 않으냐.”

정인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손을 잡았다.

그녀가 손을 잡을 때까지 그가 계속 손을 내밀고 있을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인의 손을 잡고 그녀를 제 품으로 끌어당긴 알버트는 아직 식탁에 앉아 있는 신하들에게 짧은 인사를 건넸다.

“그럼 이따 보지.”

주위에 붙는 시종들은 알버트가 이미 물린 지 오래였다.

알버트는 그녀의 손을 잡고 걸었다. 주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보라 명하고 싶은 걸 참아야 했다. 제 옆에 있는 자에게 시선조차 주지 말라고.

모든 이들이 제 속내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낫다.

주군이고 황제라고 사람들 앞에서 공명정대한 모습만 보일 이유가 없다.

제 감정을 다 표현하기에도 바쁜데, 정인이 곁에 있을 때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일 따윈 하고 싶지 않다. 모든 게 불필요하다.

너는 내 것이라는 것을, 세상 모두가 알아야 한다. 네 곁에 감히 다가올 생각은 하지도 못하도록.

“앞으로 너와 내가 쓸 방이란다.”

“와….”

그들은 보수 공사가 끝난 본궁에서 가장 화려한 방으로 향했다. 안은 깨끗하지만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천장에 박힌 자잘한 보석과 샹들리에는 연회장에서나 볼 법한 것이었다.

방이 작은 건 아니었지만, 크지도 않았다. 의도한 부분이었다.

한시라도 자신의 시야에서 정인이 사라지는 건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

침대도 마찬가지였다. 황제와 황후가 쓸 것치고는 아담한 사이즈였다. 서로 붙지 않고서는 쓸 수 없도록 만든 것이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가구를 바꿔도 좋아. 벽 색깔도 마찬가지고.”

우선은 그의 취향에 맞춰놓았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일 뿐, 정인이 오면 그녀의 취향으로 모든 것을 맞출 작정이었다.

“아니요, 저도 마음에 들어요.”

“내 취향이 마음에 든다니 기쁘구나.”

“문제는 따로 있는 것 같은걸요.”

“문제?”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걸까. 이렇게 속삭일 정도로 심각한 건가.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정인이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아직 황후 자리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같은 방을 쓰는 건 구설수에 오를 수 있는 일이잖아요.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또 쓸데없는 걱정이다.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넌 왜 그리 다른 이들을 생각하니. 그 작은 머릿속에 나에 관한 것으로만 채우고도 모자란데.

하지만 이는 정인에게 풀 수 없는 분노였다. 입술을 지그시 다문 알버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네가 어디에 있든 매일 밤 함께하는 건 똑같을 터인데.”

정인이 흠칫했다. 그녀의 방도 찾지 말라 하면 한마디 해줄 작정이었는데, 표정이 생각보다 진지했다.

그녀는 그의 손목에 손을 얹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그래도 밖에 알버트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도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그녀도 함께 있는 것을 전제로 생각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 다른 이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정인이 귀여웠지만 이는 불필요한 걱정이다.

“그런 것에 상처받을 정도의 머저리는 아니란다.”

“…당신도 사람인데 어떻게 하나도 아프지 않을 수 있겠어요. 무뎌진 것뿐이지.”

알버트는 자신을 다독이는 정인을 보며 픽 웃었다.

주위 사람 누구도 자신이 그런 소문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정인은 자신을 약하게 보았다.

어릴 적 모습이 아직 뇌리에 박혀 있는 걸까.

알버트는 스스로가 어릴 적의 자신마저 질투하는 걸 느끼고 자조했다.

‘어렸을 적의 나도 지금 나에게 질투했으니 똑같은 건가.’

기억이 다 돌아온 지금에는 웃기지만… 어릴 적 그는 정인이 떠나려는 이유였던 자를 증오했다.

만일 죽일 수 있다면 죽이고 싶었다. 그래서라도 정인을 자신의 곁에 둘 수 있다면.

물론 정인이 그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 상상으로나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게 그 자신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알버트는 자신에 손등 위에 얹어진 정인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 생각해 보니 아픈 것 같구나.”

꾀병도 정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쓰일 수 있다면 가치가 있었다.

“위로가 좀 필요해.”

알버트는 정인의 손을 놓아주며 그녀를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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