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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물의 하녀로 살아가기-101화 (101/156)

101화.

“…현 마탑주를 건드려서 좋을 일이 없습니다, 스승님. 스승님의 현재 삶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어린 알버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만큼 에밋의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제 삶이 위험할 일은 없습니다. 여태 그를 건드리지 않은 이유는 굳이 그럴 이유가 없어서였지요.”

알버트의 말에 선선히 대꾸한 에밋이 하품을 하는 블래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밤이 늦었군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더 이상 말싸움을 하기 싫다는 것처럼, 에밋이 방을 나섰다.

알버트는 입을 뻐끔거리다 후 숨을 내쉬었다. 어린아이치고 꽤 깊은 한숨이었다.

“아니, 왜 스승님은 항상 어린애같이 행동하시는 거지?”

“…….”

“나이는 헛으로 드신 거야.”

투덜거리는 말이 묘하게 아이러니해서 웃겼다. 에밋의 나이를 떠올리니 더더욱.

알버트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 현 마탑주가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해졌다.

“…마탑주가 어떤 사람인데?”

“탐욕에 찌든 자. 예프넨 후작과 자주 어울리는 사람이야.”

끼리끼리라는 말이 있다. 예프넨 후작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성정도 그와 비슷할 것이다.

“왕과도 돈독한 사이라 권력으로는 무시할 수 없는 자야. 자칫 잘못하면 스승님께서 당하실 수도 있어.”

알버트는 에밋을 걱정하는 듯했다.

나는 알버트가 로스투라투의 군대를 휩쓸던 모습을 떠올렸다.

아직 초월자가 되지 못했던 미래의 알버트는 3만 명의 군사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키고 궁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초월자인 에밋은 더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상황을 생각하고 있으니, 알버트가 에밋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버트는 아는 것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좋은 상황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만약 그가 에밋의 실력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그를 걱정할 리 없었다.

“알버트, 네 스승님은 얼마나 대단하신 분이야?”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마법사 정도 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

알버트의 말에 나는 에밋이 알버트에게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을 말하기는 싫었던 걸까. 이게 알버트와 그를 갈라놓는 선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스승님과 무슨 대화를 한 거야?”

둘의 사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느닷없는 질문이 날아들었다. 고개를 든 나는 알버트의 눈에 스민 불안감을 눈치챘다.

“…떠나려는 건 아니지?”

아까 전 약속을 잡을 때 보이던 조급함도 다시 엿보였다.

지금 떠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알버트를 안심시키기 전에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스승님은 언제나 훌쩍 떠나시는 분이고 당신도 비슷한 분위기가 나니까.”

알버트가 한 말에는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나도, 에밋도 지금 시간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세월을 겪은 사람들이니까.

에밋은 아주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나는 미래를 겪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떠나려는 거야?”

다시 알버트가 불안하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너하고 약속했는데 어떻게 가. 그리고 떠나기 전에는 네게 말을 하고 갈 거야. 네가 놀라지 않도록.”

아니라는 말에 화색이 돌았던 얼굴은 내 말이 이어질수록 점차 그늘이 졌다.

그가 침을 꿀꺽 삼키더니 어두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럼 언젠가는 간다는 거네.”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언젠가는.”

다시 중얼거리듯 하는 말에 내 말문이 막혔다. 알버트가 고개를 툭 떨궜다. 그의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에밋의 말이 생각났다.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겁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알버트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처음 보았을 때의 음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생각이 바뀌었어. 내일 나가지 않을래. 스승님과 마법 연습을 해야겠거든.”

“그럼 내일 말고 모레 나갈까?”

“아니.”

“그럼 모레 말고 그다음 날?”

“아니.”

내게서 고개를 돌린 알버트는 모자를 벗고서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욕실 앞까지 알버트를 졸졸 따라갔다.

“언제 가고 싶은데?”

“나도 몰라. 묻지 마.”

알버트는 내게 차갑게 말하며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쾅 닫혔다.

***

알버트는 내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잠들었다. 마치 내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굴고 있었다.

뭐, 지금의 나는 이 시간대의 사람이 아니니 엄밀히 말하면 없는 사람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다음 날 아침, 그레텐이 아침을 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가져온 팔찌-이번에도 일을 도와주고 가져온 것이었다-도 외면한 알버트는 아침을 먹자마자 에밋의 방으로 갔다.

그레텐 모르는 곳이라면 은밀한 곳일 줄 알았는데 에밋은 바로 알버트 옆방을 차지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레텐은 에밋의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은 시간 동안 에밋은 방을 완전히 자신의 공간으로 바꾸어놓았다.

방은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모를 책과 종이들로 가득했다.

먼지는 없었지만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방은 깨끗하다고 보기에 무리가 있었다.

평소 많은 것에 무심한 에밋의 성격이 드러나는 듯했다.

둘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잠자코 알버트의 곁을 지켰다.

중간중간 알버트의 눈이 나를 향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면서 신경 쓰고 있었다.

나를 밀어내려는 것도 이해했다. 끝이 보이는 관계에 마음을 주는 것이 쉬운 건 아닐 것이다.

나와 미래의 알버트도 비슷한 상황이었으니까.

나도 그에게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알버트에게 항복하고 말았지.

알버트도 마찬가지일 것을, 나는 잘 알았다. 지금 행동에서도 나를 완전히 밀어내지 못하는 게 보였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려 주는 거겠지.

에밋과 오전 훈련을 마친 알버트가 방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그레텐이 호들갑을 떨며 그에게 편지를 건넸다.

“소백작님, 메이슨 공작 각하께서 이곳을 방문하고 싶다 연락 주셨어요.”

“…이곳에는 왜?”

알버트는 다소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레텐은 공작이 온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하고 있었지만, 이곳은 공작이 방문하기에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그야 소백작님을 뵙기 위해서지요! 소공작님이신 리암 님께서 대련을 하고 싶다 계속 말하셨던 모양이에요.”

과거에서는 처음 듣는 리암의 이야기였다. 알버트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만 알았었는데, 서로 대련도 했었구나.

물론 알버트가 이겼겠지만 리암이 알버트와 얼마나 대등하게 겨뤘을지 궁금했다.

알버트는 고민에 잠겨 있었다. 과연 이 방문을 승낙해야 할지, 거절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레텐은 알버트가 고민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물론 그냥 오시지는 않을 테지요.”

넌지시 말하는 그레텐의 손이 동그란 원을 그렸다. 돈을 말하는 것이었다.

알버트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레텐이 이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이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알버트가 이곳에 내려올 수 있었던 이유조차도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으니, 알 만했다.

알버트의 시선이 주위를 훑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나를 찾고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이미 알버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창문 밖으로 몸을 피한 후였다.

돈 앞에 자존심 굽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은 나도 잘 알았다. 더군다나 알버트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내가 없다는 사실에 안심한 듯, 알버트의 눈매가 살짝 느슨해졌다. 그가 그레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텐은 신나서 밖에 나갔다. 오늘은 더 좋은 고기를 사와야겠다는 얼굴은 들떠 있었다.

공작이 알버트에게 좋은 인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로써 나는 어린 시절 슈버트에 이어 리암의 모습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게 우연일까? 아니면 시련의 일부일까.

나는 문득 생각에 잠겼다.

내가 알버트를 만나게 된 시기가 너무 공교로웠다.

알버트가 수도에 있었더라면 이렇게 많은 귀족과 메인 등장인물들을 단시간에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여태 만난 사람을 떠올리면 리암의 방문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이번 축제 때 온다는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로스투라투의 측근이었던 예프넨 후작과 마탑주, 슈버트, 알버트의 스승이었던 에밋, 리암까지. 알버트의 삶에 일조했을 사람은 모두 만나고 있었다.

마탑주와 이야기만 들었던 에밋을 제외하면 나도 만나본 이들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알버트의 과거에 등장하지 않은 사람은 메르시, 레오나, 그리고 크로엘… 정도인가.

사실 한 명, 이라고 하기는 뭐한 존재가 더 있긴 했다. 내가 하양이의 계약자가 되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존재.

나와 하양이를 위해 악몽을 선사하고 결국 소멸한 블루 드래곤, 알렉산더.

나는 떨리는 숨을 뱉었다.

과연 모두를 만나게 될까? 만나기만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에밋의 말에서 나는 이 축제에 뭔가 더 있을 것을 직감했다.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내 존재 자체를 소멸시킬지도 모르는 선택 앞에.

이번 축제 기간 동안, 나는 미래를 바꾸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의문이 속속들이 차올랐다.

미래의 내 선택이 무엇이든 알버트와 나를 위한 것이길 바랐다.

***

리암이 찾아오기로 한 건 이틀 후였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에밋은 저택 청소를 도와주었다.

그의 마법 한 방에 저택은 100명의 일꾼이 다녀간 것처럼 깨끗해졌다.

그레텐은 어리둥절해했지만 이내 알버트의 마법이라는 말에 납득했다.

그녀가 마법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여태 안 해주고 뭐 하셨어요?”

“이곳에 찾아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평소에 필요하지 않은 마법은 잘 쓰지 않는 주의라서요.”

“마력은 넘치실 것 같은데.”

“넘치는 것과 별개로 쓰는 것에는 인색한 편이라.”

에밋이 빙글 웃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 이제 도와주시는 이유는요?”

“당신을 보니, 좀 그래도 될 것 같아서요.”

“무슨 뜻인가요.”

“별 뜻 없습니다.”

에밋이 뻔뻔히 대꾸했다. 최근 그와 실없는 말싸움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처음 느껴지던 초연한 분위기는 어디 가고, 지금의 에밋은 알버트의 말마따나 나이를 헛먹은 젊은 남자로만 보였다.

그와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창문 밖으로 알버트가 보였다. 리암을 맞이하러 가는 모양이었다.

나와 알버트는 아직 화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축제 시작하면서 사람 몰리기 전에 알버트와 한 번 더 구경 가고 싶은데.

나는 슬그머니 알버트의 뒤를 따랐다.

저 멀리 에밋의 흑발과 다르게 색이 조금 옅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애가 보였다.

덤덤한 얼굴을 하려 애쓰지만 귓가가 빨갛게 달아오른 어린애.

미래의 북부 대공… 이 아니라 공작님이자 알버트의 최측근이 될 리암 메이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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