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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물의 하녀로 살아가기-100화 (100/156)

100화.

애정 어린 말을 들을수록 의문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에밋은 알버트가 살길 바란다 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너무 초연했다.

왜 알버트에게 자신의 최후가 고통스러웠다 알려지길 원한 걸까.

더군다나 에밋은 자신의 드래곤을 아끼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알버트가 드래곤 자체를 싫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어째서 알버트가 에밋 님이 고통 속에 죽어갔다고 알게 만드신 건가요? 그 일로 알버트는 드래곤을 싫어하게 되었는데도요.”

에밋의 얼굴에 드리웠던 미소가 서서히 사라지고 그늘이 졌다.

에밋의 입술 사이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의 나이만큼이나 무거운 숨이었다.

“알버트가 뛰어난 마법사가 되길 바라지만, 초월자는 되지 않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초월자라면 지금 에밋 님을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요?”

에밋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버트는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월자는 되지 못해도 대마법사는 될 것입니다.”

“…초월자는 되지 못한다고요?”

“예.”

에밋은 단호히 답한 후 무언가 떠올리는 것처럼 씁쓸한 얼굴을 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윽고 그가 느리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는 알버트가 제 예상을 뛰어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일어납니다.”

에밋은 현자이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삶의 내공이 다져져 있다. 하지만 그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밋의 설명을 들었지만 모든 의문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드래곤과 초월자의 관계나, 어째서 초월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에밋이 찬찬히 대답했다.

“알버트가 드래곤의 계약자가 되면 저처럼 오랜 시간 살아가는 초월자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에밋은 어느새 돌아오고 있는 알버트를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가 까맣게 내려앉았다.

“그렇다면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을 테지요.”

“…오랜 시간 살아가니까요.”

내 말에 에밋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죽음이 알버트가 초월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습니다.”

에밋의 말에서 알버트를 향한 애정이 묻어났다.

나는 그에게 더 이상 애정을 주지 않으려 애쓰던 알버트의 모습을 떠올렸다.

알버트는 에밋이 자신보다 그의 드래곤을 먼저 챙긴다 했었다.

에밋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알버트를 위해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나는 넌지시 운을 떼었다.

“알버트가 에밋 님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도 알고 계시지요.”

내 말에 에밋이 픽 웃었다.

“어린아이의 애정 어린 눈길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바보는 아닙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는 걸 알 뿐입니다.”

“…….”

“저는 좀 있으면 생을 마감할 사람입니다. 때문에 그의 인생에 더 관여하는 건 오히려 그를 힘들게 할 뿐이에요.”

에밋이 나를 빤히 응시했다.

“이는 당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나를 질책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에밋은 덤덤히 사실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알버트와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것이 좋을 겁니다.”

어쩌면 에밋이 맞는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말 한마디로 삽시간에 바뀌는 표정과 행동, 그리고 말투를 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가고 싶다. 그의 불행했던 유년 시절이 좀 더 행복으로 가득하길 바랐다.

“이는 알버트뿐만을 위한 말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말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이곳의 이방자인 만큼 더더욱.”

나는 지금 시대의 사람이 아니다.

“…떠나기 전 알버트가 괴로워할 기억은 지울 거예요.”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느리게 중얼거렸다.

내가 처음으로 배웠던 마법, 포겟(Forget). 나는 알버트에게 행복했던 시간의 잔상만 남겨줄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나와 함께했던 기억은 흐릿한 안개가 끼어 있을 것이다.

행복했던 느낌만 남아 있으면서 나에 대해선 기억할 수 없도록.

행복했던 느낌, 기분은 그가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줄 테니까.

내 말에 에밋이 눈을 깜빡였다.

“모든 것을 없던 일로 만드는 건 당신에게도 힘든 일일 텐데요.”

“알버트에게 무엇이 더 좋을까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에요.”

비록 떠나기 전 이 모든 기억을 지워야 하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한 추억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알버트는 조금씩, 기억을 되찾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기억하는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내가 매일 찾아왔던 것을 기억한 것으로 보아서는 거의 대부분의 기억을 떠올린 듯했다.

나는 미래의 알버트를 다시 만날 것이다.

이곳에서 시련을 이겨내고 하양이와 다시 만나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알버트를 만나러 갈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와 다시 만날 날을 생각하며 알버트의 기억을 지우면 되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있었다. 미래의 알버트와 지금의 알버트 둘 모두를 위해서, 이 정도는 당연히 해내야 했다.

내 말에 에밋이 묘한 얼굴을 했다.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의 말이 심장에 가시처럼 박혀 들었다.

“제가 괜히 소백작님과 거리를 둔 것이 아닙니다.”

알버트를 부르는 호칭을 다시 소백작으로 되돌리며 짤막하게 말한 에밋은 가까이 다가온 알버트의 손에서 모자를 집어 들어 썼다.

실크처럼 매끄러운 재질의 모자는 페도라로 그의 머리카락과 잘 어울리는 남색이었다.

다만 실용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겨울에 따듯함은 전혀 선사하지 못할 듯했으니까.

내 걱정의 시선을 느낀 걸까, 문득 고개를 올린 에밋이 빙그레 웃었다.

“예쁜 물건은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법이지요.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그러시네요.”

할 말이 없었던 나는 긍정했다. 그와 잘 맞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내게서 고개를 돌린 에밋은 알버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소백작님.”

“이야기는 다 하신 건가요?”

“예, 덕분에요. 저택으로 돌아가셔야 할 텐데,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시간이 늦었습니다.”

알버트 옆에 졸졸 따라 걷던 블래키가 에밋의 품 안에 안착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불을 끈 가게들이 늘어나면서 어둠이 점차 내려앉았다.

에밋의 말에 멈칫한 알버트는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더 구경하고 싶어?”

그러고는 내 의견을 물었다. 그는 태생적으로 상냥한 사람이다. 나는 그게 좋았다.

알버트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겨울의 추운 날씨 탓일 것이다. 코끝도, 모자 사이로 보이는 귀도 모든 것이 빨갛다.

알버트와 나올 수 있는 날이 오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이쯤에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응.”

선선히 나온 답에도 불구하고 알버트는 계속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말을 잘못했나?

알버트가 내게 말했다.

“나 생각해서 그러는 거면 더 있어도 돼.”

“아니야, 나 돌아가고 싶은데.”

“내 모습 살피고 대답한 거 다 알아.”

알버트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픽 웃으며 그의 볼을 만졌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알버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야!”

알버트가 호들갑을 떨었다.

“맞아, 너 살피고 말했어. 이렇게 빨개진 얼굴로 뭘 더 보겠다고….”

알버트가 억울하다는 얼굴을 했다.

“아직 구경할 수 있어.”

“다음에 또 나오면 되잖아. 그레텐의 눈을 피하는 건 쉬우니까.”

“…다음에?”

내가 다음번을 이야기하자 알버트는 솔깃한 듯 보였다. 그도 오늘 외출이 즐거웠던 모양이다.

“응, 물론 다시 나와야지.”

알버트는 내 말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황급히 입을 뗐다.

“그럼 내일 다시 나오는 거야.”

“내일?”

“응. 내일. 오늘 산 옷도 다 입고 나올 테니까 따듯할 거고 내 몸도 말짱하니까. 내일 꼭 나오자.”

알버트가 이렇게 의견을 피력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좀 얼떨떨했다.

내가 다시 나가지 않을까 걱정을 한 것 같았다. 정해지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였다.

그런 불안감도 잠재워 주고 싶었다.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버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약속이야?”

신나 묻는 얼굴은 그제야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당연하지. 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고.”

내가 큰소리를 치며 장담했다. 알버트가 내 앞에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럼 약속해.”

“날 그렇게 못 믿겠어?”

섭섭하다는 투로 말하자 알버트가 머뭇거리다 덧붙였다.

“…응. 너무 내가 원하는 대로만 말해서 불안해.”

“그런 거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해줄 수 있어.”

알버트의 불신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것 같았던 나는 냅다 그의 새끼손가락과 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대화는 끝나신 모양이군요.”

우리 대화가 끝나길 기다렸던 에밋이 알버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알버트는 에밋의 손을 잡았다.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블래키가 에밋의 어깨에 안착했다.

잠시 후 우리는 저택에 위치한 알버트의 방에 순식간에 도착했다. 약간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솔솔 불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변화였다. 심지어 에밋은 아무런 주문도 외우지 않았다.

묵언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내는 에밋의 모습이 경이로워 보였다. 초월자는 다르구나.

방을 살피던 에밋이 알버트에게 인사했다. 이제 가는구나, 싶었는데-

“그럼 저도 당분간 여기 머물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든 에밋이 말했다.

…예?

놀란 건 나뿐이 아니었다. 알버트도 아까 그를 마주했을 때처럼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긴 여행이 될 거라고 하셨잖아요.”

“일이 이렇게 된 것도, 여행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방은 많으니 빌려주십시오.”

웃으며 뻔뻔스레 말하는 얼굴에 알버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익숙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 모습이,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알고 계실 테지만, 돈은 없습니다.”

에밋의 얼굴에는 철판이 몇 겹으로 깔려 있는 듯했다. 알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방에 머무르실 건가요?”

“그레텐에게 들키지 않을 곳으로 잡겠습니다. 값은….”

그가 알버트를 물끄러미 응시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 내려오는 마탑주에게서 받아오겠습니다.”

알버트가 입을 서서히 벌렸다. 나는 마탑주에게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되새겨 보았다. 확실한 것은 하나였다.

지금 마탑주는 메르시 전에 마법사들의 수장이었던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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