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밤하늘이 예쁘지?”
나는 별을 향해 손을 뻗는 것처럼 손을 올린 알버트를 보며 물었다. 알버트는 자신이 손을 올린 사실도 몰랐던 듯 흠칫하다 주먹을 꽉 쥐었다.
“별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일이 어디 있겠어. 손을 뻗어보는 것도 좋지.”
나는 되려 그를 따라 손을 올렸다. 정말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별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알버트와 함께 걸었던 밤길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바람에 알버트의 머리카락이 느리게 흩날렸다. 나는 다른 손으로 알버트의 앞머리를 가만히 쓸어주었다.
내 양쪽 볼을 가린 머리카락은 바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있었다.
알버트가 내 머리카락에 손을 뻗었다. 어둠과 대조되는 내 머리카락을 살짝 만지던 알버트가 고개를 올렸다. 나와 그의 시선이 맞닿았다.
“…나를 왜 구했어?”
알버트는 날 물끄러미 응시하다 물었다.
그가 계속 묻고 싶었던 질문이리라.
나는 그에게 이방인이나 다름없으니까.
“왜 이렇게 내가 살길 원하는 거야? 모르겠어.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나는 하늘에 올렸던 팔을 내려 그의 손을 꽉 잡았다. 내 마음의 온기가 전해지길 바라면서.
“삶에는 항상 힘든 순간이 있어.”
“…….”
“나도 그랬어.”
나는 그를 빤히 응시했다. 그처럼 감히 목숨을 버릴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나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절망 속에 있을 때는 나도 그 시간이 내 인생의 전부일 것 같아 두려웠다. 평생 이런 감정 속에 살아가야 할 것 같았다.
더 이상 살아야 할 가치가 있나 싶었고, 삶의 의욕을 잃었다. 모두 내 편이 아닌 것만 같았다.
세상은 불합리한 일들만 가득 차 있는 곳이었다. 행복한 시간보다 고통받는 시간이 긴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알버트, 살다 보면 살길 잘했구나, 하는 순간이 와.”
그래도 나는 살아갔고, 살았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기적처럼 소설 속의 그를 만나 마법 같은 일상을 함께했고, 결국 사랑에 빠졌다.
알버트의 눈이 불신을 담았다.
“…거짓말.”
나는 웃으며 그의 손을 더 꽉 잡았다.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살았구나, 싶은 순간이 정말 와.”
내가 다시 삶을 살며 웃는 방법을 되찾았듯이, 그도 그럴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는 살아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우리는 손을 잡은 채 걸었다. 조금씩 마을의 불빛과 가까워졌다.
“자, 거의 다 왔다.”
축제 준비가 한창인 곳에 내려서기 전, 나는 알버트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해줄 마법을 걸었다.
환영 마법은 알버트가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메르시가 쓰는 게 신기해서 알아봤었던 마법이었다.
나중에 내가 알버트와 떨어져 살게 되더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공부했던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이런 식으로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다니, 기분이 묘했다.
알버트는 마법을 거는 나를 신기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미래의 그가 마법을 쓸 때면 내가 자주 보이던 표정이었다.
“신기해?”
“…그냥. 스승님 빼고 본 적이 없기도 하고. 난 아직 쓸 수 있는 마법이 많지 않으니까.”
스승님이라면, 드래곤과 계약하고 성장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죽었다던 사람인가.
“스승님은 어떤 분인데?”
“…알 수 없는 분.”
내 말에 알버트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불신 어린 말투에는 애정도 함께 묻어났다.
좋은 사람 같았다.
“어디 계시는데?”
“지금 드래곤과 함께 다른 나라에 가셨어. 이번 축제에 잘하면 내려오신다고 하셨지만….”
고개를 숙인 알버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난 안 믿어.”
“…왜?”
“스승님에게는 항상 나보다 그 드래곤이 먼저였으니까.”
알버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지친 얼굴에는 기대와 실망이 오갔다.
그의 스승님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가 원하는 만큼의 애정은 주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마다 중요한 것이 다르니 무어라 할 수는 없다. 알버트가 이렇게 살갑게 구는 것을 보면 나쁜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다.
알버트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계약자가 된다고 해서 대마법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난 왜 스승님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안 돼.”
오로지 대마법사가 되기 위해 드래곤과 계약한 사람은 아닐 듯했지만 알버트에게 지금 그 말을 하는 건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었다.
아무래도 이야기 주제를 바꾸는 게 좋겠다.
나는 진지한 얼굴을 하며 알버트의 양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치, 넌 계약을 하지 않고서도 대마법사가 될 텐데.”
내 말에 입을 뻐끔거리던 알버트가 작게 말했다.
“말만이라도 고맙네.”
“진심인데.”
“근데 내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나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으면서 아는 게 많아 신기하다니까….”
볼멘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내게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듯 보였다.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아직 불이 반짝이는 마을로 다가섰다. 알버트의 허리춤에서 돈주머니가 짤랑거렸다. 그가 내게 경고하듯 말했다.
“도둑질하지 마. 이번엔 내가 돈 가져왔어.”
“일부러 한 건 아니었거든? 그리고 나 진짜 일했어.”
상습범 취급하는 게 억울해서 중얼거렸더니 알버트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응, 그렇겠지….”
“…알버트, 내가 거짓말쟁이로 보이니?”
“거짓말쟁이는 아니지만 믿을 수 없는 말을 많이 하잖아.”
“난 모두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여태 거짓말한 건 아무것도 없다?”
물론 알버트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돈은 어디서 난 거지? 알버트 용돈을 가져온 건가?
평소 그레텐이 식사 준비할 돈도 없다며 중얼거리던 모습이 선한데 어디서 돈을 가져왔는지 모르겠다.
내 얼굴에 의심이 다 드러난 모양이다. 알버트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했다.
“이래 봬도 귀족이야. 그리고 이번엔 그레텐이 몰래 빼돌리던 돈을 뺏었어.”
“그레텐이?”
“어. 내게 보고하는 돈하고 물가하고 안 맞아서 추궁했었거든.”
“…이곳 물가도 알고 있어?”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잖아.”
내 말에 알버트는 눈을 흘겼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음, 그렇긴 하지?
“넌 뭐든 잘 알고 있구나.”
“괜히 소백작의 지위에 오른 게 아니니까.”
내 칭찬에 알버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숨기려 하는 듯했지만 얼굴에 홍조가 피어 있었다. 자랑에 신난 모습까지 귀여웠다.
다만 좀 안타까웠다.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어디 있었겠어. 내가 여태 못 들은 칭찬은 다 해주고 가야겠다.
“진짜 알버트랑 같이 안 나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나는 알버트를 더욱 추켜올렸다. 알버트는 머쓱한 듯 시선을 옆으로 피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니까 오늘은 내가 뭐든 살 수 있다고.”
“와아아! 멋있다, 알버트!”
나는 알버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알버트가 의기양양하게 내 말을 받으려던 때였다.
“…어?”
누군가 알버트와 어깨를 부딪쳤다. 알버트와 부딪친 아이가 동시에 넘어졌다. 알버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인상을 찌푸렸다.
“누구야?”
아이는 알버트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별로 안 좋아서. 죄송합니다!”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목소리는 앳됐다. 아이의 얼굴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뭐지?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황급히 떠나려는 어린아이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마치 어린 소형견을 보는 듯한 얼굴은….
분명 슈버트였다.
지금보다 훨씬 꾀죄죄한 얼굴이고 알버트의 반절밖에 되지 않는 키를 가진 어린아이였지만 슈버트 같은 미소년을 잊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깍듯한 말투에 놀랐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니면 저것도 연기인가?
“잠시만.”
알버트는 인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선 슈버트를 붙잡았다. 슈버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버트는 덤덤한 얼굴로 슈버트를 응시했다. 슈버트는 해맑게 웃었다.
“제게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도둑질은 나쁜 거지.”
알버트의 말에 슈버트가 흠칫했다.
“에이, 그게 무슨….”
“내 돈주머니 내놔.”
알버트는 슈버트의 손목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며 중얼거렸다.
슈버트는 손목을 순식간에 비틀어 알버트에게서 빠져나왔다. 민첩한 행동은 여전했다.
슈버트는 입술을 잘근 깨문 후 입꼬리를 올렸다.
“에이, 돈도 많아 보이시는데 이 정도 돈 잃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잖아요? 봐주세요.”
슈버트는 말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뛰어 사람들 속에 숨어들었다.
다람쥐처럼 날렵한 모습은 내가 이전 로스투라투의 별장에서 보았던 모습을 연상시켰다.
껄렁한 말투와 마지막에 비꼬는 듯한 모습까지, 내가 보았던 슈버트와 비슷했다.
알버트가 내 쪽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 슈버트가 자신의 돈을 가지고 도망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런 타격도 없는 듯했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빤히 응시하던 알버트가 중얼거렸다.
“저거 없으면 오늘 쓸 돈 없어.”
“없으면 없는 대로 괜찮지. 구경만 하면 되잖아!”
나는 알버트가 돈을 소매치기당한 것에 속상해할까 봐 그의 편을 들었다. 알버트가 미간을 좁혔다.
“그게 아냐. 내가 잡을 거라고.”
…그럼 왜 물어본 거야?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알버트가 달리기 시작했다.
“런(Run).”
지팡이도 없이 주문을 외운 알버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알버트는 아이가 어디에 갔는지 아는 것처럼 거침없이 달렸다. 나는 알버트의 뒤를 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슈버트의 뒷모습이 보였다.
골목과 골목 사이를 지난 슈버트는 자신의 뒤를 쫓아온 알버트를 보며 놀란 듯 으악! 하고 크게 소리 질렀다.
알버트는 엉덩방아를 찧은 슈버트 앞에 서서 당당히 손을 내밀었다.
“내 돈주머니 내놔.”
“시, 싫어!”
“왜?”
“…이거 아니면 오늘 먹을 것도 없단 말이야. 안 돼. 차라리 처벌을 받고 말지, 배고픈 건 못 참는다고.”
어린아이라서 그런지 말투는 어눌했지만 말하는 모습은 야무졌다.
투덜거리며 말하는 슈버트를 알버트는 가만히 보았다. 마치 그를 탐색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알버트의 눈빛에 찔린 듯한 얼굴을 한 슈버트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풀(Pull).”
알버트의 마법에 슈버트의 등에서 주머니가 쏙 빠져나왔다.
슈버트는 아직도 바닥에 드러누운 채, 알버트의 손에 쥐어진 주머니를 허망하게 응시했다.
“내가 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했는데….”
억울한 듯한 목소리는 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