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오늘 뭐 먹을지 고민하는 것이 일상이 된 나는 매일 삼시X끼 찍는 기분으로 살고 있었다.
삶에 대해 유익한 이야기를 나눈 다음 날, 나는 알버트를 위해 치킨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치킨을 만드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아침은 먹어야 하니까….
빵을 보며 고민하던 나는 야매 프렌치토스트를 해 먹기로 마음먹었다.
“뭐 만들어어어…?”
하양이가 옆에 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는 졸려서 그런 줄 알았더니, 아무래도 말끝을 늘이는 건 버릇인 모양이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에서 한 번 더 심쿵사 했다.
하양이는 정말 귀엽고 천진했다.
애초에 고양이와 비슷한 크기에 매일 잠만 자는 하양이를 누가 드래곤으로 보겠어…?
난 하양이가 마법을 쓰거나 입에서 불을 내뿜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다고!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니 왜 이렇게 작은 모습인지 궁금하긴 했다.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한테 보이는 모습이 다른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는 걸까?
욕심 많은 사람들에게 납치당할 수도 있고, 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람에 따라 겉모습이 달라 보이는 건 최소한의 방어 체제인 것 같다. 비록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러고 보니 어제 알버트도 하양이를 드래곤이 되지 못한 새끼라 표현했었다.
그럼 드래곤이 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지?
하양이에 대해 알버트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물어보지 못한 게 많았다.
좋아, 밥 먹으면서 물어봐야겠다.
“이게 뭐야아아…?”
“식빵으로 간단하게 만드는 건데, 브런치 메뉴로 많이 먹는 거야.”
“브런치가 뭔데에…?”
“아침과 점심 겸으로 먹는 음식이야.”
내 말에 하양이가 입을 벌리다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처럼 맛있어어…?”
“어제 고기 맛있었어?”
“으응….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어어…. 입안이 화끈했는데에… 맛있었어어….”
하양이한테도 맵긴 매웠던 모양이다. 나중에는 좀 달게 만들어볼까.
알버트가 맵게 먹는 건 상관없어도-주인공은 강철 체력이니까- 하양이의 위장은 걱정됐다. 행동이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 같아서.
“요리하는 거 볼래애애….”
하양이는 부엌에 있는 테이블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늘어지듯 눕는 모습을 보며 나는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보기만 해도 힘이 났다.
프렌치토스트는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빵 요리 중 하나였다.
로제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지다 못해 머릿속에서 증발하고 있어서, 변변찮은 빵 레시피도 생각나지 않았다.
물론 처음 빙의했을 때도 로제의 기억을 모조리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그녀의 기억은 여기 오기 전 로스투라투와 탑 안의 시설에 대해 협상한 것과 알버트에게 키스하던 기억밖에 없었다.
하지만 천애 고아로 궁에서 살아오던 하녀의 피폐한 삶은 대충이나마 짐작이 되었다.
나와 비슷한 듯 다른 삶을 산 그녀의 선택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책에서 로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은 별로 없었다.
소설 속에서 그녀의 행적은 단순했다.
알버트를 사랑해 로스투라투의 꾐에 넘어갔고, 그를 농락하다가 죽어버린 하녀. 그뿐이었다.
처음 빙의했을 때 떠오르던 그녀의 기억은 점차 흐릿해지고 있었다. 마치 내 기억이 아닌 것을 억지로 떠올리는 것처럼.
나는 볼 안에 계란을 푼 후 우유를 넣고 숟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여기 생크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럽이나 과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제대로 된 프렌치토스트는 먹을 수 없지만, 달걀 식빵 정도는 만들 만했다.
불에 팬을 달군 나는 계란물에 식빵을 담갔다. 그런 다음 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식빵을 얹었다.
치이익 하는 소리가 나며 계란물에 목욕한 식빵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갔다.
식빵을 뒤집어 골고루 익힌 나는 그릇에 식빵을 예쁘게 담았다.
내 요리를 보는 하양이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와아아… 신기한 요리다아아….”
“이건 프렌치토스트라고 해, 하양아.”
“프으렌치토스트….”
하양이는 방실방실 웃더니 내가 준 그릇 안의 프렌치토스트를 먹었다.
냠냠 먹는 모습에 나는 흐뭇해졌다. 이게 엄마의 마음이라는 건가.
진짜 아기 같은데, 하양이는 몇 살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하양아, 너 몇 살이니?”
“나? 으음….”
하양이는 자신의 발톱을 폈다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그 시간이 내 생각보다 길어서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뭐야, 나이가 대체 어떻게 되길래 이렇게 오래 세지…?
“499사알…. 생일까지 1년하고 조금 더 남았어어….”
…제 증조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뻘이셨군요.
역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하양이는 사람이 아닌데.
“…나 정말 널 하양이 같은 호칭으로 부르면서 반말을 막 해도 되는 걸까.”
내가 몸을 덜덜 떨며 묻자, 하양이는 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는 거 줬으니까 괜찮아아아….”
너도 음식으로 모든 걸 용서하는구나, 하양아. 우리 좀 통하는 거 같아.
감격한 나는 하양이를 한 번 꼭 껴안았다. 하양이는 생각보다 따듯했다.
“자, 올라가서 같이 먹자.”
“싫어어…. 여기서 먹을 거야아….”
“왜? 위에 잘생긴 왕자님도 있잖아.”
“나 보는 눈빛이 이상해애….”
그건 무슨 소리니. 화나면 무서운 왕자님이지만 평소에는 무해(?)하다고.
“올라가자, 응?”
“싫어어어…. 너나 가아….”
하양이의 고집은 완강했다.
결국 나는 하양이 몫의 프렌치토스트를 따로 덜어주고 위로 올라왔다.
물론 창고에 있는 재료들을 먹지 말라 신신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알버트는 내가 혼자 올라온 것을 보고 물었다.
“드래곤 새끼는?”
“하양이에요. 제가 이름을 지어줬다고요. 왕자님도 그렇게 불러주세요!”
“…하양이는?”
“왕자님이 무서운가 봐요. 밑에서 먹겠대요.”
내 말에 알버트는 소리 내어 웃었다.
“눈치가 빠르구나.”
“…여기 오지 말라고 따로 언질이라도 하신 거예요?”
“내가 너 없을 때 그것에게 말을 건 적이 있더냐?”
“아뇨. 없지요….”
알버트의 행동에서 흠잡을 곳은 없는데 왜 이렇게 찜찜할까.
알버트의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도 덩달아 수상했다.
하지만 내 의문은 끝내 해소되지 못했다.
***
나는 내 몫의 프렌치토스트 위에 설탕을 솔솔 뿌렸다. 디저트가 없는 이곳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설탕이 녹아든 프렌치토스트를 입에 문 나는 행복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알버트의 시선을 느끼고 급 민망해졌다.
“왕자님도 드세요.”
“너는 표정에 정말 다 드러나는구나, 로제.”
“하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먹을 때도 감정 숨기면 그게 사람이냐.
그를 원망스레 쳐다보던 나는 알버트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왕자님, 그런데 드래곤 새끼라는 게 무슨 소리신가요? 그냥 드래곤하고는 다른가요?”
바로 하양이의 정체에 대해서였다.
“말 그대로란다. 드래곤이 되지 못한 새끼. 성체가 되지 못한 어린아이에 불과하지.”
“새끼 드래곤과 드래곤의 차이가 뭔가요?”
새끼도 어차피 나중에는 드래곤이 될 거 아닌가?
나는 하양이가 자신을 드래곤이라 부르지 말라 했던 걸 기억한다. 드래곤과 자신을 아예 다른 종족이라 생각하는 모양새였다.
“같지는 않아. 드래곤은 마력도 강대하고 자연재해를 일으키거나, 시공을 넘나들 만큼 전지전능한 존재지만, 새끼 드래곤은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거든.”
알버트의 설명은 이러했다.
드래곤의 새끼는 사실 꽤 많이 태어난다. 하지만 어린 드래곤 새끼는 힘도 없고 몸도 약해 죽기 쉬웠다.
결국 드래곤 새끼들은 방어 체제로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막을 가진 채 태어났다.
투명한 막은 드래곤의 마력으로 이루어져 계약자, 혹은 마력을 체내에 지니고 있는 마법사 외에는 볼 수 없었다.
성체 드래곤이 되기 위해 드래곤은 우선 500년의 세월을 버텨야 했다.
그 뒤에는 드래곤으로 각성하기 위한 시련이 찾아온다.
이때 드래곤 새끼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자신의 계약자를 찾는다.
드래곤과의 계약은 목숨을 전제로 하는 것.
드래곤의 새끼와 계약한 자는 드래곤에게 생명을 내놓아야 하고, 그 후 드래곤과 계약자는 생명을 공유한다.
생명뿐만 아니라 힘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서로 느끼는 고통은 반으로 나뉜다.
문제는 드래곤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변화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는 극심한 고통이 뒤따르는데, 이때 계약자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만에 하나 과정을 겪고 살아남더라도, 백치가 되어 드래곤의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드래곤 새끼는 고통을 견딜 수 있지만 계약자는 견디지 못한다.
결국 둘 다 죽는다.
그나마 역사 속 계약자 중 살아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마법사였다. 수련으로 자신의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려, 자신들의 고통을 줄인 사람들.
나는 여기서 질문을 던졌다.
“왜 드래곤은 드래곤 새끼들을 도와주지 않는 건가요?”
“도와줄 수 없을뿐더러 드래곤들은 다른 개체를 챙겨줘야 할 존재라 생각하지 않아.”
나는 깨달았다. 드래곤들은 매우 개인주의적이었다.
알버트는 내 질문에 답을 해준 후 이어 설명을 시작했다.
드래곤이 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두 번째 방법!
혼자서 변화의 시간을 감내하는 것.
드래곤이 그동안 수련했던 힘과 마력을 바탕으로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다.
이 방법도 흔치 않은 것이, 드래곤 새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여태 알버트가 한 말을 정리했다.
“결국 엔딩은 다 죽는 거네요.”
“그렇지. 해서 정말 천재 마법사들이 아니라면 드래곤 새끼들과 계약하려 하지 않고, 딱히 그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도 않는단다.”
성체 드래곤은 역사 속에서도 손에 꼽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성장 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사실 드래곤이라는 호칭은 잘 붙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드래곤의 계약자가 되는 게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이라고도 한단다.”
“세상에….”
마치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같지 않은가!
“해서 네가 데리고 온 아이는 드래곤이라 부를 수 없다, 로제.”
“그렇군요….”
“뿔이 커지고 몸집이 거대해지며, 원하는 모습으로 폴리모프할 수 있는 것도 성체가 되었을 때야.”
“드래곤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라니….”
내가 놀라는 모습을 보며 알버트가 덤덤히 말을 이었다.
“너무 정 주지 말거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아이야. 499살이고 생일까지 1년이 좀 더 남았다면 더 그렇구나.”
드래곤이라 믿었던 하양이는 시한부였습니다.
아니, 내가 로판 소설에서 여주가 시한부인 건 많이 봤는데 내 반려동물이 시한부일 줄은 몰랐는데?
하양이가 겪을 일들에 대해 듣고 나니 마음이 약해졌다.
가만, 그럼 하양이에게 특훈을 시키면 어떨까?
속으로 PT 강사에 빙의해 하양이를 위한 스케줄을 짜고 있을 때, 알버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보내거라.”
“…네?”
내가 되묻자 알버트가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정을 주고도 남겠어. 아니, 이미 줬구나. 그냥 내보내.”
청천벽력 같은 알버트의 말에 나는 멍하니 그를 응시했다.
아니, 뭘 했다고 내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