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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금물의 하녀로 살아가기-2화 (2/156)

2화.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왕자님이 이곳에서 나가시는 걸 누구보다 바라고 있어요.”

“나가서 왕비라도 되고 싶은 거니?”

내 의중을 살피려는 듯, 가늘어지는 눈매가 날카롭다.

알버트는 참 무서운 말을 잘 한다. 내 의중을 떠보려는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계약 왕비 같은 거 꿈도 안 꾼다. 사람은 자신의 그릇이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왕비는 또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 암살 위협은 또 어떻고? 절대 사양이다. 난 이미 인생 계획을 세워두었다고.

“아뇨! 그냥 시골에서 평생 놀고먹을 수 있게 적당한 돈만 주시면 돼요.”

“…….”

“보시면 아시겠지만, 왕자님께서 싫어하시는 스킨십은 모두 배제합니다.”

나는 그에게 또박또박 말하며 내 의견을 전달했다. 알버트는 내 말에 계약서를 찬찬히 읽어내렸다.

내 말이 의심스러운 듯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가 중얼거리듯, 하지만 내게 다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전과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구나.”

…그건 진짜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거든요. 이렇게 말하면 오히려 알버트의 경계심만 부추길 수 있으니 다른 말을 생각해 두었다.

나는 얼굴을 굳히며 진실을 말했다.

“키스를 하는 순간, 왕자님께 제가 어떤 짓을 하려고 했는지 깨닫고 말았어요.”

이건 진짜였다.

“믿을 수 없으시다면 며칠 보고 난 후 계약서를 작성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저는 자신 있는데.”

“…자신이 있다고.”

알버트가 턱을 괴었다.

“나를 네 곁에 두는 것이 네 목표 아니었니?”

알버트가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만으로도 나를 홀릴 것 같았다. 방금도 그렇다고 대답할 뻔했다.

침착해야 해. 나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러다간 제가 죽겠더라고요.”

“죽어?”

“왕자님은 대단하신 분이니까 언젠가 탑을 탈출하실 수 있을 거 같고, 그럼 저는 왕자님이 여기 나가시는 순간 끔살 당하겠죠.”

“…끔살?”

아, 신조어가 나왔네. 나는 말을 바꿨다.

“즉사요. 즉사.”

“…키스하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니?”

…제가 당신에게 죽겠다는 생각이요.

나는 내가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길 바라며 아부를 시작했다.

“왕자님은 제가 가지기에 너무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

“…….”

“미모로 세상을 제패할 수 있으시겠다는 생각?”

이래 봬도 사회생활을 통해 완벽한 아부를 마스터한 몸! 신입 사원으로 지내며 익힌 건 이것뿐이다!

나는 윙크까지 해가며 알버트에게 내 진심을 전달했다.

알버트가 피식 웃었다.

내 앞으로 다가온 알버트가 손을 올려 내 뺨을 쓰다듬었다.

“로제, 난 네가 마음에 들었단다. 처음부터 말이야.”

저건 날 구슬리기 위한 말이다. 구슬리기 위한 것이 틀림없다.

절대 설레지 않겠다 다짐하며 속으로 진실을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그렇지 않으면 넘어갈 정도로 엄청난 미인계였다.

“그러니 계약은 더 생각해 보고 싶구나.”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알버트가 나를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반나절 만에 달라진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있을 리 없으니까.

그가 날 믿을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보여줘야 했다.

나는 내 모든 힘을 쥐어짜 아부와 칭찬으로 알버트에게 내 진심을 전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딸랑딸랑 모드 온!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왕자님. 그럼 제가 직접 몸으로 보여드릴게요.”

“…몸으로?”

“네, 제 몸.”

나는 비장하게 말을 이었다.

“이 한 몸 바쳐 왕자님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

내가 알버트를 위해 제일 먼저 결정한 건 침대를 쓸 권한을 넘기는 거였다.

방 벽에 딱 붙어 있는 침대는 딱 하나로, 아늑한 더블베드였다.

남녀가 둘이서 붙어 자기에 딱 알맞은 크기라는 것이다. 이건 고자와 하녀 로제의 합작이 분명했다.

하지만 난 알버트와 같은 침대에서 잘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같은 방에서 계속 생활하는 것도 힘든 일이니, 나는 아예 개인 공간을 따로 분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있는 다락방은 작지만 꽤 아늑했다.

로제가 깔끔한 성격이라 창고도 잘 정돈되어 있어 다행이었다. 괜히 하녀가 아니었는지 먼지 한 톨도 없었다.

물론 침대는 없었지만 바닥에서 자는 건 익숙했기에 오히려 좋았다.

이걸로 알버트에게 생색도 내보았다.

“제가 왕자님을 위해 이 한 몸 바친다고 했잖아요. 이렇게! 왕자님께서 혼자 있으실 수 있는 공간을 준비했습니다.”

“아직 계약하겠다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이건 계약 전에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성의예요. 왕자님이신데 이 정도는 해야지요.”

나는 알버트를 향해 회심의 윙크를 날렸다.

알버트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이 쥐를 앞에 두고 장난치는 고양이 같았다.

…적어도 잡아먹히지 않아서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 걸까. 내 처지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계약서에 대한 건 아직 의심하는 중일 테니 조심해야겠다.

대신 나는 노선을 틀어 그의 장점을 늘어놓기로 했다. 세상에 칭찬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왕자님, 웃으실 때 좀 조심하시면 안 돼요?”

“왜?”

“너무 잘생기셔서요. 제가 심장마비로 죽으면 책임지실 거예요?”

“너무 잘생겨서라고….”

내 말이 기가 차는 듯, 알버트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아부는 그의 기분을 좋게 하면서 내가 그의 편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나는 앞으로 지속적인 아부로 내 모든 행동이 알버트에게 익숙해지게 만들 작정이었다.

“보기만 해도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에요. 왕자님을 본다면 심 봉사도 눈을 뜰걸요.”

“심 봉사는 누구지?”

“장님이요. 왕자님의 미모는 장님도 눈 뜨게 할 정도라는 거죠.”

계속되는 내 아부에 알버트의 눈이 가늘어졌다. 팔짱을 낀 그가 중얼거렸다.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로제. 내 얼굴이 그렇게 좋으냐.”

“예, 왕자님은 제가 누누이 말했듯 얼굴로도 세상을 제패할 수 있으십니다.”

딸랑딸랑. 이것이 사회생활입니다.

내가 그의 외모를 칭찬한 건 그게 가장 칭찬하기 쉬워서였다. 더군다나 잘생긴 사람 앞에서는 주접도 쉬운 법이다.

알버트는 검 실력도 대단하다지만, 내가 그걸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성격도 마냥 친절하거나 상냥한 편도 아니니, 눈에 보이는 걸 공략해야지.

이왕 빙의한 거 다정한 남자가 있는 곳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알버트는 잘생겼지만 확실히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멀리서 보아야 아름다운 인간의 표본이다.

여기서 취향 따지는 것만큼 멍청한 일도 없긴 한데.

속으로 실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방글방글 웃었다. 이것이 짬밥으로 단련된 감정 노동이었다.

나를 지긋이 바라보던 알버트가 손을 까닥였다. 턱을 치켜들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화보를 보는 듯 섹시했다.

“로제, 이리로 와.”

“넵, 왕자님.”

나는 쪼르르 달려가 소파에 앉아 있는 알버트 앞에 섰다.

“얼굴 가까이 대거라.”

“얼굴은 왜요?”

나는 그를 경계하듯 물었다.

알버트가 눈매를 가늘게 떴다.

“왜일 것 같니?”

“키스하시려는 거 아니에요? 이건 제가 착각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하실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이에요.”

내 말에 알버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내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내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댄 그가 말했다.

“맞다. 싫으니?”

음, 싫은 것은 아니다. 미남과의 키스가 싫을 리 없다.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다.

“싫지는 않아요, 다만….”

“다만?”

“왕자님께서 제게 키스하려는 건 절 믿지 못하시기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별로인데요.”

“널 믿지 못하는 것과 키스가 무슨 상관이지?”

“확인해 보시려는 거잖아요. 제가 말만 그런 건지, 아니면 정말 왕자님과 계약을 이행할 마음이 있는지.”

알버트가 내 말에 웃었다.

“대체 어제 네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달라지기는 했구나.”

“원래 사람은 하루아침에 바뀐다잖아요.”

“그런 말은 들어본 적 없고.”

“제 통찰력은 믿어주시는 거고요?”

“내 생각을 읽기는 했어. 그런데 한 가지 못 읽은 것이 있구나.”

“뭔데요?”

알버트가 내 허리에 손을 올려 나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아직 확인은 못 해봐서.”

그와 내 사이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해봐야겠어.”

그는 내 긴 설득 후에도 기어코 진실을 확인하려 들고 있었다. 그것도 접촉을 통해서!

머릿속에 비상벨이 울렸다. 그 와중에 완전히 그를 밀어내고 싶지 않은 내 흑심이 원망스러웠다. 내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싫으면 지금이라도 말하거라.”

“왕자님, 전 계약서에 틀림없이 접촉은 하지 않는다고 써놓았어요. 그걸 보고도 못 믿으신다면 왕자님께서 멍청하신 게 아닐까요?”

이 틈을 타 알버트를 욕했다. 아쉽게도 알버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알버트가 오히려 눈을 크게 뜨며 가련한 얼굴을 했다. 그가 손가락을 들어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네가 날 속이려 한 적이 몇 번이던가.”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빌어먹을 하녀!

이 빌어먹을 로제!

…결국 내게 남은 선택지는 없었다.

“키스에 반응하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

난 시무룩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 표정을 본 알버트가 낮게 웃었다.

“아니. 그건 아냐.”

속삭이듯 중얼거린 알버트가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의 시선이 꽤 강렬해서 쑥스러웠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눈만 깜빡이는 나를 보며 알버트가 물었다.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지금껏 당장 할 것처럼 말해놓고 이제 와서 저러면 더 무섭다는 걸 알버트는 알고 있을까?

위기는 기회로 만들어야 하는 법. 나는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왕자님이 절 더 믿으실 수 있는 기회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런 접촉은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까.”

단언하듯 한 말은 진심이었다.

난 침을 꼴깍 삼킨 후 용감히 말했다.

“하죠, 우리. 그, 그거.”

“그거라니, 로제.”

부끄러워서 돌려 말했더니 귀신같이 물고 늘어진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쉰 후 우렁차게 말했다.

“키스요!”

내 말이 끝나는 순간, 알버트가 내게 입술을 맞췄다.

입술에 내려앉은 낯선 숨이 내 입안을 장악했다. 숨을 유지하는 게 힘들 정도로 꽤 긴 키스였다.

하나 내 몸은 긴장감에 경직되어 있었다.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알버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키스를 즐길 바보는 아니었다.

나만 눈을 감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알버트도 눈을 감지 않았다.

서로 마주치는 눈빛이 강렬했다.

그가 입술을 더 세게 짓눌렀다. 누가 보면 연인으로 알 것처럼 강렬한 입맞춤이었다.

알버트는 키스를 잘했다.

감상은 그뿐이었다.

입술이 떨어졌다.

나는 숨을 골랐다.

알버트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태연한 얼굴을 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던 그가 이내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로제, 계약서를 다시 볼 수 있게 해주겠어?”

나는 활짝 웃었다.

물론 서비스용 미소였다.

“당연하죠, 왕자님.”

환영합니다, 고객님.

***

계약서를 다시 읽은 후 알버트가 물었다.

“계약 내용을 이행하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믿지?”

그거야 당연히 방법이 있다.

“왕자님이 마법으로 계약서에 서명하세요.”

“…내가 마법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건 일종의 기밀이다. 그가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비밀.

하지만 책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나는 뻔뻔하게 입을 열었다.

“왕자님, 제 눈치가 빠른 것은 알고 계시잖아요? 왕자님께서 제 지팡이를 보시려는 이유가 뭐겠어요. 지팡이에 걸린 마법을 푸시려는 거 아니겠어요?”

“그 정도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구나.”

…로제의 지능을 묘하게 깎아내리는 말이었지만, 책 속의 로제가 그에게 반해 바보처럼 굴었던 것은 사실이니 침묵했다.

하지만 그의 의문은 끝나지 않았다.

“그럼 왜 처음에 지팡이를 쓸 수 있게 허락해 준 거지? 네게 이득 될 것이 없는데.”

이에 대해서도 좀 어이없긴 하지만 쓸 만한 이유를 생각해 놓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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