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218)화 (218/218)

에필로그 3화(完)

우리는 헌터협회 앞에 도착했다.

던전을 끝내고 나서는 헌협에 먼저 신고하는 게 정상적인 절차였으므로 우리가 여기에 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헌터협회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일단 건물에 인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입구에 나와 있는 사람 하나 빼고.

바로 헌터협회장이었다.

푸석푸석해진 머리카락을 다듬지도 못한 헌터협회장이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우리를 맞이했다.

“생환을! 축하드립니다!”

각 잡힌 인사에 뒤에서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어어, 누가 보면 우리한테 잘못한 거 있는 줄 알겠어요.”

내 말에 헌터협회장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난 뭐라고 더 하려다가 간신히 참았다.

카메라가 있다! 카메라 앞에서 하는 짓은 박제된다……!

하지만 좀 더 박제된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난 내면의 소리를 참지 못하고 손을 뻗었다.

―!

인벤토리에서 꺼낸 세니아의 세검이 헌터협회장 바로 위를 스치고 다시 돌아왔다.

아주 잠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슥, 하는 날카로운 소리는 아주 작았다.

기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는 묻히고도 남을 정도로.

[예리언님>>> 와우]

[걔>>> 오]

아무도 내가 뭘 했는지 모르는 듯했지만, 소예리 헌터와 신재헌은 확실히 본 듯했다.

주이안 씨도 봤겠지만 그는 나를 말리지 않았다.

아니, 난 분명히 보았다.

헌터협회장 뒤, 입구 앞에 서 있는 그의 동상.

너무 깔끔하게 잘려서 미동도 없는 그 동상을 주이안 헌터가 슬쩍 미는 것을.

역시 이 사람도 빡쳐 있었다니까?

―퉁! 탱그르르…….

헌터협회장 동상 머리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에 모두가 행동을 멈추었다.

기자들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애초에 땅을 보고 있던 헌터협회장의 얼굴은 그야말로 새파래졌다.

기자들은 상황파악을 하려고 애쓰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난 헌터협회장에게 예쁘게 웃어 주었다.

박제? 되라지~ 모르겠다~

“우리가 착해서 다행인 줄 아세요.”

이왕 박제될 거면 예쁘게 웃어 줘야지!

난 어깨를 으쓱하면서 헌터협회장 동상의 머리를 발로 툭 찼다.

―통!

튀어 오른 동상 머리가 헌터협회 입구 앞에 안착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난 그렇게 말하면서 쫓아오는 헌터협회장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헌터협회 안으로 들어섰다.

―퉁~ 퉁~

물론 동상 머리는 계속 발로 차면서.

[주이안 씨>>> 기자들도 분위기를 알아챈 것 같습니다]

[예리언님>>> 누가 봐도 우리 화났잖아요]

[걔>>> 조용해졌는데]

[예리언님>>> 우리가 빡치면 다 죽여버릴 것처럼 생겼나봐]

―퉁~ 퉁~

난 그 채팅에 동상 머리를 두어 번 더 굴리며 답했다.

[신유리>>> 아니었어요?]

[예리언님>>> 우린 지성인이에요]

[걔>>> 지성이 있었으면 RP에서 수학선생님을 다짜고짜 패진 않았죠]

신재헌의 답에 소예리 헌터가 바로 정정했다.

[예리언님>>> 우린 인이에요]

지성인에서 지성이 빠져 버렸다. 그러자 신재헌이 다시 물었다.

[걔>>> 그거 혹시 참을 인(忍)인가요?]

[예리언님>>> 우린 이에요]

인마저 사라져 버렸다.

주이안 헌터가 웃음을 참는 것이 보였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헌터협회 한 바퀴를 다 돌았다.

그리고 우리를 따라오는 헌터협회장은 거의 네 발로 기어오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내 헌터협회장 방 앞에 선 우리에게 그가 말했다.

“……문제가 있었던 인원들은 모두 헌터협회에서 제명되었습니다.”

문제라는 말에 쫓아온 기자들이 눈을 빛내는 게 보였다.

난 그들을 흘끗 보고 물었다.

“무슨 문제인데요?”

“그, 그건.”

헌터협회장은 최대한 말을 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응, 어림없어요~

내가 답을 기다리자 결국 그가 말했다.

“……신유리 헌터팀의 의사를 묻지 않고 L급 던전에 들어가시는 게 확정됐다고 기사를 올린 사람들이 모두 제명되었습니다.”

그 말에 기자들 쪽이 시끄러워졌다.

주이안 헌터가 말없이 그쪽으로 손을 펴 보였다. 조용히 하라는 듯이.

그러자 기자들은 얼어붙은 듯이 조용해졌다.

“뿐만 아니라…… 관련 업무를 처리했던 인원들도 모두 제명되었습니다.”

그가 고개를 재차 숙였다.

“정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신유리 헌터팀뿐만이 아니라 다른 팀에도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는 내가 답이 없자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빠진 거 없니?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그가 더듬더듬 말했다.

“물, 물론 저도 내일부터 협회장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그때 신재헌이 불쑥 끼어들었다.

“받고 기부도 하죠.”

그의 말에 협회장(유통기한 1일)이 멈칫했다.

소예리 헌터가 그에게 다가갔다.

“설마 지금까지 헌터들한테 받은 뇌물이랑, 우리 L급 던전 들여보낼 때 받아먹은 대가로 여생을 시골에서 한가하게 보낼 생각은 아니었죠?”

그녀가 즐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헌터협회장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아, 아닙니다. 당연히 사회에 환원해야지요. 예.”

아닌 것 같은데? 여생이 매우 꼬였다는 얼굴인데?

그 말에 소예리 헌터가 날카롭게 말했다.

“뭘 받아먹긴 하셨구나?”

“……!”

헌터협회장은 소예리 헌터의 유도신문에 걸려들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손발을 버둥거렸다.

기자들은 아예 자리를 펴놓고 노트북을 두드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음, 좋은 풍경이군.

“액수 좀 되실 텐데 그걸로 게이트 사태 때 생긴 고아들 지원 부탁드립니다.”

그때 신재헌이 불쑥 말했다.

주이안 헌터가 그를 흘끗 돌아보았다. 이미 주이안 헌터도 하고 있지만, 더 지원한다고 나쁠 것은 없었다.

거기에 소예리 헌터가 말을 얹었다.

“불치병이나 난치병 환자를 위한 연구 센터도 하나 세워 주세요. 현대의학으로 접근하기 힘든 건 시스템창에서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게? 난 눈을 크게 떴다.

소예리 헌터도 헌터가 되고 나서 건강해졌잖아? 오?

이건 또 새로운 접근 방법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소예리 헌터가 검지와 중지로 브이를 만들어 보였다.

“알, 알겠습니다. 예. 물론입니다.”

헌터협회장은 제가 무슨 말을 듣는지도 모르는 듯했다.

받아낼 건 다 받아낸 셈이었다.

이제 기자들이 저놈을 실컷 물어뜯고 나면 저놈은 국민의 대대적인 지탄을 받으며 감방에 처박힐 터였다.

―퉁!

이쪽은 그 꼴 보면서 팝콘이나 먹으면 되는 것이다. 난 후련한 마음으로 동상 머리를 차올렸다.

―화륵!

거기에 신재헌이 불붙은 말레티아의 검을 꽂아 버렸다.

“흐아악!”

놀라 뒤집어진 헌터협회장에겐 물론 불똥 하나 튀지 않았다.

그 대신 동상 머리는 열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녹아 흘러내려 버렸다.

―치이이……

새로운 모습이 된 동상 머리가 바닥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난 손을 펴 보였다.

“좋아요. 이타적인 결정에 매우 감사드리며, 선물 하나 드릴게요.”

갑시다!

우리가 걸음을 돌리자 기자들이 우르르 쫓아왔다.

헌터협회장은 삐뚤어진 안경을 바로 쓰지도 못하고 주저앉아 있었다.

난 가다 말고 그를 돌아보았다.

“안 쫓아오면 후회하실 텐데.”

좋은 구경 놓칠 텐데?

그러자 헌터협회장은 거의 두 손 두 발로 기다시피 쫓아왔다.

기자들과 그를 이끌고 우리가 향한 곳은 랭크측정기 앞이었다.

“서, 설마.”

헌터협회장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저걸 박살 내면 헌터협회 연 예산이 휘청거릴 것이다.

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난 그에게 웃어 주고는 랭크측정기에 손을 올렸다.

―파직!

그러자 랭크측정기 한쪽이 찌그러져 버렸다.

“앗.”

뭉갤 생각은 아니었는데?

마침 다섯 개 있는 랭크측정기에 우리 팀이 한 명씩 손을 올렸다.

―파지직! 콰직!

그럴 때마다 측정기들은 각자 살벌한 소리를 냈다.

측정기와 연결된 우리 머리 위 스크린도 마찬가지였다.

―팟! 파팟!

화면이 고장 난 TV처럼 번쩍이기 시작했다.

난 그걸 보면서 눈썹을 치켜올렸다.

설마? 이대로 스크린이 펑 터져 버리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다행히 현대과학은 위대했다.

곧 불꽃이 튀던 스크린이 정신을 차리더니, 우리가 원하던 글자를 띄웠다.

[랭크 측정 중]

[헌터 신유리]

[헌터 신재헌]

[헌터 소예리]

[헌터 주이안]

[……]

설마 하는 소리가 기자들 사이로 물결처럼 퍼져 나갈 무렵.

드라마틱한 타이밍으로 스크린에 글자가 떠올랐다.

[SS] [SS] [SS] [SS]

“!”

흥분한 기자들이 괴성인지 질문인지 모를 것을 외치면서 달려들었다.

수십 초 후, 헌터협회 맞은편 스크린에 대문짝만 한 헤드라인이 걸렸다.

[(속보) 한국, 세계 최초 SS급 헌터 배출]

그 소식이 전 세계를 휩쓰는 데에는 딱 5분이면 충분했다.

약속한 것처럼 시선이 마주친 우리가 웃었다.

이제야, 살아 돌아온 실감이 나서.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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