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구멍 난 양산.
소예리는 들고 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시간의 힘을 많이 주는 아이템의 조건.
긴 시간 함께하고 여러 던전을 돌아다녔을 것. 이 게이트 내에서 구한 것이 아닐 것.
돌발 게이트 밖에서 가지고 들어온 아이템인 셈이니 이 물건은 적어도 마지막 조건에는 포함되었다.
하지만 여러 던전을 돌아다녀본 적은 없는 물건이었다.
그래도 소예리는 이 양산이 많은 시간의 힘을 가지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건 시간의 힘을 어떻게든 모아보기 위해 다른 아이템들을 사용하다가 알게 됐다.
[시간의 힘을 모두 소모했습니다(-100).]
주이안 헌터의 시간을 돌렸을 때.
시간의 힘을 모두 소모하고 다시 긁어모으려고 했지만.
[레니아스의 검(S)]
신유리 헌터가 쓰던 검을 넣어도.
[시간의 힘+3]
소예리 자신이 쓰던 액세서리들을 넣어도.
[시간의 힘+1]
[시간의 힘+1]
시간의 힘은 크게 차지 않았다.
심지어 대부분 랭크가 S에서 SS급인 아이템인데도 그랬다.
하지만.
[도금 목걸이(C)]
[시간의 힘+30]
도금 목걸이는 달랐다. 그녀가 들고 있던 구멍 난 양산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의 힘+30]
훨씬 많은 던전을 오갔을 신유리 헌터의 무기보다, 도금 목걸이와 구멍 난 양산이 더 많은 시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이유.
그건 아마 그 물건에 정말 시간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확히는 누군가의 추억이.
그게 소예리가 이 양산을 찾아, 과거의 자신을 찾아온 이유였다.
물론 이 ‘기억-소예리’ 던전의 클리어를 위해서도 필수적이었지만, 이 던전 내에서 도금 목걸이나 구멍 난 양산만큼 시간의 힘을 가질 만한 물건은 이것뿐이었다.
[현재 시간의 힘 : 87]
13만 더 있으면 돼. 그럼 주이안 헌터를 살릴 수 있어.
소예리는 들고 있던 양산을 내려다보았다.
[신유리]
어린 신유리의 글씨체가 보였다.
고마웠고, 고마운 사람.
예쁜 사람.
그렇게 속삭인 그녀가 양산을 꽉 쥐었다.
―파삭!
그러자 양산이 금빛으로 화하며 사라졌다.
소예리는 금빛 빛무리 사이에서 환하게 웃었다.
***
이진아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나가 버렸다.
“달리기…… 엄청 빠르네.”
역시 사실 보조계가 아니라 딜러여야 했던 게 아닐까요?
난 이진아가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때쯤.
“됐어요!”
소예리 헌터가 계단을 빠르게 뛰어 올라왔다.
“됐어요?”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소예리 헌터는 팔을 방방 내저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시간의 힘 100 모았어요!”
“……!”
주이안 헌터가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는 게 보였다. 신재헌의 얼굴에도 그제야 미소가 보였다.
난 긴장한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과연, 정말 가능할까?
아니. 되어야만 한다.
꼭 돼야만 해.
“주이안 헌터님 거기 딱 서 있어!”
소예리 헌터가 기쁜 얼굴로 달려왔다. 난 그 얼굴이 왠지 후련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시간의 힘 말고도 다른 무언가를 풀어낸 것처럼.
그건 아마 이진아와 관련 있을 것이다.
[헌터 소예리(S)가 ‘회귀(SS)’ 스킬을 사용합니다.]
한달음에 달려온 소예리 헌터의 회귀 스킬이 주이안 헌터에게 닿았다.
나와 신재헌은 긴장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
환한 금빛을 받은 주이안 헌터는, 잠시 후에 살짝 눈을 떴다.
그리고 그 갈색 눈동자가 나를 명확히 바라보았을 때.
―우웅……!
던전 출구 쪽에서부터 울림이 퍼져 나왔다. 나갈 시간이 되었다는 것처럼.
우리의 시선이 일제히 던전 출구로 향했다.
“어?”
그리고 난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원래 자신보다 낮은 랭크의 던전이 아니면 바깥이 보이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SS+급 던전 출구인데도 바깥이 보였다.
그 바깥엔 이진아가 서 있었다.
「……!」
그녀는 달려온 기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느라 정신없었다.
헌터일보 기자들이군.
저들은 아마 게이트 생존자인 이진아가 어떤 랭크의 무슨 계열 헌터인지 속보를 뜯어내려고 정신이 없을 것이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먼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 목소리에 이진아가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이진아.」
그녀가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기억-소예리’를 클리어하였습니다.]
클리어 메시지가 떴다.
과거의 소예리 헌터, 아니 이진아는 후회 없는 선택을 한 모양이었다.
사라지는 이진아 헌터를 보는 우리에게 소예리 헌터가 작게 속삭였다.
“이제 진아는 저 모습 그대로 살아갈 거예요.”
세 헌터님도 만나서, 세상이 얼마나 신나는 곳인지 알게 될 거예요.
그 말과 함께 시스템창이 우르르 떴다.
[던전 ‘기억(L)’ 클리어!]
[던전 ‘연약한 시한부 영애에 빙의해버렸다(L)’의 게이트 사태를 막았습니다!]
긴 시간 기다려왔던 시스템창이었다.
[던전 ‘연약한 시한부 영애에 빙의해버렸다(L)’의 클리어 조건을 만족하였습니다.]
[클리어 조건 : 대륙의 멸망을 막아라]
시스템창이 번쩍였다.
[던전 클리어 보상 정산 중……]
[히든 루트 클리어 확인.]
[보상이 2배 지급됩니다.]
[‘서브 퀘스트 : 견제’
- 동제국과의 게이트 장악도 차이 : 90%]
[‘서브 퀘스트 : 견제’ 클리어!]
[최상위 보상이 지급됩니다(보상 레벨 +3).]
[보상 레벨이 상한에 도달했습니다!]
[히든 보상이 개방됩니다.]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시스템창을 보기도 바빴다.
[전용 아이템 ‘세니아의 세검(L+)’을 얻었습니다.]
[히든 보상 ‘신의 상점’이 은하 서버 ‘헌터 신유리’의 정보에 귀속됩니다.]
어?
[던전 클리어 보상 : ‘연약한 시한부 영애가 되어버렸다(L)’ 던전에서 얻은 능력치만큼의 추가 능력치를 얻습니다.]
뭐뭐뭐라고?
보상 개수뿐만이 아니라 보상 하나하나가 눈이 돌아갈 것같이 사기였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눈을 크게 뜬 순간, 마지막 보상이 떴다.
[‘히든 퀘스트 : 모두와 함께하는 순간’ 클리어!]
[랭크업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랭크가 ‘SS’급으로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SS급의 보너스를 받아 재조정됩니다.]
―파앗!
눈앞이 번쩍였다.
S급의 시력이라 이보다 좋아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시야가 확 넓어졌다.
모든 움직임에 좀 더 예민해진 기감이 주변의 작은 움직임마저 잡아냈다.
폭발의 여파로 건물 일부가 뚫리면서 들어오는 바람 소리. 그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건물 잔해와 스치는 흙의 소리까지.
내가 살짝 입을 벌렸을 때였다.
[신유리 / 27세, 딜러(SS)
체력 : 7600000 (+3810000)
근력 : 350000 (+205000)
마력 : 2140000 (+660600)
민첩 : 730000 (+250120)
지구력 : 403000 (+230900)
방어력 : 400000 (+130000)
특수 버프 “천상의 힘(S)” : 스킬 발동 속도 10% 증가, 받아들이는 버프 효과 10% 증가
특수 버프 “노력하는 자의 힘(S)” : 체육선생님의 목검(SS) 30분 이상 사용 시 10분당 방어력+10%(최대 50%)
특수 : 체육선생님의 목검(SS, ‘헌터 신유리(S)’ 애장품 보너스 : 사용 시 전체 능력치 +30%, 소지한 ‘공격’ ‘보조’ 계열 스킬 랭크 1단계 증가(랭크상한 없음))]
Q. 이게 사람 능력치입니까?
A. 맞습니다!
난 입을 떠억 벌렸다.
“SS급 헌터가 실존하는 거였구나.”
SS급 헌터는 세계 최초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SS급 헌터는 몬스터만 있다는 게 정설이었는데, 그걸 내가 엎은 셈이었다.
아니.
[걔 – SS급(딜러)]
[주이안씨 – SS급(힐러)]
[예리언님 – SS급(보조)]
우리가 엎은 것이다.
세계 최초의 SS급 헌터팀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