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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213)화 (213/218)

213화

“위험한데…….”

“아냐, 이제 괜찮아.”

먼지 가득한 청소도구 사이에 숨어 있는 이진아를, 소예리는 바깥으로 이끌어냈다.

“다 물리쳤거든.”

그녀의 말에 이진아는 놀란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다…… 언니가 하신 거예요?”

그녀의 흑갈색 눈동자에 주변에 널린 몬스터들의 잔해가 담기는 것이 보였다.

소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랑 내 친구들이랑.”

그 말에 이진아는 잠시 입을 벌렸다가 말했다.

“힘이 엄청 세신가 봐요.”

그 말에 소예리는 상황도 잊고 웃을 뻔했다.

그런 그녀의 시야에 이진아가 꼭 끌어안고 있는 양산이 보였다.

그녀가 조금 전 시간의 힘으로 환원시킨 양산보다는 훨씬 낡지 않은 물건이었다.

“멋지고…… 부러워요.”

이진아가 뇌까렸다. 그런 그녀에게 소예리가 말했다.

“너도 이렇게 될 거야.”

“……제가요?”

이진아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소예리는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너무나도 다르게 생긴 두 사람이었다.

과거의 소예리가 원했던 것처럼, 누구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소예리는 알고 있었다. 이진아가 결국 과거의 자신이라는 걸.

“아파서…… 안 될 거예요.”

그렇게 소심하게 말하는 과거의 자신에게, 소예리가 말했다.

“다 나았잖아. 이렇게 잘 움직이는 걸 보면.”

“정말 다 나은 걸까요?”

그 말에 이진아는 조금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직 믿기지 않는 듯했다.

소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 나았으니까 이렇게 움직일 수 있지.”

그 후로 너는 병에 시달리지 않거든.

소예리는 이진아를 내려다보았다.

네가 포기했던 네 시간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거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진아는 이미 그 사실을 느낀 듯했다.

“…….”

처음엔 기뻐하는 듯했던 눈이 곧 우울함에 물들기 시작했다.

사실상 죽음을 기다려야만 했던 삶이 건져 올려졌는데도 침묵하는 건, 실감이 안 나서.

그리고…….

소예리는 이진아의 손을 잡아 주었다.

아직 까칠한 손이지만 S급이 되었으니 곧, 피부는 눈에 띄게 좋아질 터였다.

그 사실을 알려줘도 이진아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소예리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저 기분을 느껴 보았기에.

저때는 자신이 곧 죽을 거라는 생각에 희망을 모두 버렸다.

그래서 멋대로 살았다.

어차피 다신 볼 수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성질을 부리고 패악을 부렸다.

‘멋대로 살아 보는 거야!’

하면서.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자신과 달리 빛나는 미래를 가진 사람들이 질투가 났다.

그런데.

이제 나았다는 이야기는, 자신이 온갖 패악을 부려 망쳐 놓았던 인간관계를 고스란히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떠나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고, 전보다 더 험한 세상을 혼자 헤쳐 나가야 한다는 소리였다.

외로울 것이다.

그녀는 그게 무서웠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소예리는 이진아의 손을 놓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

눈을 크게 뜨는 이진아에게 그녀가 거듭 말했다.

사실 나도 무서웠어.

신유리 헌터나 신재헌 헌터에게 진짜 내 모습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건, 두 사람과 친해지고 나서도 사실 제가 이진아였노라 말하지 못했던 건.

두 사람이 제게 실망할까 두려워서였다.

처음에는 이진아로서 못되게 굴었던 것 때문에.

그리고 나중에는, 긴 시간 ‘소예리’라는 거짓 신분으로 두 사람을 속인 셈이 되어서.

두 사람이 떠나갈까 봐 말할 수가 없었다.

‘…….’

언젠가 밝혀야지, 하면서도 끝내 말하지 못했던 비밀은 뜻밖에도 이 던전 때문에 밝혀져 버렸다.

소예리 자신이 원치 않던 방식으로, 생각지도 못하던 타이밍에.

하지만 신유리도 신재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이안 헌터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알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그런 사람들이라는 걸.

내가 과거에 어땠고 누구였든지 간에 현재의 자신을 봐줄 사람이라는 걸.

하지만 소예리는 중요한 것을 몰랐다.

그녀는 자신조차 속이고 있었다.

세 사람이 떠날까 봐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이 신분을 속이고 접근했다고 생각할까 봐. 전처럼 지내지 못할까 봐.

하지만 과거를 밝히지 못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녀는 이 기억을 보면서 깨달아 버렸다.

그건 과거의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빛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이 초라한 것 같아서.

그렇게 ‘소예리’라는 거짓 신분 위에 쌓인 친분은 두터워져만 갔다.

그럴수록 진실을 밝히기는 어려워졌다.

내 존재는 결국 거짓 위에 쌓여 있으니. 인간관계에서 당연한 ‘신분’이라는 기본적인 것조차 속여 버렸으니, 두 사람이 느낄 배신감은 더할 거라고 생각해서.

올해만 넘기면 밝혀야지. 여름이 지나면 밝혀야지, 겨울이 끝나면 밝혀야지……. 그렇게 흐른 시간이 벌써 10년이었다.

하지만 이젠 알았다.

늦은 걸 아는 순간이 진짜 늦은 거니까,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했다.

난 그들에게 진실을 말할 것이다. 내 입으로. 이미 그들이 알게 되었다고 해도 직접 전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소예리는 그걸 깨달은 순간 과거의 자신, 이 시간대의 이진아가 뭘 후회했는지 명백하게 깨달았다.

신유리 헌터와 신재헌 헌터와 나란히 서고 싶어. 같은 곳에서 빛나고 싶어.

하지만 ‘이런 나’는 그 둘과 나란히 설 수 없을 것 같아서 과거를 지워 버렸다.

그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후회되었던 것이다.

자신을 부끄러워했던 과거가 후회되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었는데.

“안 부끄러워해도 돼, 진아야.”

소예리의 말에 이진아가 눈을 크게 떴다.

“제 이름을 어떻게―”

그렇게 물으려는 이진아의 입에 소예리가 검지를 살포시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예쁘게 웃었다.

“어때, 나 예뻐?”

그 말에 이진아는 홀린 듯이 답했다.

“예뻐요……. 눈부셔요.”

그야 그럴 것이다.

나는 내가 가장 변하고 싶은 모습으로 변한 거니까.

소예리 헌터가 옅게 웃었다.

“너는 나보다 더 예쁘고 눈부시게 자랄 거야. 네가 누구 옆에 서든 너를 부끄러워하는 건 너뿐일 거고.”

그녀가 이진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만 과거에서 벗어나면 돼. 너는 지금도 아름답고, 미래에는 더 찬란하게 빛날 거야.”

듣고 싶은 말을 들었어도 믿음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믿고 싶은 말을 들어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보이면 그렇다.

그럴 땐 믿음을 줘야 했다. 소예리는 자신 있게 웃었다.

“네가 예쁘다고 말해준 내가 확신할게. 너는 누구보다도 빛날 거야.”

그녀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너는 변할 필요 없어.”

새로운 모습도 필요 없어. 이대로, 이진아로서 살아가면 돼.

“아…….”

그 말은 이진아의 정곡을 찌른 듯했다.

[새로운 내 모습(L)]

소예리는 스킬창 한쪽의 버프가 깜빡이는 걸 보았다.

이진아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처럼.

하지만 과거는 바꿀 수 없다.

소예리 자신은 이 스킬을 안고 살아가게 될 터였다. 하지만 이진아까지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에 소예리는 이진아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고마워요.”

이내 이진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예리는 그녀의 눈가에 맺힌 작은 눈물을 닦아 주었다.

“자, 이제 여길 나가. 나가서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소예리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이진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할 수 있을까요?”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소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난 벌써부터 네가 눈부셔 보이거든.”

뭐든지 할 수 있어. 소예리가 그녀에게 손짓했다.

이제 가 보라는 듯이.

하지만 이진아는 머뭇거렸다.

“왜?”

소예리가 묻자, 이진아가 말했다.

“전에도 이랬거든요.”

이번엔 소예리는 미소를 감추었다. 의아한 얼굴만을 내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진아와 마주한 이래로 가장 환하게 웃고 싶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아서.

“호의를 받고도 무시했어요. 돌려주기는커녕 외면했는데…… 이제는 안 그러려고요.”

그래, 그런 마음이면 돼.

소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한테 선물이라도 줄 거야?”

그 말에 이진아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병실에서 급히 뛰어나온 그녀가 뭔가를 갖고 있을 리가 없었다.

허둥지둥 주머니를 뒤적이는 이진아를 보며 소예리가 생각했다.

예뻐. 너무 예뻐.

그렇게 웃은 소예리는, 저도 모르게 이진아가 꼭 쥐고 있는 것을 가리켰다.

“그럼 그걸 주는 건 어때?”

그건 구멍 난 양산이었다. 신유리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

“이건…….”

“마침 바깥 해가 너무 밝거든. 내게 꼭 필요한 물건이야.”

소예리의 말에 이진아가 머뭇거렸다.

“돌려줘야 할 사람이 있어요.”

그녀가 작게 말했다. 하지만 소예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네가 나가서 예쁜 양산을 사 줘. 그럼 그 애도 좋아할 거야.”

신유리 헌터는 양산이 돌아오는 것보다, 네가 건강해진 모습을 보여주는 걸 더 좋아할 테니까.

뒷말은 삼켰지만 이진아는 눈을 크게 떴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눈앞의 언니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아세요?”

“너도 이렇게 예뻐지면 다 알 수 있을걸?”

소예리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진아는 그녀를 보다가 결국 웃어 버렸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소예리에게 양산을 건네주었다.

“여기 있어요. 잘 써 주세요.”

“응. 고마워.”

이건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에 사용될 거야. 소예리가 속으로 뇌까렸다.

이진아는 그런 그녀에게서 몇 걸음 물러났다가,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응. 출구는 최상층이야. 나도 곧 따라 나갈게.”

소예리는 제가 왔던 길을 가리켰다.

“얼른 나가지 않으면 무서운 애들이 또 나올지도 몰라!”

그 말에 이진아는 멈칫했다.

“난 네가 나가는 걸 보고 나갈게.”

그 말에야 이진아는 걸음을 뗐다. 계단 쪽으로 향하던 이진아가 다시 고개를 돌려 소예리를 바라보았다.

소예리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잘 가!”

그녀는 후련하게 인사했다.

타다닥, 빠르게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소예리는 어린 제가 숨어 있던 공간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헌터채팅으로 반응이 왔다.

[유리유리>>> 어어]

[유리유리>>> 저 언니 나가는데? 안 막아도 돼요?]

[신재헌터님>>> 저대로 나가면 소예리 헌터님 모습으로 변할 텐데]

[유리유리>>> 뭐?]

세 사람은 소예리가 ‘일을 끝낼 때까지’ 숨어 있기로 한 참이었다.

그 자리에서 튀어나갈 것 같아서, 소예리는 빠르게 채팅을 올렸다.

[소예리>>> 아냐, 막지 마요]

[유리유리>>> 소예리 헌터님은요???]

[유리유리>>> 설마]

죽을 생각은 아니지, 라는 뒷말이 삼켜진 듯했다.

소예리는 빙그레 웃었다.

[소예리>>> 응, 이제 괜찮아요.]

이진아는 내 모습으로 변할 이유가 없어졌거든요.

소예리는 제 시스템창 건너로 흐릿하게 보이는 이진아의 시스템창을 보았다.

밖으로 나가는 이진아의 시스템창 어디에도 ‘새로운 내 모습(L)’이라는 스킬은 없었다.

그녀는 이진아의 모습 그대로, 새로운 S급 보조계 헌터의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녀가 옅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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