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이전에 들은 바로는 소예리 헌터의 회귀 스킬은, 작은 범위일수록 많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했다.
사람에게도 쓸 수 있는 스킬인 줄은 몰랐지만.
어떤 공간이 아니라 주이안 헌터의 시간만을 되돌린다면, 주이안 헌터의 시력은 돌아올 것이다.
실명 같은 상태이상 판정은 사망 판정에 비하면 무게가 가벼우니까.
문제는 주이안 헌터는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
소예리 헌터도 그걸 알아챘는지 답이 없었다.
주이안 헌터는 그런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침묵했다. 재촉보다 더 무서운 침묵이었다.
그는 마치 신재헌과 자신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는 듯했다.
아니, 자신을 버리고 신재헌을 택하라고 말하는 듯했다.
“제가 이 던전에 들어올 땐 이미 시력저하가 95%였어요.”
주이안 헌터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런 결말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닙니다. 아니…….”
잠시 말을 고른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들어올 때부터,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일이에요.”
그 말은 소예리 헌터가 회귀 스킬을 쓴다면 바로 신재헌을 살리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시력을 잃은 건 소생 스킬을 쓴 직후였으니까, 그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면 충분히 소생 스킬을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문제는 소예리 헌터가 얼마나 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지는 몰라도, 소생은 죽은 사람을 살리는 스킬이란 점이었다.
당연히 치유 계열 스킬 중에서도 상당히 무거운 스킬일 것이고, 그럼 주이안 헌터는 다시 시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은, 이미 이곳에서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 들어왔다고.
하지만 아무리 준비했다 한들, 한 점 미련 없는 죽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
난 주이안 헌터를 바라보았다.
당신도 결국 최선의 결과를 꿈꾸면서 들어온 거잖아.
결국 우리 넷이 함께 나가길 간절히 바라면서 들어온 거잖아.
“잔인한 선택이라는 걸 알아요.”
주이안 헌터의 담담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여전히 소예리 헌터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 생각하시면 돼요.”
뭘? 주이안이 죽는다는 걸?
여기서 작별인사를 하면 된다는 걸?
“여기서 제게 회귀 스킬을 사용하신다면 이곳에서 나가는 사람은 셋, 그러지 않으면 나가는 사람은 둘이 된다는 사실만요.”
“……아.”
난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소예리 헌터 역시 주이안 헌터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할 말을 잊은 듯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게 주이안 헌터가 간혹 듣는다던 악마의 속삭임일지도 몰랐다.
“어서요, 소예리 헌터님.”
주이안 헌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무나도 잔인한 말을 하고 있었다.
“망설이면 최악의 결과만 있을 뿐이에요.”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협박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주이안이라는 사람 입에서 나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단정적이고 살벌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 역시 주이안 헌터의 모습이었다.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았으니까.
소예리 헌터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
결국 긴 침묵 끝에 소예리 헌터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악마.”
그녀가 뇌까렸다.
부정하지 못하는 나와 부정하지 않는 주이안 헌터 사이로, 소예리 헌터가 손을 뻗었다.
[헌터 소예리(S)가 ‘회귀(SS)’ 스킬을 사용합니다.]
그녀의 몸 주변에서 금빛이 확 퍼져 나왔다. 시스템창을 본 걸까, 주이안 헌터가 다시 웃었다.
“네, 제가 나쁜 사람이에요.”
그가 속삭였다.
소예리 헌터님은 아무 잘못이 없어요.
마치 기도처럼 속삭이는 말과 함께, 금색 빛이 주이안 헌터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저게 시간의 힘인 모양이다.
그리고 이내.
“……!”
주이안 헌터가 천천히 눈을 떴다.
시력이 회복됐다는 건 소생 스킬의 사용 횟수도 돌아왔다는 것이다.
소생 스킬을 쓰기 전으로 시간이 되돌려졌다는 뜻이니까.
그는 시야가 회복되자마자 신재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주이안 헌터님.”
대체 뭐가 저 사람이 주저 없이 제 삶을 버릴 수 있게 하는지 난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내 부름에도 그는 답이 없었다.
답 대신, 저를 말리지 말라는 듯이 나와 소예리 헌터를 등져 버렸다.
―우웅!
주이안 헌터의 주변으로 빛이 떠올랐다.
그의 선택이었다. 정말 소생 스킬을 쓰려는 것이다.
난 그의 선택이라는 걸 알면서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야 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나는 그냥 여기 있고 싶어.
그냥 이 던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가지 않으면 던전과 함께 모두가 사라지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
조금 전, 난 새하얀 빛 사이로 집어삼켜지던 신재헌의 뒷모습을 기억했다.
그는 분명 나보다 먼저 봤을 것이다.
[자폭(L)]
보스가 무슨 스킬을 썼는지. 우리보다 조금 더 먼저 제 운명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몸을 피하지 않은 건, 끝내 검을 놓지 않았던 건, 제가 피하면 그 피해가 온전히 우리에게 온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이안 헌터는 신재헌의 선택을 되돌리려 하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말리고 싶었다.
“말리지 마세요.”
주이안 헌터는 온화하지만 명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집중이 깨져 소생 스킬이 잘못되면, 가장 슬픈 일이 일어날 테니.”
슬픈 협박이었다.
곧, 그의 손이 빛났다.
***
신재헌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시각을 박탈해버릴 만큼 강한 빛이었다.
아.
수많은 말이 담겨 있는 짧은 탄식이 새어 나갔다.
그는 늘 제가 갑작스러운 일도 잘 받아들인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던 듯했다.
[자폭(L) 99%]
그는 다른 헌터들보다 제 미래를 아주 조금 일찍 알았다. 의미 없을 정도로 조금 일찍.
짧은 순간 든 감정은 절망이었다가, 슬픔이었다가, 이내 감사로 돌아왔다.
아.
내가 와서 다행이야.
그가 생각했다.
신유리라면 ‘나는 언제나 네 앞에’ 스킬로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뭉친 마력이 너무 강했다.
누군가 몸으로 막아내지 않으면 뒤에 미칠 여파로 건물이 통째로 뜯어져 나갈 것이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무사할 리도 없겠지.
신유리도, 다른 두 헌터도.
그는 아주 짧은 순간, 내지르던 검을 바꿔 들었다. 근육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은 무시했다.
말레티아의 검이 검신이 넓은 검이라 다행이었다.
마치 방패처럼 보스 앞을 가로막은 그가 이를 악물었다.
[자폭(L) 100%]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다행스럽게도 통각이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통각은 더 이상 뇌로 어떤 감각을 전해주기를 포기했다.
숨을 들이마시거나 내쉴 틈도 없이 시각과 다른 감각이 새까맣게 물들어 버렸다.
그는 비명 사이로 제가 원하던 소리를 들었다.
―우우웅!
그건 보호막 소리였다. 물론 제 위로 덧씌워진 건 아니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보호막의 범위가 넓어져 봐야 강도만 떨어질 뿐이니까.
수없이 많은 보호막이 쳐지는 소리가 새까만 고통 속으로 묻혀 버렸다.
‘네가 죽으면, 나는 그 다음 날 죽겠다고.’
그렇게 약속했는데. 죽지 않겠다고, 네 삶의 끝을 나로 메워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신유리.
그가 생각했다.
모두가 죽거나 나 하나가 죽거나 둘 중 하나라면 나는, 네가 모든 것을 잃기보다는 단 하나만을 잃길 원해.
그는 마지막 순간 뒤를 돌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굳어버린 몸은 마지막 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동안 수도 없이 그리고 상상했던 신유리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조차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진짜 네가 보고 싶어.
소원은 까마득한 고통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새하얀 종이가 새까매질 때까지 칠해지고 또 칠해지다가 이내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을 이기지 못한 정신이 이내 멎었다.
아니, 멎었다고 생각했다.
[‘헌터 주이안(S)’이 ‘소생(L)’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시스템창을 재업로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