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시력저하 : 98%]
주이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눈앞이 흐리다고 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감각은 더 예민하게 살아나 전장을 살폈다.
“소예리 헌터님!”
그랬기에 그는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본능일지도 몰랐다. 긴 시간 힐러로서 전장을 오가며 얻게 된 감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오랫동안 병원에서 일하던 의료진들이 불가사의한 예감으로 환자의 이상을 예측하곤 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 미래를 바꿀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푸욱!
살벌한 소리가 들렸다. 뼈가 꺾이고 무언가가 관통당하는 소리.
사람의 소리.
사람이었던 것이 내는 마지막 소리.
[시력저하 : 99%]
뒤늦게 치유 스킬을 쏟아 부어도 소용없었다.
[‘헌터 소예리(S)’가 사망하였습니다.]
시스템창 한쪽에서 불이 꺼졌다.
“소예리 헌터님!”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절망할 틈은 없었다. 이대로면 모두가 죽게 될 것이다.
“앞만 봐요!”
그가 소리를 질렀다.
예민해진 기감이 두 딜러가 멈칫하는 것을 파악해냈다.
보이는 건 이제 거의 없었다.
[시력저하 : 99%]
시야가 흐려지고 좁아지니 시스템창만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어차피 각오했던 일이었다.
[시력저하 : 95%]
애초에 들어올 때부터 보이는 건 거의 없었다.
피할 수 있는 미래라면 피하는 것이 최상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늦게 선택할 생각은 없었다.
[소생(L) 스킬을 사용합니다.]
[WARNING! ‘특수 스킬’]
[소생(L) 스킬은 ‘야전병원(L)’ 스킬의 효과를 받지 않습니다!]
잡스러운 시스템창은 무시했다.
[적용 대상 : 소예리]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큰 마력이 빠져나갔다.
신재헌 헌터와 신유리 헌터가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주이안은 듣지 않았다. 말려도 들을 생각이 없었으니까.
이 던전에 들어올 때부터 수도 없이 결심했다.
내가 그 어떤 것을 잃어도 좋으니.
내가, 당신들마저 잃어도 좋으니.
당신들은 무사히 나갔으면 좋겠다고.
[강력한 치유 스킬 사용으로 ‘시력저하’ 페널티 효과가 강화됩니다(-10%).]
[시력저하(L) 페널티 100%]
[상태 재판정 중…….]
시스템창이 반짝였다.
완전히 어두워진 시스템창 한쪽에서 빛이 떠올랐다.
[소예리 헌터님 – S급(보조)]
그와 동시에 싸늘한 판정이 떨어져 내렸다.
[판정 완료.]
[‘시력저하(L)’의 완전 페널티 효과로 실명됩니다. (치유 불가 손상)]
[개인 퀘스트(MAIN) : 대가]
[클리어 조건 : 시력을 잃지 않고 던전 클리어]
[클리어 조건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던전 ‘연약한 시한부 영애가 되어버렸다(L)’의 탈출 조건을 만족할 수 없습니다.]
주이안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스킬 ‘야전병원(L)’ 유지 중]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그는 이 순간에 너무나도 감사했다.
상정했던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스템창도 보였고, 힐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아니, 이제는 오히려 마음껏 치유 스킬을 쓸 수 있었다.
[스킬]
그는 아예 스킬창을 펼쳐 놓고 본격적으로 치유 스킬을 쓰기 시작했다.
[기력 보충(S→SS) 스킬을 사용합니다.]
[치료(S→SS) 스킬을 사용합니다.]
소예리 헌터의 상태창에서 체력과 마력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어……?”
소예리 헌터의 의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생 스킬을 받은 후 어느 때보다도 깨끗한 버프창에 버프가 차올랐다.
아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어떤 상황인지는 아실 것이다.
죽으면 인벤토리가 비워지고, 가지고 있던 귀속 아이템과 착용하고 있던 아이템을 제외한 모든 아이템이 박살 나니까.
던전에서 용인된 죽음이 아니라 정말 ‘사망 판정’이었으니 소예리 헌터의 상태도 같을 터였다.
“……주이안 헌터님?”
[‘헌터 소예리(S)’가 ‘보호막(S)’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헌터 소예리(S)’가 ‘보호막(S)’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헌터 소예리(S)’가 ‘보호막(S)’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소생 스킬의 효과가 뛰어났는지, 그녀의 보호막은 어느 때보다도 견고했다.
“눈은요?”
비명 같은 목소리가 물었다.
주이안은 아주 잠깐 멈칫했다.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알고 계셨던 걸까. 그래서 아까부터 보호 스킬을 그렇게나 사용하셨던 걸까.
“이제 괜찮아요.”
주이안이 속삭이듯 말했다.
이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 말에 소예리는 답이 없었다.
그의 역설적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듯했다.
“일단 클리어하고 이야기해요.”
주이안은 평소라면 절대 입 밖으로 내놓지 못했을 말을 했다.
그러지 않으면, 소예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을 아니까.
“―그럼 작별할 시간은 있을 거예요.”
그가 생각했다.
이걸로 됐다고. 최악을 면했으니 됐다고.
나는, 괜찮다고.
……아마도 괜찮다고.
***
[‘헌터 주이안(S)’의 ‘치료(S→SS)’ 스킬 효과를 받습니다.]
주이안 헌터의 치유 스킬이 폭발적으로 들어왔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조심스럽게 스킬을 쓰는 경향이 있었다면,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고 질주하는 차 같았다.
이제는 스킬을 아무리 써도 상관이 없다는 것 같았다.
……아니, 그게 맞을 것이다.
울면 안 돼.
난 내게 끝없이 속삭였다.
눈물이 앞을 가리면 난 내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차갑고 냉정하게.
그냥 이게 다 꿈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걸 끝내면 깨어날 수 있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 가볍게 생각해…….
그러려고 해도 심장이 미어터질 것 같았다. 차오르는 복잡한 감정이 집중을 방해했다.
[‘헌터 주이안(S)’이 ‘순간집중(SS)’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헌터 주이안(S)’이 ‘통증경감(A)’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주이안 헌터의 스킬 효과가 계속 들어왔다.
“안 돼.”
뇌까리면서도 검을 내지르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춰서는 안 된다는 걸 아니까.
[매크로 ‘비켜(A)’를 사용합니다.]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뭘 지키기 위해 이러는지 아니까.
[‘헌터 소예리(S)’가 ‘보호막(S)’ 스킬 효과를 부여합니다.]
소예리 헌터는 사망 판정을 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다시 스킬을 쓰고 있었다.
[헌터 주이안(S)이 ‘소생(L)’ 스킬을 사용합니다.]
그 시스템창이 뜬 후 그녀는 정말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돌아보지 않아도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랬기에 난 돌아보지 않았다.
주이안 헌터의 소생 스킬은 딱 한 번.
이제는 소생 스킬을 쓸 수도 없으니 절대 죽어서는 안 된다.
누구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
그럼 주이안 헌터가 자신의 전부를 걸고 지켜낸 것을 잃고 만다.
그래선 안 돼.
[MRI기계(SS+) 75%]
하지만 체력이 내려가자 보스 몬스터는 또 다른 스킬을 사용했다.
[자기장결계(L)가 강화됩니다!]
―챙!
신재헌이 내지른 검이 아예 보스에게서 비껴 나갔다.
그만큼 결계가 강력해져 제대로 공격하기 힘들어졌다는 뜻이었다.
힐이 끊임없이 들어와도 이대로라면 절망적인 결론이 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저놈의 자기장결계를 없앨 방법이―
“……아.”
자기장결계가 없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다.
난 검 손잡이를 재차 말아 쥐었다.
어차피 저놈이 쓰는 스킬 종류는 뻔했다. 곧 그 스킬을 쓸 것이다.
이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스킬.
그 안에선 분명 공격이 제대로 통했다.
그럼 그때 모든 것을 걸고 잡을 수밖에 없었다.
[신의 상점 : Lv. 4]
난 신의 상점을 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