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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206)화 (206/218)

206화

어쨌든 이번 던전도 위험하지는 않을 터였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주이안 헌터가 두 번 실패해서 능력치가 60% 깎여 버렸고, 나랑 신재헌도 한 번 실패해서 30% 깎여 버렸지만.

싸울 일만 없으면 되는 거 아니냐?

게다가 곧 게이트 사태가 터지는 시점이라고 해도, 이 시기에 나타나는 게이트라면 위험한 것도 아니었다.

깎인 능력치로도 깰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던전엔 뜻밖의 위기가 있었다.

“그러게 거기서 미끄럼틀을 왜 타가지고.”

“내가 말했잖아. 다 그게 이유가 있다니까.”

“입만 살아가지고.”

나와 신재헌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난 화장실에 숨은 채 간신히 숨을 돌리고 있었다.

내 뒤로는 현재 시점의 신재헌과 소예리 헌터가 쫄쫄 붙어 있었다.

“마주치는 줄 알았네.”

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던전 최대의 위험은 뜬금없이 입원한 나와 신재헌이었다.

마주쳤으면 나랑 신재헌은 그대로 즉사였다.

“넌 알았어? 우리 오는 거?”

본의 아니게 남녀혼성 화장실이 되어버린 곳에서 신재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주이안 헌터랑 먼저 한번 시도해봤으니까 알겠…….

……지?

“그럼 왜 말을 안 해?”

내가 어이가 없어 묻자 신재헌이 볼을 긁적였다.

“깜빡했어.”

L급 던전에서 사망플래그를 까먹는 S급 헌터가 있다???

실례지만 돌으셨습니까?

난 머리 옆으로 손을 빙빙 돌려 보였다.

일단 이대로 화장실에 있다가 다른 환자가 들이닥치면 큰일이었으므로, 난 나갈 기회를 노렸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여기 그 병실이구나.”

당연하겠지만 과거의 신재헌이 입원했던 병실이면 뻔했다.

“그럼 그 언니도 있으려나?”

난 흘끗 밖을 내다보았다.

내가 보고자 하는 사람은 창가 자리인 데다 늘 커튼을 치고 있었으니, 여기서 보일 리가 없었다.

“넌 멸치 많이 먹어라. 뼈 튼튼해지게.”

“싫어. 엄마가 멸치 손질할 때 멸치 똥이 있다는 무서운 얘길 했거든.”

그 사이 신재헌과 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연히 십 년 전 우리의 목소리였다.

“뭐?”

과거의 내 말에 멈칫한 과거의 신재헌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야, 다 닦아서 볶겠지.”

“넌 멸치가 변 닦는 거 봤냐?”

과거의 내가 펼친 논리에 과거의 신재헌이 잠시 조용해졌다.

“……뼈는 멸치 말고 다른 걸로 튼튼하게 만들자.”

픽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쪽팔리기도 했다.

“……시끄럽다는 소리 들을 만도 했네.”

한도 끝도 없이 우스갯소리를 해대는 걸 듣고 있자니, 맞은편 언니가 왜 화냈는지 알 것 같았다.

“좀 조용히 할 수 없어!?”

아니나 다를까, 맞은편 언니가 성질을 내는 게 들렸다.

언니! 죄송합니다!

난 이 시간대의 나 대신 벽에 이마를 박았다.

―콩.

근데 머리 박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소예리 헌터님이었다. 저쪽은 벽에 기대려고 했던 모양인지 옆머리가 벽에 닿아 있었다.

벽 사이의 좁은 틈으로 신재헌과 시선이 마주쳤다.

“저때 좀 입만 살아 있었거든요.”

난 여전히 밖에서 떠드는 과거의 나와 신재헌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떨떠름하게 말했다.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작게 웃었다.

“밝고 좋은데요, 왜.”

“그래요?”

그래도 아픈 사람들은 예민하니까. 난 볼을 긁적였다.

그러는 사이에 난 가만히 있는 신재헌을 올려다보았다.

“넌 왜 멍하니 있어?”

아까부터 생각에 잠긴 것 같더라니, 뭔가 있는 건가?

“이때…….”

아니나 다를까, 신재헌이 입을 열었다. 그는 심각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병원 밥 엄청 맛없었는데.”

난 나도 모르게 그의 다리를 걷어차 버렸다.

***

주이안 씨는 같은 던전을 세 번째 온 사람답게 능숙해 보였다.

병원 직원으로 위장한 그가 과거의 우리를 상대하는 사이, 우리는 무사히 병실을 탈출할 수 있었다.

“…….”

그때까지도 소예리 헌터는 유독 조용했다.

뭐라도 생각 중이신가?

적어도 신재헌처럼 영양가 없는 생각, 아니 영양가랑 관련은 있지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계시진 않는 게 분명했다.

“흐음.”

우리가 나온 곳은 병원 옥상의 정원이었다.

신재헌이 입원했을 때도 안 와봤던 곳이었다.

난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여긴 ‘기억-소예리’. 즉 소예리 헌터의 기억이다.

근데 이 병원엔 이상하게도 소예리 헌터가 없었다.

“…….”

이상함을 느끼는 게 당연했지만, 그리고 그게 무엇 때문인지 소예리 헌터는 알 법도 했지만 아직도 말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던전 클리어를 시도해본 주이안 헌터나 신재헌도 알고 있을 법한데 하나같이 입을 닫고 있었다.

두 사람마저 입을 닫는다는 건 소예리 헌터에 대한 중요한 사실이라는 건데.

난 벤치에 앉아 발장구를 치고 있는 소예리 헌터를 바라보았다.

“…….”

언뜻 보기엔 장난스러워 보였지만 제 발끝을 보는 시선은 복잡해 보였다.

소예리 헌터님이 병원을 나갈 생각을 안 하시는 걸 보면 분명 클리어할 열쇠는 여기 있는 것 같은데.

적어도 하나만 알려줘!

“이 시기에 소예리 헌터님도 여기 있었던 거죠?”

정황상 확실해 보였지만 한 번 더 확인하려고 물은 것이었다.

소예리 헌터는 눈에 띄게 멈칫했다. 허공을 걷던 두 발이 멎었다.

그녀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답이 느려도 지나치게 느렸다.

난 거기서 확신을 얻었다.

역시 소예리 헌터는 이 당시가 기억이 안 나서 저러고 있는 게 아니라, 이 기억 자체를 곤란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

그녀는 고뇌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곳이 드러내기 싫은 기억인 모양인데, 이 던전을 클리어하려면 결국 드러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고뇌라기보단 마음의 준비에 가까울 터였다.

뭐 때문에 저러실까.

생각해 봤지만 난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조용한 소예리 헌터는 처음 봐서. 그만큼 심각해 보여서.

하지만 느낌이 왔다.

소예리 헌터는 머지않아 마음의 준비를 마칠 것이었다.

***

그 후 은령고 게이트 소식이 들렸다.

과거의 나와 신재헌은 당연히 저 게이트에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은령아파트, 기현상 발생]

속보가 떴다.

“…….”

뉴스를 보면서 난 입술을 깨물었다.

이때 나와 신재헌이 조금만 더 일찍 나와서 저 게이트를 클리어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클리어하고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박살을 내 버리고 싶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기억-소예리’의 목적이 그건 아닐 테니까 자제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은령아파트 인근 진입 통제…… 당국 조사 중]

뉴스 화면에는 기이한 빛으로 휩싸인 은령아파트가 있었다.

이 시간대의 저 안엔…… 내가 뵙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을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가 이렇게나 잘 컸노라고, 엄마아빠한테 말씀드리면 다시 웃어 주실까.

내가 어렸을 때처럼.

“…….”

난 애써 뉴스에서 시선을 돌렸다.

“흑.”

그때 문득 병실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모자를 푹 뒤집어쓴 채 얼굴을 가린 우리는 병실 앞 의자에 앉아 있었기에 더 잘 들렸다.

울음소리?

병실 안을 흘끗 돌아보니 울 만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커튼으로 가려진…… 아아니, 커튼 걷었잖아?

난 재빨리 모자로 얼굴을 가리면서 문제의 환자를 살폈다.

이때 우리 맞은편에 있던 사람.

내가 걸어준 양산이 햇빛을 가려주고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눈에 띄는 건 그녀의 표정이었다.

우리보고 화낼 땐 언제더니, 우리가 잘못됐다는 소식엔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눈에 보였다.

미안해.

그렇게 입으로 뇌까리는 것도 보였다.

사람이 아파서 예민해지면 그럴 수도 있죠, 뭐.

“…….”

그런데 문제의 언니는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그그그그렇다고 울 필요까진 없잖아! 우리 살아 나온다고요!

‘빨리 안 가?’

얼른 꺼지라는 듯이 말하더니 역시 속은 말랑한 언니였음이 분명했다.

지금은 뭐 하고 계시려나?

다 낫고 집 가셨으려나? 좀…… 낫기 힘든 병 같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 말고 난 문득 중요한 걸 떠올렸다.

“잠깐만…….”

은령종합병원에도 게이트 사고 있지 않았나?

내가 눈을 크게 뜬 순간이었다.

―파앗!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밤낮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병실의 불이 꺼졌다가 켜지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빠르게 흐르던 시간이 멎었을 때.

―우우웅!

난 기이한 마력의 흐름을 느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돌발게이트의 범위에 들어섰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이 게이트화되었다.

[던전 ‘강제휴식(A)’―]

그런데 눈앞에 뜨던 시스템창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

시스템창의 움직임은 소예리 헌터와 신재헌도 봤는지, 돌발게이트엔 놀라지도 않던 두 사람이 눈을 크게 떴다.

“시스템창이 이상합니다!”

주이안 헌터가 우리 앞으로 급히 뛰어든 순간.

일그러졌던 시스템창이 새까맣게 변하면서, 새하얀 글씨를 띄웠다.

[던전에 진입한 헌터의 수준을 따라 게이트의 난이도가 재설정됩니다.]

[확인된 고랭크 헌터 : S급(5명)]

“어?”

우린 이 시간대에 있지도 않은데 던전이 우릴 인식한단 말이야?

아니, 그것보다 이상한 게 있었다.

[5명]

다섯 명이라고? 놀란 내가 눈을 크게 떴을 때였다.

―파앗!

병실 안쪽에서 마력의 파동이 느껴졌다.

―쾅!

본능적으로 병실 문을 열어젖힌 난, 늘 커튼이 쳐져 있던 자리에서 각성의 빛을 발견했다.

커튼이 기의 움직임에 일렁이면서, 가렸던 침대 일부가 드러났다.

그러자 침대 아래에 붙어 있던 환자의 이름도 보였다.

[이진아]

난 살짝 입을 벌렸다. 그리고 그런 내 앞에 시스템창이 떴다.

[등급 조정 완료.]

[던전 ‘심해(深海)-강제휴식(SS+)’에 진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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