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내 친구는 어디 갔어?”
신유리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쪽이 ‘가짜’라는 확신이.
신재헌은 멈칫했다. 그렇게 위화감이 컸나?
하긴, 신유리가 바보도 아니고 10년이나 시간 차이가 나는데 위화감을 못 느낄 리가 없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소예리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게 할 방법이.
그때 신유리가 말했다.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마. 너한테 랭크가 안 보이는 것만으로도 가짜라는 증거는 충분하니까.”
그 말에 신재헌은 저도 모르게 신유리를 홱 돌아보았다.
단도에 스치면서 목에 생채기가 났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난 랭크가 보일 때가 거의 없어. 랭크가 낮아서 그런가?’
‘그래? 뭐 어때. 나도 안 보이는데.’
이 당시의 신유리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아마 그건 거짓말이었던 모양이다.
그래, S급이 ‘헌터의 육감’이 그렇게 늦게 발달할 리가.
내가 무안할까 봐 자기도 안 보이는 척한 것이다. 신재헌이 쓰게 웃었다.
“…….”
과거의 신유리와 현재의 신재헌의 시선이 마주쳤다.
과거의 신유리는 고작 S급 초입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독하게 마음먹어도 현재의 신재헌을 절대 죽일 수 없을 터였다.
같은 S급이라도 까마득한 경험과 스탯의 차이가 있었으니까.
반면 신재헌 쪽에서는 신유리를 제압하기 쉬웠다. 하지만, 그는 절대 할 수 없었다.
그가 S급 상위가 아니라 L급 헌터가 된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내가 어떻게 네게 손을 대겠어.
그가 속으로 뇌까렸다.
“말하지 않으면 죽이고 찾을게.”
그때 신유리가 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덤덤한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명백한 살기가 신재헌에게 향했다.
결국 신재헌이 입을 열었다.
“믿을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하면 이 신유리가 나를 믿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진짜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하나 꺼냈다.
[도금 목걸이(C)]
목걸이를 알아본 신유리가 눈을 크게 떴다.
“만져보면 알겠지만 네가 준 C급 목걸이야. 정확히는 C급인지 모르고 준 것이었지만.”
둘이 같이 랭크를 확인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기에, 신재헌은 목걸이를 그녀에게 들이밀어 보였다.
―찰랑.
목걸이를 만져본 신유리는 눈을 크게 떴다.
“……애장품?”
아, 애장품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지.
신유리가 놀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신재헌이 웃었다.
“알다시피 애장품은 사칭 절대 못 해.”
“…….”
신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선 의심과 경계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현재 시간대의 신재헌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는 뜻이리라.
신재헌은 그 굳건한 안목에 소리 없이 웃었다.
그래, 내가 너를 어떻게 속일까.
그가 입을 열었다.
“난 미래에서 왔어.”
“?”
그 말에 신유리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스킬인지는 몰라도 장난칠 생각은 하지 마.”
쉽게 믿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신재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믿어도 돼. 난 내 시간대의 네가 날 믿으면 그걸로 족하니까.”
“뭐?”
신유리가 다시 멈칫하는 사이, 신재헌은 화장실 쪽을 흘끗 쳐다보다가 말했다.
“이 시간대의 나는 잠깐 재워 놨어. 마주치면 안 돼서. 곧 일어날 거야.”
주이안 헌터님이 목을 부러뜨리진 않은 것 같으니까……. 뒷말은 이어봐야 좋을 게 없었으므로 그는 자연스럽게 뒷말을 삼켰다.
“…….”
신유리는 여전히 그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었다.
소예리 헌터는 곧 돌아올 거고, 과거의 신재헌 자신도 소예리 헌터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던전은 끝날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이 빨리 자리를 비워 줘야 했다.
하지만 신재헌은 과거의 신유리 앞에서 쉽게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능숙하게 ‘적’을 상대하려는 신유리가 안쓰러워서.
너는 내가 못 보는 사이에도 수없이 이런 일을 마주친 걸까.
누군지 모를 의심스러운 자들이 접근하면 그들을 막고, 나는 그것도 모르고 멀쩡해 보이는 널 보면서 웃고.
“……만난 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신재헌은 결국 입을 열었다.
과거의 그녀와 현재의 그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러니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러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
신유리는 여전히 단도를 그의 목에서 거두지 않은 채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일부러 강한 척 안 해도 돼.”
그런 그녀에게 신재헌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단도가 조금 흔들렸다.
“알아. 너도 무서운 거.”
이 시간대의 나도 알아. 그의 말에 신유리가 눈을 크게 떴다.
“네가 뭘 무서워하는지도 알아.”
신재헌은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너도 나도, 혼자가 될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혼자 꼿꼿이 서서 버티려고 하지 마.
때로는 넘어지고 쓰러져도 괜찮아.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신유리는 그런 그의 말을 듣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나 대신 죽을 거라며?”
그래, 이때는 그런 생각으로 옆을 쫓아다녔던 것 같다.
‘웃기지 마십쇼.’
이때의 너는 그냥 웃으면서 넘긴 줄 알았는데.
역시 아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가장 비밀이 없는 친구라고 생각했으면서, 가장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몰라.
신재헌은 가만히 신유리를 보다가 답했다.
“맞아. 그렇게 결심했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그는 단도를 꼭 쥐고 있는 신유리의 손을 잡아 내려주었다.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되면 너는 혼자 남게 되더라고.”
신유리는 제 손이 잡힌 줄도 모른 채 가만히 그를 보고 있었다.
정곡을 찔린 것처럼.
“그게 너한테 더 무서운 결말이라는 걸, 이때는 몰랐어.”
“…….”
신유리는 침묵했다. 그녀의 손에서 힘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내 존재를 믿는 걸까.
신재헌은 그런 그녀에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미래에는 다르게 약속할게. 네가 죽으면, 나는 그 다음 날 죽겠다고.”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네 삶의 마지막에 반드시 내가 있겠다고.”
눈을 크게 뜨는 신유리의 손을 그가 두드려 주었다.
“너무 세게 쥐면 근육 다친다.”
그 말을 듣고서야 신유리는 단도를 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신재헌>>> 이제 깨우셔도 될 것 같아요.]
신재헌은 채팅을 올리면서 말했다.
“갈게.”
잘 있어. 그리고 이따가 보자.
너는 이 말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상관없어.
언제든 다시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니까.
그렇게 뇌까린 그가 신유리의 앞을 벗어났다.
[주이안>>> 네, 그럼.]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몰라도 상황은 지켜보고 있었는지, 주이안의 답은 빠르고 짧았다.
자리를 벗어난 신재헌의 눈에, 과거의 자신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신재헌!”
다짜고짜 저를 끌어안는 신유리를 보며, 과거의 신재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그들을 보는 사이, 시스템창이 떴다.
[‘기억-소예리’]
[실패하였습니다.]
뭐? 신재헌이 눈을 크게 떴다.
[주이안>>> ?]
[신재헌>>> 어?]
대체 왜?
[처음으로 리셋됩니다.]
[‘헌터 주이안(S)’이 ‘기억의 무게2(L)’ 효과를 받습니다(능력치-60%).]
주이안 헌터가 두 번 실패라고?
그럼 한 번 더 실패 시 사망이라는 뜻이었다.
뒷골이 오싹해진다고 생각한 순간.
―파앗!
시야가 바뀌면서, 신재헌과 주이안은 다시 처음의 병실로 돌아왔다.
아니, 이번엔 둘뿐만이 아니었다.
시스템창과 함께 신유리와 소예리까지 소환되었다.
“!”
네 명이 모두 모인 것이었다.
***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웬 병원이었다.
[병실 내 생활수칙
1. WAIT! 간호사 선생님을 기다려주세요!
2. WARNING! 물 등의 액체는 흘린 즉시 닦아주세요. (낙상위험)
……]
근데 벽에 붙어 있는 생활수칙이 어딘가 익숙했다.
특히 그 아래의 마크와 병원의 이름이.
[은령종합병원]
……우리 동네 병원이 여기서 왜 나오냐?
내가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시스템창이 번쩍였다.
[파티원이 모두 같은 시공간에 모였습니다.]
[파티 정보가 재정렬됩니다.]
[가장 적격성이 높은 정보를 동기화합니다.]
[은하서버 정보 검색 중…….]
오, 설마?
내가 시스템창에 시선을 고정한 순간, 기다렸던 문장이 떴다.
[‘헌터 신유리(S)’의 정보를 동기화합니다.]
예에쓰! 내 정보 어서 오고! 이야, 반갑다^^!
“여긴?”
난 내 정보가 제대로 들어왔음을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와 함께 날아온 게 분명한 소예리 헌터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반면 주이안 헌터와 신재헌은 비교적 평온했다. 신재헌은 팔짱을 낀 채였다.
“일단 나가죠.”
신재헌이 손짓했다.
하긴, 병실 한가운데에 네 명씩이나 멍청하게 서 있는 것도 이상하게 보일 법했다.
난 내 손에 들린 물건을 내려다보았다.
[비타67]
[이웃에게 선물하기 좋은 비타민 음료!]
[먹기만 해도 힘이 쑥쑥! 67세 할아버지도 67층까지 완주 가능!]
과대광고로 안 잡혀가나?
아무튼 선물용 음료가 들려 있는 걸 보면 대충 이 기억 속 사람들에겐 어떤 환자의 문병객으로 보일 듯했다.
[예리언님>>> 맞아맞아 병실 한가운데서 길 막으면 안 돼! 일단 나가자!]
그때 소예리 헌터의 채팅이 떴다.
아직 떨떠름한 기분이 가시기도 전에, 그녀는 성큼성큼 병실 밖으로 향했다.
“?”
묘한 기분을 느낀 난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두 남자도 내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소예리 헌터가 고민 없이 향한 곳은 비상계단이었다.
“이쪽으론 사람들 잘 안 오니까 이야기하기 편할 거예요.”
소예리 헌터는 왠지 좀 허둥거리는 것 같았다.
난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여기 와보셨어요?”
신재헌 입원했을 때도 비상계단은 안 와본 것 같은데?
이런 데가 있을 줄 알았으면 여기서 떠들었지!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잠깐 멈칫했다.
“와보……긴 했죠.”
난 그 말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여기 우리 동네 병원인데? 이 근처 사셨나?
……소예리 헌터 출신지는 불명일 텐데?
혹시 은령구가 알고 보니 S급 헌터의 성지? S급을 세 명이나 뽑아낸 거야?
내가 온갖 생각에 고개를 기울였을 때였다.
“여긴 소예리 헌터님의 기억입니다.”
주이안 헌터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
아까 ‘기억-신재헌’에서야 신재헌과 채팅이 안 돼서 정답(?)을 물어볼 수 없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본인이 바로 옆에 있으니 이 시간대의 본인이 뭘 원했는지만 물어보면 될 터였다.
이번에야말로 커닝 기회다!
난 소예리 헌터를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볼을 긁적였다.
근데 왜 병원이 배경이지?
“시간대는 게이트 터지기 직전이에요.”
신재헌이 주이안 씨에 이어 말을 얹었다.
아까부터 왠지 여유롭더라니, 먼저 와 있었던 듯했다. 나랑 소예리 헌터가 같이 다른 기억에 있는 사이에.
“뭐 기억나는 거 있어요?”
난 소예리 헌터에게 슬그머니 물었다.
움찔.
그리고 다시 그녀가 미세하게 움찔하는 것을 발견했다.
아까부터 반응이 묘했다. 이 기억에 뭔가 있는 것처럼.
……혹시 비밀로 하고 싶은 기억인가?
과거를 잘 밝히지 않으셨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기억이 안 나네에.”
소예리 헌터가 말끝을 길게 늘이면서 말했다.
“10년이나 지나서요. 일단 둘러봐야 알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 기억이 그녀에게 어떤 기억인가를 떠나서 10년 전 일을 곧바로 떠올리라고 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나만 해도 10년 전에 뭘 원했는지 물어보면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헌터가 되고 나서는 살아남기 급급했으니 논외로 치고, 학교 다닐 땐 역시…….
……급식에 토마토 스파게티 나오는 거?
난 볼을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