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한편 주이안은 눈앞에 뜬 시스템창을 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리셋됩니다.]
그 시스템창과 함께 그는 ‘기억-소예리’의 시작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앞으로 불쑥 한 사람이 더 나타났다.
“!”
멈칫하면서 주이안을 돌아보는 남자는 다름 아닌 신재헌이었다.
“어?”
당황한 소리를 내뱉는 신재헌을 주이안은 자세히 살폈다.
조금 전에 과거의 신재헌을 봤기 때문에 더 확실히 구분되었다.
눈앞의 그는 현재 시점의 신재헌이었다.
“이 병원이 왜…….”
신재헌은 당황한 얼굴로 병실을 둘러보고 있었다.
“일단 이쪽으로 오세요.”
주이안은 그런 그에게 손짓했다.
병실 한가운데에서 이야기를 나눠 봐야 시선만 끌 뿐이니까.
신재헌은 제 복장을 확인했다. 대충 후드에 검은 바지 차림.
눈에 띌 만한 복장이 아님을 확인한 그가 주이안을 따라갔다.
“어느 분 찾아오셨어요?”
지나가는 간호사가 묻는 말에는 자연스럽게 답했다.
“아, 층을 헷갈렸어요.”
보호자인 척 자연스럽게 답한 그가 간호사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주이안은 그런 그를 비상계단으로 이끌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많은 병원의 특성상, 비상계단 쪽은 한산했다.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주이안이 입을 열었다.
“여긴 소예리 헌터님의 기억입니다.”
“아.”
신재헌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가 소예리 헌터의 기억이면, 과거의 소예리 헌터는 어디로 간 거지?
그 생각을 하기도 전에 주이안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한 번 실패했습니다.”
실패해서 처음으로 돌아왔다고?
눈을 크게 뜬 신재헌이 주이안을 돌아보았다.
“어쩌다가요?”
“일단…….”
주이안은 제가 던전에서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뭘 하다가 실패 판정을 받아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는지.
이야기를 듣던 신재헌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잘한 것 같은데요?”
왜 실패했지? 뭐가 만족이 안 돼서?
“일단 지켜보죠.”
어쨌든 여기에 가만히 있어 봐야 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신재헌은 비상계단 문을 열면서 물었다.
“그래서 소예리 헌터는 어디 갔어요?”
그 말에 주이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답했다.
“……지켜보시면 알 겁니다.”
“?”
신재헌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알려주면 될 것을 굳이? 혹시 말로 설명하기 힘든가?
대체 뭐길래?
신재헌은 일단 주이안과 함께 원래 있던 병실로 돌아왔다.
“오.”
그리고 그 병실이 지나치게 익숙하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여기 저도 입원했었는데.”
딱 이 병실이었는데?
주이안을 돌아보니 놀라는 얼굴은 아니었다. 신재헌은 빠르게 눈치챘다.
“혹시 이 기억에 제가 입원하는 게 나옵니까?”
“네.”
주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기는 분명한데…….”
게이트 사태 직전. 신재헌은 흘끗 병실 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진아]
예상대로 있었다. 맞은편 침상에 있던 사람.
저 누나도 오랜만이네.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과거의 신재헌과 신유리는 신재헌이 기억하던 것처럼 이진아의 앞자리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그리고.
[은령고등학교, 기현상 발생]
뉴스가 떴을 때.
신재헌은 후드를 푹 뒤집어쓴 채 다른 사람의 보호자인 척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진아의 표정을 발견했다.
“아…….”
그녀는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앞에 있을 땐 얼른 꺼지라는 듯이 눈살만 찌푸리던 그녀는 눈이 빨개지도록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울 것 같기도 했다.
“……미안해서 어쩌지.”
그녀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신재헌은 볼을 긁적였다.
아니, 본인이 게이트 만드신 것도 아니고 미안하긴 뭘.
사람이 아프면 예민할 수도 있지.
과거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현재의 그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돌발 게이트의 범위에 들어섰습니다!]
병원이 게이트화되고, 눈앞의 이진아가 헌터로 각성하기 전까진.
[던전 내 기여도%
- 이진아(S)]
그리고 게이트화된 병원에서 헌터는 이진아 한 명뿐이었다.
“어?”
신재헌은 눈을 크게 떴다.
저 마크는 분명 보조계의 마크다.
S급…… 보조계?
이 시기에 각성한 사람이 흔한 것도 아니고…….
“…….”
신재헌은 멈칫하다가 침대보를 다시 뒤집어쓰는 이진아를 흘끔 살폈다.
“헛것이 보이네.”
그렇게 투덜거리는 목소리는 매사 해맑은 소예리 헌터와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신재헌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소예리에 대해 아는 것들을 떠올렸다.
물론 아는 것이야 차고도 넘쳤지만 그중에서, 소예리의 과거에 관한 것들을.
그녀는 과거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었기에 떠올릴 것도 많지 않았다.
[출신지 불명]
그리고 그녀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출신지 불명의 헌터라는 것을 떠올렸다.
주민등록에 진심인 나라답게 사람들은 소예리가 어디에서 튀어나온 사람인지 궁금해했지만, 누구도 그녀가 어디 출신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언어도 습관도 모두 한국인 그 자체인데, 출신 지역만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저 그녀의 말투를 보고 서울 토박이일 것이라는 이야기만 돌 뿐이었다.
하지만.
각성 시기는 분명…… 이쯤이었다.
신재헌은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난 두 사람한테 관심이 많아요.’
‘왜요?’
‘그야 생사가 오가는 헌터계에서 택하기 쉬운 조합은 아니니까?’
그는 언젠가 제 앞에 나타났던 소예리를 떠올렸다.
그렇게 말하는 소예리의 금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정말 그게 흥미뿐이었을까, 아니면…….
신재헌은 은령고 게이트 소식에 눈물짓던 이진아의 모습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눈을 감았다.
……당신이었구나.
‘신세를 진 게 좀 많아서요.’
그렇게 말하던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그렇게 마음에 담아둘 필요는 없었는데.
신재헌이 쓰게 웃었다.
[던전 내 기여도(%)
- 이진아(S)]
아직도 시스템창엔 ‘소예리’가 아니라 ‘이진아’로 올라왔으니까.
시스템창은 속일 수 없는데.
어떻게 ‘소예리’가 된 거지?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
이진아가 빠진 게이트는 높은 등급도 아니었기 때문에, 처리해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흐음.”
물론 문제가 있긴 했다.
신재헌은 힐러의 상태창을 보면서 말했다.
스킬창을 보니 정말 치유 스킬과 보조 스킬뿐이었다.
[……
순간집중(SS)
야전병원(L)
집중치료(SS+)
]
근데 스킬창 마지막 줄에 있는 이 공백은 뭐지?
오류인가?
그가 생각할 때였다. 주이안이 곤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아직 보조계 스킬에 익숙하지 않아 크게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얼음 감옥(S) 스킬을 잘도 쓰고 있었다.
“좀만 마음을 바꿔 먹으시면 훌륭한 딜러가 되실 것 같은데요.”
신재헌은 주이안이 반쯤 쓸어버린 병원의 몬스터들을 보면서 말했다.
“그런가요?”
주이안은 온화한 미소로 답했다.
신재헌은 그 모습을 보다가, 가끔 몬스터가 나타나면 막대기로 두드려 패기만 했다.
주이안의 스킬을 쓸 생각은 절대 없었으니까.
[시력저하(L) 95%]
이게 더 올라가서는 곤란하니 말이다.
―팍!
물론 아무리 힐러가 힘 스탯이 약하다고 해도 휘둘러 오던 기술이 있으니, 몬스터들은 한 방에 무너져 내렸다.
―크아아!
울부짖으며 달려오던 트롤리도 그가 휘두른 폴대에 한 대 맞고는 침묵해 버렸다.
“보스 몬스터는…….”
그렇게 그들이 들어선 맨 마지막 방에는 웬 거대한…….
[보스룸에 입장합니다!]
[BOSS : 거대 주사기(A)]
……주사기가 있었다.
신재헌은 사람 팔 한쪽은 빨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주삿바늘을 보다가, 들고 있던 폴대를 냅다 휘둘렀다.
―콰지직!
그러자 주사기의 주삿바늘이 꺾이면서 심상치 않은 소리를 냈다.
주사기가 비틀거리는 틈을 타, 신재헌은 주사기의 가운데를 걷어차 버렸다.
―쾅!
총알처럼 벽으로 날아간 주사기는 그대로 박살이 나 버렸다.
아직 이진아가 이곳으로 올라오기 전이었다.
[던전 ‘강제휴식(A)’ 클리어!]
클리어창과 함께 좀 더 선명한 시스템창이 떴다.
[파티원이 ‘기억-신재헌’을 클리어했습니다.]
“오.”
여기에 나랑 주이안 헌터가 있으니, 저쪽에는 신유리나 소예리 헌터가 있을 텐데.
……내 기억?
뭘 봤을까?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건 없었다.
***
신재헌은 이진아가 게이트를 나가고 나서야 그녀의 비밀을 완전히 알게 되었다.
―파앗!
눈부신 빛에 휩싸인 이진아는 곧 신재헌에게 익숙한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익숙한 붉은 머리와 금안이 보였다.
신재헌은 그 모습을 멀리서 내려다보았다.
“……모습이 바뀌셨던 거네요. 나오시면서.”
주이안과 그가 서 있는 곳은 병원이 내려다보이는 근처 건물의 옥상이었다.
주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뭔가…… 이유가 있었을 텐데.”
신재헌은 눈을 가늘게 떴다.
짐작도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만큼.
하지만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모습까지 바꿀 필요가 있었을까?
아니, 정확히는 소예리 자신이 모습을 바꾸는 스킬을 일부러 쓴 것도 아니었다.
간절하고 또 간절한 소원이었기에, 스킬로 발현되어 모습이 알아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상태창에 나타나지도 않을뿐더러 지금까지 몇 번이고 버프 스킬 무력화를 맞아도 사라지지 않았던 걸 보면 높은 등급의 패시브 스킬일 가능성이 컸다.
그만큼 그녀는 새로운 사람이 되길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이진아라는 이름을 버리고, 소예리라는 사람이 되기를.
―타다닥!
그리고 그런 그녀는 과거의 신재헌과 신유리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누가 이미 해결했다는데?’
‘뭐?’
꼭 자신과 신유리가 곤란에 처할 때면 어김없이 튀어나와서 도움을 주던 누군가를 기억했기에, 신재헌은 그 모습을 쓴맛을 삼키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생각으로 그녀가 그렇게 행동하는지 서서히 알 것 같아서.
그때까지도 과거의 소예리는 절대 과거의 신재헌과 신유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대체 누굴까?”
그렇게 궁금해하는 신유리가 주변을 이 잡듯이 뒤져 봐도 들키지 않았다.
“!”
그야 찾을 수 없었겠지.
과거의 소예리의 뒤를 쫓던 신재헌은 헛웃음을 지었다.
신유리의 추격(?)에 들킬 위기에 처하자, 소예리 헌터가 곧장 지하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지하탐험(B)’ 스킬인 듯했다.
“이 근처에 인기척이 있었는데.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과거의 신유리가 사라지고 나서야 소예리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재헌은, 숨었던 몸을 일으켰다.
그와 함께 가만히 소예리를 지켜보고 있던 주이안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신재헌이 입을 열었다.
“왜 실패가 떴는지 알 것 같네요.”
주이안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신재헌은 그런 그에게 제 계획을 설명했다.
“……!”
이야기를 들은 주이안은 멈칫했다.
“위험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재헌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이거 말곤 방법이 없어요. 게다가.”
그가 아래를 가리켰다.
신유리와 함께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는 과거의 제 모습을.
“어차피 과거의 저하고만 안 마주치면 되니까요.”
시도할 가치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