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화
“몰아세워요?”
소예리 헌터가 되묻자, 신재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걔는 귀신도 무서워하거든요. 세상에 없는 것도 무서워하는데 몬스터는 얼마나 무섭겠어요.”
아니, 하나도 안 무서운데.
난 나도 모르게 속으로 답했다.
그 답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신재헌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무서운 티를 안 내요. 안 무섭대요, 하나도.”
그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안 무섭다면서 제 손을 자꾸 잡아요. 어디 가지 말라고.”
난 그 말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안 무서웠다.
몬스터는 하나도 안 무서웠어.
나도 네가 없어질까 봐 무서웠던 거지.
“아무래도, 신유리 헌터가 울고 있나 봐요.”
난 순간 나를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래서 움찔했지만 곧 과거의 나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아챘다.
“아뇨, 그 애는 제 앞에서 울지 않아요.”
신재헌이 말했다. 소예리가 고개를 저었다.
“몰래 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더니 작게 속삭였다.
“나도 봤거든요.”
순간 소예리 헌터가 나를 돌아본 것 같았다. 착각이었을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어요. 속으로 우는 사람들. 신유리 헌터도 그런 상황일지도 몰라요.”
그러자 신재헌이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위로가 필요 없으면요? 다 제 오해였다면요?”
소예리 헌터는 그 말에 손을 펴 보였다.
“그럼 신재헌 헌터님이 오지랖 부리는 사람 되는 거죠. 그런데 만약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면.”
잠시 말을 멈췄던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보다 고마울 수 없겠죠.”
그녀의 말에 신재헌은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소예리 헌터가 재차 말했다.
“‘난 민망하거나 곤란해도 되지만 신유리는 안 돼’. 그게 신재헌 헌터님 생각 아니에요?”
그러자 신재헌이 슬그머니 소예리 헌터에게 시선을 올렸다.
“……혹시 마음을 읽는 스킬도 있나요?”
그 말에 소예리 헌터가 멈칫했다.
그리고 바로 채팅이 올라왔다.
[소예리 헌터>>> 귀 여 워!!!!!!!!!!!!!!!!!!]
그야말로 포효였다.
소예리 헌터를 보니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게, 눈앞의 어린 신재헌이 귀여워서 참기 힘든(?) 것이 분명했다.
저러다 끌어안을 기세였다.
거기서 그러면 안 돼!
[신유리>>> 진정해요 릴렉스]
“아뇨.”
다행히 내 채팅과 동시에 소예리 헌터가 입을 열었다.
채팅과 말을 헷갈리지 않는 데에 성공한 그녀가 말했다.
“그런 스킬은 없어요. 대신 신재헌 헌터님 눈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네요.”
그녀가 예쁘게 웃었다.
***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의 신재헌은 조금 후련한 얼굴이었다.
몰랐는데, 다시 보니 어린 신재헌은 지금보다 훨씬 솔직하고 순수한 면이 있었다.
“얘기하다가…… 울면 어떡하죠?”
소예리 헌터가 다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신유리>>> 참아 안돼]
[소예리 헌터>>> ㅠㅠ]
초면인 누님에게 끌어안길 위기란 걸 알 리 없는 신재헌은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흥분(?)을 갈무리한 소예리 헌터가 입을 열었다.
“울어도 괜찮아요. 신재헌 헌터님도 울고 싶으면 울어야죠. 같이 얼싸안고 우는 거예요.”
그러자 신재헌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 애는 제가 무너지면 안 돼요. 불안해할 거예요.”
듣는 사람 속이 아리게 하는 말이었다.
소예리 헌터도 그랬기 때문일까, 다소 늦게 답했다.
“아뇨, 그래도 돼요. 억지로 단단해 보이는 것보단 서로 부둥켜안고 한바탕 울어서, 풀고 나아가는 게 좋아요.”
그녀가 손을 펼쳐 보였다.
“강해 보이는 사람도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데가 있어야 하는 법이거든요.”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아…….”
소예리 헌터의 말에서 신재헌은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감사합니다.”
어린 신재헌이 고개를 숙였다.
귀엽고 안쓰러워.
난 눈을 감았다.
***
다음 날, 과거의 나와 신재헌은 던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가는 던전을 보던 난 멈칫했다.
“아, 저기!”
십 년 가까이 지났는데 기억에 남는 던전이라면?
뭔가 엿 같은 점이 있었다는 뜻이다.
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가 이내 떠올렸다.
“아!”
“무슨 일 있었어요?”
소예리 헌터가 물었다. 우리는 빌딩 옥상에 서 있었다.
과거의 나와 신재헌이 들어가는 게이트가 잘 보이는 곳이었다.
“설마 와아아안전 어려운 던전?”
소예리 헌터가 물었다. 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고.”
그러다가 볼을 긁적였다.
“사기당했거든요.”
“네?”
소예리 헌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된 거냐면…….”
난 간단하게 설명했다.
당시 나와 신재헌은 던전 클리어엔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던전의 꽃이라는 던전 부산물을 캐낼 시간도, 능력도, 인벤토리도 부족했다.
그래서 부산물을 캐는 전문 업체에 외주를 줬는데.
“저 던전 돌 때 외주 넣은 업체가 먹튀했거든요.”
“오.”
소예리 헌터가 감탄했다.
마침 그 먹튀범들이 과거의 우리가 들어간 던전 앞에서 연장을 챙기고 있었다.
“원래 가져가기로 한 게 10%인데, 우리가 받은 게 전체 부산물 수입의 5%가 안 됐어요.”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멈칫했다.
“……웬일로 숫자까지 기억해요?”
난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
“딜러는 엿 먹은 건 안 까먹거든요.”
“아하.”
소예리 헌터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사기꾼들을 본 이상 우린 가만히 있지 않았다.
―타탁!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옥상에서 뛰어내린 우리는 순식간에 던전 앞으로 다가갔다.
“자자, 들어갑시―”
마침 던전에 진입하려던 놈들은 불쑥 우리가 나타나자 멈칫했다.
“댁들은 뭐야?”
그들은 광물 캐라고 있는 곡괭이를 우리에게 위협적으로 들이댔다.
하긴, 그럴 만큼 우리 모양새가 좀 수상하긴 했다.
후드에 모자까지 푹 뒤집어써서 얼굴을 가렸으니까.
“착하게삽시다협회에서 나왔습니다.”
난 대충 답했다. 그러자 놈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뭐라는 거야?”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이, 일단 들어가!”
놈들은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꼈는지 던전으로 몸을 던지려고 했다.
―탁!
난 그런 놈들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여 주었다.
“사기 치지 말고 착하게 살자, 응?”
그들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아직 본색(?)을 드러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아는지 궁금하겠지?
“어, 어떻게……!”
―퍽! 퍽!
물론 그걸 답해줄 생각은 없었으므로, 난 그들의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켜 버렸다.
“그럼 갈까요?”
우린 대충 그들에게서 던전 인벤토리 확장용 백팩과 곡괭이만 뺏은 다음 던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던전 ‘동네 뒷동산(B)’에 입장합니다.]
***
우리는 앞서가는 과거의 나와 신재헌과 조금 거리를 두고 따라가고 있었다.
물론 걸음 속도는 확연히 차이 났으므로, 심심풀이로 부산물 채집도 하고 있었다.
“부산물 채집은 처음 해보는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손에 들려 있던 광석이 파삭 박살 나 버렸다.
“이렇게 무른 걸 어디다 써요?”
난 손을 탁탁 털었다. 소예리 헌터가 어이없는 얼굴로 말했다.
“B급 광석이면 밖에서는 총알에 흠집도 안 나거든요?”
그러거나 말거나 내 손엔 으스러지는 물렁한 두부일 뿐이었다.
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는 사이 과거의 나와 신재헌은 조금씩 던전에서 전진하기 시작했다.
우린 물렁한 광석을 뒤로하고 그들을 따라갔다.
“힘들진 않아?”
그리고 던전을 중간 정도 지날 즈음에, 어린 신재헌이 불쑥 입을 열었다.
과거의 나는 가볍게 답했다.
“괜찮아~!”
힘찬 답변이었다. 하지만 신재헌의 표정은 무거워 보였다.
‘안 힘들어?’
‘괜찮아.’
실제로도 저런 대화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마다 신재헌은 다행이라며 웃어 주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닌 것 같은데.”
과거와 대화가 달라지고 있었다.
“응?”
과거의 내가 신재헌을 돌아보았다. 신재헌은 과거의 나를 빤히 보면서 물었다.
“그럼, 왜 새벽에 울었어?”
―탁.
과거의 내 가벼웠던 발걸음이 멎었다.
내가 울었던 새벽, 신재헌이 그 소리를 들었다는 걸 처음 알았던 때의 나처럼.
“……들었어?”
약간의 텀을 두고 과거의 내가 물었다.
신재헌은 답하는 대신 되물었다.
“왜 참았어?”
“응?”
“왜 숨죽여서 울었냐고.”
그 말에 과거의 나는 답하지 않았다.
저 질문에는 지금도 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신재헌 앞에서만큼은,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듣길 원하지 않아서? 네가 울면, 내가 불안해할 것 같아서?”
하지만 과거의 신재헌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과거의 나는 답하지 않았지만, 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었다.
내가 울면 네가 혹시나 떠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너는 너 때문에 내가 힘들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
과거의 내가 만들어낸 침묵은 긍정이나 다름없었다.
어린 신재헌은 과거의 나를 보다가, 탁 풀린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마.”
그 말은 지금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아닌 걸 알면서도. 난 멍하니 어린 신재헌을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강해질 이유가 없잖아.”
그 말에, 과거의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
과거의 나와, 내 입에서 동시에 탄식 같은 것이 흘러나왔다.
너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강해지고 싶었던 거구나.
나를 위해서. 내가 안심했으면 하는 마음에.
“예쁘기도 하지.”
지켜보던 소예리 헌터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녀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신재헌의 말이 곧바로 이어졌기에.
“울어. 울어도 돼.”
그 말은 가슴을 저릿하게 울리는 듯했다.
“넌 울어도 강하고, 울어도 신유리야.”
멈칫한 과거의 나에게, 현재의 나에게. 과거의 신재헌은 현재의 신재헌도 하지 못한 말을 해주고 있었다.
“억지로 버티지 마. 내가 더 빨리 네 옆에 설게.”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건 강한 결심이었다.
[히든 퀘스트 : 강해져야만 하는 이유]
신재헌의 시스템창에 흐릿하게 퀘스트가 떴다.
과거의 신재헌이 받은 퀘스트일 것이다.
“네가 걱정하지 않을 만큼 강해져서, 네 곁에 오래도록 있을게.”
그가 속삭였다.
“네가 눈을 뜨는 순간과 감는 순간 언제나, 네 옆에 있을게.”
네 시야의 처음과 마지막을 반드시 나로 채울 테니.
어린 그가 나를 끌어안았다.
“응…….”
결국 과거의 내가 눈을 감았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울음이 터졌다.
아주 오래전부터 신재헌이 품어온 마음이 전해져 와서.
그 순간.
[‘기억-신재헌’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시스템창이 뜨면서 세상이 어둑해졌다.
그의 말대로, 어두워지는 시야에 마지막까지 담겨 있는 건 그였다.
신재헌,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