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201)화 (201/218)

201화

[신재헌 / 27세, 딜러(S)]

낯설지만 익숙한 시스템창이 다시 나를 반겼다.

정말 처음으로 돌아와 있었다.

두 번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아니, 왜 실패했는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물론 알려주면 L급 던전이 아닐 터였다.

심지어 불만이 있어도 뇌까릴 수조차 없었다.

어두운 헌터협회 복도. 문 너머에서 어린 내 울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내 과거이니 더 잘 알고 있었다. 복도에서 인기척을 내면 곧바로 알아챌 것이다.

[1/3]

기회가 두 번 남았다고 뜨는 게 보였다.

[실패 페널티로 전체 능력치가 30% 하락합니다(디버프:기억의 무게(L)).]

뭘 때려 부술 일은 많이 없는 데다가, 게이트 초기 시점이라 던전들이 그리 어렵지도 않으니 문제는 없을 터다.

내가 눈을 가늘게 떴을 때였다.

[헌터 소예리(S)가 ‘기억-신유리’를 클리어했습니다!]

시스템창과 함께 누군가가 소환되었다.

그건 당연히 내 기억을 클리어했다는 소예리 헌터였다.

“?”

근데 자세가 좀 이상했다.

뭘 끌어안고 있었는지 허공에 팔을 벌린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소환된 게 보였다.

“?”

“!”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난 나도 모르게 채팅으로 물었다.

[신유리>>> 제 기억에서 그렇게 사람 안아줄 일이 있었어요?]

대체 뭘 하고 온……, 잠깐, 채팅 되네?

같은 시간대라서 되는 건가?

아무튼 궁금한 건 그대로였으므로 난 소예리 헌터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소예리 헌터가 슬그머니 자세를 바로 했다.

[소예리 헌터>>>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아무튼 있었어]

[신유리>>> ?]

아무래도 제대로 말해줄 생각은 없는 듯했다.

와중에 신재헌의 시스템창이라고 신재헌이 헌터채팅에 저장해둔 대로 이름이 뜨는 게 보였다.

그렇다고 내가 한 채팅이 신재헌으로 나오는 건 또 아니었다.

거참 혼란스러운 던전일세.

그나저나 이 새X 건조한 거 봐라.

그럼 주이안 헌터님은 주이안 헌터고 나는 신유리 헌터―

[유리]

난 순간 표정관리를 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으으으음! 으으으으으음!

[신유리>>> ……아무튼 현재 버전 소예리 헌터님 맞죠?]

알고 보니 과거 시점의 소예리 헌터인 건 아니지?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예리 헌터>>> 클로나 에이센이었다가 들어온 소예리 맞아요!]

그럼 현재 시점의 소예리 헌터가 확실했다. 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 소예리 헌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예리 헌터>>> 근데…….]

그녀는 여기가 어딘지 모르는 듯했다. 그러다가 벽에 새겨진 글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소예리 헌터>>> 헌터협회?]

난 고개를 끄덕였다.

[신유리>>> 맞아요. 게이트 사태 터진 지 얼마 안 됐을 때 헌터협회 건물이에요]

[소예리 헌터>>> 아…… 여긴 누구 소원 들어주는 곳이에요?]

소원 들어주는 곳? 표현이 아기자기한데 맞는 말이긴 했다.

난 볼을 긁적였다.

[신유리>>> 신재헌이요]

[신유리>>> 근데 한 번 실패함ㅠㅠ]

내 채팅에 소예리 헌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예리 헌터>>> 에에엥?]

내가 신재헌의 소원을 못 이뤄줄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러게요, 저도 몰랐습니다.

내심 자신 있었는데. 난 재차 볼을 긁적였다.

[신유리>>> 어떻게 된 거냐면…….]

난 간단하게 설명했다.

어떤 상황이었고 내가 이 던전에서 뭘 했는지.

그리고 실패한 순간까지.

[소예리 헌터>>> 아하…….]

말할수록 이해가 안 돼서 얼굴을 구기는 나와는 달리, 소예리 헌터는 뭔가 알아챘다는 얼굴이었다.

이내 그녀가 미소 지었다.

[소예리 헌터>>> 뭐 때문인지 알 것 같아요]

[신유리>>> 엥 진짜?]

네, 진짜. 그렇게 말하듯이 소예리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예리 헌터>>> 나 알 것 같아, 이 던전.]

***

일단 우리는 소예리 헌터의 의견대로 ‘기억-신재헌’을 클리어해보기로 했다.

그녀는 처음엔 나와 비슷하게 클리어를 하나 싶더니, 불쑥 제안했다.

“일단 신재헌 헌터하고 직접 이야기해 볼게요.”

신재헌은 지금 헌터용 수련관에 들어가 있었다. 우린 그 옥상에 있었고.

난 눈썹을 치켜올렸다.

“만나면 망하잖아요?”

목에 손도 그어 보였다. 끽 사망 아닙니까?

하지만 소예리 헌터는 고개를 저었다.

“이 시점의 신재헌 헌터는 나를 모르잖아요?”

“아…….”

그러네???

나야 어른이 됐을 뿐이지 과거의 나와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달라지진 않았으니, 신재헌 앞에 나타나는 순간 사망 위험이었다.

이 시간대의 나와 마주치면 끝이니까.

하지만 소예리 헌터는 아닐 터였다.

“그으럼, 기다려 보라구~”

그렇게 말한 소예리 헌터가 헌터전용 수련관으로 뛰어 내려갔다.

난 그녀와 적당히 거리를 벌린 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로 결정했다.

신재헌의 스탯으론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소예리 헌터는 신재헌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명랑하게 인사했다.

그러자 당연히.

“……누구시죠?”

신재헌은 경계했다.

“저도 헌터죠. 헌터수련장인데.”

소예리 헌터가 뻔뻔하게 이야기했다. 슬쩍 보니 검을 들고 허공에 휘둘러 보이고 있었다.

난 눈을 크게 떴다.

[신유리>>> 잠깐 그거 내 스킬]

[소예리 헌터>>> 유리 헌터님 상태창이더라구~]

……생각보다 휘두르는 폼이 괜찮으신데?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소예리 헌터가 본격적으로 어린 신재헌을 구워삶기 시작했다.

“딜러신 것 같은데, 저도 딜러거든요. A급.”

구라치지 마! S급이잖아! 원래 보조계잖아!

“고민 있어 보이셔서요. 도와드릴 건 없나 하고요.”

그녀의 말에 신재헌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가 누군지 알고 오신 겁니까?”

이때의 신재헌은 예민했다.

신유리의 짐덩어리로 소문이 파다하게 나 있을 시기였으니까.

하지만 소예리 헌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나쁜 소문 돈다는 것도. 그래도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요.”

그녀는 거짓말하는 대신 정공법을 택한 듯했다. 상대가 신재헌이니 나쁜 접근법은 아니었다.

“저 사람 신재헌하고 친한가?”

“누군데?”

그때 수련장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

소예리 헌터가 흘려보낸 살기에 헌터들이 움찔했다.

“딴 데 가서 수련하자.”

“그러게. 오늘 컨디션이 좀…….”

그들은 재빨리 자리를 비워 버렸다. 그만큼 날카로운 살기였다. 나조차도 좀 놀랄 정도로.

저 사람 보조계 맞아? 사실 딜러가 잘못 전직한 거 아니야?

“어때요? 제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는데.”

소예리 헌터가 사람을 쫓아낸 걸 보고서야, 신재헌은 조금 이야기를 할 생각이 든 듯했다.

“……일단 이야기할 만한 곳으로 가죠.”

신재헌이 인벤토리에 검을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이때의 검은 당연히 말레티아의 검이 아니었다.

그러자 소예리 헌터의 표정이 밝게 폈다.

“좋아요! 내가 멋진 바로 데려다줄게! 이런 날엔 술이지!”

그러자 신재헌이 멈칫했다.

“저 고등학생인데요.”

걸어가던 소예리 헌터는 다리가 꼬일 뻔했다.

그녀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어린 친구들(?)의 입맛을 잊은 것이 분명한 그녀가 불쑥 물었다.

“그럼 우유?”

그러자 신재헌이 얼굴을 구겼다.

“저 그냥 가도 됩니까?”

이야기 시작도 전에 불발 위기였다.

[소예리 헌터>>> 뭔데 취향이 뭔데 키 크니까 우유 아니었어?]

[신유리>>> 커피!!!! 카페카페카페카페!!]

난 다급히 채팅을 갈겼다.

“카……페는 어때요?”

간신히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소예리 헌터가 물었다. 신재헌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러면서 소예리 헌터를 따라 순순히 출구 쪽으로 갔다.

내가 있는 입구 쪽과는 반대방향이라 내가 들킬 일은 없었다.

소예리 헌터는 신재헌을 데리고 가면서 채팅했다.

[소예리 헌터>>> 으음 어린 신재헌군 순진해요~]

그야…… 어리니까……★

***

난 두 사람이 카페에 자리를 잡은 후, 시간차를 두고 근처 자리에 앉았다.

물론 신재헌의 위치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을 사각지대였다.

신재헌의 스탯이면 이 정도 거리에서도 이야기를 엿듣는 데에는 차고도 넘쳤다.

“뭐가 고민이에요?”

소예리 헌터가 물었다.

신재헌은 앞에 놓인 음료를 두 손으로 잡은 채 고민했다.

쉽게 입을 열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하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다짜고짜 와서 고민 털어놔보라고 하면 보통 저러지…….

하지만 소예리 헌터는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내 이야기부터 할까요? 난…….”

그녀는 이 시점의 신재헌은 알 리가 없는 미래의 이야기로 먼저 신재헌의 혼을 쏙 빼놨다.

그러면서 신재헌이 입을 열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결국 그렇게 돌고 돌아 이야기를 나눈 끝에, 소예리 헌터는 신재헌의 말에서 요점을 짚었다.

“그니까, 신유리 헌터랑 랭크 차이가 크게 나서 고민하는 거구나?”

그러자 신재헌이 소예리 헌터를 올려다보았다.

소예리 헌터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펴 보였다.

“제가 알기론 랭크업이 불가능한 건 아니래요. 실제로 ‘성장 히든 퀘스트’ 같은 걸 본 사람들도 있고.”

물론 이 시점에는 랭크업한 사람이 있다고 알려지지 않았다.

소예리 헌터가 말한 저 ‘성장 히든 퀘스트’를 본 사람은 미래의 신재헌일 터였다.

지금의 신재헌에겐 놀랍고도 희망적인 이야기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신재헌은 의외로 놀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봤어요.”

아, 이미 본 시점이었어?

“오.”

소예리 헌터도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신재헌은 여전히 고민에 잠긴 얼굴이었다.

“성장하면……, 랭크업하면, 그애를 지킬 수 있겠죠?”

신재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예리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그 애는 S급인데도요?”

그 말에 소예리 헌터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쪼옥 빨더니 가볍게 답했다.

“그럼 S급이 되면 되죠.”

신재헌이 어이없는 얼굴로 그녀를 보는 게 보였다.

“C급에서 S급까지 올라가라고요?”

신재헌의 물음에 소예리 헌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신재헌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말이 되느냐는 것처럼.

그걸 실제로 해내는 게 너야.

난 소리 없이 웃었다. 그 사이 소예리 헌터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안 될 게 뭐 있어요?”

밑도 끝도 없는 긍정 마인드였다.

하지만 신재헌은 부인하지 않았다. 제 가능성을 부인하고 싶지 않은 것이리라.

소예리 헌터는 그런 그를 지켜보다가 물었다.

“던전이 무섭진 않아요?”

그 말에 신재헌은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안 무서워요.”

그러다가 멈칫하더니 말을 정정했다.

“아니, 무서운데, 음…….”

난 그가 말을 잇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너는 던전이 무서운 게 아니라, 내가 다칠까 봐 무서웠던 거지.

너 대신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내가, 너 때문에 다칠까 봐.

이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았다.

하지만 신재헌의 말은 조금 의외였다.

“제가 유리를 몰아세우고 있는 것 같아서, 그게…… 무서워요.”

그 말에 난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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