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이 던전에 실제로 당시의 신유리와 신재헌이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시신뿐이었을 테니 던전을 클리어하기는 오히려 쉬웠을 것이다.
지켜야 할 사람들이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신경 쓰면서 박살 내야 했다.
―쨍!
그래도 신유리와 신재헌이 몬스터를 처리하는 걸 보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슬쩍 그들을 살핀 소예리가 다시 위층으로 올라왔다.
―기이이잉!
그리고 내부를 뽐내며 달려오는 냉장고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
―콰직!
선명한 소리와 함께 우그러뜨려진 냉장고가 벽에 처박혔다.
그러자 그 뒤에 있던 또 다른 냉장고가 곧바로 덮쳐 왔다.
그건 다름 아닌 김치 냉장고였다.
“어휴. 집마다 냉장고가 몇 대야, 도대체!”
그렇게 말하는 소예리는 네 사람이 같이 사는 주택에 냉장고를 네 대로 만든 주범이었다.
‘사람마다 하나씩은 있어야지!’
넣을 게 많은 걸 어떡해!?
이해는 가지만 막상 몬스터화되는 꼴을 보니 냉장고가 많은 집을 보면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S급 딜러 스탯을 갖고 있는 그녀에게 냉장고 몇 대 부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콰직!
―쾅!
살벌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가전제품들부터 처리하니, 탈출하지 못하던 사람들도 금세 뛰어 나갈 수 있었다.
“감, 감사합니다!”
“얼른 내려가자!”
그리고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다.
그런데 던전 이름이 ‘일상파괴’인 데다가, 일상적으로 쓰던 가전제품이나 전자제품이 모두 몬스터로 변한 상황이었다.
과연 엘리베이터가 멀쩡할까요?
“계단으로 가세요!”
―콰직!
엘리베이터 문을 박살 내버린 소예리가 말했다.
엘리베이터 안쪽으로 날아가 버린 문짝에 무언가 맞는 소리가 났다.
―크오옷!
심지어 열 받은 듯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와 함께 아래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빠른 속도로 올라왔다.
“그럼 그렇지.”
역시 엘리베이터는 몬스터화되어 있었다.
―쿠쿵!
소예리는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 걸 기다렸다가 그대로 발로 밟아 버렸다.
―콰직!
그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는 불이 꺼지면서 절명해 버렸다.
“와…….”
그 모습을 도망치던 사람들이 멍하니 쳐다보았다.
소예리가 손짓했다.
“얼른 나가요.”
“넵.”
하나 확실한 건 엘리베이터를 탈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싹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올라오는 길에 CCTV도 다 박살 냈으니까…….”
비상계단에 있는 CCTV가 갑자기 사람을 공격할 리는 없을 터였다.
“위층 괴물들이 다 죽어 있어!”
그때 신유리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재빨리 아래층으로 향한 소예리가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내가 쓸었어용~!”
그 말에 신유리와 신재헌이 멍청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대체 언제……?”
“그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아아무튼 신경 쓰지 마!
소예리는 재빨리 모습을 감추었다.
잡스러운 몬스터들은 다 쓸어버린 것 같으니 이제 보스 몬스터가 뜰 때였다.
“보스 몬스터로 뭐가 나오는 거지?”
분명 커다란 기계일 텐데?
냉장고도 아니고 컴퓨터도 아니고 세탁기도 아니고…….
그렇게 고민할 때였다.
―쿠르릉. 쿵.
―부우우웅!
저 아래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울렸다.
아래를 무심코 내려다본 소예리가 기겁했다.
보통 아파트 지하에 있는 것. 그것도 우글우글 모여 있는, 커다란 기계 덩어리.
잊고 있던 게 있었다.
“자동차!?”
***
이곳이 B급이 아니라 A급 정도였으면, 건물이 무너지든 말든 자동차들은 천장을 부수고 뛰쳐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B급인 덕에, 건물을 다 부수는 것보단 그냥 곱게 출구로 나오는 게 에너지 소모가 적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자동차들은 일제히 출구로 쏟아져 나왔다.
―탁!
S급답게 소예리와 비슷한 타이밍에 주차장의 이상을 깨달은 신유리가 그 앞을 막았다.
뒤이어 벽을 몇 번 딛고 뛰어내린 신재헌이 그 앞에 섰다.
[이족보행자동차(B)]
그들 앞에 어디서 PPL이라도 받은 것 같은 자동차 보스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대의 자동차가 합체했는지, 거대한 모습의 보스 몬스터는 어깨와 팔에만 몇 대의 자동차를 달고 있었다.
“……!”
신유리는 커다란 보스 몬스터에 당황한 것 같았다.
소예리는 잠시 뛰어내려 저들을 도와야 하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신유리가 들고 있던 막대기 끝에 몇 개의 잔상이 맺히더니.
―콰지직! 콰득!
살벌한 소리와 함께 잔상이 거대한 보스 몬스터를 꿰뚫었다.
―쿠쿠쿵……!
무거운 것이 억지로 한데 뭉쳐 있었기 때문일까, 연결부를 공격당한 보스 몬스터는 쉽게 무너졌다.
물론, S급의 공격이기 때문에 쉽게 무너진 탓도 있을 것이다.
“안 도와줘도 되겠네~”
소예리가 기쁜 얼굴로 말했다.
아마 실제로 이곳에 들어왔을 어린 신재헌 헌터와 신유리 헌터도, 이렇게 간단히 보스 몬스터를 해치웠을 것이다.
그러면서 울었을 것이다.
조금만 더 빨리 왔어도 모두를 구할 수 있었을 거라고.
[던전 ‘일상파괴(B)’를 클리어하였습니다!]
시스템창이 번쩍였다.
소예리는 시스템창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꺼버리고는 신유리와 신재헌을 살폈다.
“엄마, 아빠!”
신유리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가 누군가를 끌어안는 게 보였다.
신재헌도 숙모에게 다시 다가가 이야기하는 게 보였다.
“삼촌은요?”
“저기.”
그의 숙모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중년의 남자를 가리켰다.
“안타깝게 안 죽었네요.”
“얘는!”
신재헌의 숙모가 그의 등짝을 때리는 게 보였다.
신재헌이 그제야 웃었다.
저분들이 두 헌터의 가족이었구나.
두 어린 헌터는 정말로 안도하고 있었다.
이게 실제였으면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허상이었다.
“일단 나가요.”
신유리 헌터가 부모님을 이끌었다. 신재헌도 내키지 않는 얼굴로 삼촌을 옆구리에 낀 채 숙모에게 손짓했다.
“정말 저기로 가도 되는 거야?”
두 사람이 살린 사람들은 게이트 너머가 안전한지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게이트를 하나 클리어해본 신유리와 신재헌은 그 너머가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넘어가야 안전해요.”
그러면서 신유리는 주변을 살폈다.
자신들을 도와준 소예리가 어디로 갔는지 궁금한 게 분명했다.
소예리는 슬그머니 몸을 숨겨 버렸다.
고맙다는 인사는 필요 없었으니까.
도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
소예리가 그렇게 웃을 때였다.
“그럼 나갈게요!”
신유리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자신이 나가면 다른 사람들도 믿고 나갈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소예리는 숙였던 몸을 펴고 두 사람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웅!
그리고 다음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아…….”
신유리 헌터는 부모님의 손을, 신재헌 헌터는 숙모의 손을 잡고 게이트를 넘었지만, 넘어간 것은 신재헌과 신유리뿐이었다.
같이 게이트에 들어가려던 두 헌터의 가족들은 게이트를 넘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도 다른 생존자들은 놀라지 않았다.
분명 방금까지 안전을 논하던 사람들이었는데도 그랬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게이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보였다.
소예리는 신유리와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리는 그녀의 부모님을 보다가,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참 잔인한 던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우웅!
소예리가 흘끗 게이트 너머를 살폈다.
현재 그녀가 가지고 있는 신유리의 스탯은 S급 상위.
이곳은 기껏해야 게이트 초반에 열린 B급 던전.
랭크의 격차가 확연하면 게이트 바깥의 모습이 보인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소예리의 눈에는 게이트 너머가 새까매 보였다.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였다.
이곳이 그냥 기억 속의 공간이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기억-신유리’라는 던전 속의 공간.
그걸 사람들도 아는지, 모두들 아쉬운 표정으로 게이트를 보고만 있었다.
나갈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탁.
소예리가 걸음을 옮겨도 그녀에게 시선만 줄 뿐, 그녀의 등장에 의아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게이트에서 죽은 사람들의 혼이 있다면, 그들이 만일 이 모습을 봤다면, 보고 있다면 이럴 거라고 말하는 걸까.
게이트의 의도도, 시스템의 의도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소예리는 그녀답지 않게, 연구본능을 불태우는 대신 신유리와 신재헌의 보호자들에게 다가갔다.
“…….”
신재헌의 숙모와 신유리의 부모님은 친한 사이인지, 나란히 선 채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따라가지 못한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소예리는 어린 신재헌을 못살게 굴며 학대했다는 그의 삼촌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바닥에 쓰러진 채 게이트를 넘지 못했다.
소예리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두 헌터의 보호자들을 불쑥 끌어안았다.
“!”
화들짝 놀란 세 사람이 소예리를 돌아보았다.
“누구……?”
이 시점에 두 사람의 보호자가 소예리를 알 리가 없었다.
하지만 소예리는 빙그레 웃었다.
“친구예요. 신유리 헌터하고 신재헌 헌터 친구.”
이 시기에는 헌터라는 호칭이 낯설었을 텐데도, 그들은 다른 것에 반응했다.
“친구?”
“이렇게 예쁜 언니 친구도 있었어?”
신재헌의 숙모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소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어요. 생겼어요.”
안타까운 미소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하는 말이 실제로 이 사람들한테 닿지는 않을 것이다.
소예리는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만일 시스템에 모든 사람의 기억이 남아 있어 이들이 이렇게 움직이는 거라면.
이 말이 전해졌으면 좋겠어. 그녀가 생각했다.
“두 사람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녀의 말에 세 사람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예리가 눈을 감았다.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잘 견뎠고, 잘 견디고 있어요.”
그녀가 옅게 웃었다.
“그래서 지금은 너무나도 강하고, 예쁘고, 당당하게 자랐어요.”
소예리가 세 사람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위험해지면 제가 지켜줄 거예요.”
그러니 편히 눈 감으세요.
소예리는 마지막으로 세 사람의 미소를 본 것 같았다.
―파앗!
그렇게 어두워진 시야에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기억-신유리’ 클리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