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세 사람이 각자의 던전을 도는 동안.
소예리는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낯설고도 익숙한 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이 학교 또 보네.”
거긴 다름 아닌 은령고등학교였다.
조용한 복도 한가운데에서 소예리는 시스템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기억-신유리’에 입장합니다.]
[‘헌터 신유리(S)’의 정보를 동기화합니다…….]
당황스러운 내용의 시스템창을 보던 소예리가 슬그머니 상태창을 켜 보았다.
[신유리 / 27세, 딜러(S)
체력 : 2263664 (+1307791)
근력 : 112415 (+51123)
마력 : 768421 (+301127)
민첩 : 297875 (+113971)
지구력 : 149912 (+70022)
방어력 : 172947 (+64433)
특수 버프 “천상의 힘(S)” : 스킬 발동 속도 10% 증가, 받아들이는 버프 효과 10% 증가
특수 버프 “노력하는 자의 힘(S)” : 체육 선생님의 목검(SS) 30분 이상 사용 시 10분당 방어력+10%(최대 50%)
특수 : 체육 선생님의 목검(SS, ‘헌터 신유리(S)’ 애장품 보너스 : 사용 시 전체 능력치 +30%, 소지한 ‘공격’ ‘보조’ 계열 스킬 랭크 1단계 증가(랭크상한 없음))]
“정말 유리 헌터님 상태창이잖아?”
와중에 체육선생님의 목검은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의 인벤토리에 있었던 거 아닌가?
“아, 애장품이라 그런가?”
혼잣말로 결론을 내렸지만 여전히 당황스러운 상황인 건 마찬가지였다.
설마 남의 스킬하고 스탯으로 클리어하라고?
물론 RP던전도 도는 마당에 같은 팀 능력치 가지고 못 깰 게 뭐냐 싶긴 하지만.
그래도 RP던전은 클래스도 바꾸진 않는다고!
“딜러라니! 내가 딜러라니!”
소예리가 머리를 싸맸다.
그나마 체육선생님의 목검이라는 깡패 아이템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래, 딜러 스킬밖에 없는데 능력치라도 사기여야지.”
안 그래도 낮지 않은 스탯에다가 이 사기 목검까지 있으니 몬스터 잡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수업 시간인지 조용한 학교 복도를 둘러본 소예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곧…….”
그녀는 지하로 걸음을 옮겼다.
본의 아니게 다른 RP던전에서 이 학교를 다녀 본(?) 그녀는 길을 찾기 어렵지는 않았다.
그녀가 알기로 신유리와 신재헌이 처음 맞이한 게이트는 음악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곳에 미리 가 있을 예정이었다.
―고오오…….
지하는 이미 게이트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심상치 않은 마력이 느껴졌다.
신유리의 마력 스탯도 낮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소예리의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음악실]
그리고 음악실 문을 열자마자.
“이게 뭐야! 도와줘요!”
비명을 지르는 음악 선생님을 발견했다.
“!”
소예리는 막 생겨나는 돌발 게이트에 빠져들어 가려는 음악 선생님을 일단 끄집어냈다.
딜러 힘이라 그런지 게이트에 빨려들어 가는 사람 뽑아내기(?)도 쉬웠다.
―슈우우…….
첫 희생양을 잡아먹으려던 게이트가 조용히 일렁이는 게 보였다.
일반적인 게이트와는 달리 점점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
돌발 게이트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곧 이 학교는 돌발 게이트로 빠질 것이다.
어차피 구해낸 음악선생님도 결국 게이트에 빠질 거라는 소리였다.
물론, 먼저 빨려들어 가서 죽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누, 누구시죠?”
음악선생님이 당황해서 물었다.
모르는 얼굴인 게 당연했다.
소예리는 평상복 차림인 자신의 모습을 흘끗 내려다보고는 답했다.
“학생 보호자예요. 잠시 담임선생님이 부르셔가지고.”
“아아.”
음악선생님은 더 깊게 물어볼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때다 싶어 소예리가 재빨리 게이트를 가리켰다.
“근데 이 이상한 게 점점 커지고 있어요!”
너무 노올랍다! 어떡하지!
그녀가 놀란 얼굴로 말하자 음악선생님이 펄쩍 뛰었다.
“경, 경찰에 알려야 돼!”
그러면서 부리나케 음악실을 빠져나갔다.
알려도 달라질 건 없겠지만 어쨌든 음악실 근처에 있어 봐야 좋을 건 없었다.
“빨리 클리어해야겠다.”
소예리는 게이트가 커지는 걸 보면서 몸을 풀었다.
물론 보조계인 그녀가 몸을 풀 일은 별로 없었으므로, 뜬금없이 나오는 건 국민체조였다.
“순서 까먹었는데.”
엉터리로나마 몸을 푼 그녀는 대충 무기로 쓸 만한 걸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던전의 목적은 기억의 주인인 고등학생 신유리를 만족시키는 것.
이 시간대에서 신유리 헌터가 후회한 건 하나뿐이다.
그녀는 제가 S급 딜러로 각성하면서 던전을 빨리 클리어할 수 있었으면서도, 그걸 늦게 깨달아 빨리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도, 은령아파트의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럼 가족도 구하고 참사도 막을 수 있었을 테니까.
“이번엔 그럴 수 있게 해 줄게요.”
소예리는 그렇게 다짐하면서, 음악실에 있는 지휘봉을 집어 들었다.
“이거면 되려나?”
신재헌 헌터도 신유리 헌터도 무기를 들 때마다 그립감 어쩌고 하는 것 같았는데.
―휙! 휙!
소예리는 지휘봉을 휘둘러보면서도 다른 막대기와 뭐가 다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돌발 게이트의 범위에 들어섰습니다!]
[던전 ‘굉음(A)’에 진입합니다.]
그러면서 주변이 확 변했다.
“아이고, 빠르기도 하지.”
소예리가 바쁘게 음악실을 나섰다. 일단 던전화가 된 이상 여기 처박혀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아아니지.”
던전 이름이 굉음이라고?
그럼 소리 나는 건 죄다 박살 내고 봐야겠네?
던전 이름에서 유추해보건대 몬스터화되는 건 악기일 테니까.
―끼이익!
아니나 다를까, 음악실 한쪽에 있던 피아노에서 심상찮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게 움직이기 전에.
―콰직!
소예리의 지휘봉이 피아노를 반 토막 내버렸다.
“피아노는 나중에 기부할게요! 쏘리!”
듣는 이 없는 사과를 날린 소예리가 음악실을 뛰어나왔다.
또 악기가 있을 법한 곳이 어디지?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끼기긱! 끼긱!
음악실 옆의 창고에서 음산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쾅!
문을 벌컥 열어젖힌 소예리는 앙증맞게도 눈을 깜빡이는 북과 장구와 눈이 마주쳤다.
―콰직!
북 치고 장구 치며 박자 탈 생각은 없었으므로, 정의의 지휘봉이 북과 장구를 뭉개 버렸다.
―퍽! 퍼억!
―끼이이이!
그러자 구석에 있던 현악기들이 일제히 기이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몇 걸음 전진한 소예리가 지휘봉을 휘둘렀다.
―티티티팅! 콰드득!
그렇게 악기의 현과 몸체가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은령고등학교의 재산이 증발했다.
“여긴 이 정도면 됐고!”
빨리 나가서 신유리 헌터랑 신재헌 헌터를 찾아야 해!
두 헌터가 몇 반이라고 했지?
야속하게도 식당 위치만 생각난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앗!”
마침 맞은편 복도에서 걸어오던 신유리와 신재헌과 딱 마주쳐 버렸다.
“어!”
두 사람은 움찔했다. 저 모습은……!
“땡땡이쳤구나!”
소예리가 지휘봉으로 두 사람을 가리키자 두 사람이 움찔했다.
“화화화장실다녀온거예요!”
신유리가 재빨리 변명했다. 임기응변은 좋았는데 문제가 있었다.
“둘이 같이?”
여기 화장실은 남녀공용이니? 소예리의 말에 신유리가 멈칫했다.
핑계를 생각해내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두 사람이 어디서 땡땡이를 치다 왔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튼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이왕이면 악기가 가장 많은 곳으로!
소예리가 두 사람을 이끌려는 때였다.
신유리가 물었다.
“근데 누구세요?”
“나?”
소예리는 멈칫했다.
그야 당연히 두 사람을 도우러 온 미래의 마니또!
……라고 할 수는 없었으므로 소예리는 잠시 고민했다.
어딜 가자고 한 이상 학부모라고 하긴 좀 그렇고.
에라, 모르겠다!
“너네는 학교 선생님을 못 알아보면 어떻게 해?”
그 말에 신유리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녀는 신재헌을 돌아보았다.
대충 ‘넌 알아?’ 하는 표정인 듯했다.
당연히 신재헌은 고개를 저었다.
“뵌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신재헌이 말했다.
그야 없겠지! 이런 똘똘한 헌터님들 같으니!
하지만 어떻게든 두 사람을 데려가야 하는 소예리는 필살의 비기를 사용했다.
“그러게 수업시간에 작작 자랬지!”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하자 수업태도가 불량하기론 학교에서 탑을 달리는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목을 움츠렸다.
“아, 뵌 적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게.”
당연히 태도도 바뀌었다. 찔리는 얼굴이었다.
“그럼 따라와!”
소예리는 애써 화난 척 고개를 홱 돌렸다.
물론 돌리면서는 생각했다.
일단 두 사람을 일찍 찾았으니 시작은 좋았다.
그럼, 클리어하러 출발~!
***
“저, 저게 뭐야!”
신유리는 처음엔 몬스터를 보고 겁먹었다.
하지만 소예리는 그녀의 재능을 알고 있었다.
딜러로서 이미 각성도 했을 테니, 겁만 먹지 않으면 된다.
용기만 내면 돼!
―콰직!
소예리는 눈앞으로 통통 튀어오는 리코더를 지휘봉으로 박살 내 버리며 말했다.
“별 거 아냐!”
이렇게 때려 부수는 건 내가 아니라 신유리 헌터가 더 잘하는데!
“꿈인가? 음악시간에 너무 잤나?”
그런 그녀의 앞에서 신유리는 겁먹었다기보다는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으음, 너무 안전(?)해서 그런가?
어떻게 현실자각을 시키지?
고민하던 소예리는 두 사람에게 바닥에 굴러다니는 막대기 두 개를 쥐여 주었다.
“이거라도 들고 있다가, 혹시 뭐 나타나면 때려 부수는 거야. 나처럼.”
“저희가요?”
신유리는 멈칫했다. 소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혼자는 힘들 것 같아.”
“안 힘드실 것 같은…….”
눈치 좋은 신재헌이 말했지만 소예리는 그를 애써 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