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주이안은 멈칫했다.
내 기억?
그는 제 기억 중 신재헌이 무엇을 봤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고민할 틈은 없었다.
서울연합의 헌터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
주이안의 손끝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사람에게 공격스킬을 써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그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주저함보다 더 앞서는 건 분노였다.
같은 팀의 헌터를 노리는 자들을 향한 분노.
저들은 신유리 헌터와 신재헌 헌터, 소예리 헌터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
―팟!
그걸 깨달은 순간 시야가 뭔가로 번쩍인다고 생각했다.
소예리의 시스템창엔 변화가 없는데도.
“……?”
그가 멈칫한 순간이었다.
「쳐라!」
서울연합의 헌터들이 움직였다.
[얼음감옥(S) 스킬을 사용합니다.]
놀란 주이안의 손끝에서 얼음감옥 스킬이 튀어나갔다.
하지만.
―파파파팟!
얼음감옥 스킬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A급 헌터들은 카페를 부수며 난입했다.
***
이 당시에 헌터를 막을 수 있는 건 사실상 없었다.
헌터협회에서 고랭크의 헌터들을 영입하려고 했던 것도, 헌터들끼리 뭉쳐서 법을 무시하고 날뛰는 걸 막아보기 위해서였다.
일부 불량한 헌터들은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법 위에 있는 것처럼 굴었던 것이다.
‘우리를 잡아넣겠다고? 잡아넣어 보시지!’
‘근데 우리가 잡히면 게이트는 누가 처리하는데?’
불량한 헌터들의 주장이 틀리지도 않았으므로, 당시 헌터협회는 고랭크 헌터를 영입하기를 절실하게 원했다.
물론, 혼자 게이트에 다니는 게 금전적으로나 자유도 면으로 보나 훨씬 이득이었던 고랭크 헌터들은 당연히 협회소속이 되기를 꺼렸다.
헌터들을 제재할 수단이 사실상 전무한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헌터들이 알아서 길드를 만들어 저들끼리 ‘일반인을 해치지 않는다’느니, ‘정의로운 데에만 힘을 사용한다’느니 조항을 만들어 협의하고 있지만, 이때는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던 시점이었다.
“꺄아아악!”
카페에서 놀란 일반인들이 도망쳐 나오는 게 보였다.
당연히 일대는 난리가 났다.
사람들이 대피하는 건 신경도 안 쓰는 듯 서울연합의 헌터들이 카페를 포위했다.
“…….”
주이안의 시선이 서울연합의 헌터들을 훑었다.
대부분이 A급인 헌터들인 데다 저들은 당시에 불량한 짓으로 소문이 자자한 자들이었다.
당시 헌터들 중에서 인간을 상대한 경험이 가장 많은 자들이기도 했다.
반면 신유리 헌터는 S급이었지만 아직 사람을 공격해본 적도 없었고, 신재헌 헌터가 C급인 만큼 그를 지켜야 했다.
게다가 소예리 헌터는 S급이 되었다고 해도 사람과 전투한 경험이 신유리보다도 더 없는 상태였다.
불리하다.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뭐 하시는 거예요?”
신유리가 화나서 외치는 게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서울연합의 헌터 한 명이 느긋하게 답했다.
“감정싸움 하는 거지.”
그 말에 멈칫했던 신유리가 물었다.
“설마 제가 서울연합 영입 제안 거절했다고 이러는 거예요?”
그녀가 따졌지만 서울연합 헌터들은 킬킬거리면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알아서 생각하시고.”
그들은 처음부터 대화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듯했다.
서울연합의 딜러들이 동시에 신유리를 덮쳤다.
“!”
―쨍!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한복판에서 울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날카로운 금속음이 주변을 울렸다.
신유리가 본능적으로 검을 막아낸 것이다.
그녀의 검 끝에서 잔상 스킬이 몇 번 보였지만,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은 잔상이었다.
“…….”
전장을 지켜보던 주이안의 눈이 가늘게 뜨였다.
서울연합의 딜러들이 신유리의 발을 묶은 사이, 다른 사람들이 신재헌을 붙잡으려고 전장을 우회하는 게 눈에 띄었던 것이다.
「저 사람은 어떡하지?」
소예리 헌터를 보면서도 고민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유리랑 아는 사이인가?」
「저쪽도 오늘 처음 만난 모양인데? 그런데 랭크가 안 보여.」
「일반인은 아닌 것 같은데. 설마 S급이라고?」
「S급 둘을 상대할 수 있을까?」
「아직 알려지지도 않았잖아. 막 각성한 거면 승산은 충분해.」
회유를 할지, 죽일지.
서울연합의 헌터들은 세 사람의 목숨을 재어 보고 있었다.
주이안이 주먹을 꽉 쥐었다.
―쩡!
그 사이 몇 번이나 신유리의 검이 번쩍였다. 공격을 받아낸 것이다.
‘귀는 어디에나 있다’ 스킬 덕에 신유리의 목소리는 주이안에게 잘 들려 왔다.
“다치지 마. 죽으면 안 돼. 혼자 두면 안 돼.”
그녀는 주문처럼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기도는 하늘의 무언가를 향하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을 향하는 것도 아니었다.
신재헌을 향하는 것이었다.
주이안은 그런 그녀의 표정이 익숙하다고 생각했다.
울먹거리는 목소리만 제하면, 그녀는 전장에 설 때마다 저런 표정을 지었다.
매 전장마다 결연한 표정을 짓는 그녀는 그 순간마다 간절히 빌었던 것이다.
누군가 다치지 않기를.
죽지 않기를.
자신이 혼자 남지 않기를.
나는 당신이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 신유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는 자명했다.
주이안은 머릿속에서 처음으로, 깨끗한 살심이 들었다.
[‘교황의 사색’ 퀘스…… 되었습……!]
먼 곳에서 시스템창이 보였다.
[보상 : 스킬 ‘죽음의 고통(S)’]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의 상태창으로 받았던 퀘스트가 여기서 클리어된다고?
의아해할 틈은 없었다.
무엇을 클리어했든 지금 이 순간 그는 다른 것을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얼음감옥(S) 스킬을 사용합니다.]
―쩌저적!
아까보다 훨씬 날카롭고 위협적인 기세로 날아간 얼음감옥 스킬이 서울연합의 헌터 세 명을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뭐, 뭐야!”
서울연합의 헌터들이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게 보였다.
놀라는 건 신유리와 신재헌, 소예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소예리는 그 스킬을 알아본 듯했다.
당연했다. 병원 게이트에서 많이 봤을 테니까.
“이 얼음……!”
그녀가 놀랄 때였다.
신유리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쌔액!
검이 서울연합 헌터들 사이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뭐야!”
“옥상에 사람이 있다!”
[얼음감옥(S) 스킬을 사용합니다.]
서울연합 사람들이 주이안의 위치를 확인했을 때에는, 이미 대부분의 헌터가 무력화된 후였다.
원래 과거에 저들을 얼려 버린 건 소예리 헌터였다.
아마 신유리 헌터와 신재헌 헌터를 노리는 것을 보고 고민 없이 그들을 멈춰 세웠을 것이다.
“저……!”
과거의 소예리가 그를 찾아 부르려는 게 보였다.
하지만 주이안은 신유리가 전장의 승기를 잡는 것을 보자마자, 옥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소예리 헌터는 신유리 헌터와 신재헌 헌터를 돕기를 원했다.
그가 모든 것을 해치워주면 안 될 터였다.
“C급 놈을 잡아!”
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서울연합의 헌터들이 신재헌을 노렸다.
그들이 한 번에 모여드는 순간.
―파앙!
신유리가 검을 쳐내는 소리와는 다른 소리가 울렸다.
익숙한 소리.
소예리 헌터의 보호막 스킬이 공격을 막는 소리였다.
“제가…… 막을게요!”
소예리 헌터의 목소리는 조금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그럼 이 안에서만 공격하면 되는 거죠?”
신유리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쌔액!
무언가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났다.
“어억!”
그리고 그 소리 끝에는 어김없이 비명이 들렸다.
서울연합 헌터들의 기척이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아까 그 얼음도 소예리 헌터님이 하신 거예요?”
신재헌의 감탄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소예리가 고개를 저었을 법한 사이를 두고 답이 들렸다.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아는 분인 것 같아요.”
“오, 소예리 헌터님 일이라 도와주셨나 보다!”
이 시기에는 같은 헌터들조차 날뛰는 헌터들의 일에는 끼어들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으니, 신유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덕분에 살았어요!”
슬쩍 내려다보니 들뜬 신유리가 신재헌과 소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소예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뿌듯한 얼굴이었다.
두 사람을 도왔다는 생각에.
그녀가 원한 대로 과거의 두 사람을 도운 것이다.
하지만.
[‘기억-소예리’ 실패하였습니다.]
판정은 실패였다.
“!”
주이안이 멈칫했다.
과거의 소예리 헌터가 원하는 결말은 이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처음 상태로 리셋됩니다.]
[실패 횟수가 1회 증가합니다(1/3).]
그러면서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그리고 회복된 주이안의 시야에 다시 보이는 곳은, 처음 병원의 그 병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