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96)화 (196/218)

196화

[은령종합병원 게이트, 희생자 없어]

[‘환자와 직원 한 명이 게이트 처리했다’ 생존자 증언]

속보가 연달아 나왔다.

그리고 게이트가 나타났던 은령종합병원 앞은 시끄러웠다.

“이곳을 클리어한 헌터들은 어디 있습니까?”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곳 한가운데에 소예리가 서 있었다.

지금과 비슷한 모습.

허리까지 내려오는 붉은 머리와 반짝이는 금안.

그녀는 한참 동안 병원을 올려다보다가, 혈색이 좋아진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주이안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보이지 않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가 이내 주먹을 꽉 쥐었다.

“……좋아.”

그러더니 뭔가를 결심한 듯 자리를 벗어났다.

***

이제는 소예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그녀가 향한 곳은 헌터협회였다.

이 시간대의 신유리와 신재헌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음음. 음, 안녕?”

헌터협회 앞 벤치에 앉아 소예리는 뭔가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아니지. 안녕하세요?”

두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인사해야 할지 허공에 연습해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불행하게도, 신재헌과 신유리가 헌터협회로 돌아온 건 잠시 후였다.

“앗. 어디 나간 게 아니었구나.”

헌터협회 건물에서 나오면 말을 붙여보려고 했던 듯했다.

계획이 틀어져 낭패인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녀는 신유리와 신재헌에게 다가갔다.

주이안은 그 모습을 근처 건물의 옥상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귀는 어디에나 있다(B)’ 스킬을 사용합니다.]

세 사람의 대화를 듣는 데에는 이 스킬이면 충분할 테니까.

“저기.”

곧 소예리가 두 사람을 불러 세우는 게 보였다.

“네?”

신유리와 신재헌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은 병원에서 봤을 때의 밝은 모습에 비하면 많이 지쳐 보였다.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사람에게 시달려 지친 것일 터다.

주이안은 그 기분을 알았다.

그 역시도 헌터가 된 직후에 그랬으니까.

물론 그는 심하게 시달리지 않았다.

신유리가 기자들과 몰려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를 구해주었기 때문에.

아마 자신처럼 고생하지 않길 바라서 그랬을 것이다.

안쓰러우면서도, 감사했다.

‘난 헌터 된 거 후회 안 해요. 뭐, 내가 후회한다고 되돌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신유리는 그렇게 가볍게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녀도 힘들게 헤쳐 온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는 것과는 역시 무게가 달랐다.

난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주이안이 뇌까렸다.

그 사이 소예리는 두 헌터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신유리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소예리는 누가 봐도 나쁘거나 귀찮은 의도를 갖고 접근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던 것이다.

“저, 얼마 전에 S급 보조계로 각성했거든요.”

소예리가 불쑥 말했다.

다소 뜬금없는 말인데도 신유리는 눈을 크게 뜨며 축하해주었다.

“아, 축하해요! 혹시 도와드릴 거 있을까요?”

이 시점의 신유리는 슬슬 헌터들 사이에서 아웃사이더가 되고 있었다.

그녀를 끌어들이려던 수많은 헌터 연합과 단체들도 신재헌과 반드시 함께 움직이겠다는 그녀의 조건을 맞춰주기 어려워했던 것이다.

S급 헌터라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이곳저곳 게이트에 가야 하는데 C급이 붙으면 기동성이 현저히 떨어지니까.

게다가 당연히 S급인 신유리가 파견되어야 할 던전에 C급인 신재헌이 함께 가면 신유리가 그를 보호하느라 제 할 일을 못 할 것은 자명했다.

때문에 그녀는 ‘세상모르는 철없는 헌터’쯤으로 소문이 나 이미 다른 헌터들에게 외면받고 있었다.

인터넷의 일반인들조차 유리를 철없는 S급으로 알고 있었다.

본인은 아무렇지 않아 했지만.

그런 자신에게 갓 각성한 헌터가 다가왔으니 도움이 필요하거나 자신과 같은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 듯했다.

하지만 소예리의 용건은 그게 아니었다.

“그, 그건 아니고. 두 분이 각성하시던 날부터 지켜봤거든요.”

표정이 조금 흐려지는 두 사람 앞에서, 소예리가 입술을 깨물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린 친구들이 안쓰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말에 신유리와 신재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러다가 동시에 답했다.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두 사람의 말에 소예리가 예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말인데, 음.”

그러고는 두 사람을 조심스럽게 살피다 물었다.

“혹시 저도 같이…… 다닐 수 있을까요?”

“네?”

눈을 크게 뜬 신유리와 신재헌에게, 소예리가 말했다.

“방해는 안 될 거예요. 도와주고 싶어요. 음, 그, 부산물 같은 것도 필요 없어요.”

헌터들의 던전 부산물 수입이 상상 이상이란 것도 이미 알려진 시점.

하지만 소예리는 그게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거 없으면 헌터님은 뭐 먹고 살아요?”

“전…… 괜찮아요.”

소예리가 난감한 듯 웃었다. 신재헌과 신유리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일단 다른 데서 이야기 나눠 봐요.”

이런 제안은 처음이라……. 그렇게 말하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신유리는 옅게 웃고 있었다.

***

세 사람이 향한 곳은 카페였다.

주이안 역시 세 사람 근처로 걸음을 옮겼다.

각성한 지 얼마 안 되었다 해도 S급이 두 명이나 끼어 있으니, 그가 카페 안까지 들어가면 수상한 낌새를 느낄 것 같았다. 소예리가 그를 알아볼 수도 있을 테고.

덕분에 주이안이 택한 건 카페의 유리벽을 끼고 있는 골목이었다.

다행히 세 사람이 유리벽 근처에 앉은 덕에 대화 소리는 들렸다.

“…….”

주이안은 신유리가 신재헌의 손을 꽉 잡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신재헌은 그걸 아는 것 같았지만, 정작 본인인 신유리는 자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신재헌은 그걸 쳐내는 대신 그녀가 제가 뭘 하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따라가 주었다.

조금 떨리는 듯한 신유리의 손은 그런 그를 잡고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만큼 속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그걸 지켜보는 주이안은 잠시 복잡한 감정이 들었지만,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삼켜 버렸다.

오래전부터 신유리 헌터가 신재헌 헌터를 의지해온 것은 잘 알았다.

두 사람이 아주 각별한 사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신유리라는 사람에게서 신재헌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도.

그녀의 행복이 신재헌의 행복과 함께한다는 것도.

신유리는 헌터팀 모두의 행복을 빌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이 100이라면, 그녀가 아무리 공평하게 세 조각으로 마음을 쪼개어 나눠준다고 해도.

무한히 조각내도 남고야 마는 그 작은 조각은 자신이 아니라 신재헌에게 향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

주이안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건 그녀가 신재헌에게 저도 모르게 기댄 시간에 대한 미안함일 것이다.

그녀의 옆에 설 수 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옆자리가 아니라도 좋아.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 행복한 거니까.

내가 당신에게 더 큰 행복을 줄 수 없다면 내가 물러나야 하겠지.

그가 눈을 떴을 때였다.

“……?”

주변의 묘한 인기척이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귀는 어디에나 있다(B)’ 스킬을 사용합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스킬을 켜자 바로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통제가 안 된다니까.」

「쟤네 때문에 헌터협회에서 뻗대는 게 얼마나 귀찮은지. 신유리만 아니었어도 서울에서 우리가 귀찮아질 일은 없었을걸?」

「그러게, 오라고 할 때 올 것이지.」

「오긴 온다잖아. 짐덩어리도 데려가 주면.」

그 말까지 들었을 때 주이안의 시선은 잠시 신재헌에게 닿았다 떨어졌다.

불쾌감이 일었다.

감히 같은 팀의 헌터를 짐덩어리라 칭하는 자들에게.

누군가 듣는다는 걸 알 리 없는 헌터들이 그의 감정에 불을 붙였다.

「C급 쓰레기를 어디다가 써?」

“…….”

주이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비록 그가 딜러는 아니라고 해도, S급이 아닌 헌터들을 상대로 기척을 숨기고 골목을 벗어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좀 신경 써서 움직여야 했지만.

―탁.

이내 그가 근처 건물의 옥상에 닿았을 때.

그는 카페 근처로 슬금슬금 모여드는 헌터들을 발견했다.

“……?”

주이안은 그들의 얼굴이 묘하게 낯익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스치듯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얼굴.

최근은 아니고 한참 전에…….

“……아.”

주이안은 그들의 손목에 새겨져 있는 서울연합의 상징을 보고 그들이 누군지 깨달았다.

지금은 죽은 자들.

딱 이때쯤이었을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동상 무더기가 발견된 것은.

그들은 서울연합의 B급과 A급 헌터였던 자들이었다.

[얼음감옥(S)]

주이안은 마침 소예리의 스킬창에 있던 스킬을 바라보았다.

아.

그는 제가 해야 할 일이자, 소예리가 이 시점에 했던 일을 알게 되었다.

그때 시스템창이 불쑥 떴다.

[헌터 신재헌(S)이 ‘기억-주이안’을 클리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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