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주이안은 소예리가 게이트에서 각성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예리는 과거를 자세히 이야기하진 않았기 때문에, 병원에서 각성할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그때 눈앞에 시스템창이 반짝였다.
[은하 서버 접속 중…….]
과거 소예리 헌터의 시스템창이기 때문인지, 현재 소예리의 시스템창을 가진 주이안에게는 흐릿하게 보였다.
[적격자 확인.]
주이안 자신도 언젠가 봤던 시스템창이었다.
[헌터…… 각성합니…….]
흐릿한 시스템창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지만 중요한 단어들은 분명히 보였다.
[이진아]
[보조계]
[S]
연달아서 뜨는 시스템창.
주이안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던전 기여도(%)
- 이진아(S) 0.0%]
기여도창에 뜬 헌터는 이진아 한 명뿐.
분명 이 사람이 소예리 헌터의 과거가 맞는 것 같은데, 왜 다른 이름으로 뜨지?
주이안이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정답은 물론 잡힐 듯이 가까이에 있었다.
[새로운 내 모습(L)]
디버프의 모습으로.
그 사이.
―쿠콰쾅!
‘꺄아악!’
멀리서 비명과 굉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
그리고 같은 병실에 있던 사람 중에 그 소리에 움찔한 건 이진아와 주이안뿐이었다.
일반인이 듣기엔 너무 먼 곳에서 난 소리였으니까.
물론 다른 이들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건 아니었다.
“밖이 좀 침침해진 것 같지 않아요?”
“분명 조금 전까지 밝았는데.”
“분위기도 좀 으스스한데…….”
물론 느끼는 건 그 정도가 다였다.
“뭐지?”
그들은 창밖을 내다보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지만, 일반인에게 더 느껴지는 건 아직 없는 듯했다.
하지만 주이안은 달랐다.
1층에서부터 서서히 몬스터들이 올라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각 층의 일부 기계들이 몬스터화되고 있는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여기서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제 헛것이 보이네.”
하지만 일어나야 할 이진아는 아직도 누워 있었다.
그녀는 S급 각성이라는 시스템창이 헛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 시기에는 아직 헌터들만이 볼 수 있다는 시스템창이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이상한 반응은 아니었다.
그래도 주이안은 어떻게든 이진아를 일으켜야 했다.
그때.
“꺄아악!”
사람들이 도망치는 소리가 멀리서 다시 들려 왔다.
“?”
이진아가 다시 멈칫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일반인들도 들은 듯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복도로 나가본 보호자들이 급히 병실로 들어왔다.
“밖이 이상해!”
“사람들이 도망치고 있어요!”
“뭐?”
병실 안 사람들이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이안은 직원 옷도 입고 있겠다, 재빨리 이진아의 침대로 다가갔다.
살짝 커튼을 걷은 그가 말했다.
“도망치셔야 해요, 빨리.”
눈이 마주치자 이진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뭔데요?”
게이트입니다, 라며 익숙하게 대응할 순 없으니 주이안은 말을 골랐다.
“병원에 이상한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자 이진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래서 도망치라고요? 이 몸 이 꼴로?”
그녀는 손목에 주렁주렁 달린 수액을 가리켰다.
“수액 달고 어떻게 뛰어요?”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반은 헛소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때 좀 더 가까이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으아아악!”
―퍼억!
살벌한 소리도 났다.
“!”
이진아는 저도 모르게 반쯤 몸을 일으켜 버렸다.
“어?”
그리고 제 몸의 상태에 당황했다.
주이안은 그녀가 제 변화를 느낄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려 주었다.
그녀 자신이 헌터가 되었다는 사실을, 건강을 찾은 것은 물론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도망쳐!”
“괴물이야!”
그 사이 보호자들이 제 환자들을 안고 업고 뛰기 시작했다.
복도에 사람들이 우르르 지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이진아가 그제야 물었다. 주이안은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요.”
이진아는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아.”
그러고는 수액 줄을 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더니 주사를 잡아 빼 버렸다.
“!”
피가 튀었지만 놀란 건 잠시였다.
주이안은 힐링을 해 주려다가 멈칫했다.
지금은 그의 시스템창이 아니었으므로, 치유 계열 스킬은 없었다.
“이거 쓰세요.”
대신 그는 인벤토리에서 손수건을 꺼내 건넸다.
오만 게 다 나오는 소예리 헌터의 인벤토리답게 손수건 역시 있었던 것이다.
잠시 빌리겠습니다, 그가 속으로 뇌까렸다.
“어, 어디로 나가요? 병원이 다 난리 난 거 같은데?”
이진아는 S급 헌터가 되면서 예리해진 기감으로 여러 가지를 느끼는 듯했다.
특히 병원이 도망칠 곳 없이 몬스터로 들어차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느낀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가야 돼요!”
주이안은 슬슬 마음이 급해졌다.
원래 이진아가 얼마나 오래 있다가 움직였는지는 몰라도, 늦게 나가 봐야 그녀가 마주할 시신만 많아질 뿐이었다.
“설, 설마 진짜 던전?”
아까 본 시스템창을 기억하는지 그녀가 물었다.
주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던전이에요. 헌터만 막을 수 있어요.”
이진아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이 기이한 상황에서도 묘하게 침착해 보이는 주이안을 올려다보았다.
“혹시 그쪽도 헌터세요?”
주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방금 각성했어요.”
그러고는 바깥의 비명소리를 들으면서 말했다.
“우리만, 이 상황을 막을 수 있어요. 같이 해 봐요.”
그의 확신 있는 목소리에, 이진아는 완전히 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
어차피 직원인 척하고 있었겠다, ‘마침 같이’ 각성한 척 주이안은 던전의 클리어를 도와주었다.
[스킬]
스킬창에 있는 스킬들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것들이었다.
소예리 헌터가 쓰는 것만 봤지 실제로 목록을 본 건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A급 던전인 만큼 크게 문제 되진 않았다.
“이게 던전…….”
한참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구한 끝에 이진아가 중얼거렸다.
죽을 뻔한 사람들을 벌써 셀 수도 없이 구했고, 그 사람들은 몬스터가 없는 안전한 공터로 피신해 있었다.
[보호막(S) 스킬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곳은 주이안이 소예리의 스킬창에 있는 보호막 스킬로 막아 두었다.
A급 몬스터들이 그곳을 뚫을 수는 없을 터였다.
그 후에야 두 사람은 몬스터를 소탕하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들어왔다.
이제 이곳을 돌아다니는 건 몬스터들과 주이안, 이진아 두 사람뿐이었다.
―콰직!
이진아는 손에 들고 있는 폴대를 휘두르고 있었다.
‘난 뭐 잡고 휘두르는 건 쥐약인데!’
……라고 했던 것치고 그녀는 꽤 몬스터를 잘 때려잡고 있었다.
주이안은 그런 그녀의 옆에서 얼음감옥 스킬로 몬스터들을 얼렸다가 부숴 버렸다.
“이런 곳에 걔네가 갇혔던 거구나…….”
그때 이진아가 중얼거렸다. 주이안이 뒤를 돌아보았다.
“걔네요?”
누구를 말하는지 알 것 같았지만, 그는 모른 척 물었다.
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 자체가 ‘기억-소예리’의 목적은 아닐 터다.
원래도 소예리 헌터는 이곳을 혼자 클리어했었으니까.
그럼 이 시점의 소예리 헌터를, 눈앞의 이진아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그녀에게서 직접 찾아야 했다.
이진아는 멈칫했다가 말했다.
“제가…… 원래, 음, 아팠거든요?”
그렇게 말하다가 그녀는 뒤늦게 주이안의 복장을 보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시겠구나.”
“네.”
하지만 주이안은 웃는 대신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그러자 경계하던 이진아도 살짝 경계를 풀었다.
“오래 아프니까…… 그냥 만사가 귀찮고 짜증 났어요. 변명인 거 아는데.”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알던 사람들도 다 저한테 질려서 떠나 버리고, 옆에 아무도 없었는데. 그 애들은 저한테 잘해줬거든요. 끝까지.”
그녀가 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은령고등학교 애들이었는데…….”
“아…….”
은령고등학교 게이트 사건은 이 시간대에도 유명한 사건이었다.
주이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호응했다.
“다행히 살았대요. 안 다치고. 근데 그때 너무 후회됐어요. 걔들이 갇혔다고 했을 때. 걔들이 마지막으로 들은 게 제 짜증이라고 생각하니까…….”
결국 이진아의 목소리에서 울음이 묻어났다.
“고맙다고 말도 못 했어요. 아니, 안 했어요. 건강해서 뛰어다니는 데다 친해 보이는 그 애들이 부러웠는데, 부러운 걸 인정하기가 싫어서…….”
주이안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세 헌터가 이렇게 과거에 만난 적이 있었구나, 생각하면서.
‘두 헌터님한테는 빚이 있거든요. 특히 신유리 헌터님한테는 더.’
소예리 헌터는 가끔 그렇게 말하곤 했는데, 아마 이때를 말한 것인 듯했다.
“그런데 그 애들이 빠졌던 곳이 이런 무서운 곳이었구나 싶어서요. 그…… 뉴스에서 울던 애들 알아요?”
이진아의 말을 주이안이 부드럽게 받았다.
“은령아파트 앞에서 울던 헌터들 말이죠?”
당시 신유리와 신재헌이 오열하는 모습은 전국에 전파를 탔으니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네. 그 애들인데 집도 잃었대요. 지금은 헌터협회인가? 하는 데서 지낸다는데 너무 안됐잖아요.”
이진아가 울음기가 더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보호자도 없이……. 게다가 헌터가 됐다면서요. 애들이 뭘 알겠어요. 보나마나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 천지일 거고…….”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애들한테 사과도 하고, 고맙다고도 하고 싶은데, 안 그래도 너무 힘들 텐데, 혹시 제가 또 가면…….”
그녀가 웅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안 좋은 기억만 살리는 꼴일까 봐.”
흐려지는 말끝을 주이안은 부드럽게 받았다.
“그럼 지금이라도 가 봐요.”
이 시간대의 소예리 헌터가 후회한 것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그의 말에 이진아가 고개를 저었다.
“걔들은 이미 너무 고생하고 있어요. 게다가 하루가 멀다고 걔들을 속이려는 사람들 뉴스만 뜨고 있는데, 아무도 안 믿으려고 할 거예요.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 접근하면…….”
“그래도 이진아 님은 만나주실 거예요.”
두 분은 사람을 잘 기억하는 분들이니까.
이 모습 그대로 간다면…… 말이다.
주이안은 문득 그녀의 모습이 현재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신재헌 헌터도 신유리 헌터도 소예리 헌터의 과거는 모른다고 했다.
아마 지금까지 이 과거를 숨기신 것 같은데.
“그렇게 헤어졌는데도요?”
이진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이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가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단 나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그가 이진아를 보면서 말했다.
“이렇게 헌터도 되셨으니까 도울 수 있는 건 돕고요.”
“도울 수 있는 거…….”
이진아의 표정이 좀 밝아졌다.
주이안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옅게 웃어 주었다.
이때 사과를 하지 못해서, 고맙다고 말하지 못해서 십여 년을 마음 쓰고 살아온 소예리를 알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땐 정말 늦은 거니까요.”
이건 소예리 헌터가 자주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소예리, 이진아는 황당한 얼굴이었다.
“혹시 이미 늦어서 망했다고 말하는 거예요?”
조금 흥분하니 요즘과 똑 닮은 목소리가 나왔다.
주이안이 옅게 웃었다.
“아뇨, 늦었으니 지금이라도 가야 한다는 거죠. 고민할 시간 없이.”
“아…….”
이진아는 눈을 크게 떴다.
***
두 사람은 빠르게 던전을 정복해 나갔다.
클리어는 어렵지 않았다.
―쩌저적!
얼음감옥 스킬을 보면서 신기해하는 이진아는 제가 나중에 이 스킬을 가지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하는 듯했다.
“멋있어요.”
미래의 자신의 스킬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그녀에게, 주이안이 말했다.
“이진아 님도 멋있어요.”
그 말에 이진아가 볼을 붉히며 웃었다.
[던전 ‘강제휴식(A)’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이쪽으로 나가면 되는 것 같아요.”
“……고마워요!”
주이안의 말에 마침 얼굴이 새빨개졌던 이진아는 빠르게 던전 출구로 뛰어들었다.
[새로운 내 모습(L)]
그때 시스템창의 버프가 한 번 더 번쩍이는 게 보였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찬란하게.
“아…….”
아마 이곳을 클리어한 직후, 소예리 헌터의 모습이 바뀌었던 모양이다.
스킬은 간절한 소망을 따라 발현되는 것.
L급이 나올 정도로 간절하게 그녀는 모습을 바꾸고 싶었던 모양이다.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으셨던 걸까.
주이안은 이진아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걸음을 옮겨 던전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