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93)화 (193/218)

193화

원장은 아이들이 무사했음을 강조하며 심장이 덜컥했다고 눈물을 찍어내기 바빴다.

어디에서?

[정말……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어디긴, TV지.

애들은 뒷전이고 방송국에만 출퇴근 도장을 열심히 찍는 원장은 머리가 별로 좋은 놈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구해주신 분께는 꼭 사례하고 싶습니다. 꼭 보육원으로 연락주세요.]

멍청한 말을 생방송 인터뷰에서 씨불이는 걸 보면 확실했다.

아니나 다를까, 앵커는 당황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말에 따르면 청소하던 직원분께서 아이들을 구해줬다던데요.]

[예? 예, 그…….]

원장은 당황했다.

[고용하신 분이면 찾을 수 있지 않습니까?]

앵커의 말에 원장은 황급히 사태를 수습했다.

[그게…… 도망가 버렸습니다. 부끄러우셨는지, 아니면 저와 아이들을 도우러 내려오신 천사셨던 걸까요? 이력서의 연락처도 다 가짜였고…….]

누굴 가짜로 취직시켜?

신재헌은 팔짱을 낀 채 원장이 하는 꼴을 지켜보았다.

***

1절만 하라는 소리가 있다. 좋은 소리도 2절부턴 지겹거든.

그 점에서 원장은 1절, 2절은커녕 3절, 4절에 리믹스까지 만드는 놈이었다.

그는 정말 질리게도 주이안 헌터를 우려먹었다.

“원래 이렇게 심했나?”

질리는 놈이라곤 생각했었지만 이 정도로 잦았는지는 몰랐다.

신재헌은 그가 하는 꼴을 보면서 뒷목을 잡았다.

[주이안 헌터는…….]

[어릴 때부터 주이안 군은…….]

그러면서 자꾸 자신이 얼마나 주이안에게 신경 써주며 길렀는지를 어필하는 것이었다.

[아이들도 주이안 헌터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몰라요.]

그러면서 아이들을 끌어들여 엮기까지 했다.

아주 못 볼 꼴이었다.

그렇게 원장을 지켜보길 며칠.

[(속보) 신유리 헌터팀, 태안 S급 던전 클리어]

드디어 그들 헌터팀의 던전 클리어 소식이 떴다.

신재헌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때 분명히 던전 앞에 유독 기자들이 많아서 의아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아마 그때 들었던 소식이, 행복 보육원이 게이트화돼서 아이들이 희생됐다는 것.

그때 주이안 헌터의 표정을 기억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절망적인 소식은 아닐 것이다.

물론.

[……!]

주이안 헌터의 놀라는 얼굴은 그대로 방송을 타고 나왔다.

그는 바로 행복 보육원으로 향하려는지 급히 게이트 앞을 벗어났다.

신재헌은 그때쯤 뉴스를 보던 원장이 휴대폰을 드는 걸 보았다.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데…….

[여보세요?]

답이 왜 TV에서 들리냐?

뻔했다.

원장이 전화를 건 상대는 주이안 헌터였다.

“이 시점이면 주이안 헌터도 어지간히 질려 있을 때였는데.”

전 같았으면 무시하지 못했을 전화도 슬그머니 무시하기 시작할 정도로.

하지만 차마 카메라 앞에서까지 씹을 순 없었던 모양이었다.

“힐러는 다 저런가?”

신재헌은 머리를 긁적였다.

저는 열 번쯤 다시 태어나도 열 번 다 딜러 당첨일 것 같았다.

“난 저딴 놈을 보면 살심을 참을 수가 없던데.”

신재헌의 서늘한 시선이 원장의 뒤통수에 꽂혔다.

“무사하니? 얼른 보육원으로 오렴.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단다. 와서 좀 쉬고 가고…….”

그게 아니라 게이트화가 다시 될까 봐 무서운 거겠지.

그가 눈을 가늘게 뜬 채 뇌까렸다.

요즘에야 주이안 헌터가 좀 강단있어졌지만 전에는 정말…… 좋게 말해서 천사고, 나쁘게 말하면 호구였으니까.

“내가 소원 이뤄줄게요.”

그럼 인성 터진 팀원이 대신 박살 내 줘야지. 그가 손목을 털며 원장을 쳐다보았다.

“내가 마중 나가마!”

그리고 원장이 걱정돼 죽겠다는 얼굴로 방을 나가는 걸 확인하고는, 원장의 방에 난입했다.

***

[헌터일보]

“안 하던 짓 많이 하게 하네.”

신재헌은 신문사 앞에 서서 볼을 긁적였다.

그의 손에는 원장이 후원금이나 보육원 자금을 빼돌렸다는 증거가 들려 있었다.

당연히 원장의 방을 털어 온 것이었다.

비리가 썩어 넘치니 조금만 털어도 금방 나왔다.

게다가 그는 미래에서 이미 원장이 어떤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는지 알게 된 사람이었다.

비록 그때는 원장의 죄가 밝혀지기도 전에 원장이 돌발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죽은 후에야 밝혀진 것이었지만.

적어도 이 ‘기억-주이안’에서는 아닐 것이다.

원장은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얘네라면 질색인데.”

신재헌은 투덜거리면서 헌터일보 건물로 들어갔다.

당시 가장 파급력 있는 신문사가 이곳이었으니까.

그가 익명의 제보를 갖다 놓은 건 수많은 기자들 중에서도 ‘이한준’이라는 기자 앞이었다.

―짤랑.

신재헌이 들른 지 몇 시간 후.

출근한 헌터일보의 이한준 기자는 제 자리에 있는 낯선 서류를 보고 멈칫했다가, 곧 눈을 빛냈다.

“오…… 오……!”

저건 당연히 특종 잡았다는 눈이었다.

“그래. 써라, 써.”

신재헌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놈이 쓸모 있을 때도 있네.

이한준은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헌터일보의 일부 기자 중에서도 가장 과격한 축에 속하는 자였다.

사실상 치외법권이나 다름없는 고랭크 헌터의 치부를 밝힌다거나 하는 일로 유명한 자이기도 했다.

그가 발표하는 기사 중에는 진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부풀려진 거짓이었다.

“대박이야!”

이한준이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신재헌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놈은 아마 이 시점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목이 날아갈 것이다.

누구에게?

과거의 내게.

유리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를 쓴 대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능력이 쓸모 있을 듯했다.

―타닥, 타타탁!

빠르게 기사를 써 내려가는 이한준을 보며, 신재헌은 소리 없이 헌터일보 건물에서 벗어났다.

***

[행복 보육원 원장의 여덟 가지 그림자]

“정말…… 여러모로 자극적인 기사네.”

신재헌은 헌터일보에 난 기사를 보고 감탄했다.

원장의 여덟 가지 비리에 대해 다루고 있는 기사는 당연히 이한준의 기사답게 악의적으로 부풀린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여론이 끓기 시작한 이상 원장은 해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해명할 수 있을 규모의 비리나 횡령이 아니니 곧 잡혀갈 테지.

―♬♪

“이놈의 전화!”

기사가 뜬 후, 원장의 휴대폰은 꺼질 틈이 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그는 몇 번 전화를 끊다가 결국 전원을 꺼 버렸다.

그러더니 다른 곳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오…….”

휴대폰이 심지어 두 개였어?

그 휴대폰 번호도 아는 기자들이 있었는지 전화가 오긴 했지만, 원래 쓰던 휴대폰보다는 전화가 확실히 덜했다.

신재헌은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것을 보다가 보육원을 벗어났다.

“이쯤 되면 방해할 사람이 한 명 있지.”

그렇게 뇌까린 그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이 시점에 세 사람이 함께 지내던 주택이었다.

보육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도 아니라, 도착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상황만 보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주이안이 급히 문을 닫고 튀어나오는 게 보였다.

그럼 그렇지.

원장 전화를 씹지 못한 거다.

보나마나 뻔했다.

원장은 자신은 둘째 치고 아이들은 어쩌냐며 주이안 헌터의 약한 구석을 쿡쿡 찔러댔을 것이다.

보육원에 오는 전화 좀 어떻게 해 달라며. S급의 영향력이면 이런 건 쉽지 않느냐며.

“실례 좀 하겠습니다.”

하지만 신재헌은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주이안 헌터는 원장에게 말려들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말려드는 자신을 싫어했으니까.

그런 과거의 자신에게 한탄했으니까.

이번엔 막아 줘야 했다.

“?”

모자를 푹 뒤집어쓴 것도 모자라 후드까지 뒤집어쓴 신재헌이 주이안 앞에 섰다.

달려가려던 주이안이 멈칫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조금 바빠서요.”

그러더니 말했다. 곤란한 얼굴의 주이안 헌터가 보였다.

“그래요? 그럼 지나가세요.”

신재헌은 그런 그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감사합니다.”

주이안은 다시 급히 그를 지나쳐 뛰어가려고 했다.

그리고 그의 등이 보이는 순간.

―팍!

신재헌은 그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켜 버렸다.

“……기억의 주인을 패지 말란 소린 없었는데.”

설마 실패 뜨는 건 아니겠지?

뒤늦게 너무 목적만 보고 행동했다는 것이 떠올라 신재헌은 멈칫했지만,

[…….]

시스템창은 조용했다.

그때 주이안이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 뭐라뭐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안아! 주이안? 설마 모른 척하려는 거 아니지? 어?」

꽥꽥거리는 목소리가 뻔해서 발신인을 보니 당연히.

[원장님]

그놈이었다.

신재헌은 어깨와 귀 사이에 주이안의 휴대폰을 낀 채, 기절한 주이안을 번쩍 안아 올렸다.

“여보세요.”

그러자 전화기 너머에서 잠시 말이 없던 원장이 물었다.

「누, 누구냐?」

내용은 패기로운데 목소리는 패기롭지 못했다.

“주이안 헌터 좀 그만 괴롭히세요.”

「뭐라고!」

원장이 발끈했다. 신재헌은 그러거나 말거나 제 말을 이었다.

“주이안 헌터가 횡령했습니까, 댁이 횡령했지? 보육원 게이트에 같이 들어갔으면 몰래 모가지 날려버리고 나오는 건데, 아쉽네.”

「누구냐! 누구냐고!」

원장이 꽥꽥 소리지르든 말든 신재헌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주이안의 주머니에 전화를 쏙 넣어 주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원장 놈은 신문기사에 압살당해 있을 겁니다.”

그는 벤치에 눕혀 놓은 주이안 헌터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힘 조절 제대로 됐겠지?”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주이안의 맥박과 호흡을 확인했다.

음, 멀쩡하군.

그때였다.

―우우웅!

이번엔 주이안의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또 뭐야?”

기절한 주이안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보니 이번엔 메일함에 불이 나고 있었다.

[형아에게]

[주이안 오빠에게]

……애들이 이렇게 타자를 빠르게 치는 애들이 아니었는데?

왜 편지 너머에 불투명도 50% 정도로 원장 면상이 보이는 것 같지?

신재헌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원장은 주이안이 자라난 환경을 통제하고 지켜본 사람인 만큼, 그를 어떻게 이용하고 조종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이 시점의 어린 주이안 헌터를 조종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원장은 영악했다.

그리고 신재헌은 이 꼴을 더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힐러 기억을 딜러한테 맡긴 시스템이 잘못이지.”

어깨를 으쓱한 그가 주이안의 휴대폰을 맨손으로 구겨 버렸다.

―콰직!

그리고 그 길로 어디론가 향했다.

부숴야 할 게 하나 더 있어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