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신재헌은 시력저하 디버프 때문에 좁아진 시야가 조금 거슬렸지만, 이곳은 다행히도 B급 던전이었다.
원래 제 능력치를 갖고 있었다면 눈 감고 맨손으로도 클리어할 수 있는 던전.
문제라면 이쪽은 하필 연약한(?) 주이안 헌터의 스탯이라 무기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인벤토리]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
가지런히 정리된 아이템창에는 신재헌이 쓸 만한 무기가 없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지.”
인벤토리에서 뭔가를 찾기를 깔끔하게 포기한 신재헌은 대충 화장실로 들어가 대걸레 막대를 들고 나왔다.
무기는 이 정도면 됐지. B급에서 뭐가 더 필요해?
그때 한 아이가 그를 발견했다.
“누구세요?”
그리고 당연한 질문을 했다.
“음.”
신재헌은 대충 답했다.
“청소부.”
그러자 아이의 답은 의외로 빨리 돌아왔다.
“원장님은 혼자만 일하신댔는데…….”
그런 어두운 현실을 애들한테 알려주고 있었단 말이야?
“오늘 취직했어.”
그가 다시 답했다.
새삼 건물 상태를 보니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티가 났다.
“진짜요?”
“응.”
긴가민가한 얼굴로 묻는 아이에게 그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불만 있으면 기어오라고 해. 머리 깨 버리게.
뒷말은 당연히 속으로 삼켰다.
신재헌도 당연히 주이안을 이용해 먹으려던 원장에게 감정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애먼 데 화풀이하면 안 되지.
그가 대걸레 막대를 몇 번 휘둘러 본 후에 아이들을 돌아보았다.
“아무튼 형 따라오면 좋은 거 줄게.”
우선 이 아이들을 인솔해서 던전을 무사히 탈출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의 말에 수십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그를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그중 한 아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좋은 거 준다는 사람 따라가지 말랬어요.”
……맞는 소리긴 한데.
“누가 가르쳐 줬어? 원장……님이?”
원장놈이라고 할 뻔한 것을 간신히 정정했다.
하지만 정정한 게 무색하게도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을 모아 답했다.
“주이안 형이요.”
“오.”
신재헌은 이마를 짚었다.
그래, 여기서 애들을 가르쳐줄 만한 어른이 누가 있었겠어?
교육이 잘 된 건 좋았지만 지금의 신재헌에겐 악재였다.
그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내가 그 주이안 헌터 친구거든?”
그래도 친구 말은 들어주지 않을까?
……라는 기대는 1초 만에 박살 났다. 아이들의 눈이 의심으로 물들었던 것이다.
“나쁜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댔어요.”
“그런 말 믿지 말랬어요.”
주이안 헌터―!!!
애들 교육을 어떻게 (이렇게 잘) 해놓은 거야!
슬슬 던전화된 보육원 안쪽에서 몬스터의 기척이 들리니, 신재헌은 환장할 노릇이었다.
결국 그는 전략을 바꿨다.
“그래도 어른 말은 들어야지?”
이른바 꼰대전법!
아이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런 말에 어떻게 대응할지까지는 주이안 헌터가 가르쳐주지 않았는지, 결국 아이들이 몸을 일으켰다.
“가자. 내 뒤만 따라오고 절대 멀리 벗어나면 안 돼. 알았어?”
“네에.”
아이들이 답하는 걸 들으면서 신재헌은 찜찜한 표정으로 앞을 돌아보았다.
왜 좋은 일 하려는데 유괴범 된 것 같냐?
그러면서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아이 하나가 불쑥 물었다.
“근데 어디로 가는 거예요?”
“핸섬인지도 물어보라고 했어요.”
다른 아이 하나가 말했다.
신재헌은 잠시 핸섬인지 물어보란 말이 무슨 뜻인지 고민했다.
잘생겼는지 물어보라고?
그걸 물어봐야 알아?
아니, 아무래도 handsome은 아닌 것 같고, 핸섬인지……핸섬…… 아.
“……행선지?”
그의 말에 아이가 박수를 쳤다.
“맞아요!”
아이에게 행선지란 단어는 좀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이의 말을 이해한 신재헌이 볼을 긁적였다.
애들이 너무 똘똘해도 문젠데?
결국 그는 대충 말했다.
“청소하러.”
아무튼 그는 지금부터 청소부였다. 행복 보육원의 일일 청소부.
최강 청소부의 등장이었다.
***
아무리 앞 안 보이는 상황에 힐러 스탯, 게다가 공격 스킬 하나 없다지만 이곳은 결국 B급 던전이었다.
아이들을 지키면서 몬스터를 때려잡는 건 그의 경험만으로도 충분하고도 넘쳤다.
게다가 어쨌든 주이안 헌터도 S급.
일반인을 아득하게 뛰어넘은 근력을 가지고 있으니 B급 몬스터가 박살 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파악!
―퍽!
걸레 막대기에서 나는 소리치고는 굉장히 파괴적인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동심파괴(B)]
던전 이름이 왜 동심파괴인가 했던 신재헌은 몬스터들의 모습을 보고 이해했다.
―크오오옷!
울부짖으며 달려오는 몬스터들은 삐뚤빼뚤하게 생긴 것들이었다.
아이들이 스케치북에서 그렸던 그림이 몬스터화되어 나오고 있는 탓이었다.
―팍!
신재헌은 벌써 눈앞에 닥쳐오는 여덟 번째 문어 이종사촌을 해치우면서 아이들에게 슬쩍 물었다.
“혹시 최근에 해양 다큐멘터리 봤어?”
“네?”
“음…… 그니까 TV에서 문어랑 낙지랑 뭐, 그런 거 봤냐고.”
그의 말에 아이들이 일제히 합창하듯 답했다.
“네!”
“재밌었어요!”
“문어괴물! 크와아앙!”
처음엔 겁을 먹었던 아이들도 그가 막대를 휘적휘적 휘둘러 몬스터들을 한 방에 박살 내자 오히려 들떠 있었다.
모험이라도 떠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랬구만.”
그리고 신재헌은 짧은 대화 덕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이 왜 죄다 다리가 여덟 개쯤 달린 낙지 이종사촌 모습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럼 나중엔 불가사리 같은 것도 나오려나?
―퍼억!
그는 나오는 몬스터들을 연달아 해치웠다.
문어인지 낙지인지, 아무튼 그쪽 언저리인 것 같은 친구들은 다행스럽게도 다리가 짧았다.
아이들이 그린 문어는 선글라스를 쓰긴 했어도 다리가 길진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상대하기는 편했다.
“와아! 형 잘 싸운다!”
아이들은 점점 들떠서 응원했다.
“파이팅!”
해맑은 목소리가 울렸다.
덕분에 몬스터가 좀 몰리는 것 같았지만, 다른 데서 불쑥 튀어나오는 것보단 차라리 이쪽으로 몰려오는 게 나았다.
때문에 신재헌은 아이들이 신나 하든 말든 묵묵히 막대기를 휘둘렀다.
―퍼억!
걸레 막대기 끝에 맞아 박살 나는 몬스터를 보자니 입맛이 썼다.
물론 아이들의 아트가 박살 나서는 아니었다.
“멋있어요!”
이렇게 해맑은 애들이 다 죽었었단 말이지.
“…….”
어차피 이곳에서 이 아이들을 살린다고 해도 실제로 아이들이 살아나진 않을 터였다.
다 허상일 뿐이라는 소리다.
그게 더 속이 쓰렸다.
―퍼억!
감정이 실려서일까, 걸레 막대기가 더 거칠게 휘둘러졌다.
***
클리어는 금방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어둑어둑했던 보육원 출구로 빛이 보이자, 아이들은 의심 없이 그곳으로 탈출했다.
당연히 그곳은 게이트 출구였다.
“분명 밖에 진입하려던 놈들이 있을 테니까…….”
아이들이 다 나간 것을 확인한 신재헌이 걸레 막대를 대충 구석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충분히 주의를 끌었을 거라고 생각될 무렵, 던전을 빠져나갔다.
“―들아, 어떻게 된 거니?”
“너희들끼리 나온 거야?”
“그게 아니고…….”
아이들이 한창 헌터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이 그는 행복 보육원 뒤쪽으로 숨어들었다.
그런 그의 귀로 아이의 발랄한 외침이 들렸다.
“청소부 아저씨가 다 청소해줬어요!”
신재헌의 얼굴에 빠직 금이 갔다.
아저씨?
물론 여기서 호칭 문제를 따질 틈은 없었다.
그는 헌터협회에서 온 사람이 아이들을 맡는 것까지 보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분명 원장 놈이 입을 털 텐데.”
제 보육원의 아이들보다 기자들과 더 친한 그놈은, 보나마나 보육원 아이들이 겁을 먹었다며 TV에서 눈물 좀 찍어 보인 다음 후원금이나 받아먹으려고 할 터다.
물론 그 돈이 아이들에게 갈 일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얘들아!”
정말 귀신 같은 타이밍으로 원장의 차가 보육원 앞에 도착했다.
“무사했니! 이게 무슨 일이니!”
걱정에 익사할 뻔한 듯한 목소리로 원장이 외쳐댔다. 신재헌은 눈살을 찌푸렸다.
“쇼를 하네.”
그 사이 원장은 기자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놀라서 우는 애들을 인터뷰한다니요! 이게 무슨!”
걔들 안 운다……. 울기는커녕 어드벤처 즐기다가 왔다…….
“썩 가지 못해요!”
애들을 아끼는 척 기자들을 쫓아낸 원장은, 보육원 앞이 한산해지자 아이들을 재빨리 안쪽으로 들여보냈다.
신재헌은 창문 너머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도 애들을 쉬게 해 주긴 하려는 건가?”
마지막 양심은 있는 거지?
그런 기대는 몇 초 만에 박살 났다.
“빨리 이리 안 와!”
원장은 소리를 지르며 아이들을 컴퓨터 앞에 모이게 했다.
인터넷이 간신히 굴러가는 구형 컴퓨터로 뭘 하나 했더니 뜬금없이 아이 하나가 뭘 쓰기 시작했다.
“?”
하필 시력저하 때문에 뭔지 보이지도 않았다.
“형한테 괜찮다고 말해줘야지.”
“맞아. 멋진 청소부 아저씨랑…….”
아저씨 아니라니까?
아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주이안 헌터에게 뭔가를 보내는 듯했다.
―딸깍.
마우스 소리와 함께 화면에서 익숙한 포털사이트의 노란 화면이 보였다.
주이안 헌터가 자주 보는 화면…….
“……메일?”
뜬금없이? 문득 눈썹을 치켜올렸던 신재헌은 제자리에서 우뚝 굳었다.
설마 주이안 헌터가 전에 답해주곤 했다는 메일이 저건 아니겠지?
아니……겠지?
그가 설마 하는 사이 원장이 말했다.
“보육원에서 무서웠던 일 있었던 것도 꼭 쓰고!”
대충 뭔 목적으로 메일을 쓰게 하는지 알 것 같은 발언이었다.
그러는 사이로 기대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형이 얼른 답장 줬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주이안 헌터가 목적이 뻔히 보이는 메일에 회신한 이유는 기대하는 아이들 때문이었던 듯했다.
“아오.”
신재헌은 이마를 짚었다.
하여간 사람이 너무 착해도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