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90)화 (190/218)

190화

L급 던전을 날로 먹을 수 있을까?

S급 던전까진 날로 먹어 봤다.

사고 쳐도 수습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RP던전이나 특수던전 제한에 걸리지 않을 정도론 날뛰어 봤거든.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우리 팀도 정도를 지켜가며 클리어하려고 노력했다.

잘못 날뛰었다간 X되는 수가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건 아주 소극적인 반항에 불과했다.

내가!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으로! 디버프 하나 해제하겠다는데 뭐 어때서?

물론 이 던전이 기억의 주인을 만족시키는 것이고, 채팅만 되면 당시 기억을 가지고 있을 헌터 본인에게 던전 클리어 목적을 물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날로 먹기 딱 좋은 방법이란 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은하서버 채팅방을 찾을 수 없습니다.]

채팅방은 어디 갔는데?

우리가 같이 소속된 채팅방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은하서버 채팅 – 신재헌(S)

- 채팅방이 없습니다.]

그런데 채팅창이 싹 사라져 있었다.

없어? 그럼 만들면 되지!

[은하서버 채팅방 ‘던전 이따위로 만들지 마라(방장:헌터 신재헌)’에 접속합니다.]

[헌터 신재헌(방장)이 주이안 헌터, 유리, 소예리 헌터를 초대하였습니다.]

내가 날 초대한다니 기분이 묘했지만 아무튼 채팅만 되면 상관없었다.

[신재헌>>> 아아 마이크테스트]

내 채팅이 신재헌 이름으로 올라가는 기분은 더 이상했다. 하지만.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인원이 없습니다.]

이 시스템창은 더 이상했다.

같은 시공간? 그럼 우리가 각자 다른 시공간에 떨어졌다는 말씀?

난 이과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채팅은 못 쓴다는 점이었다.

난이도가 괜히 L급이 아니다 이거지?

그럼 얼른 클리어할 수밖에.

이 ‘기억-신재헌’을 클리어하면 누구하고든 만날 수 있을 터였다.

이렇게 나눠서 들어가는 던전은 대부분 클리어한 인원이 클리어하지 못한 인원에게 합류하게 되니까.

‘좋아…….’

작게 뇌까린 난 어깨를 으쓱했다.

이 시점의 신재헌이라면.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이 시점의 그가 뭘 원하고 있을지는 대강 알 것 같았다.

우리가 한두 해 붙어 있었던 게 아니거든요.

내가 걸음을 옮기려는 때였다.

시스템창이 떴다.

[특수던전 ‘기억(L)’의 규칙이 적용됩니다.]

[기억의 주인을 3회 이상 만족시키는 데에 실패하면 사망합니다.]

다짜고짜 던지는 페널티가 사망이었다. 이런 살벌한 규칙을 봤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기억 속 시점의 ‘자신(신유리)’에게 정체를 들킬 시 사망합니다.]

뭐만 하면 사망이네? 뜨겁기 그지없는 시스템창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실패 시마다 능력치가 30% 하락합니다(디버프:기억의 무게(L)).]

조건이 덕지덕지 붙는 게 역시 X랄맞았다.

그럼 그렇지!

난 눈을 가늘게 떴다.

어차피 능력치 떨어지는 거야, 헌터협회 건물에서 습격받은 기억은 없으니 떨어져도 걱정은 없겠지만…….

[스킬]

그래도 실패는 안 하게 있는 건 다 활용해야지.

난 일단 스킬부터 살펴보았다.

유사시에 스킬은 제대로 써야 할 거 아니야?

습관적으로 내 스킬인 잔상을 쓰려고 하면 당연히 여기선 아무 반응도 없을 게 분명했다.

[액티브 스킬

- 화염검(SS)

- 뜨거운 피(A)

……]

음~ 다 아는 얼굴들이죠~

익숙한 신재헌의 스킬들을 보면서 쭉 스크롤을 내린 난 문득 움직임을 멈추었다.

“?”

순간 엥? 하고 소리를 낼 뻔했다.

이러다 과거의 나랑 마주쳤다간 그대로 즉사다!

난 소리를 죽여 14층 복도를 일단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스킬창을 살폈다.

[그림자 장막(L)]

모르는 스킬이 있었다.

[파티원들에게 현재 스킬창 변화를 공유하지 않습니다(ON/OFF).]

[- 현재상태 : OFF]

난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거…….”

언제 썼는지 알 것 같은데?

파리스 그놈이 없어졌을 때.

신재헌이 페널티를 받았던 그때. 한창 연락이 안 됐을 때.

그때였던 모양이다.

기이할 정도로 그의 스킬창이 조용했던 건 이것 때문이었을 터다.

[검의 수호자(B)]

그 사실을 상기하고 다시 스킬창을 보니 새삼 마음이 아려왔다.

“…….”

난 스킬창에서 시선을 떼고 다시 14층으로 소리 없이 올라왔다.

“흐윽…….”

아직도 어린 나는 울고 있었다.

그리고 신재헌은 잠든 척하려 노력하면서 내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입맛이 쓰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파앗!

주변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누군가 동영상을 수백 배속으로 돌린 것처럼.

그리고 아침 해가 뜰 즈음.

―부스럭.

신재헌의 방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아, 신재헌 수련시간이다!

일단 이 시점의 신재헌을 만난다고 즉사하진 않겠지만, 이 시기의 나와 이질감을 느껴선 곤란할 테니 튀어야 했다.

난 다시 부리나케 13층으로 내려갔다.

“당신은 뭐요?”

그리고 뜻밖의 인물……이 아니라 직업정신이 투철한 수위 아저씨를 만났다.

“아.”

이 시점 사람들한테 안 보이는 게 아니었지!

난 이때 당시의 헌터협회 건물 상황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리고 재빨리 말했다.

“저…… 여기 면접 보러 왔는데요.”

다행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후드가 달린 옷이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나 아이반 폰 엘레티아 카르만이 입고 있었을 화려한 옷은 아니었기 때문에 눈에 띌 일은 없었다.

후드를 아주 살짝만 걷어 보이자 수위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은밀한 면접자는 처음 보시죠? 저도 처음입니다.

하지만 14층에 내 어린 버전이 있는 이상 얼굴을 까고 돌아다녀서는 곤란했다.

“아, 그래?”

다행히 직업정신은 투철하지만 의심은 별로 없는 수위 아저씨는 표정을 풀었다.

“면접장은 1층인데?”

그러더니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아니, 날카롭든 둔하든 하나만 하시라고요!

물론 그 말을 밖으로 내놓을 순 없었으므로 난 눈을 크게 떴다.

“1401호인 줄 알았어요.”

“104호야.”

수위 아저씨가 혀를 찼다.

“아, 그래요? 잘못 봤나 봐요. 감사합니다!”

난 재빨리 수위 아저씨를 스쳐 지나갔다.

“쯧쯧…….”

수위 아저씨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1401이랑 104라니 잘못 봐도 지나치게 잘못 본 것 같지만, 아무튼 넘어갔으니 됐다.

“후.”

난 수위 아저씨와 거리를 둔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가 이상한 소리를 하고 다닐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이 당시엔 헌터협회 건물에 보통 사람은 접근하기도 싫어했으니까.

왜냐고?

헌터 관련법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도 않은 시기.

헌터들은 연이은 게이트 처리에 예민해져 있었고, 게이트 처리를 위해서는 헌터들이 뭔 짓을 하든 어지간하면 눈감아줄 수밖에 없었던 때였으니까.

괜히 헌터한테 잘못 걸려서 화를 당하는 것보단 접근하지 않는 게 좋았다.

덕분에 헌터협회에서 헌터관리실 직원을 아무리 뽑아재껴도 사람이 안 모였다.

모여도 며칠 만에 탈주하는 게 보통이었다. 덕분에 헌터협회의 모르는 얼굴들은 죄다 헌터관리실 직원이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였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그 뒤로 만난 사람들에겐 난 똑같이 답했다.

“아, 저 헌터관리실 사람입니다.”

“아…… 관리실…….”

그럼 사람들은 아련한 얼굴로 비켜 주었다.

후드를 뒤집어쓴 것도 문제가 되진 않았다.

얼굴 까고 다니면 거슬린다고 패는 헌터도 있었거든.

어릴 땐 뭐 저런 새X가 있나 싶었지만 지금은 아주 땡큐였다.

―타다닥.

난 일단 빠르게 헌터협회 건물을 벗어났다.

이대로 내 얼굴을 하고 다녔다간 이 시점의 내가 나를 발견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적어도 눈에 띄지 않게 스타일링을 할 필요가 있었다.

***

일단 머리와 눈 색부터 바꾸었다. 헌터용 염색약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렌즈를 쓰니 분위기가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새까만 모자에 머리는 웨이브지게 돌돌 말아 내렸다.

“세니아로 있으면서 머리가 좀 길었네.”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당시의 나는 단발이었으니까.

헌터협회는 출입증이 필요했지만 그건 문제없었다.

신의 상점에서 사면 되지!

[…….]

……아, 내 상태창이 아니었지.

그럼 방법은 하나였다.

“실례.”

길 가는 헌터관리실 직원 하나한테 신세를 지는 수밖에.

난 때마침 출근하는 걸로 보이는 헌터관리실 직원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헌관실 직원분이시죠?”

“네, 무슨 일이십니까? 헌터분이시면 신분증을…….”

긴장하는 게 보였다. 난 예쁘게 웃어 주었다.

“잠시 실례.”

―퍼억!

뒤통수를 맞은 헌터관리실 직원이 쓰러졌다.

“……좀 세게 때렸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헌관실 직원들도 낮에는 유니폼을 입고 다녔거든.

유니폼과 출입증을 한 번에 챙길 수 있는 기회! 놓치지 말자!

“…….”

쓰러진 헌관실 직원은 적당히 지하실에 넣어 두었다.

“여름이니까 감기는 안 걸릴 거예요! 파이팅!”

클리어하면 갚을게! 나중에 현실에서 청구해!

물론 청구가 가능할 리 없었다.

***

난 계속 신재헌을 지켜보았다.

이 시점의 헌터협회는 출입관리가 허술해서, 아직 사람 얼굴이 박힌 출입증을 쓰기 전이었다.

덕분에 면전에서 훔친(?) 출입증으로도 헌터협회를 오가는 건 쉬운 일이었다.

―타닥.

RP던전 하루이틀 해 보는 게 아니라, 일반인처럼 걸음 소리를 내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가자!”

난 과거의 내가 과거의 신재헌을 꼭 붙잡고 던전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일단 따라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어떤 던전이더라?”

깬 던전이 한두 개가 아닌데 이 시기에 들어갔던 수많은 던전까지 기억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신재헌을 쫓아 던전에 들어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긴 신유리 헌터가 공략하는 던전인데, 누구십니까?”

나와 신재헌이 들어간 던전 앞으로 헌터협회 직원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난 대충 인벤토리에 출입증과 유니폼을 처박은 뒤 후드 차림으로 말했다.

“두 분께서 고용하신 부산물 채집꾼인데요.”

그리고 신재헌의 인벤토리에 왜 있는지 모를 곡괭이 하나를 들어 보였다.

이놈은 이걸 왜 들고 다니는 거야?

“신유리 헌터님께서 고용했다는 증거는요?”

“이거요.”

당시의 내가 쓴 허접한 고용계약서를 흉내 내는 건 쉬운 일이었다.

당연히 사인도 내 사인이니 위조(?)하기도 쉬웠고.

―위잉!

헌터협회 사람이 서류에 작은 기계를 들이댔다. 내 사인이 가짜가 아님을 확인한 그가 손짓했다.

“들어가십쇼.”

“넵.”

[던전 ‘협주곡(A)’에 진입합니다.]

바로 시스템창이 떴다.

“아.”

여기? 음악하고는 담 쌓은 내가 신재헌의 말에서 클리어 방법을 찾아낸 그곳이었다.

그리고 신재헌이 B급으로 승급하던 던전이기도 했다.

“‘악기란 건 섬세해서 작은 손상만 있어도 소리가 달라질 수 있거든.’”

이건 당시의 신재헌이 했던 말이었다.

아마 지금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난 나와 신재헌이 지나간 자리를 보면서 인벤토리를 뒤적였다.

[말레티아의 검(SS+)을 착용합니다.]

무기 좀 빌릴게!

묵직한 검을 든 채, 난 다른 채집꾼들이 오기 전에 자리를 벗어났다.

던전은 어차피 클리어하겠지만 빨리 클리어하게 돕는다고 나쁠 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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