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89)화 (189/218)

189화

에델바이스 광산 입구에 서제국 3대 세력의 중심이 모두 모였다.

“…….”

광산 앞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각 세력이 정신없이 황제와 마탑주, 교황의 게이트 입던 준비를 했다고 해도 마음 한편으로는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장 강력한 던전.

당연히 게이트 대응에 뛰어난 성과를 보인 수호기사단장을 포함해 서제국에서 가장 강한 세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맞았다.

“다른 인원들도 추가하는 것이…….”

“네 분이 강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사상 전무후무한 L급 던전에 네 명이라니요? 이건 네 분의 안전과도 직결된 문제입니다.”

일각에서는 우리 넷만 들어가는 걸 반대하기도 했다.

S급 던전도 떼거지로 가는 판에 L급 던전에 네 명만 가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니?

그럼 그 얘기 헌터협회장한테 한 번만 더 해 줄래?

그들이 알 턱이 없었지만 우린 이미 L급 던전에 네 명만 들어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던전이 여기라서 그렇지.

“걱정할 필요 없다.”

신재헌이 모여 있는 서제국의 중진들에게 말했다.

―콰직!

그의 붉은 대검이 땅에 단단하게 박혔다.

“죽을 각오로 임할 것이나 죽지는 않을 것이다.”

신재헌의 말에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물론 그는 서제국의 황제 아이반으로서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연설하는 것이었다.

페널티 안 받으려고 그러는 거겠지.

하지만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내 마음이기도 했다.

‘여기도 스킬 부여를 하라구?’

‘혹시 모르잖아요. 던전 환경이 어떨지.’

이곳으로 오기 전 우리는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물건에 소예리 헌터의 ‘스킬부여(SS)’ 스킬로 여러 가지 스킬을 묶어 놓았다.

물론 대부분이 소예리 헌터의 방어 계열 스킬이었다.

‘제 치유 스킬을 써놓는 것이…….’

주이안 헌터는 그렇게 말했지만 우리는 입을 모아 반대했다.

‘안 돼요.’

‘?’

우리가 갈 던전이 어떤 던전인지는 몰라도, 가장 안전해지는 방법은 하나였다.

네 명이 떨어지지 않는 것.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 스킬부여를 걸어 놓는 것이었다.

‘스킬부여로 쓴 물건은 박살 나는 거 알죠?’

물론 랭크가 높은 물건은 남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서진다고 했다.

‘던전 내부의 마력에 반응하기도 하고요. 여차하면 버려야 해요. 알았죠?’

우리가 지금까지 스킬부여를 잘 안 쓴 이유가 이거였다.

본인 스킬이니 바로 본인이 제어할 수 있는 소예리 헌터와는 달리, 우리는 소예리 헌터의 스킬부여가 걸린 물건을 마음대로 제어할 수가 없었다.

던전의 마력과 어떤 반응을 일으킨다고 해도 재깍 반응하기가 힘들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번 던전 공략에는 스킬부여가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역시 치유 스킬을 저장하는 게…….’

‘어차피 L급 던전에서 얻어맞으면 치유 스킬 쓸 틈도 없이 끽이에요, 끽.’

주이안 헌터는 치유 스킬을 넣자고 거듭 주장했지만 우리는 억지를 부리며 거절했다.

L급 던전에서 말도 안 되는 사치를 부리는 꼴이란 걸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린 반드시, 넷이 함께 나가야 하니까.

“와아아아!”

신재헌의 짧고 굵은 연설이 끝나고, 사기가 오른 사람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무사귀환을 빌겠습니다.”

처음 게이트가 터졌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짱친이 되어버린 마탑 사람들과 사제들, 기사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다녀올게요.”

소예리 헌터가 그런 그들에게 손짓했다. 주이안 헌터도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나도 마지막으로 눈에 익은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이들에게는 RP던전 페널티 때문에 말할 수 없었지만, 우리가 이 던전을 무사히 클리어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

멸망계시록에 따르면 이 대륙이 멸망하는 건 결국 이 게이트 때문이고, 이 게이트를 처리하면 대륙의 위기는 사라진다.

이 ‘연약한 시한부 영애에 빙의해버렸다(L)’라는 RP던전 자체의 클리어 조건이 충족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저 던전을 나간다면, 자연스레 우리는 이곳이 아니라 한국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과는 마지막이었다.

이렇게 돌아올 것처럼 이야기하면서도, 마지막이었다.

“그럼.”

난 그들에게 인사해 보였다.

돌아서는 시야에 바이야 백작과 카를렌타 영애가 보였다.

[S] [S]

두 사람이나 S급이 된 데다가, 각 영지의 저력이 있으니 우리가 자리를 비운 동안 동제국에 밀릴 일은 없을 것이다.

[서제국 게이트 장악도 : 96%]

[동제국 게이트 장악도 : 4%]

그러니 이 퀘스트도 문제없을 거다.

게다가 신재헌이 폭군이긴 해도 정치할 만한 놈들은 잘 키워놨다고 했으니, 우리가 사라져도 서제국이 무너질 일은 없을 터였다.

……우리가 떠나고도 여기가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탁.

우리는 배웅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광산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헌터 소예리(S)’의 ‘비행(A)’ 스킬 효과를 받습니다.]

달려 들어가는 대신 소예리 헌터의 스킬을 받아 빠르게 광산 안쪽으로 접어든 우리는, 문제의 공간에 금세 도착했다.

―우우웅!

이전에 봤던 상자가 보였다.

그 상자는 이전에 봤을 때와는 달리 살짝 열려 있었다.

그 틈으로는 마치 우주같이 반짝이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이 만들어내는 게이트는 역시 새까만 먹물 같은 색.

L급 게이트였다.

“…….”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들어오면서 많은 준비를 마쳤기에 더 할 말은 없었다.

―탁.

잠시 시선을 나누고, 우리는 동시에 상자 위로 손을 얹었다.

[‘기억의 상자(L)’에 접촉합니다.]

[‘기억(L)’에 접어듭니다…….]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그리고.

[‘기억-신재헌’에 접속합니다.]

[특수던전으로 현재 능력치(세니아 드 에델바이스(S))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정보를 로드합니다.]

[능력치 정보 검색 중…….]

[검색 완료.]

새까만 시야 사이로 새파란 시스템창이 떴다.

[‘헌터 신재헌(S)’의 정보를 동기화합니다.]

뭐? 이름 잘못 쓰인 거 아니냐?

눈을 크게 뜬 사이 시스템창마저 어둠 속에 묻혀 버렸다.

***

지금까지 수많은 RP던전과 특수던전을 오갔지만, 이런 던전은 또 처음이었다.

물론 L급 던전인 만큼 뭔가 X랄맞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전혀 예상 못 한 식으로 독특할 줄은 몰랐지!

무엇보다 황당한 건 이거였다.

[신재헌 / 27세, 딜러(S)

체력 : 2913076 (+612625)

근력 : 382111 (+58613)

마력 : 173207 (+30550)

민첩 : 190798 (+56301)

지구력 : 370128 (+106640)

방어력 : 310015 (+45000)

특수 버프 “말레티아의 수호(SS+)” : 받는 데미지 10% 감소, 말레티아의 검(SS+)을 통한 데미지 30% 증가, 불속성 스킬 효과 극대화

특수 :

- 도금 목걸이(S, ‘헌터 신재헌(S)’ 애장품 보너스 : 획득 경험치 +50%, 아이템 랭크 강제 증가(C>S), 전체 능력치+10%)

- 투쟁의 장갑(S, ‘헌터 신재헌(S)’ 애장품 보너스 : 착용 후 타격받을 때마다 통증 경감(S) 스킬 3초간 발동, 체력+10%, 지구력+20%)]

신재헌의 능력치를 이만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인벤토리]

인벤토리를 열어 보니 낯선 물건 대부분과 익숙한 물건 몇 개가 나를 반겼다.

당연히 신재헌이 보여준 적 없는 물건들은 다 낯설 수밖에 없었다.

완벽하게 내 앞에 뜬 건 신재헌의 상태창이었으니까!

동기화한다고 템창에 스킬창까지 다 동기화하는 게 어디 있어!

본의 아니게 남의 능력치 보게 된 건 둘째 치고, 이대로 클리어하라고?

이 던전에 L급이란 판정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했다.

애초에 자기 스킬 들고도 솔플하기 어려운 게 SS급 이상 던전인데, 남의 스킬 들고 하라니?

나랑 신재헌은 클래스라도 같지, 만약에 주이안 헌터가 딜러 정보와 동기화됐거나 신재헌이 주이안 헌터의 힐러 정보와 동기화됐다면?

난이도는 극악으로 치달을 것이다.

그때 시스템창이 불쑥 떴다.

[이곳은 ‘기억-신재헌’입니다.]

[이 시점의 미래를 바꾸어 ‘기억의 주인’을 만족시켜 그에게 후회 없는 결과를 이끌어내세요.]

기억의 주인이야 당연히 신재헌이고, 이 시점이 언젠데?

“…….”

주변을 둘러보니 불 꺼진 헌터협회 건물이었다.

어둠 속이니 내 상태창이었다면 암순응 같은 스킬이 켜졌을 텐데, 신재헌의 상태창은 당연히 조용하기만 했다.

[…….]

덕분에 난 불편을 감수하고 주변을 살펴야 했다.

물론 S급이라 암순응에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

그리고 이곳이 어딘지 파악한 난 눈썹을 치켜올렸다.

[헌터협회]

저 네 글자만 번쩍번쩍하고 건물은 낡은 이곳.

이곳은 다름 아닌 임시 헌터협회 건물이었다.

게이트 사태가 터진 지 얼마 안 되어 출범한 헌터협회가 건물을 급히 공수해 썼던 그 시점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이 복도는 익숙했다.

여긴 나랑 신재헌이 머물렀던 층인데?

‘S급 헌터시니 편히 모셔.’

그 말과 함께 내 앞으론 헌터협회의 14층이 통째로 주어졌다.

물론 헌터협회에선 나한테 잘 보여서 어떻게든 협회소속 헌터로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지만, 어린 난 그럴 생각도 없었다.

물론 지금도 없지만.

‘와! 감사합니다! 가자!’

그리고 어렸던 난 당연히 신재헌을 데리고 14층으로 들어왔다.

‘저 사람은…….’

‘그냥 둬.’

헌터협회 사람들은 눈에 띄게 떨떠름해했다. 신재헌은 원치 않았다는 거겠지.

그때의 불쾌감이 되살아나 내가 눈을 가늘게 떴을 때였다.

“흑…….”

문득 좀 떨어진 곳에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

의아해 돌아본 방문은 익숙했다. 내가 자던 방이었다.

아.

그 순간 난 깨달았다.

이때가 정확히 언제인지.

헌터협회에 있을 때. 한창 힘들었을 때.

문득 밤이 무서워서, 자고 일어나면 내일이라는 것조차 무서워서 울었던 날.

그날이었다.

―스륵.

그때 맞은편 방에서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신재헌의 방에서.

물론 내가 아는 다 큰 27살 신재헌이 아니라 어린 신재헌이 있겠지만.

근데 얘 이때…….

자고 있었던 게 아니었어?

자는 줄 알고 울었는데?

물론 펑펑 울진 않았다. 이불 속에서 소리를 죽이고 울면, 신재헌은 듣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세니아로서 C급과 B급을 거쳐온 난 알 수 있었다.

이때의 신재헌은 내가 우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

게다가 헌터협회가 처음 빌렸던 이 건물은 헌터들의 괴물 같은 능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물이었다.

한마디로 방음 시설이 크게 뛰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 들었구나…….

난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

그래, 지금은 일단 이거 신경 쓸 때가 아니지!

난 손을 내리고 채팅창을 켰다.

일단 언제 시점인지 알았으니, 이때의 신재헌이 뭘 원했는지는 본인한테 물어보면 된다.

이거 헌터채팅도 설마 신재헌으로 뜨는 거 아니지?

[헌터채팅이 불가능한 던전입니다. (관련 디버프 : 고립된 기억(L))]

오…….

디버프 때문에 채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난 이걸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친구의 증표 : 이 아이템이 인벤토리 밖, 주인의 반경 1m 이내에 있을 경우 ‘친구의 증거(L)’ 버프 효과가 발동한다.]

[친구의 증거(L) : 행동을 강제하는 L급 이하 던전의 디버프를 최대 3회까지 무력화할 수 있다.]

3번만 쓸 수 있는 아이템인 셈이니 아깝기는 하지만, ‘아끼다 X된다’는 진리가 있지 않은가?

[친구의 증거(L)을 발동합니다.]

그러자 들고 있던 친구의 증표에 은은한 빛이 흘렀다. 그러면서 시스템창을 은빛으로 확 물들였다.

그리고.

[던전 디버프 ‘고립된 기억(L)’이 해제됩니다.]

그렇지! 난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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