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85)화 (185/218)

185화

에델바이스 광산에 에델바이스 백작이 들르는 게 이상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요즘 나는 에델바이스 광산을 자주 찾기까지 했다.

“에델바이스 백작님?”

소예리 헌터님은 내가 채팅은커녕 전서구도 없이 찾아온 것에 놀랐지만, RP던전에 익숙한 그녀답게 능숙하게 대처했다.

“벌써 오셨군요. 이렇게 일찍 오실 줄은 몰랐는데.”

일찍 올 줄 몰랐던 게 아니라 올 줄 몰랐던 거겠지만, 그걸 내색하는 사람은 우리 둘 중에 아무도 없었다.

“약속이 있으셨군요.”

우리가 자연스럽게 굴자 마법사들도 당연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소예리 헌터의 개인 공간에 들어온 순간.

―우웅!

소예리 헌터가 빠르게 방음벽을 쳤다.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에요?”

나를 돌아보는 소예리 헌터는 당연히 의아한 얼굴이었다.

“꼭 알려드려야 할 게 생겨서요.”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눈을 깜빡였다.

“좀 전에 신전에 들렀다 왔는데…….”

난 그런 소예리 헌터에게 주이안 헌터의 상태를 빠짐없이 설명했다.

어지럽혀져 있던 방 안부터 돋보기 물약으로 봤던 주이안 헌터의 상태창과 퀘스트 내용까지.

내 말에 입을 다물지 못하던 소예리 헌터가 중요한 것을 물었다.

“……93%라고요?”

주이안 헌터의 시력 저하가 93%까지 진행되었다는 것.

“그럼 100%가 되면 실명이라는 거잖아요?”

“……네.”

난 그 말에 무거운 목소리로 답했다.

실명하는 것은 물론 주이안 헌터는 이 던전에서 나갈 수조차 없게 된다.

실명하지 않은 채로 클리어하는 것이 그의 개인 퀘스트 목표였으니까.

소예리 헌터는 복잡한 얼굴로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그니까…… 주이안 헌터가 더 힐을 하면 안 된다는 소리잖아요?”

그러더니 분노했다.

“아니, 그럼 그 사람은 그 상태에서 야전병원을 쓴 거야?”

그녀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나도 딱 미칠 노릇이라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주이안 헌터를 욕할 수가 없었다.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알기 때문에.

결국 나와 같은 결론에 이른 소예리 헌터가 머리를 붙잡은 채 말했다.

“나가기만 해 봐……!”

나가면 주이안 헌터의 그 빌어먹을 개인 퀘스트도 사라질 테니, 아마 시력도 회복될 터였다.

그땐 정말 등짝이 닳도록 때려줄 테다!

소예리 헌터가 끙끙거렸다. 그녀는 정말 화나 보였다.

“몰랐으면 어쩔 뻔했어!”

그녀가 씹어뱉듯 말했다.

“내 말이!”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 말이 그 말입니다!

만일 이걸 몰랐다면 우린, 이 던전을 좋다고 클리어하고 보니 세 명만 나가 있는 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영문도 모른 채 주이안 헌터와 이별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너무 화가 났다.

화가 나고…… 미안하고 미칠 것 같았다.

“진짜 나가기만 해 봐……!”

물론 L급 이상의 던전이 목전인 마당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반드시 나가야 했다.

반드시, 우린 살아남아야 하니까.

***

게이트 진입 준비는 착착 이루어졌다.

[전국에 제국민들을 위한 벙커를 설치한다.]

황가의 명령으로 마탑과 힘을 합쳐 전국에 벙커까지 설치했다.

재료? 던전 부산물로 차고도 넘쳤다.

심지어 강도도 단단하기까지 했다.

“벙커까지는…….”

“아직 던전이 잘 관리되고 있지 않습니까?”

일부 귀족들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황가에서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는 말에 바로 벙커 설치를 환영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나쁠 게 없었던 것이다.

“하긴, 요즘 게이트가 많아지긴 했지.”

“영지민들이 피해를 볼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렇게 반발 여론은 생길 뻔했다가 빠르게 소멸되었다.

“저희 영지의 벙커 설치 관련 서류 초안입니다.”

헬렌을 통해 내 앞에도 벙커 설치 관련 서류가 도착했다.

내 영지는 게이트가 많이 나오는 영지 중 하나인 만큼, 다른 영지보다 벙커의 수가 더 많았다.

“이대로 최대한 빨리 준공시켜.”

내 명령에 에델바이스 영지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바빠진 건 내 영지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물론이고 동북부 게이트 대응 연합 ‘미야’ 사람들까지 바빠졌다.

특히 미야는 동북부 게이트 방어 전선으로, 비상시에 중심 역할을 하게 될 예정이었다.

여러 가지 매뉴얼 정립으로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매뉴얼 정립을 위한 회의.

“……에델바이스 백작 없이 게이트 방어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이다.”

회의를 다 끝마칠 즈음에 바이야 백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그답지 않은 말에 난 순간 멍청하게 되물어 버렸다.

열혈 바이러스 다 어디 갔어?

“당연히 잘할 수 있죠!”

난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애초에 미야 사람들은 게이트 방어만큼은 다른 영지와는 차원을 달리했다.

애초에 미야가 처음 세워졌을 때 이후로는 지원요청조차 오가는 일이 많이 없었다.

그만큼 미야 소속의 귀족가 사람들이 게이트 대응에 익숙해졌다는 뜻이었다.

가끔 내게 조언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마저도 최근에는 거의 없었다.

다들 경험이 풍부해졌으니까.

“바이야 백작님은 물론이고, 미야 소속의 귀족분들이라면 충분하고도 남아요.”

내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바이야 백작이 우뚝 굳었다.

“?”

숨도 멈춘 것 같았다. 동상이 된 것 같았다.

“바이야 백작님?”

왜 그래요, 집에 뭐 두고 온 사람처럼?

하지만 바이야 백작은 내가 부르자마자 꽃……이 아니라 사람이 되었다.

“이런…… 이런 영광이!!!”

그러더니 주식이 상한가 치다 못해 떡상한 소예리 헌터처럼 제자리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다.

아니, 왕정제 국가에서 황제 두고 이래도 되는 거야?

아무리 봐도 신재헌보다 내 칭찬에 반응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다.

바이야 백작의 오두방정은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에델바이스 백작께 인정받은 날이다! 여봐라!”

그러더니 하인을 불러와 우렁차게 외쳤다.

“오늘을 미야의 기념일로 삼아라!”

아니, 백보 양보해서 바이야 가문 기념일은 될 수 있다 쳐도 미야 기념일은 너무 나간 거 아니냐?

이건 미야 소속 다른 귀족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찬성이오.”

“매해 이곳에서 잔을 들어야겠습니다.”

“카르만을 위하여!”

“에델바이스 백작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지키겠소이다!”

의견을 들을 필요도 없이 다른 귀족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덕분에 난 할 말이 없어졌다.

내 말에 안심하는 것이, 아무래도 다른 귀족들도 내심 자신이 없었던 듯했다.

그러다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 말이 도화선이 됐는지, 바이야 백작의 열혈 바이러스가 다시 폭발하기 시작했다.

“우워어어어!”

다들 하늘에 불만이 많은지, 하늘에 어퍼컷을 연달아 갈기는 가운데 하인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멀리서 마차 한 대가 오고 있습니다.”

“마차?”

아직 안 온 사람 있었나? 미야 사람들 다 왔는데?

하지만 내 L급 게이트 진입을 앞두고 매뉴얼을 정하러 모인 자리였다.

안 온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바쁜 텐치아 백작마저 와서 저기서 어퍼컷을 날리고 있는데, 누가 또 왔다는 거야?

근데 멀리서 기사 한 명이 다가와 보고했다.

“백작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그런데…….”

“약속된 손님이 없는데?”

그 손님이 마차 타고 온 그 손님 아니냐? 내가 하인과 기사를 번갈아볼 때였다.

기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서 먼저 방문해도 될는지 여쭙고자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편지 한 통을 들어 보였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카를렌타 가의 문장?”

카를렌타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사락.

편지를 열어 보니 단정한 글씨체가 보였다.

[에델바이스 백작께

사전연락도 없이 급하게 찾아뵙는 결례를 사과드립니다.

에델바이스 백작은 물론 미야의 여러분들과 상의하고 싶은 것이 있어……]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온 편지를 보내온 사람의 이름은 익숙했다.

[루릴 드 카를렌타]

“……카를렌타 영애?”

그 검술 대회에서 속검 쓰던 사람?

반가운 손님이 아닐 수 없었다.

미야의 모임에 갑작스럽게 참석하려고 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소식을 들은 미야의 귀족들도 의아한 반응이었다.

“중부의 사자가 왜?”

카를렌타 가의 별명인 모양이었다.

중부의 사자.

하긴, 그런 이름을 가질 만큼 실력이 뛰어난 가문이기는 했다.

“일단 초대해도 될까요? 이렇게 급히 오신 이유가 있을 듯하니.”

내 말에 귀족들이 동의했다.

“물론입니다. 어차피 매뉴얼 정리는 끝나지 않았습니까?”

“연회는 함께 즐깁시다!”

바이야 백작이 들뜬 얼굴로 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카를렌타 영애가 모임이 진행되던 우리 가문의 별장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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