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어차피 나는 신전에 들를 명분이 있었다.
수호기사단장의 정기 방문 일정.
명목상으로는 사제들이 게이트에서 어떻게 활동할지 주기적으로 신전 측과 계속 합의하는 과정이었지만, 우리에겐 별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주이안 헌터는…….
“쉬고 계신다고요?”
내 일정을 까먹어 버린 것 같았다!
아니, 사람이 쉴 수도 있지. 하지만 난 순간 놀라서 물어보았다.
“예. 일정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워낙 근래 바쁘신 터라…….”
나를 신전으로 안내한 사제도 난감한 얼굴이었다.
아니, 주이안 헌터가 뭘 까먹는 사람이 아닌데?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실 수도 있죠.”
그러실 수도…… 있긴 한데 주이안 헌터라 신기하긴 했다.
“일단 일정이 있으니 제가 조심스럽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사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교황의 집무실에 올라갔다가 왔다.
그러고는 나를 조심스럽게 안내해 주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영 난감한 표정이었다.
어째 빨리 돌아온 게 직접 얼굴 보고 온 건 아닌 것 같은데?
난 그 난감한 표정의 이유를 주이안 헌터가 있는 방에 들어가 보고서야 알았다.
“?”
문을 소리 없이 닫은 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주이안 헌터는 놀랍게도 소파에 누워 있었다.
물건에는 용도가 따로 있다며 신재헌이 소파에 누울 때마다 그를 침대에 곱게 눕혀 주는 사람이 주이안 헌터였다.
‘소파랑 침대랑 눕는 맛이 다르다니까요? 소파의 그 나태한 맛을 즐기는 거라니까?’
신재헌이 그렇게 주장해도 주이안 헌터는 침대에 눕는 게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다.
근데 이 사람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네?
와우.
“괜찮아요?”
내 말에 주이안 헌터가 눈을 감은 채 조금 늦게 답했다.
왠지 좀 졸린 듯 가라앉은 목소리 같기도 했다.
“조금 쉬고 일어나면 괜찮습니다. 그러니 나가 보세요.”
그리고 이 말은 무슨 자동응답 같았다.
들어온 사람이 나라는 걸 모르시나 본데.
“…….”
음……. 채팅하면 바로 벌떡 일어나실 것 같지만, 가까이 있는데 굳이?
난 그를 어떻게 깨울까 고민하다가 문득 이상한 걸 발견했다.
그건 소파에 누워 있는 주이안 헌터보다 더 이상한 것이었다.
“?”
주이안 헌터 주변의 물건이 어지럽게 정리되어 있다는 것.
정리하긴 했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정리한 것처럼 삐뚤빼뚤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것.
물론 제대로 정리된 곳도 있지만 신전 수습사제들의 손을 거친 것 같고, 주이안 헌터 주변의 물건은 확실히 이상했다.
“……?”
특히 주이안 헌터의 책상 근처를 보니 상태는 더 심각했다.
난 눈을 가늘게 떴다.
“주이안 씨, 어디 아파요?”
그러고 주이안 씨에게 물었다.
그러자 반응은 역시 바로 왔다.
“!”
놀란 주이안 헌터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소파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흐트러진 연갈색 머리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채 멍한 시선으로 앞을 보는 주이안 헌터라니.
걸작도 이런 걸작이 없었다.
심지어 잠이 덜 깼는지 내가 아니라 좀 엉뚱한 곳을 보고 답하고 있었다.
“어디 아파요?”
상태가 영 심각해 보이는데?
“……아.”
주이안 헌터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고개를 저었다.
“피곤해서 그렇습니다.”
“피곤……해서?”
S급이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이렇게 뻗는다고?
게다가 이 정리된 듯 안 된 것 같은 주변의 흔적들은 묘하게 거슬렸다.
“정말요?”
뭔가 있다.
난 그렇게 되물으면서 파티창을 살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 S급(힐러)
- 버프 : 없음
- 디버프 : 없음]
……상태창은 아무 이상도 없는데?
하지만 그답지 않게 흐트러져 있는 모습이 이상했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뭔가 숨겨진 게 있다고.
아무리 최근에 사제들을 가르치느라 바빴다고 해도 S급이 저렇게까지 뻗을 수는 없고, 뻗는다고 해도 주변을 굳이 이상하게 어지럽혀둘 필요는 없었으니까.
“정말 괜찮습니다.”
하지만 주이안 헌터는 앞머리를 정리하면서 말했다.
난 눈썹을 치켜올렸다.
상태창을 훔쳐볼 수도 없고.
……잠깐, 훔쳐봐?
[신의 상점 : Lv. 4]
뭐, 비슷한 거 되는 아이템 있지 않았나?
빠르게 신의 상점 창을 훑은 난 이내 원하던 것을 찾았다.
[돋보기 물약 – 3000C]
[타인의 시스템창(능력치)을 열람할 수 있다. (눈이 마주치는 시간 동안, 최대 10초)]
이걸 여기서 쓴다고?
[돋보기 물약을 구매하였습니다.]
구매하는 사이 주이안 헌터는 소파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아서 앉혔다.
“아니에요, 좀 쉬어요.”
“하지만…….”
하지만이고 저치만이고 앉아 있어!
딱 봐도 상태가 갔잖아!
―톡.
난 그를 잡아 앉히면서 돋보기 물약 뚜껑을 땄다. 인벤토리에 손을 집어넣은 채였다.
돋보기 물약의 뚜껑은 S급으로 올라 그야말로 태평양이 되어버린 인벤토리에 남겨 놓고, 난 병만을 꺼내 빠르게 마셨다.
“……?”
그때까지도 주이안 헌터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을 뿐, 내가 면전에서 뭘 마셔도 반응하지 못했다.
아무리 안경을 안 쓰고 있다지만.
이 사람 원래 시력 때문에 안경 쓰던 사람이 아니었을 텐데?
애초에 눈 안 좋아서 안경 쓰는 S급이 어딨냐?
눈이 너무 좋아서 안 봐도 될 것까지 보이는 바람에 일부러 안경이나 선글라스를 쓰는 사람은 있어도.
내가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돋보기 물약 효과 발동!]
[대상과 눈을 마주치세요]
맞다, 이거 눈 마주쳐야 하지!
사람은 설명을 제대로 읽고 살아야 합니다! 으아악!
“신유리 헌터님?”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주이안 헌터가 인벤토리로 손을 집어넣었다.
안경을 꺼내려는 듯했다.
―탁.
그리고 난 그 손을 나도 모르게 잡아 버렸다.
한쪽 손은 어깨를 잡고, 다른 한쪽 손은 인벤토리에 들어가 있는 그의 손목을 잡은 채 난 주이안 헌터와 시선을 마주쳤다.
“……?”
고개를 갸웃거리는 주이안 헌터의 눈과 시선이 마주치자 시스템창이 읽혔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 / 29세, 힐러(S)
* 특수 직업 보너스 : 교황(치유 관련 스킬 효과 +50%)]
가장 먼저 보인 건 기본 정보였다.
하지만 내가 보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다.
곧바로 다음 시스템창을 보니 버프와 디버프창이 보였다.
그리고 디버프에는.
[디버프 : 시력저하(93%, L)]
……시력저하? 난 눈을 가늘게 떴다.
회색으로 쓰여 있는 걸 보니 애초에 타인에게 노출되지 않는 디버프인 모양이었다.
난 빠르게 디버프 상세정보를 확인했다.
[퀘스트 페널티(100%시 실명)]
굵고 짧은 설명이 보였다.
입 안이 타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긴 시간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도 반응이 느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신유리 헌터님……?”
주이안 헌터가 재차 나를 불렀다.
난 입술을 깨물었다.
말하지 못한 게 이거야?
아니면 말하지 않은 거야?
이딴 페널티가 대체 어떤 퀘스트에서 붙은 거지?
진행 중인 퀘스트를 확인하자 곧바로 보였다.
[개인 퀘스트(MAIN) : 대가]
대가? 무엇에 대한 대가?
[클리어 조건 : 시력을 잃지 않고 던전 클리어]
[* 치유 계열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시력저하(L)’ 디버프가 악화됩니다.]
……이딴 퀘스트를 힐러한테 주는 게 어디 있어?
하지만 퀘스트창 어딜 봐도 ‘파티원에게 말하지 않고 클리어’ 따위의 조건은 없었다.
비밀로 한 건 주이안 헌터의 선택이었다는 소리였다.
[돋보기 물약의 효과가 끝났습니다!]
시스템창이 뜨며 그의 상태창이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놓아주세요.”
주이안 헌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S급 딜러인 내 힘을 힐러인 주이안 헌터가 이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나도 모르게 힘을 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난 재빨리 그의 어깨와 손목에서 손을 뗐다.
붉은 손자국이 남은 손목이 보였다.
그제야 안경을 쓴 주이안 헌터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신유리 헌터님.”
그는 얼마간 말을 고르다가 물었다.
“여긴 무슨 일로……?”
왜 손목까지 잡았느냐고 묻고 싶은 듯했지만,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한 듯했다.
그는 늘 상대를 생각해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상대가 상처받지 않게 말하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제 이야기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수호기사단장 정기방문 시기인데요.”
복잡한 감정에 화가 묻어나, 좀 퉁명스럽게 답이 나가 버렸다.
주이안 헌터가 내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런…….”
그는 입을 벙긋거리다가 말했다.
“새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너무 미안해했다.
그런 그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하다가 결국 난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요. 바쁘면 그럴 수도 있지.”
안 괜찮아.
미안해할 건 주이안 헌터님이 아니잖아요?
왜 말 안 했어요?
“…….”
“…….”
그렇게 따지고 싶었지만 결국 우리 사이엔 침묵만 맴돌았다.
그가 왜 말하지 않았는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주이안 헌터가 애써 저 퀘스트 내용을 비밀로 한 이유를 아니까.
……그리고 내가 따진다고 해도, 주이안 헌터의 마음만 불편해질 뿐 달라질 건 없을 것을 알기에.
그는 제가 실명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던전에서 나가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퀘스트를 비밀로 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가서 등짝을 걷어차줄망정 지금은, 지금은 말할 수 없었다.
“서류 몇 개만 후루룩 보면 돼요.”
난 핑계 삼아 가져온 종이를 들어올렸다.
서류를 보고 멈칫한 주이안 헌터가 안경을 고쳐 쓰는 게 보였다.
그런다고 보일 리가 없을 텐데.
“어차피 맨날 보던 건데 안경까지 고쳐 쓸 필요가 있어요?”
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사인해야 할 곳만 슬쩍 가리켰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
그렇게 정기방문 일정은 빠르게 끝났다.
주이안 헌터는 내가 아무것도 못 알아챈 것에 안심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간다는데도 늘 짓던 아쉬운 표정 대신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 걸 보면.
“많이 피곤하면 쉬면서 해요.”
힐도 작작 쓰고. 사제들 가르치면서 힐 쓰는 건 아니겠지?
뒷말은 간신히 삼켰다.
주이안 헌터는 내 말에 옅게 웃었다.
“정말 괜찮습니다. 이제 다 쉬었어요.”
그 말에 난 툭 뱉을 뻔했다.
거짓말쟁이.
그는 정말 끝까지 말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팀이 이 사실을 몰라서는 곤란했다.
“휴식은 침대 가서 하는 거라면서요. 소파에서 휴식은 무슨.”
보는 사람도 없겠다, 난 그를 번쩍 들어 올려 침대에 던져 버렸다.
“신, 신유리 헌터님?”
“닥치고 자.”
자라고!
난 그의 얼굴에 베개를 꾹 눌러 주고 나와 버렸다.
그 후 내가 바로 향한 곳은 저택이 아니라, 소예리 헌터가 있는 에델바이스 광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