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에델바이스 백작은 서제국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런 그녀의 말이 미치는 파급력은 당연하게도 대단했다.
[문제의 던전 공략 방법은 리카스 드 포를랭에게만 전한 개인적인 정보였다.]
[리카스를 돕고자 하는 마음에 알려줬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혼동이 있었다.]
그 소문은 당연히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화제가 되었다.
“어쩐지 이상한 공략법이다 싶었다네.”
“에델바이스 백작이 그런 경솔한 공략법을 사용할 리가 없지.”
“그런 기본기도 없는 방법을 썼다면 에델바이스의 게이트 방어율이 어떻게 나왔겠소?”
당연히 에델바이스는 고평가되고 포를랭의 인식은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포를랭은 잘못된 방법인지 한 번도 의심을 안 했단 말인가?”
“그걸 확인할 지식이 없었던 건 아니오?”
“하긴, 포를랭의 게이트 방어율을 보면…….”
포를랭 자작의 능력을 대놓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포를랭에 제일 심각하게 타격을 준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그래서 에델바이스 백작이 개인적으로 알려준 걸, 포를랭에 마음대로 유출했다는 것 아니오?”
“포를랭 가의 둘째가 그리했다지? 알려준 자나 그걸 바로 사용하는 자나…….”
“그런데 애초에 에델바이스 가와 포를랭 가의 사이가 안 좋은데, 둘째가 그곳에 왜 가 있었던 것이오?”
그런 의문을 가질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신유리는 미리 입을 열었다.
“리카스 드 포를랭이 저택에서 쫓겨난 채 신세를 지고 있었다는군.”
“신세를 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첩자로 들어간 것 아니오?”
당연히 날카로운 귀족들은 진실을 간파해냈다.
“그런 멍청한 방법을 쓰는 가문은 포를랭밖에 없을 거요!”
“하하하하! 기사 셋에 성기사 둘, 마법사 하나를 사제 한 명이 모두 치료하게 한다니!”
“신시안께서 분노하실 일이오!”
신시안은 모르겠고 신시안 교황은 확실히 분노할 이야기였다.
포를랭이 개망신당하는 사이.
리카스 포를랭은 엄청나게 바빠졌다.
“뭐, 뭐라고?”
그는 때마침 세니아의 부탁으로 또 다른 던전을 클리어하고 온 길이었다.
분명히 정보를 얻어내러 온 건데 어째 게이트만 처리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잠시 날카로운 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어쨌든 귀한 정보를 포를랭과 동제국의 킨나에게 전하지 않았는가?
포를랭은 둘째 치고 이제 킨나에게 제 효용가치를 증명한 셈이었다.
곧 킨나에게서 회신이 올 것이다.
당연히 서제국의 게이트 관리법에 목말라 있는 동제국이었으니, 덥석 물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
“리카스 님께서 정말 그러셨습니까?”
그와 함께 있던 기사들은 에델바이스 저택에서 보내온 정찰병에게 게이트 클리어 결과를 전하면서, 무언가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에델바이스의 기사들은 리카스를 안 좋게 보고 있던 차였다.
검가인 포를랭의 둘째라기에 실력을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별로 실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정보를 빼돌리기까지 해?
게다가…….
“그런 말도 안 되는 구성을, 설마?”
“난이도 높은 게이트에 조금만 오갔어도 말도 안 되는 구성이란 걸 알 텐데…….”
기사들이 쑥덕대기 시작했다. 리카스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그건…… 내가 무심코 편지에 이야기를 흘린 것 같아. 미안하네.”
그는 진땀을 흘려야 했다.
멍청한 포를랭 자작이 ‘에델바이스에서 들었다’고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궁지에 몰릴 일은 없었을 텐데!
“가주님과 같은 피를 가지셨으니 기대했는데…….”
“역시 포를랭에 대한 소문이 맞나 보군.”
에델바이스 기사들의 웅성거림을 리카스는 못 들은 척했다.
이미 서제국 내부에서 제 평판은 망했다. 여기서 어떻게 살릴 방법도 없다.
하지만 서제국에선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어차피 에델바이스 백작, 세니아가 실세가 된 이상 서제국에선 떵떵거리면서 살기는 글렀잖아?
그래서 기대를 걸고 있던 게 동제국이었는데……!
새빨개졌던 그의 얼굴이 이번엔 파랗게 질렸다.
신유리가 봤으면 애국심이 끓어오르는 안색 변화라며 감탄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이 꼴을 직관하지 못하고 있었다.
리카스가 입술을 짓씹었다.
빨리 어떻게든 이 정보가 거짓이라는 걸 킨나 님께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제국에서도 제 쓸모가 없어지게 생겼다!
“이, 일단 다들 저녁부터 들지. 난 생각을 좀 정리하고 오겠네. 세니아에게 어떻게 사과할지도 생각을 좀 하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귀환길의 행렬에서 잠시 빠져나왔다.
―휘익!
그리고 급히 전서구로 쓰는 새를 불렀다.
동제국에서 그 방법을 쓰기 전에 빨리 막아야 했다.
“하필 편지는 또 자세하게 써 놔가지고……!”
포를랭 자작에게 보낸 편지는 대충 썼지만 킨나에게는 아니었다.
리카스가 아무리 원래 동제국의 첩자였다지만 킨나와는 정치적 방향이 달랐던 파리스의 첩자였다.
당연히 정보를 신뢰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서 문제의 ‘기사 셋, 성기사 둘, 마법사 하나, 사제 하나’ 공략에 온갖 이유를 갖다 붙였던 것이다.
던전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인원이 늘어나거나 사제가 많이 들어가면 난이도가 높아진다느니 하는 소리들.
놀랍게도 인원이 많이 들어가면 난이도가 높아지는 건 진실이었지만, 사제가 많이 들어가면 난이도가 높아진다는 건 개소리였다.
어떻게든 킨나가 이 공략을 조금이라도 더 신뢰하게 하려고 갖다 붙인 소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걸 정면으로 반박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킨나 님께
이전에 전달드린 공략법이……]
그는 다급히 편지를 작성해 전서구를 보냈다.
멀리로 쏘아지듯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 그가 발을 동동 굴렀다.
제발 킨나 님이, 그 공략을 동제국에서 널리 쓰지 않았어야 할 텐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게이트 홀딩의 영향으로 수많은 게이트에 시달리고 있던 동제국의 킨나는, 이미 그 공략을 전국에 알린 후였다.
“킨나 전하, 정말 이 공략이 맞습니까?”
“아무래도 사제가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물론 킨나는 리카스와는 달리 조금의 지능이 있었기 때문에, 전국에 ‘시행하라’는 명령을 철회하고 ‘논의해보라’는 명령을 보낸 뒤였다.
다시 말해 동제국에 ‘기사 셋, 성기사 둘, 마법사 하나, 사제 하나’라는 공략법을 모르는 자가 없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잡았당]
리카스 포를랭이 던전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느라, 소예리 헌터님은 아예 그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다.
왜냐고?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전서구요? 진짜 보냈어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바로 날리네]
……소식 듣자마자 정보를 정정하기 위해 편지를 날릴 것 같았거든.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래도 뇌가 있으면 곧바로 정정하진 않을 것 같은데…… 들키면 끝장이잖아요?]
불과 수십 시간 전의 자신이 리카스 드 포를랭을 고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진짜…… 생각보다 멍청하구나……]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L급 던전이라고 등장인물까지 L급 뇌를 가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그 공략을 믿고 던전에 들어간 자가 동제국에 없길 바랄 뿐입니다]
주이안 씨가 걱정하는 건 동제국은 아니고 동제국의 힐러들일 터였다.
신시안 교는 원칙상 서제국에만 있는 종교라, 동제국은 사제가 없었다.
다른 신의 사제가 있기야 했지만 교세가 신시안만큼 크지도 않았기 때문에, 치유 마법을 익힌 일부 마법사들이 치료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만큼 원래 힐러가 갈려 나가는 지역이라는 뜻이었다.
요컨대 주이안 씨는 불쌍한 힐러들이 더 갈려 나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편지 읽어봤는데 정말 간곡하게 그 정보 잘못됐다고 말하고 있어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뭐래요? ㅋㅋㅋㅋ]
어디 얼마나 구구절절 정보를 정정했는지 볼까?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다 에델바이스 백작의 사특한 간계였던 것 같습니다 일단 그 정보를 알리지 마시고 어쩌구저쩌구]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사ㅋㅋㅋㅋ특한ㅋㅋㅋㅋ간계ㅋㅋㅋㅋㅋㅋ]
맞긴 하지. 네가 동제국에 흘릴 것 같아서 일부러 이상하게 알려준 거니까.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근데 유리가 진짜 정보를 덥석 줄 거라고 믿은 놈이나, 그걸 믿고 전국에 공포한 놈이나 멍청한 건 마찬가지 아님?]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멸망계시록에는 분명 킨나가 파리스보다 명석한 자라고 나와 있었던 것 같은데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많이 똑똑하단 얘기는 없었잖아]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아……]
주이안 씨의 아련한 탄성과 함께 팩트폭격이 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헌터채팅에 희소식이 울렸다.
이번엔 킨나가 리카스에게 보낸 편지를 잡아낸 것이다.
물론 이쪽은 정말 파리스보다 머리가 조금은 있는지 좀 더 수준 높은 마법으로 내용을 감춰 놓았다.
하지만 마탑주님과 마력석 광산 근처 숲을 탐사하는 ‘흔치 않은 영광’을 누리던 마법사가 마력이 느껴지는 새를 잡아내면서, 그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특별히 입 싼 친구가 잡게 했어용]
그 입 싼 마법사는 다름 아닌, 광산을 처음 발견했던 필이라는 마법사였다.
“편지에 마법이 걸려 있습니다!”
연구본능이 발동한 마법사 필은 마탑주님 앞에서 제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에 드러난 편지는 당연히 킨나가 리카스에게 보낸 것이었고, 마법계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리카스 드 포를랭과 동제국의 황족 킨나가 전서구를 주고받았다.]
그 사실은 마법사 필을 통해 다른 마법사들 사이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그리고 게이트 사태 이후로 귀족가에 다시 전속 마법사들이 생기기 시작한 만큼, 사교계에도 빠르게 소문이 퍼졌다.
“최근 포를랭에서 기사들이 대거 추방되고도 게이트 관리도가 크게 낮아지지 않았던 게, 리카스 드 포를랭이 에델바이스에서 첩자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말이오?”
“그뿐일까? 킨나가 어떤 지원을 해줬을지도 모르지!”
포를랭의 게이트 관리도가 그대로인 건 그냥 서류 조작 때문이었지만 진실은 아무래도 좋았다.
“동제국과 내통하다니!”
그 소식은 사교계는 물론이고 황가에까지 흘러 들어갔다.
그때쯤 ‘귀족들이 알 수 없는 빠른 정보통’을 가진 것으로 소문난 황제 아이반은, 이미 동제국에 정보원을 파견한 상태였다.
아마 헌터채팅에서 내가 그 기상천외한 공략법을 리카스에게 알려줬다고 했을 때부터 파견해놨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시기적절하게 좋은 정보를 물고 왔다.
[킨나가 발표한 게이트 대응안에 해당 공략법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말은 그야말로 완벽한 증거가 되었다.
리카스 드 포를랭, 포를랭 가가 동제국의 스파이라는 죄명의 완벽한 증거가.
***
던전 공략을 끝내고 내 저택으로 돌아온 리카스 드 포를랭은 아주 불안해 보였다.
하늘을 아련하게 쳐다보는 것이 아무래도 킨나의 회신을 애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모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보다 먼저 온 것이 있었다.
“황성 기사 릴입니다. 리카스 드 포를랭의 체포에 협조해주십시오.”
“!”
난 기사의 방문에 놀란 척했지만, 순순히 리카스를 팔아넘겨 주었다.
잘 가! 다신 오지 마!
“세냐! 내가 아무 죄도 없다는 건 네가 알지 않느냐!”
리카스는 애절하게 날 부르면서 끌려갔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포를랭 자작도 체포 완료]
쓰레기 분리수거 일보 직전이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키칼 드 포를랭도 같이 체포되는 건가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놈은 스파이란 증거는 사실 없긴 한데 어차피 스파이짓 했으면 멸문이잖아요]
서제국의 전통적인 패키지 서비스에 따라 키칼도 체포될 예정이라고 했다.
놈이 억울하다고 고래고래 외치면 시끄러워지긴 하겠지만 폭군 좋다는 게 뭔가?
게다가 안 그래도 게이트 사태 이후로 동제국과의 감정이 안 좋아진 서제국에서, 동제국에 게이트 대응 정보를 흘렸다는 건 정말 대박사건이 따로 없었다.
“후우.”
[히든 퀘스트 ‘보다 강한 힘’
- 상대 ‘포를랭 일가’에 가한 피해 점수 : 91점]
클리어 조건이 100점이니 포를랭에 조금만 더 엿을 먹이면 S급 승급이었다.
여기서 별 짓 안 해도 무리 없이 승급할 듯했다.
어차피 쟤들 스파이 짓 했으니까 사형이잖아? 설마 모가지 날리는데 9점도 안 주겠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연무장으로 나간 내게, 뜻밖의 선물이 주어졌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백작님, 오셨습니까!”
연무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포를랭 출신 기사들 중에 우물쭈물하며 내게 다가오는 자가 있었던 것이다.
“가주님, 저, 포를랭에서 온 론이라고 합니다.”
“출신은 신경 쓰지 말라니까. 무슨 일인데?”
굳이 출신은 왜 밝혔나 했더니 론이 갑자기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돈주머니와 낡은 편지지를 꺼내 들었다.
“포를랭 가에 있을 때, 이걸…… 동제국에 전하란 명령을 받았었습니다. 당연히 시행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강조하며 론이 내게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에는 포를랭 가에서 몇 번 본 키칼의 글씨체가 쓰여 있었다.
설마? 스얼마?
“키칼 님의, 아니, 키칼 드 포를랭의…… 명령이었습니다.”
설마 하는 내게 론이 대박선물을 안겨주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여러분 대박]
근데 키칼 이놈은 필적 감출 생각도 안 하나? 진짜 멍청인가?
아무튼 이로써 포를랭 사후세계 패키지 구성품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