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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79)화 (179/218)

179화

아, 미치겠네!

난 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신재헌은 진심으로 검을 잡고 있지 않았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버프 : 검의 수호자(B) 뜨거운 피(A) 화염검(SS)]

이 미칠 것 같은 상황에서 딱 하나 다행인 게 있다면.

신재헌의 버프창이 번쩍여도 이 시간에는 늘 그랬으니 다른 헌터들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거 딱 하나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 외엔 빵점이다!

진심으로 검을 휘둘러 달라고!

그렇다고 방어 검술 연습이라고 했다간 그가 완전히 연습형으로 변해서 검을 휘두를 게 분명했다.

그러니 말도 할 수 없었다.

―쨍!

그래도 그나마 처음보다는 적극적인 것 같은 검을 쳐내면서 난 생각했다.

그냥 아까 부르지 말고 뒤에서 습격할 걸 그랬나?

그럼 적어도 지금보단 진심으로 반격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래 봐야 내가 오는 소리만으로도 나인 걸 알았을 테니 진심으로 공격하진 않았겠지만…….

―쩡!

다시 검이 맞부딪쳤다.

결국 이놈의 검을 진심으로 이끌어내는 방법은 내가 맹공을 퍼붓는 것뿐이었다.

진짜 위험해지면 본능이 먼저 반응하는 법이니까.

[잔상(SS+) 스킬을 사용합니다.]

[잔상(SS+) 스킬을 사용합니다.]

잔상으로 눈을 어지럽히기 시작한 난 기회를 노렸다.

―후웅!

소리는 위협적이지만 신재헌치고는 소극적인 검이 내 앞을 훑고 지나갔다.

그 다음 순간.

[매크로 ‘비켜(A)’ 사용합니다.]

[순간집중(SS) 스킬을 사용합니다.]

[잔상(SS+)―잔상(SS+) 스킬을 사용합니다.]

[매크로 ‘지금몬스터날아오는데그게문제냐’ 중첩사용 중]

[버터관자구이먹고싶다(E) 스킬을 사용합니다.]

[포를랭 4검식(A)을 사용합니다.]

[빠른 스킬 중첩으로 속도 보너스 적용(30%, 헌터랭크 상한)]

[빠른 스킬 중첩으로 데미지 보너스 적용(30%, 헌터랭크 상한)]

A급 매크로로 난 순식간에 그의 약점으로 파고들어갔다.

진짜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처럼.

신재헌은 막을 수 있을 것을 믿기에.

대검을 쓰는 그의 약점은 당연히 거리가 지나치게 가까워졌을 때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의 목과 허리, 가슴으로 찔러져 들어가는 검은 빠르고 강력했다.

이대로라면 신재헌이 제대로 반격할 수 없는 범위 안쪽으로 뛰어 들어간 것이었다.

“!”

진심으로 놀란 신재헌의 스킬창이 번쩍였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공격에 그의 본능이 반응한 것이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버프 : 검의 수호자(B) 뜨거운 피(A) 화염검(SS) 기혈개방(S) 책임감(S) 약점 간파(S) 육참골단(SS)]

그리고 이게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순식간에 뒤로 거리를 벌린 신재헌의 검이 엄청난 기세로 내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물론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매크로 ‘방어1검식(A)’ 사용합니다.]

[받아치기(C)―흘려보내기(A) 스킬을 사용합니다.]

[순간가속(SS) 스킬을 사용합니다.]

[잔상(SS+)―잔상(SS+)―잔상(SS+) 스킬을 사용합니다.]

[나는 언제나 네 앞에(SS) 스킬을 사용합니다.]

[빠른 스킬 중첩으로 속도 보너스 적용(30%, 헌터랭크 상한)]

[빠른 스킬 중첩으로 능력치 보너스 적용(30%, 헌터랭크 상한)]

스킬 알람이 쭉 뜨면서 시스템창이 번쩍였다.

막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난 내가 한 가지를 간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킬 ‘나는 언제나 네 앞에(SS)’ : 데미지 50% 감소 적용됩니다.]

……내 뒤에 아무도 없어서, ‘나는 언제나 네 앞에’ 스킬의 데미지 감소가 99%가 아닌 50%로 들어갔다는 것.

당연히 그것의 체감은 컸다.

―콰직!

내 검이 박살 나면서 신재헌의 검이 그대로 나를 반으로 가를 듯 쇄도해왔다.

“……!”

순간가속 스킬의 영향이 남아 있는 사이, 내가 몸을 살짝 틀었을 때였다.

“!”

신재헌의 검이 별안간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쌔액!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말레티아의 검은 이상한 방향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파악!

안 그래도 무거운 검을 이상한 방향으로 틀었으니 검을 놓치는 것이 당연했다.

“……!”

신재헌이 숨을 터뜨렸다.

그의 검푸른 눈은 당황으로 물들어 있었다.

베인 나보다 벤 그가 더 놀란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알아챈 순간, 팔에서 검 손잡이를 들고 있던 손까지 피가 흘러내렸다.

그의 검에 깊이 베인 상처 때문이었다.

이 정도야 늘 다쳤던 것이니 놀랄 것도 없……는데.

―탁.

신재헌이 내게 다가왔다.

내 검은 비록 검날이 박살 났지만 아직 날카로운 조각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건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그는 불쑥 다가와 내 팔을 손수건으로 꾹 눌렀다.

“그러다 찔려!”

내가 놀라서 부러진 검을 멀리로 내던져 버렸다.

하지만 신재헌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 상처를 누르고만 있었다.

전장에서 늘 선두에 서는 신재헌은 흔하게 당하는 정도의 부상이었는데도.

“안 눌러줘도 돼.”

내가 그의 손을 두드리며 말했다. 손수건을 달라는 뜻이었다.

이 정도 다칠 거야 예상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건 ‘나는 언제나 네 앞에’ 스킬이 99%로 발동할 경우였다.

그런데 50%로 발동하고도 이 정도면 방어매크로 성능 끝내주는데?

그렇게 생각할 때쯤이었다.

꾹 누르던 힘과는 달리 의외로 손수건을 쉽게 내준 신재헌이 손을 내렸다.

바닥으로 떨어지듯 손이 힘을 잃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다.

“……어.”

신재헌이 작게 뇌까렸다.

“뭐라고?”

되묻자 반 박자 늦게 답이 돌아왔다.

“못 하겠다고.”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난 그와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놀랐다.

내가 베였을 때보다 더.

그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에.

“너…….”

그는 수년 전, 내 검에 수도 없이 날아가 처박힐 때도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에 받친 얼굴로 검을 잡고 일어서던 그는 지금 울고 있었다.

“…….”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아 그를 멍하니 바라볼 때였다.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문 그가 나직이 물었다.

“내가, 뭐라고 할 것 같아?”

가라앉은 목소리에 장난기 따위는 없었다.

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큰일…… 날 뻔했다고……?”

내 말에 신재헌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는 그는 애초에 제가 울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화가 난 것도 같은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그가 씹어뱉듯이 말했다.

“내 손을 잘라 버리고 싶어.”

그 말은 내 머리를 한 대 후려치는 것 같았다.

“뭐?”

그는 숨도 쉬지 않고 재차 말했다.

“미칠 것 같다고. 내가 실수할까 봐.”

아까부터 미칠 것 같았다고.

뇌까리던 그가, 스르륵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두 무릎이 바닥에 닿는 순간, 그는 제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팔을 움직이기 힘들었지만, 난 그를 따라 나도 모르게 몸을 숙였다.

“신재헌?”

이상했다. 가슴이 꽉 조이는 듯한 기분. 세상이 너무 막막해서 숨쉬기가 벅찬 기분.

난 밭게 숨을 내쉬면서 문득 깨달았다.

나는…… 그가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이상하지.

나는 네 앞에서 수도 없이 울었는데, 너는 내 앞에서 한 번도 울지를 않았다.

나는 그래서 마냥 네가…… 네가 울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무심하게도.

멍한 충격이 머릿속을 후려갈겼다.

“……미치겠다고, 내가.”

신재헌이 뇌까렸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진짜…… 울어?”

내 말에 신재헌이 마른세수를 했다. 물기가 반짝이는 눈가가 보였다.

천천히 고개를 든 그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응, 울어.”

담담하게 시인하는 목소리는 낯설었다.

아니, 낯설지만 그였다. 내가 처음 들었을 뿐.

어쩌면 그가 내 앞에서 처음 보여주었을 뿐.

……지금까지 내게 감춰 왔던 모습일 뿐.

소리 없는 흐느낌이 들리는 듯했다.

“…….”

내가 다친 것 때문에 우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는 우린 너무 많이 다쳐 봤다.

난 본능적으로 그의 울음이 다른 이유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어느 날 느꼈던 무형의 벽의 존재를 다시 알아챘다.

그와 나 사이에 있는 벽.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가 세운 벽.

“네가 날 울게 해.”

벽 너머의 그가 말했다. 중얼거리듯 말하는 소리가 가슴을 찔러 왔다.

“다른 데서는 하지도 않는 짓을 하게 해. 어리광 부리고 매달리게 해.”

내가 할 말을 잊은 사이, 그가 꽉 멘 목소리로 끊어질 듯한 말을 이었다.

“내가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아는데, 네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란 걸 아는데…….”

그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신유리.”

이름을 불러도 답할 수가 없었다. 그와 나 사이에 있는 것은 내가 세운 벽이기에.

그는 줄곧 인식하고 있었지만 나는 이제야 알아차린 이 벽의 존재가 너무나도 잔인하게 다가왔기에.

“뭐든, 내가 원하는 건 들어주고 도와준다고 했지.”

언젠가 내가 했던 말이었다.

그가 내게 찾아온 날.

내게 기이한 10초를 선물한 날에.

그가 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도와줘, 신유리.”

미치겠어. 내가, 너 때문에 미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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